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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vs 자위대 – 나무위키
4 ngày trước — 대한민국 국군과 일본 자위대 간의 전쟁 시나리오. …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1953년 한국군은 육군이 당시에 55만에 이르는 대군으로 성장하고 해군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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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Website: 한국군 vs 자위대 – 나무위키
- Description Website: 4 ngày trước — 대한민국 국군과 일본 자위대 간의 전쟁 시나리오. …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1953년 한국군은 육군이 당시에 55만에 이르는 대군으로 성장하고 해군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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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반전 결과이다” 한국vs일본 전쟁 나면 누가 이길까?
한국 해군은 200여 척의 함정을 보유하고 있다. 세부 내역을 살펴보면 이지스함 3척, 5,000t급 구축함 6척 등 점점 선진국들의 해군력을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일본이 보유한 함정은 130여 척의 함선, 360여 기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고, 이지스함을 14척이나 가지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이지스 시스템을 가진 함선은 고작 3척에 불과하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은 항공모함 및 강습상륙함 전력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군은 1척의 헬기 항모 상륙함을 가지고 있지만 일본은 무려 5척이나 가지고 있다.
여기서 비슷한 공군 전력으로 보이지만, 항공 폭격을 하게 된다면, 한국이 조금 더 우세하다. 그 이유로는 대한민국 공군이 보유한 MK82 폭탄 1만 발을 GPS 유도 장비로 부착한 KGGB 폭탄으로 개조할 예정이며, KEPD-350 타우러스 같은 공대지 미사일과 GBU-28, 50, 52 등 레이저 유도폭탄을 보유해 한국 공군의 기화폭탄 보유량은 세계 6위에 달한다. 이에 비해 일본은 2012년에서야 유도폭탄 훈련을 시작했고, 유도폭탄의 양도 한국보다 적다.
최근 일본은 5세대 전투기를 146대를 구입한 것으로 한국보다 약 64대가량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언제까지나 5세대 전투기에 대한 이야기고, 나머지 전투기들은 비슷한 수준이다. 게다가 국군도 4.5세대를 실전 배치할 목표를 가지고 있고, 양국 모두 주력기로 사용하는 일본 F-15J, 한국의 KF-16을 개량할 예정으로 모두 2022년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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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Website: “이건 반전 결과이다” 한국vs일본 전쟁 나면 누가 이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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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가능’ 국가 됐다‥세계 3위 군사대국 (2022.12.17/뉴스투데이/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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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반전 결과이다” 한국vs일본 전쟁 나면 누가 이길까?
대한민국 국군과 일본 자위대
매번 언급되는 비교 대상
두 국군은 어떤 차이가 있나?
종종 우리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 상상을 하곤 한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과 일본이 전쟁을 치르게 된다면 누가 이길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여러 의견이 오갈 것이다. 언제까지나 이 가정은 상상일 뿐 일어나기엔 어려운 상황으로 현재 대한민국과 북한이 통일될 가능성과 동일한 수준이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친미 진영에 있는 국가로 두 국가의 전쟁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두 국가가 전쟁을 펼치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인지 유추해 보자. 생각보다 흥미진진한 결과가 나온다.
육군은 한국이 압도적
비교 자체가 어려울 정도
우선 한국군과 자위대 병력의 차이를 비교해 보면, 먼저 자위대는 상비군이 24만 8,160명, 예비군이 5만 6,000명이고, 대한민국 국군의 상비군은 55만 5,000명이며, 예비군은 225만 명이다. 인력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국군이 보유하고 있는 육군 무기들을 살펴봐도 대한민국이 우세하다.
대한민국 육군이 보유하고 있는 3.5세대 전차만 보더라도 국군은 690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자위대는 99대뿐이다. 게다가 보병전투차나 장갑수송차 등 대부분이 국군이 보유한 숫자가 월등히 더 많고, 육상자위대와 육군과의 전투를 상상하면 압도적으로 대한민국 육군이 더 우세하다. 하지만 이것은 언제까지나 육군과 육상자위대만 비교한 것이다.
수적 우세 일본
화력은 오히려 한국이 우세
최근 일본은 5세대 전투기를 146대를 구입한 것으로 한국보다 약 64대가량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언제까지나 5세대 전투기에 대한 이야기고, 나머지 전투기들은 비슷한 수준이다. 게다가 국군도 4.5세대를 실전 배치할 목표를 가지고 있고, 양국 모두 주력기로 사용하는 일본 F-15J, 한국의 KF-16을 개량할 예정으로 모두 2022년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비슷한 공군 전력으로 보이지만, 항공 폭격을 하게 된다면, 한국이 조금 더 우세하다. 그 이유로는 대한민국 공군이 보유한 MK82 폭탄 1만 발을 GPS 유도 장비로 부착한 KGGB 폭탄으로 개조할 예정이며, KEPD-350 타우러스 같은 공대지 미사일과 GBU-28, 50, 52 등 레이저 유도폭탄을 보유해 한국 공군의 기화폭탄 보유량은 세계 6위에 달한다. 이에 비해 일본은 2012년에서야 유도폭탄 훈련을 시작했고, 유도폭탄의 양도 한국보다 적다.
섬나라 클래스인가?
전반적으로 불리한 해군 전력
앞서 소개한 육군과 공군 전력만 보더라도, 한국의 전력이 우세해야 한다. 하지만 전 세계 군사력을 비교하는 GFP의 순위를 보면, 일본이 한국보다 높은 순위 5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일본의 군사력이 우위에 있을 수 있던 이유는 바로 해상자위대가 보유하고 있는 함정들이 대한민국 해군보다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국 해군은 200여 척의 함정을 보유하고 있다. 세부 내역을 살펴보면 이지스함 3척, 5,000t급 구축함 6척 등 점점 선진국들의 해군력을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일본이 보유한 함정은 130여 척의 함선, 360여 기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고, 이지스함을 14척이나 가지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이지스 시스템을 가진 함선은 고작 3척에 불과하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은 항공모함 및 강습상륙함 전력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군은 1척의 헬기 항모 상륙함을 가지고 있지만 일본은 무려 5척이나 가지고 있다.
복합적으로 진행되는 전쟁
굳이 우위를 나누는 건
크게 의미가 없어
이렇게 한국과 일본의 군사력에 대해 비교해 보았는데, 결론은 이렇다. 각 육해공의 전투는 비교가 가능하지만, 언제까지나 전쟁은 복합적으로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별도로 나눠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위를 알긴 어렵다. 물론 해군 전력을 제외하고 말이다.
사실상 두 국가의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하기 때문에, 차라리 북한과 전쟁을 진행했을 때를 기준으로 시뮬레이션 해보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두 국가는 친미 성향을 가진 국가로 오히려 우리가 견제해야 하는 곳은 러시아와 북한 그리고 중국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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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잘못알고 있나 봅니다. – BRIC
하지만 일본이 울릉도를 타격한다라는 가정을 한다면 일본이 과연 울릉도를 타격할것인가 말것인가입니다.울릉도의 TPS-117는 비록 E-767에 미치지는 못하지만,최소한 측후방쪽에서 F-15J가 접근해오는것은 분명히 막아줄테고 일본의 F-15J가 측후방에서 KF-16에 접근하여 무장유효사거리가 짧은 상 태에서 AIM-7를 발사해서 격추시키기 위해서는 25Km내에까지 접근을 해야합니다.Head On이 아닌 후방에서 미사일을 쏘면 미사일이 날아가는 동안 전투기도 앞으 로 나아가기 때문에 적기의 후방의 무장유효Evenlope가 극단적으로 줄어들기때문에 실질적으로 30Km에 달한다는 AIM-7의 사정거리를 충분히 활용못합니다.,최소한 뒤 를 잡히지는 않을테니,이대로라면 F-15J가 독도 상공의 KF-16을 제압한다 하더라도 상당한 피해가 예상됩니다.물론 가용전투기의 숫자는 오키제도를 적극활용할 항공 자위대가 아무래도 우세 있을것이고,TPS-117의 탐지를 비해 저공비행을 강요한다 하 더라도 100Km외곽에서 연료량에는 별 영향이 없을것으로 예상됩니다.
F-16 과 BVR 교전이 가능한 AIM-120의 조합으로 F-15 J 와 스패로우 미사일의 조합을 대항하는 것은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많은 매니아들이 이런 분석을 하기도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고 보여집니다. 스패로우가 세미 액티브 방식의 미사일이기는 하지만 F-15 의 에너지 파이팅 능력과 월등한 레이더 성능과 전장상황 파악에 강력한 장점을 가지는 조기경보기의 존재를 고려할때 결국 잘해야 비등한 전투를 할 수있게될 것입니다.(굳이 사견이라면 비등한 전투도 저의 희망사항이고 한국공군은 거의 궤멸되게 될것이 제 사견입니다) F-16 과 F-15 J 의 무장 탑재능력의 차이와 양국이 보유한 BVR 전 능력을 가진 전투기 숫자의 차이 와 전자전 능력차이를 고려하면 한국이 분명한 열세를 보일 것으로 판단됩니다.
공군전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있는 조기경보기는 앞서 이야기한대로 일본이 17 기 운용 중인데비해 한국은 단 한 대도 운용하고 있지않습니다.물론 얼마전에 e-737도입이 결정되었습니다만.. 물론 조기경보기가 없다고 완전히 불리한 것만은 아닙니다. 문제는 조기경보기가 없을 경우 지상 방공레이더만으로는 적의 저공침입을 완벽하게 탐지해 내기가 어렵고 탐지하더라도 조기 탐지가 어려워서 거의대응하기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지상방공레이더 망에 의존할 경우 적의 정밀공격에 취약해서 조기경보기의 높은 생존성에 비교할때 지속적인 방어망 유지에 큰 어려움이 생기게된다는것을 들수가 있을듯 합니다.
일본은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동안 외교적으로 한국과의 전쟁을 벌이기가 불가능하고 또한 일본자위대는 전면전을 위한 준비가 거의 되어있지가 않습니다. 한국은 북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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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북한 공격에 \”한국 동의는 필요 없어\” (2022.12.17/뉴스데스크/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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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잘못알고 있나 봅니다.
전문가가 잘못알고 있나 봅니다. 2 (2006-12-14 23:33) 공감 1 조회2909 Share Close 트위터 l 페이스북 비밀번호 황우석씨 때문에 몇차례 브릭에 들린적은 있으나 글을 남길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어제 오늘 3차례나 글을 남기는군요….;;
이곳에서 밀리터리와 관련된 글을 보게 되어서 당혹스럽지만 나름 관심을 가지는 분야라 설명드려볼까 합니다.
동북아시아에서 존재하는 국가의 군사력을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미국>>러시아>>>>>>>>>>>>>>>>>일본>한국=중국>>>>>>>>>>>>북한
이렇게 됩니다. 미국과 러시아의 군사력은 동북아 국가가 아니라 타대륙의 국가가 근접할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 정도가 강군으로 취급할수는 있겠지만 한국이 유럽에 간다면 그 국가들 못지 않은 강군으로 대접받을것입니다.
핵이라는것을 배제한다면 말이죠.
한국과 일본의 군사력을 정확한 객관적인 요소로 평가하는것은 불가능합니다. 군사력은 고려해야 되는 사안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죠.
서두에 말씀드린것처럼 미국과 러시아는 그 고려요소에서 빼어버린 이유가 타국가와는 너무나도 비교할수 없을 군사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ㅡ.ㅡ;
그럼 한국과 일본의 군사력을 냉정하게 살펴본다면 한국의 육군 우위 해군 일본 우위 공군 일본의 약간 우위정도가 될것 같습니다.
ㅋㅋㅋ님께서 말씀하시는것처럼 한국과 일본의 군사력은 미국과 아프카니스탄과 비교할정도로 차이가 나는것은 아닙니다…
먼저 전면전이라는것을 국제관계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실제로 한국과 일본이 전면전에 나설 가능성은 제로라고 봐도 거의 무방하다 싶을정도로 낮습니다.
일본의 극우세력들의 우발적인 충돌이 일어나고 이 충돌이 계속해서 점층적으로 벌어진다면 제한전을 벌이게될 가능성은 어느정도 있을 수있겠지만 전면전은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야 됩니다.
일본은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동안 외교적으로 한국과의 전쟁을 벌이기가 불가능하고 또한 일본자위대는 전면전을 위한 준비가 거의 되어있지가 않습니다. 한국은 북한의 위협이 존재하는 한 일본과의 전면전은 불가능하고 북한이 없어지더라도 한국의 국력을 고려할때 일본과의 전면전은 솔직히 힘든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분명히 현존하는 관계에서 한일 전쟁은 어떤 경우에도 미국에게 손해가 되므로 미국은 받아드릴 수 없고, 한국과 일본 역시 그러한 미국의 뜻을 거슬리는 일은 솔직히 어렵다고 생각되어집니다.
국지전이나 전면전이나 솔직히 상정하기가 어려운 가정이지만 워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상황을 묘사해서 판단한다면 일본이 한국을 침공한다라는 가정을 세우고 과연 한국이 일본의 침공을 막을수 있냐가 가장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가 될듯 싶습니다.
현대전은 정보전력과 공군전력에의해 그 향방이 결정된다는 것이 걸프전과 이라크전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 될것입니다. 즉 해상전력도 그 자체의 전력보다도 정보전 능력과 공군전력이 어떠한가에 의해서 더욱 더 큰 영향을 받기때문에 한일 해상전력의 비교는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할것입니다.
공군전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있는 조기경보기는 앞서 이야기한대로 일본이 17 기 운용 중인데비해 한국은 단 한 대도 운용하고 있지않습니다.물론 얼마전에 e-737도입이 결정되었습니다만.. 물론 조기경보기가 없다고 완전히 불리한 것만은 아닙니다. 문제는 조기경보기가 없을 경우 지상 방공레이더만으로는 적의 저공침입을 완벽하게 탐지해 내기가 어렵고 탐지하더라도 조기 탐지가 어려워서 거의대응하기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지상방공레이더 망에 의존할 경우 적의 정밀공격에 취약해서 조기경보기의 높은 생존성에 비교할때 지속적인 방어망 유지에 큰 어려움이 생기게된다는것을 들수가 있을듯 합니다.
현재 일본은 주력 전투기로 190 여대의 F-15 J 와 50 여대의 F-2 70 여대의 F-4EJ 를 운용중이다. 숫자로 볼때는 4 대의 F-15 K / 175 대의 F-16 / 120 대의 F-4 / 200 여대의 F-5 를 운용중인 한국과 비교할때 320 : 500 으로 일본이 열세인듯 보이지만 실제 전투능력은 그렇지 않다고 보는것이 옳습니다. 일본이 비교적 최신의 기체를 중심으로 운용하고 있는데 비해 한국공군 작전기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F-4/F-5 의 경우 이미 수명이 다되어가는 노후기에 구세대 전투기로서 F-15 나 F-2 에 대적할 수없는 전투기들로 볼수가 있습니다.
F-16 과 BVR 교전이 가능한 AIM-120의 조합으로 F-15 J 와 스패로우 미사일의 조합을 대항하는 것은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많은 매니아들이 이런 분석을 하기도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고 보여집니다. 스패로우가 세미 액티브 방식의 미사일이기는 하지만 F-15 의 에너지 파이팅 능력과 월등한 레이더 성능과 전장상황 파악에 강력한 장점을 가지는 조기경보기의 존재를 고려할때 결국 잘해야 비등한 전투를 할 수있게될 것입니다.(굳이 사견이라면 비등한 전투도 저의 희망사항이고 한국공군은 거의 궤멸되게 될것이 제 사견입니다) F-16 과 F-15 J 의 무장 탑재능력의 차이와 양국이 보유한 BVR 전 능력을 가진 전투기 숫자의 차이 와 전자전 능력차이를 고려하면 한국이 분명한 열세를 보일 것으로 판단됩니다.
자 여기까지는 한국군이 일본 자위대에 비해서 현저히 약세라고 판단하면서 제목에는 전문가가 잘못알고 있나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붙인 이유를 설명 드리겠습니다.
분명히 질문하신분의 질의 내용에서처럼 독도에서 제한된 교전을 펼친다면 한국군은 일본 자위대에게 제공권과 제해권을 빼앗기게 되는것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일본과 공대공 전투에서는 불리할수밖에 없습니다. 이점은 분명히 인정합니다.
한국은 일본이 마음을 먹고 독도를 침공하고자 할때 이를 막을 능력이 없다고 판단된됩니다. 독도 상공에 대한 제공권을 우리가 확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것은 아무리 한국군에 대해서 우호적으로 볼려고 해도 사실이기 때문에 인정해야겠죠
하지만 일본이 울릉도를 타격한다라는 가정을 한다면 일본이 과연 울릉도를 타격할것인가 말것인가입니다.울릉도의 TPS-117는 비록 E-767에 미치지는 못하지만,최소한 측후방쪽에서 F-15J가 접근해오는것은 분명히 막아줄테고 일본의 F-15J가 측후방에서 KF-16에 접근하여 무장유효사거리가 짧은 상 태에서 AIM-7를 발사해서 격추시키기 위해서는 25Km내에까지 접근을 해야합니다.Head On이 아닌 후방에서 미사일을 쏘면 미사일이 날아가는 동안 전투기도 앞으 로 나아가기 때문에 적기의 후방의 무장유효Evenlope가 극단적으로 줄어들기때문에 실질적으로 30Km에 달한다는 AIM-7의 사정거리를 충분히 활용못합니다.,최소한 뒤 를 잡히지는 않을테니,이대로라면 F-15J가 독도 상공의 KF-16을 제압한다 하더라도 상당한 피해가 예상됩니다.물론 가용전투기의 숫자는 오키제도를 적극활용할 항공 자위대가 아무래도 우세 있을것이고,TPS-117의 탐지를 비해 저공비행을 강요한다 하 더라도 100Km외곽에서 연료량에는 별 영향이 없을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지만 울릉도의 TPS-117로 인해 항공 자위대는 전술적인 이점보다도 정공법으로 독도 상공의 KF-16을 제압하여야 되고(사실 정공법,즉 사실 단순히 숫자와 정석적인 전투기술을 동원해도 일본 항공 자위대가 한국 공군을 리드할수가 있습니다.이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울릉도 타격시에 고려해야 되는 요소는 울릉도에는 만오천명에서 2만에 달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살고 있다라는것은 일본이 STAND-OFF로 울릉도 타격은 곧 전면전을 의미합니다.
만약 그럴 경우 한국공군의 선택권은 어떻게 될것 같습니까?일본은 울릉도를 제압할 능력은 제한적이지만 존재하고 울릉도가 완벽하게 제압 되면 독도상공의 한국 의저항은 그의미를 잃게 될겁니다.하지만 그 단계에서는 이미 사실상의 전면전 단계에 돌입하게 될테고,또한 전면전까지는 아니여도 한국은 울릉도가 받은 타격에 합당한 댓가”를 치루게 할 가능성이 농후하게 높고,이 경우 울릉도 와 대비되는 대마도라는 섬이 존재하지요.
한국공군은 대마도를 직접 타격이 가능합니다.부산과 대마도의 거리는 고작 50Km입니다.일본이 어쩌고 저쩌고 할수있는 거리가 아닙니다 ,제주도거리의 남해는 방공식별구역 운운할 문제가 아니라 아예 한국의 영공에 자리잡고 있습니다.즉,배타적 경제수역(EZZ) 분쟁과는 또 다른 문제라고 볼수 있습니다.
ATACMS한 방정도 날려주거나 아니면 그럴 경우 KD2에 탑재된 MK45mod5의 성능테스 트를 하면 되겠군요^^
뭐 일본이 때리는데 맞고만 있어야 되겠습니까^^ 물론 전쟁이 일어나면 안되겠지만…^^
아니면 일본 항공 자위대가 제주도 영공침범이라도 시도해야되는데 일본 항공 자위대의 SEAD능력이나 대지타격능력은 상당히 암울합니다.만약에 대마도가 하다못해 한 70Km정도만 떨어져있었어도 어떻게든 대응방안을 강구할 수 있지만,불행히도 대마도는 울릉도와 다르게 한국과 무척이나 가깝습니다.울릉도 에 힘겹게 레이져 폭탄을 한두개 떨구는동안 대마도는 한국군의 각종 전술타격무기 체계의 실탄화력장과 원거리 전술교리 개발에 앞장서게 될것이며,뭐 이런 상황속에서도 독도가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일본자위대에게 독도를 빼앗기는것은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만약에 전장
이 독도근해를 벗어나면, 일본으로서는 “전혀” 반갑지 못한 일이 될겁니다.소위 밀리터리 전문가들은 해상봉쇄 운운하지만,이는 거꾸로 얘기하면 일본은 한국에 대해서 해상봉쇄같은 소극적인 전법외에는 전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한겁니다
자 일본이 독도 상공을 제압하는데 문제가 또 있습니다.일본으로서는 독도상공을 제압해도 상륙할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다고 볼수 있습니다.공정단이라도 투입한다면 모르지만,독도에서 과연 소산과 집결이 가능할 지는 의문이들수밖에 없고 고도 침투 저고도 낙하산 개방방식로 침투하기에는 독도는 지나치게 좁으니,게다가 독도는 평지가 아니라 바위섬이니,가장 확실한 방법은 결국 AASLT인데 일본 육상 자위대에 공중강습능력이 존재하는지 의문이군요..이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독도에 무혈 입성하려면 울릉도의 제 압 필수적인데,과연 독도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어쨌거나 TPS-117 를 제압하지 못하면,고고도에서 상대방의 측후방을 무는 전법은 아예 실현가능성이 없는만큼유일한 방법은 TPS-117의 사각인 저공으로 침투한다음에 고고도의 F-15J가 KF-16을 붙잡고 있는동안 갑작스럽게 치고올라와 압도적인 숫적 우세를 점 하는 방법밖에 없지만,이 경우도,KF-16이 고고도에 있으면 잘 안통하는 방법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걸 울릉도 근처 상공에 대기하고 있는 다른 KF-16한테 걸리면 한국의 저항을 제압하는것이 가능해도,적지 않은 피해가 예상되죠.게다가 미사
일 발사대라도 설치된다면..;;일본으로서는 난감하죠.게다가 한국공군이 F-15K와 E-737을 전력화한다면 일본측은 독도상공에서의 승리공식조차도 장담하기 힘듭니다.
물론 일본의 경제력을 이용해서 F/A-22를 도입한다면 모를까 자신들의 혈맹인 영국에게도 팔까 말까인 F/A-22를 일본에 팔지는 의문이군요.러시아의 PAK-FA는 더더욱 말할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전면전이라고 일본이 설친다고 한국 본토 타격이 될것 같습니까^^
일본 후쿠오카도 부산에서120킬로미터정도 떨어져있습니다.과연 일본 의 방공연대와 고사포와 이지스함이 현무와 에이티킴스이 요격할수 있는지도 구경하는것도 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될수도 있을듯 하군요.
스펙만으로는 그 막강한 해상자위대와 항공 자위대가 한국의 본토공격에 전혀 타격을 가하지 못 한다는것에 대해서 피눈물을 흘려야하며 한국에 가깝다는 사실에 원망해야할겁니다.괜히 한반도가 일본의 심장을 겨누는 비수라고 하는것이 아닙니다. 한국군의 전력은 한국민들이 우습게 볼정도로 약한 전력이 아닙니다.
일본이 만오천-2만의 한국민이 살고 있는 울릉도 타격을 피눈물 흘리면서 성공할지 실패할지 장담을 못하지만 한국은 일본민 4만오천이 살고 있는 대마도를 피눈물 흘리지 않고도 타격이 가능하며 불바다 만들전력이 있습니다.
물론 전쟁이란 있어서도 아니되며 평화란 단어를 사랑합니다만 한국은 일본에게 절대로 구한말처럼 당할만큼 약한 전력이 아니다라는점은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전쟁나면 싸울것” 일본13% `세계최저` · 베트남 96%…한국은?
사진 확대 최근 G7정상회담에서는 상의를 벗고 남성미를 과시하던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조롱섞인 언급이 있었다. 사진은 2010년 러시아가 공개한 푸틴 대통령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사진 확대 지난 2019년 중국 칭다오에 입항한 일본 해상자위대 군함. 일본 자위대의 전력은 지난해 GFP가 내놓은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 5위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하다. [사진=연합뉴스]
2 thg 7, 2022 — “전쟁나면 싸울것” 일본13% `세계최저` · 베트남 96%…한국은? 신윤재 기자. 입력 : 2022-0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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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사실상 ‘전쟁수행능력’…입장 난처해진 한국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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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나면 싸울것” 일본13% `세계최저` · 베트남 96%…한국은?
[한중일 톺아보기-92]사진 확대 최근 G7정상회담에서는 상의를 벗고 남성미를 과시하던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조롱섞인 언급이 있었다. 사진은 2010년 러시아가 공개한 푸틴 대통령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전쟁시 나라 위해 싸울 것인가?” 일본 13% ‘세계최저’
사진 확대 [그래픽=조보라]
사진 확대 지난 2019년 중국 칭다오에 입항한 일본 해상자위대 군함. 일본 자위대의 전력은 지난해 GFP가 내놓은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 5위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하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싸우겠다” 67%…베트남 96.4% · 중국 88%
사진 확대 [그래픽=조보라]
사진 확대 지난 2020년 베트남 수도 하노이 시내에 걸린 코로나19 방역 포스터. [사진=연합뉴스]
냉전 이후 누그러졌던 안보 불안, 2010년대 반등…우크라 전쟁으로 더 고조될 듯
사진 확대 2017년 미국의 45대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왼쪽)와 2016년 브렉시트를 옹호하는 영국 시민들. [사진=연합뉴스]
사진 확대 5월 열린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유지 강조”라는 문구가 들어갔다.[사진=연합뉴스]
※토요일 연재되는 ‘한중일 톺아보기’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아시아와 관련된 크고 작은 이슈들을 살펴봅니다. 하단 기자페이지 +구독을 누르시면 다음 기사를 쉽고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30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전쟁 종식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서방에 대응해 러시아가 구소련 동맹국을 규합하고 중국이 거드는 가운데 확전 우려가 계속 나오고 있는 형국입니다. 최근 나토 정상회의 기간 러시아는 크림반도 침범 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놨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군비 확대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습니다. 독일 의회는 올해 1000억유로 규모의 특별방위비를 조성하는 한편,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간 1.5% 수준이었던 국방비 지출을 2%까지 늘리기로 했습니다. 영국도 2028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2.5%로 증액하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참의원 선거를 앞둔 일본은 집권 자민당을 중심으로 국방비를 GDP 대비 2% 이상으로 늘리고 적 기지 공격 능력과 자위대 보유 명기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당론으로 채택했습니다. 이에 따라 전후 75년 만에 개헌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죠.푸틴 대통령이 섣부른 결정을 하지 않을 거라던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이 엎어진 이후, 예전에 비해 전쟁의 잠재적 위협을 의식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전쟁은 결코 있어선 안 되지만 만약의 사태가 자신의 나라에서 발생한다면 사람들은 과연 어떤 행동을 취할까요. 이와 관련해 세계인들의 의식을 알아보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가 바로 ‘세계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WVS)’입니다. 오스트리아 빈을 연고로 하는 WVS는 비영리 사회과학연구기관으로서 1981년부터 민주주의, 환경, 가족, 종교, 정체성, 안보 등 광범위한 분야에 대한 의식 조사 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WVS는 설문조사에 공통적으로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당신은 조국을 위해 싸우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포함해 왔습니다. 가장 최근인 2021년 조사에 따르면 해당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이 가장 낮았던 나라는 일본이었습니다. “싸우겠다”라고 응답한 일본인들은 13.2%에 불과해 조사대상 79개국 중 가장 낮았죠. 리투아니아(32.8%), 스페인(33.5%), 마케도니아(36.2%), 이탈리아(37.4%)등이 일본의 뒤를 이었지만, 이들 국가에서 “싸우겠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30%대로, 일본에 비해 20%포인트 이상 많았습니다. 특히 일본은 “모르겠다”는 응답이 비슷한 순위권의 국가들에 비해 20~30%포인트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일본인들 중 “모르겠다”라는 응답이 유독 많은 것은 이들이 소위 평화헌법(헌법 9조)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의 헌법 9조는 전쟁 포기, 전력 보유 불가, 교전권 부인 등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은 이 같은 응답 결과를 두고 일본의 전쟁 책임을 묻는 소위 ‘자학사관’이 젊은이들을 위축시키고 소극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본과 같은 패전국이자 전쟁범죄를 저질렀던 나라로 곧 잘 비교되는 독일의 경우, 응답자의 44.8%가 “전쟁이 나면 조국을 위해 싸우겠다”라고 답했습니다. “모르겠다”는 응답은 12.2%에 불과했습니다. 무엇보다 독일 정치인들은 지난 과오를 철저히 반성하는 행보를 보여왔고, 독일에선 일본처럼 ‘자학사관’ 논란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같은 질문에 대해 한국 응답자들은 67.4%가 “싸우겠다”, 32.6%가 “싸우지 않겠다”라고 답했습니다. “싸우겠다”라고 응답한 한국인 비율은 조사대상 79개국 중 40번째로 정확히 중간 순위였습니다. 과거에 비해 감소 경향을 보였지만, 대체적으로 70% 전후를 유지해 비슷한 수준의 나라들과 비교해 별 차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싸우지 않겠다”라는 비율이 조사기간중 거의 유일하게 일관적이고 지속적으로 늘어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1981년 6.5%에 불과했지만 조사 때마다 증가해 2017년 이후에는 32.6%까지 급증했습니다.한편 싸우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베트남(96.4%)이었습니다. 요르단(93.8%), 키르기스스탄(92.7%), 중국(88.6%), 노르웨이(87.6%) 등이 뒤를 이었는데, 대체로 과거 침략전쟁을 겪은 나라들에서 높은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특히 중국은 시진핑 정권의 애국주의 교육 효과 때문인지 2010년기 74.2%로 하락세였지만, 2017년기 조사에서는 88.6%로 14%포인트 넘게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한국과 교류가 많은 베트남과 중국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주의 교육이 강한 나라들로 유명합니다. 베트남의 경우 코로나 19 방역을 위해 애국심에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방역 포스터에 “적에 대항하는 것처럼 방역하자”라거나 “집에 있는 게 애국심이다” 등의 슬로건까지 등장했죠. 애국을 명목으로 사회적 격리와 감시가 저항 없이 수용됐습니다. 기업 차원에서도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는 빈그룹은 소위 ‘애국 마케팅’을 벌여 쏠쏠한 재미를 봐왔습니다. 베트남 당국은 오래전부터 정부 차원에서 국산품 애용 운동을 벌이고 있기도 합니다.물론 지나친 애국주의로 종종 주변국들과 마찰을 빚기도 합니다. 중국의 경우 중화주의에 애국, 민족주의 교육을 강하게 받고 자란 Z세대가 특히 중화 국뽕에 심취한 세대입니다. 과거 문화대혁명시대 홍위병의 계보를 잇는 이들의 맹목적 애국심은 올 초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집단 린치 행위로 발현되기도 했습니다.냉전이 종식된 1990년 전후, 안보 불안감이 해소된 덕인지 다수의 조사 대상국에서 “싸우겠다”는 응답은 감소 경향을 띠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2010년 전후로 다시 공통적으로 반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대한 원인은 분명하진 않지만 2008년 리먼 쇼크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 여파가 안보 불안감을 자극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2010년대 이후 세계화가 모두에게 과실을 안겨준다는 믿음이 흔들리면서 빈부격차, 산업 공동화, 이민자 문제, 테러리즘 등이 세계화의 어두운 면으로 부각됐죠. 이와 함께 민족주의와 국수주의가 세계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2016년 국민투표를 통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와 그 이듬해 미국 대선에서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의 깜짝 당선 등은 이를 뒷받침하는 상징적 사건들입니다.올해는 러시아발 전쟁 여파로 각국 국민들의 안보 불안감은 어느 때보다 고조돼 있을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이후 가장 전쟁 가능성이 높다고 거론되는 대만은 실제로 중국발 위협에 국민들의 의식이 높아진 상태입니다. 지난 3월 여론조사에서 대만인 70% 이상이 중국의 침공 때 싸우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현행 4개월 의무 군복무기간을 연장하는 데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중국의 1차 타깃에는 대만 이외에 미국령 괌과 일본 오키나와가 포함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오키나와에는 주일 미군 전력 70% 이상이 집중돼 있는데다 지리적으로 가장 신속히 개입 가능한 위치에 있어 대만 사태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습니다.가장 중요한 건 상황에 따라 주한 미군기지가 목표물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겁니다. 대만 유사시 주한 미군 투입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해 미 상원 청문회에서 “인도태평양사령부 작전 계획에 주한미군 능력을 포함시키는 것을 지지한다”며 주한미군 운용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어제 폐막한 나토 정상회의에서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러시아의 침공이 “푸틴의 전략적 오판”에 기인했으며, 중국도 똑같이 “파국적 오판을 할 실질적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어 “자유세계가 협력해 대만이 방어할 수 있게 돕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호소했습니다.’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로 불렸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버텨 온 것은 국제사회의 지원 덕이 가장 큽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의 철저한 안보태세도 빠뜨릴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는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잠재적으로 인도태평양 안보 지형에 파급효과를 몰고 와 한국에 경제 충격을 넘어 총체적 위협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시사점과 과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신윤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952년 한국전쟁 참전을 위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출발하기 직전 …
1952년 한국전쟁 참전을 위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출발하기 직전의 미 해군 병사들_2 … 이 공유저작물의 이용범위를 숙지하고 동의합니다. 공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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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입닫고 있지만, 사실상 한국전쟁 참전국” : 일본 : 국제
“한국전쟁이 터지자 점령군 총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은 1950년 7월8일 요시다 시게루 총리에게 경찰예비대를 만들도록 지시해 재군비의 길을 열었다. 경찰예비대는 일본이 독립하고 나서 자위대로 탈바꿈했다. 전쟁 발발 당시 일본에 군대는 없었지만, 한반도의 지리 지형을 잘 아는 옛 일본군 출신들이 있었다. 이들은 점령군사령부의 정보조직(G2)에 협력해서 유엔군의 상륙작전 등을 돕는 정보 제공을 했다. 일부는 상륙용 함정(LST)에 선원으로 승선해 일종의 병참업무를 담당했다.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후방에서 전쟁 수행을 지원했다. 그래서 일본이 넓은 의미에서 참전국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요시다 총리도 가능한 한 협력하라고 했다. 유엔군에 혈액을 보내자는 헌혈운동이 벌어졌고 인천·부산 등지에서 연합군 함정을 수리하거나 항만 준설작업을 했던 일본인도 상당수 있었다.”
일제 때 천황(일왕)의 근위병으로 근무했던 일을 자랑스러워했던 나카타니의 부친은 전승국인 미국의 부탁을 거부하면 가족 전원이 말살될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가족 형제 일가친척에게 아들의 사망 경위를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얼마 후 유골상자가 집으로 왔는데 사진만 들어 있었다. 해가 바뀌어 1951년 히로시마 구레항에서 해상보안본부장으로 장례식을 치른다는 통보가 왔다. 도이치는 부친한테서 장례식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오사카에서 소방관으로 취직한 그는 가지 못했다. 공무원이니 휴가를 내려면 숙박지·목적 등을 밝혀야 하는데 동생의 사망 경위를 얘기할 수 없어 포기했다. 결국 부친이 참석했다.
1950년 10월 미군의 지시로 한국 해역에서 활동할 특별소해부대가 편성돼 시모노세키에 집결했다. 소해정 13척, 순시정 7척 등으로 이뤄진 이 부대는 38선을 넘어 영흥만으로 가 유엔군의 원산 상륙작전에 앞서 기뢰 제거를 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10월17일 오후 소해정들이 열을 지어 작업을 하던 중 엠에스(MS)14호가 촉뢰로 폭발해 순식간에 침몰했다. 배수량 135t의 이 배에 탔던 승조원 27명 가운데 18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1명이 숨졌다. 유일한 사망자가 바로 나카타니 사카타로다. 그는 배의 취사 담당이었다.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후미의 취사실에 있었던 그는 다른 승조원들과는 달리 구명동의를 입고 있지 않아 변을 당했다.
29 thg 6, 2010 — 일본은 한반도에 소해정 부대를 보내 군사작전에 참여했고,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의 공습에서 벗어나 파괴를 면했던 군수시설을 전면 가동해 유엔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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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군용기 독도 영공침범…군, 한국전쟁 후 첫 ‘경고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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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입닫고 있지만, 사실상 한국전쟁 참전국”
한국전쟁 때 특별소해부대의 파견을 지시했던 요시다 시게루 당시 총리(앞줄 오른쪽에서 셋째)가 소해부대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태평양전쟁 종전 후 진주한 미군은 일제의 전력을 모두 해체했으나, 일본 연안의 기뢰 제거작업을 위해 소해부대는 존속토록 했다. 자료사진
‘원산상륙’ 소해부대 파견…전사자도 나와
옛 일본군 출신들, 미군 도와 병참업무도
일 정부, 북한과 수교 대비 사실공개 꺼려
1998년 ‘해상보안청 50년사’에서 첫 언급
‘한국전쟁과 일본’ 연구해온 오누마 교수
한국전쟁이 일본에 끼친 영향은 경제적 재활의 발판 마련, 재무장, 공안기구 재정비, 반동정치세력의 부활 등 내정의 차원에 그치지 않았다. 일본은 한반도에 소해정 부대를 보내 군사작전에 참여했고,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의 공습에서 벗어나 파괴를 면했던 군수시설을 전면 가동해 유엔군에 탄약을 공급하는 등 군사적으로 관여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비밀주의 탓인지 이런 군사적 측면에 대한 연구는 그다지 활발하지 못한 편이다. 이 부문의 전문가로 꼽히는 오누마 히사오(60) 교아이학원 마에바시국제대학 교수를 지난 5월20일 학교로 찾아가 얘기를 들었다. 그의 저서로는 등이 있다.
-일본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고 말할 수 있나?
“한국전쟁이 터지자 점령군 총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은 1950년 7월8일 요시다 시게루 총리에게 경찰예비대를 만들도록 지시해 재군비의 길을 열었다. 경찰예비대는 일본이 독립하고 나서 자위대로 탈바꿈했다. 전쟁 발발 당시 일본에 군대는 없었지만, 한반도의 지리 지형을 잘 아는 옛 일본군 출신들이 있었다. 이들은 점령군사령부의 정보조직(G2)에 협력해서 유엔군의 상륙작전 등을 돕는 정보 제공을 했다. 일부는 상륙용 함정(LST)에 선원으로 승선해 일종의 병참업무를 담당했다.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후방에서 전쟁 수행을 지원했다. 그래서 일본이 넓은 의미에서 참전국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요시다 총리도 가능한 한 협력하라고 했다. 유엔군에 혈액을 보내자는 헌혈운동이 벌어졌고 인천·부산 등지에서 연합군 함정을 수리하거나 항만 준설작업을 했던 일본인도 상당수 있었다.”
-일본이 한국전쟁에 참여한 진상이랄까 전체상이 아직도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배경은 무엇인가?
“일본의 외교문서 공개는 한참 뒤처져 있다.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도 한국 정부는 관련 문서 공개를 했지만, 일본은 하지 않았다. 외무성은 북한과의 수교 교섭에 대비해 자신의 손바닥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히로히토, 맥아더 만나
한국전쟁 발발 예견도
오누마 히사오(60) 교아이학원 마에바시국제대학 교수
-한국전쟁에 협력했다는 자료도 역시 공개하지 않고 있나?
“그렇다. 단지 개인 회고록 등에서 그런 협력 실태가 나온 것이 있다. 한국전쟁 때 해상보안청 장관이었던 오쿠보 다케오가 1978년에 낸 회고록 에서 특별소해부대 파견을 밝힌 것이 유명하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런 사실을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
-책이 나온 뒤에 일본 정부가 책 내용에 대해 정식으로 논평한 적이 없나?
“없다. 방위연구소 같은 곳에 특별소해대 관련 자료가 있으나 공식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국회에서 의원들의 추궁이 있어도 모호하게 답변했다. 한국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된 다음해인 1954년 1월 한 공산당 의원이 ‘원산 상륙작전에 일본 소해정이 참가했다는데 사실인가?’라고 묻자 요시다 총리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며 넘어갔다.”
-1998년에 간행된 에는 1950년 10월 연합군의 명령에 의해 특별소해대 25척이 ‘조선수역’의 소해작업에 참가해 19인의 사상자를 냈다는 언급이 있다고 하던데 그것이 일본 정부의 공식기록으로는 처음인가?
“그럴 것이다. 정부 기관이니까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인정했다고 볼 수도 있다. 대대적으로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써 있다.”
-50년사 이후 더 상세하게 언급한 정부 자료가 나온 것은 없나?
“없다. 왜 그런 것을 썼냐고 지적을 당했을지 모르겠다. 쓸데없이 곤란한 것을 썼다고 해상보안청 내부에서 논의했을 수도 있다.”
-소해정 침몰로 죽은 한 사람 외에도 전사한 사람이 있었나?
“연합군의 일본 점령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 발효된 52년 4월28일 끝났다. 점령기간 중 언론 검열이 실시돼 일본인 전사 등은 보도되지 않았다. 일본이 독립을 회복하고 나서야 한국전쟁 기간 중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는 작은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미군부대에서 페인트공이나 요리사로 있다가 한국에서 전사 또는 실종됐다는 개별적 사례들이 있다.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 있다고 편지를 보낸 일본인도 있었다.”
-한국전쟁에서 소해작업을 하다 죽은 해상보안청 직원은 몇 명인가?
“원산 앞바다에서 죽은 한 사람뿐으로 얘기되고 있다. 그밖에 가나가와현 관할 예인선이 한국 수역에서 기뢰에 부딪혀 침몰해 일본인 선원 22명이 숨진 사고가 있다. 또한 일본의 주요 항구에서 한국으로 각종 물자를 나르던 엘에스티에 탑승했던 선원들 가운데 사고를 당해 숨진 사람들이 있다. 미군과 선박회사 사이에 오간 전보에는 이들을 ‘매리너’라고 표기했다. 실제로 해군병사처럼 일했지만 법적으로는 민간인, 해운회사의 선원으로 취급됐다.”
-히로히토 천황(일왕)이 한국전쟁 발발을 예견하고 한반도 정세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하던데?
“맥아더는 일본에 진주해서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총사령관직에서 해임돼 귀국하기까지 천황을 11차례 만났다. 당시 통역이 정리한 메모를 보면 천황은 공산세력이 한반도에서 공격해오는 것이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한국전쟁을 예견했다고 생각될 정도다. 천황은 정치적 감각이 아주 날카로운 사람이다. 51년 5월 천황이 맥아더의 후임인 리지웨이 장군을 만났을 때 두 사람의 대화가 한국전쟁에 관한 군사 정세에 집중됐다고 한다. 천황이 병력 교환, 게릴라전 대응책, 제공권 문제, 중국군의 전략, 피란민 대책 등을 물었다. 천황의 태도는 마치 일제 때 대원수를 했던 것을 방불케 했다는 것이다.”
-이승만 정권이 일본에 망명정부를 세운다는 얘기까지 있었다.
“당시 한국 정부가 북한군의 초기 공세에 밀려 대구까지 밀려났을 때 그런 얘기가 나왔다. 한국 피란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논의도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공산군이 북으로 밀려나자 모든 것이 없던 것처럼 됐지만 대단히 정세가 긴박했다. 예를 들어 야마구치현같이 한반도에 인접한 지역에서는 한반도 정세가 단순히 강 건너 불이 아니었다. 실제로 당시 야마구치현 지사였던 다나카 다쓰오는 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독자적 판단으로 한국에 정보요원들을 보내 정보를 수집하고 정세를 분석했다. 그는 육군 대장 출신으로 1920년대 말 총리를 지낸 다나카 기이치의 장남이다.”
민단서 의용병 모집하자
가미카제 출신까지 지원
-북한군의 침공이 있자 중의원 의원 세코 고이치, 우익계의 거물 고다마 요시오는 일본인 의용병을 한국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맥아더 장군에게 허락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것은 개인의 돌출된 행동이냐 아니면 우익보수 진영의 일반적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냐?
“우익 민족파라고 하지만 일제의 군인들과 맥을 잇는 사람들이다. 일본 사회에서 한정된 의견으로 봐야 할 것이다.”
-다나카 고타로 최고재판소장관(대법원장)은 당시 일본인이 자위를 위해 한국전에 참여하는 것은 법률상으로 가능하다는 발언을 했다. 법률 해석의 최고 권위를 갖는 자리에 있는 사람의 발언이라 당연히 무게가 실리는데 요시다 내각과 사전조율된 것이냐?
“다나카가 요시다 총리와 직접 대화를 하고 발언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일본이 독립하면 재군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한국전쟁을 재군비를 하는 데 하나의 기회라고 봤다. 한국에 의용병을 보내도 법률상 문제가 없다고 한 발언은 재군비론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지만 맥아더가 거부했고 이승만 대통령도 거절해 일본인 의용병 파견은 실현되지 않았다.”
-일본 좌파 진영은 어떻게 대응했나?
“사회당이나 사회당계 노동운동 단체 총평은 한국과 유엔군을 지지했다. 아사누마 이네지오 사회당 서기장은 유엔군을 위해 헌혈까지 했다. 하지만 공산당은 남한이 북한을 침략했다고 주장했다. 공산당이 남침을 인정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민단의 의용병 모집에 일본인도 지원했다. 심지어 가미카제 특공대 출신도 끼여 있었다던데 패전 후 일본에 일자리가 없어서 그랬던 건가?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엘에스티에 탄 선원들도 마찬가지다. 위험은 있었지만 봉급 등의 조건은 좋았다. 민단은 일본인들이 지원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거절했다. 당시는 전후의 혼란이 계속되던 때라 중국 등지의 대륙에 남아 있던 일본인들의 출입이 활발했던 시기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인이 조선인·한국인으로 위장해 한국으로 간 사람이 있었을지 모르나, 정식으로 일본인이 의용병으로 참가했다는 기록은 없다.”
-미군부대에 일본계 미국인이 많아 일본인의 한국전 참가설이 번지기도 했는데?
“일계 미국인 장병은 하와이·캘리포니아 출신이 아주 많았다. 일본어를 잘했으니 북한군이 그들을 보고 일본인으로 생각했을 만하다. 북한군에 포로로 잡혔던 미군 수기를 보면 북한은 당시 일본군이 대거 참전했다고 대단히 걱정을 했다고 한다. 중국 의용군에는 아주 소수이지만 팔로군에 들어갔던 일본인도 있었다. 그러니 일본인들도 한국전쟁 때 남북의 편에 서서 싸운 셈이다.”
마에바시/글·사진 김효순 대기자 [email protected]
“미군, 4백만엔 주며 ‘동생 사망’ 함구요청
해상보안청 찾아가니 ‘모든 기록’ 사라져”
나카타니 도이치가 지난 5월23일 오사카의 자택에서 야스쿠니신사의 답신문서를 들고서 자신의 동생이 한국전쟁에 참전해 숨진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헌법상 전력을 보유할 수 없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금지돼 있는 나라에서 한국전쟁 때 동생이 전사했다며 야스쿠니신사 합사를 호소하는 일본인이 있다. 이름은 나카타니 도이치(83), 오사카에서 거주하고 있다. 고향인 야마구치현 스오 오시마의 어촌에서 자란 그는 6인 형제 가운데 차남이다. 그가 전후 일본 최초의 전사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2살 연하의 동생 나카타니 사카타로다. 1929년생인 사카타로는 16살 때 소년해군지원병에 지원했으나 일본이 4개월 후 항복을 하는 바람에 전투에는 한번도 참여하지 않고 제대했다. 패전 후의 혼란기에 그는 일자리를 찾다가 기뢰소해부대에 지원해 시모노세키에 배치됐다.
1950년 10월 미군의 지시로 한국 해역에서 활동할 특별소해부대가 편성돼 시모노세키에 집결했다. 소해정 13척, 순시정 7척 등으로 이뤄진 이 부대는 38선을 넘어 영흥만으로 가 유엔군의 원산 상륙작전에 앞서 기뢰 제거를 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10월17일 오후 소해정들이 열을 지어 작업을 하던 중 엠에스(MS)14호가 촉뢰로 폭발해 순식간에 침몰했다. 배수량 135t의 이 배에 탔던 승조원 27명 가운데 18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1명이 숨졌다. 유일한 사망자가 바로 나카타니 사카타로다. 그는 배의 취사 담당이었다.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후미의 취사실에 있었던 그는 다른 승조원들과는 달리 구명동의를 입고 있지 않아 변을 당했다.
제적등본 기록 사망위치
원산 앞바다가 틀림없어
소해정 침몰 사고가 난 지 1주일쯤 지나 점령군사령부의 미군 장교가 해상보안청 직원과 통역을 대동하고 나카타니의 고향집으로 찾아왔다. 나카타니 도이치는 당시 오사카에 있어 미군 장교 일행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미군 장교는 한국전쟁에서 전투작업중 배가 기뢰에 부딪쳐 침몰하는 바람에 한 사람이 행방불명됐는데 사카타로인 것 같다고 통보했다. 그는 아직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만일 일본인이 한국전쟁에 종사하다 순직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아주 곤란한 일이 되니 일체 공개하지 말아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또 한국이 아니라 일본의 내해인 세토나이카이에서 기뢰제거 작업을 하던 중 사망한 것으로 해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미군 장교는 충분한 보상을 하고 부친에게 연금도 주겠다고 했다. 도이치는 미군 쪽에서 400만엔을 갖고 왔다고 했다. 현재 시세로 하면 약 2억엔이 되는 거금이다. 당시는 가장 고액권이 100엔짜리였으니 돈다발도 엄청났다. 도이치는 돈의 출처가 일본 정부가 아니라 미군이라고 말하고 성격에 대해서는 일종의 입막음용이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연금 얘기는 흐지부지됐다.
일제 때 천황(일왕)의 근위병으로 근무했던 일을 자랑스러워했던 나카타니의 부친은 전승국인 미국의 부탁을 거부하면 가족 전원이 말살될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가족 형제 일가친척에게 아들의 사망 경위를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얼마 후 유골상자가 집으로 왔는데 사진만 들어 있었다. 해가 바뀌어 1951년 히로시마 구레항에서 해상보안본부장으로 장례식을 치른다는 통보가 왔다. 도이치는 부친한테서 장례식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오사카에서 소방관으로 취직한 그는 가지 못했다. 공무원이니 휴가를 내려면 숙박지·목적 등을 밝혀야 하는데 동생의 사망 경위를 얘기할 수 없어 포기했다. 결국 부친이 참석했다.
도이치는 소방관으로 일하면서 동생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알고 싶어 자료를 모으려 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1978년 사카타로에게 훈8등의 훈장이 수여됐다. 도이치는 마침내 동생의 순국을 국가가 인정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어 야스쿠니신사에서 연락이 올 것을 기대했으나 아무런 통지가 없었다. 그래서 신사를 방문해 단편적 자료들을 보여주며 합사해달라고 요청했더니 무슨 사고로 순직했는지 관청의 증명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놀랍게도 해상보안청에는 당시 기록을 모두 소각처분했는지 아무것도 없었다. 도이치는 소해부대 파견이 전쟁 포기를 명시한 헌법 9조에 저촉되기 때문에 정부가 관련 기록을 모두 없앤 것으로 본다.
도이치가 유일하게 찾아낸 관공서의 기록은 제적부다. 일본에서 사람이 죽으면 호적에서 지워지는 대신 제적부에 올려 100년 동안 보존하도록 돼 있다. 혹시나 해서 고향의 관청에 동생의 제적등본 조회를 하니 “쇼와 25년(1950년) 10월17일 오후 3시30분 북위 39도12분34초 동경 127도35분37초에서 사망. 제7관구 해상보안부장 보고 쇼와 26년(1951년) 6월5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위도와 경도로 보아 동생이 숨진 장소는 원산 해역임이 틀림없었다.
도이치는 2006년 이 제적등본 등을 근거로 야스쿠니신사에 동생의 합사를 요구했다.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의 전몰자까지 합사를 하고 있어 한국전쟁은 대상 밖이라는 답변이 왔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2009년 다시 요구서를 보냈지만 비슷한 취지의 답신이 왔다. 도이치는 야스쿠니신사가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답변을 하기 전에 관련 정부기관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문안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다듬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오사카/글·사진 김효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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