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 507 김치 의 기원 새로운 업데이트 81 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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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우리 겨레 소금에 절인 채소에 소금물을 붓거나 소금을 뿌림으로써 독자적으로 국물이 많은 김치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은 숙성되면서 채소 속의 수분이 빠져나오고 채소 자체 채소 국물에 침지(沈漬)된다. 또 국물이 많은 동치미 같은 것에서 채소가 국물 속에 침전되고 만다.김치는 주원류의 종류, 형태, 사용한 부재료의 종류 및 사용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되는데, 전문연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김치의 주원류에 의한 분류만으로도 배추김치류 25종, 무김치류 62종, 오이김치류 10종, 기타 채소 김치류 54종, 해조류 김치류 5종, 기타김치 21종 등 …

김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본의 『쇼쇼원문서[正倉院文書]』나 『연희식(延喜食)』 같은 문헌에 의하면 소금·술지게미·장·초·느릅나무 껍질에 절인 김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수수보리지란 김치도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쌀가루와 소금에다 채소를 절인 것이다. 이와 같이 쌀가루로 담그는 김치는 500년경의 중국 식품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에도 나와 있다. 『제민요술』에는 이밖에도 많은 종류의 김치가 설명되고 있다.

1600년대 말엽의 것이라고 추정되는 『요록(要錄)』이라는 문헌에는 11종류의 김치류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 김치류에도 고추를 재료로 쓰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무·배추·동아·고사리·청태콩 등의 김치와 무를 소금물에 담근 동치미[冬沈]가 설명되어 있다. 또 무염침재라 하여 무에 맑은 물을 넣고 4일쯤 두어서 거품이 일면 즙을 버리고 다시 맑은 물을 넣어 만드는 것도 있다.

『임원십육지』에는 또 젓갈을 섞어주는 김치인 해저방(醢菹方), 곧 섞박지가 등장한다. 이것은 소금에 절인 잎줄기가 달린 무에 오이·배추 등의 다른 채소, 청각채와 같은 해초, 고추·생강·천초·마늘·겨자 등의 향신료, 조기·젓갈·전복·소라·낙지 등의 해산물, 산미완화제(酸味緩和劑)가 되는 전복껍질 등을 함께 버무려 알맞은 소금농도에서 젖산 발효시킨 것이다.

김치라는 이름은 원래 ‘지漬’, ‘저菹’라고 하다가 조선 초기에 딤채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 중엽 고추가 수입되면서 김치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고, 19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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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에 관한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2,600∼3,000년 전에 쓰여진 중국 최초의 시집인 『시경』에서부터 보이고 있다. 『시경』에는 “밭두둑에 외가 열었다. 외를 깎아 저(菹)를 담그자.”는 구절이 있는데 이 ‘저’가 바로 김치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도 공자가 콧등을 찌푸려가면서 저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석명(釋名)』에도 저에 관한 설명이 있다. 『석명』에 의하면 “채소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키면 젖산이 생성되고 이 젖산이 소금과 더불어 채소가 짓무르는 것을 막아준다.”고 하였다. 이로써 저는 채소를 젖산 발효시켜서 저장하도록 하는 젖산발효식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나라 때의 『주례(周禮)』에도 순무·순채·아욱·미나리·죽순 등 일곱 가지 저를 만들고 관리하는 관청에 관한 기록이 보이고 있으므로, 이러한 한나라의 저가 낙랑을 통하여 부족국가시대의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이를 증명하는 문헌상의 자료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고 있다.

비록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의 식품에 관한 서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나, 우리 문화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일본문헌을 통하여 그 시대의 식생활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일본의 『쇼쇼원문서[正倉院文書]』나 『연희식(延喜食)』 같은 문헌에 의하면 소금·술지게미·장·초·느릅나무 껍질에 절인 김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수수보리지란 김치도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쌀가루와 소금에다 채소를 절인 것이다. 이와 같이 쌀가루로 담그는 김치는 500년경의 중국 식품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에도 나와 있다. 『제민요술』에는 이밖에도 많은 종류의 김치가 설명되고 있다.

일본은 기후가 온습하기 때문에 쌀가루를 쓰는 김치가 쉽게 산패하므로 쌀가루를 쌀겨로 바꾸게 되어 일본의 대표적인 김치인 단무지가 형성되었다는 설이 있다. 따라서 단무지의 원조는 수수보리지라 하겠는데 다른 김치들과 달리 수수보리라는 고유명사를 붙인 것이 주목된다.

일본의 옛 사서인 『고사기(古事記)』에 의하면 오진왕[應仁王] 때 백제사람 수수보리가 건너와서 누룩으로 술을 빚는 방법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써 수수보리지는 중국에서 백제로 전해져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백제에는 수수보리지뿐만 아니라 『제민요술』의 여러 김치가 식용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것은 백제에서뿐 아니라 삼국 모두가 같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고려 중엽에 이규보가 지은 「가포육영」이라는 시 속에 순무를 재료로 한 김치가 우리 문헌상 최초로 등장한다. “무 장아찌 여름철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인 순무 겨울 내내 반찬되네.” 이로써 고려시대의 김치로는 무장아찌와 무 소금절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달충(李達衷)의 「산촌잡영(山村雜詠)」이라는 시에서는 여뀌에다 마름을 섞어서 소금절이를 하였다는 구절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야생초로도 김치를 담갔던 것 같다.

고려 때의 문헌에 의한 기록은 이것뿐이지만 일본의 『쇼쇼원문서』나 『연희식』에는 채소에 조피나무열매·여뀌·양하 등의 향신료를 섞은 김치가 보이고, 원나라 때의 식품서인 『거가필용(居家必用)』에는 채소에 마늘이나 생강 같은 향신료를 섞은 김치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우리네 김치에도 채소와 향신료를 섞은 것이 있었다고 짐작된다.

조선시대 중엽에 들어와서 고추가 수입되면서 우리나라 김치에는 일대 혁명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 이전의 김치는 소금물에 담그거나 천초·회향 등 향신료를 이용하여 담갔다.

1670년(현종 11)경의 『음식디미방』에는 동아를 절여서 담그는 소금절이 김치나 산갓을 작은 단지에 넣고 따뜻한 물을 붓고 뜨거운 구들에 놓아 익히는 김치가 보인다. 이것은 무염침채(無鹽沈菜) 처럼 채소 자체를 소금 없이 숙성시키는 것이다.

또 생치침채법(生雉沈菜法)이 설명되어 있는데, 이것은 간이 든 오이김치를 껍질을 벗겨 한치 길이만큼 가늘게 썰어 물에 우려두고, 꿩을 삶아 오이지와 같이 썰어, 따뜻한 물에 소금을 알맞게 넣어 나박김치와 같이 담가 삭혀서 먹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김치는 식물성 식품과 동물성 식품을 아울러 이용하는 데 커다란 특색이 있는데, 1600년대 말엽에 비록 고추를 쓰지 않았어도 벌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내용으로 미루어 김치의 재료로서는 동아·오이 등의 외무리가 많고 무도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음식디미방』에는 ‘생치잔지히’·‘생치지히’ 등이 보이는데 이들은 오이지를 재료로 하여 꿩고기와 함께 간장기름에 볶은 것이다. 이로써 2차 재료로 쓰이는 소금절이 가공품도 역시 ‘지히(지)’라 부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655년(효종 6)에 신속(申洬)이 엮은 『농가집성』에 「사시찬요초」라는 월령식농서가 들어 있는데, 여기에는 침과저(沈瓜菹)와 침즙저(沈汁菹)가 나온다. 침즙저는 가지·장·밀기울을 섞어 뜨거운 마분(馬糞)에 묻어 20일이 지난 뒤 먹는 것으로 오늘날의 즙장이다. 즙장에 가지가 들어가니 이것은 장아찌의 일종이 되기도 하겠는데 이것을 저로 보았다.

1600년대 말엽의 것이라고 추정되는 『요록(要錄)』이라는 문헌에는 11종류의 김치류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 김치류에도 고추를 재료로 쓰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무·배추·동아·고사리·청태콩 등의 김치와 무를 소금물에 담근 동치미[冬沈]가 설명되어 있다. 또 무염침재라 하여 무에 맑은 물을 넣고 4일쯤 두어서 거품이 일면 즙을 버리고 다시 맑은 물을 넣어 만드는 것도 있다.

그러나 오이김치인 엄황과(淹黃瓜)에서는 향신료를 쓰고 있다. 즉 오이를 뜨거운 물에 데쳐내고 건조시켜 소금· 당· 천초· 회향· 식초를 넣어서 담갔다. 이로써 당시에 고추가 전래되었으나 아직 김치에 이용되지는 못하였고 향신료로 천초나 회향을 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715년(숙종 41)경의 『산림경제(山林經濟)』의 김치류를 보면, 고추가 들어온 지 1백년이 지났는데도 오늘날과 같은 김치는 보이지 않고 소금에 절이고 식초에 담그거나 향신료와 섞어 만들고 있다. 이 책에서는 자(鮓)만들기 다섯을 설명하고 있다.

『석명』에서는 자가 저의 일종으로 소금과 쌀로써 물고기를 익혀서 먹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오늘날의 생선 식해이다. 「고사십이집」에서는 쌀·누룩·소금·기름 등을 써서 채소를 발효시켜 먹는 것도 자라고 하였다. 이를 『임원십육지』에서는 자채(鮓菜)라 하고 있다.

이 채소로 만드는 자는 백제의 수수보리지와 같은 것으로 조선시대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도 식해를 담글 때 무를 함께 섞는 일이 있다.

그러다가 50년이 지난 1766년(영조 42)에 나온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는 김치에다 고추를 도입한 것이 보이고 있다. 침나복함저법(沈蘿葍醎菹法)을 보면 잎줄기가 달린 무에 청각채·호박·가지 등의 채소와 고추·천초·겨자 등의 향신료를 섞고 마늘즙을 듬뿍 넣어서 담그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의 총각김치와 같은 것이다.

또 황과담저법(黃瓜淡菹法)은 오이의 3면에 칼자리를 넣고 속에 고춧가루· 마늘을 넣어서 삭히고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오이소박이이다. 그밖에 동치미· 배추김치· 용인오이지· 겨울가지김치· 전복김치· 굴김치 등 오늘날의 김치가 거의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나라 김치는 중국에도 전해졌다. 1712년(숙종 38) 김창업(金昌業)의 『연행일기(燕行日記)』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귀화한 노파가 그곳에서 김치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녀가 만든 동치미의 맛은 서울의 것과 같다.”는 것이다.

또한 1803년(순조 3)의 『계산기정(薊山紀程)』에 의하면 “통관(通官) 집의 김치는 우리나라의 김치 만드는 법을 모방하여 맛이 꽤 좋다.”고 하였다. 『계산기정』의 김치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18세기에는 우리의 김치가 중국에 건너가서 인기를 얻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중국의 유명한 김치의 하나인 쓰촨포채(四川泡菜)는 포채항아리에 8% 정도의 소금물을 6할 정도 되게 넣은 다음 여기에 소금물의 0.1% 정도의 천초, 3%의 고추, 3%의 술을 넣고, 따로 채소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20%의 소금물에 절였다가 꺼낸 것을 항아리에 담고 약 10일간 숙성시켜 만든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동치미와 비슷하다.

쓰촨지방은 우리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 중 쓰촨출신의 사람이 매우 많았다고 하므로 우리의 동치미가 쓰촨에 전하여졌다는 추측이 가능하기도 하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의 조리·가공법은 1872년(고종 9)경의 『임원십육지』 속에 집대성되었다. 『임원십육지』에서는 김치의 종류를 엄장채(醃藏菜)·자채(酢菜)·제채(虀菜)·저채(菹菜, 沈菜)의 넷으로 크게 분류하였다.

또 엄장채란 소금·술지게미·향신료 등에 채소를 섞어 넣어 겨울을 위하여 저장하는 것이고, 자채와 저채는 같은 종류이지만 자는 소금과 쌀로써 발효시킨 것이고 저는 젓갈·장·생강·마늘·식초 등의 짜고 시고 매운 것과 잘 조화시킨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리고 저채에 대한 설명에서는 “엄장채·자채·제채가 다같이 저에 속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독특하게 개발된 종류의 저를 특히 저채라고 한다. 이들을 구태여 구별한다면 저채는 발효시킨 뒤 그대로 먹는 것이고 엄장채는 물에 씻어서 2차 가공이나 조리 재료로 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저채와 제채의 차이에 대해서는 “제는 잘게 썬 것이고, 저는 채소를 통째로 발효시킨 것이다.”라고 하였다. 저채와 자채의 관계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누룩이나 곡물을 쓰는지의 여부로 구별된 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 김치류의 주종은 저채(침채)이고 다른 것은 부수적인 존재가 되어 있고 나아가서는 저채로써 저 전체를 가리키게 되었다.

『임원십육지』에는 또 젓갈을 섞어주는 김치인 해저방(醢菹方), 곧 섞박지가 등장한다. 이것은 소금에 절인 잎줄기가 달린 무에 오이·배추 등의 다른 채소, 청각채와 같은 해초, 고추·생강·천초·마늘·겨자 등의 향신료, 조기·젓갈·전복·소라·낙지 등의 해산물, 산미완화제(酸味緩和劑)가 되는 전복껍질 등을 함께 버무려 알맞은 소금농도에서 젖산 발효시킨 것이다.

이로써 오늘날의 김치가 규모상으로는 거의 완성되었으며, 그 뒤는 과실·짐승고기·잣 등 기호에 따라 보충하는 정도의 발전이 있었고, 또 채소의 품질개량에 따른 재료의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김치류의 제법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으나 『증보산림경제』나 『임원십육지』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근대 및 현대의 김치 변화의 주된 요인은 김치 재료의 품종개량과 젓갈 및 조리법의 일반화라고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속이 꽉 찬 결구형 배추가 우리 식탁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배추가 김치의 재료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래 계속하여 배추의 품종 개량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으나 1960년대까지도 서울배추, 개성배추라고 하는 반결구형의 배추를 사용하여 김치를 담그는 집이 많았었다.

반결구형 배추 중 서울 배추는 조직이 단단하고 수분이 적고 저장성이 좋아 김장 김치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아직도 드물지만 김치를 담글 때 서울배추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김치 재료의 하나인 젓갈도 전에는 각 지역에서 잡히는 생선을 이용하여 각 가정에서 젓갈을 많이 담가서 김치에 넣었으나 요즈음 대도시에서는 집에서 젓갈을 담그는 일이 매우 드물게 되었고 공장에서 김치용 액젓이 생산되어 많은 가정에서 이용하고 있다.

김치 조리법의 변화에 큰 영향을 주게 된 것은 6·25전쟁과 도로시설과 교통수단의 발달과 매스컴의 영향을 꼽을 수 있다. 1950년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지역 사이를 왕래하는 일이 빈번하지 않아 각지방의 고유한 김치가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가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지역을 이동하게 되었으며 그 지방에서 장기간 머물게되면서 서로 다른 지방의 김치를 먹어보고,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게 되어 다양한 조리법을 접할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또한 도로시설이 좋아지고 교통 수단이 발달하면서 전국이 일일 생활권에 들게 되면서 물자의 유통이 빨라진데다 TV 등 매스컴의 영향으로 각 지역의 독특한 김치는 지역성을 잃은 대신 조리법이 일반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이후 김치는 세계적인 음식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2000년에는 일본·미국·영국 등 외국에 7,900만달러의 김치를 수출하였다. 또한 2001년 7월 5일에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김치를 ‘국제식품’으로 공인을 하여, 앞으로 해외로의 수출 전망이 밝아졌다.

김치의 역사 : 부산광역시 농업기술센터

김치라는 말의 기원은 “채소의 소금절임”을 의미하는 「沈菜」가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沈菜」 ▷ 「딤채」 ▷ 「김채」 ▷ 「김치」로 변화하면서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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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s traditional food, Kimchi! When did we start eating it? @All Knowledge of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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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의기원 – 부산대학교 김치연구소

문헌에 보면 김치로 생각되는 말은 약 3,000년 전의 詩經에 저(菹)라고 처음 등장하는데 이 글자는 조(阻)라고도 하였다. 이것은 채소를 소금에 절여서 발효시키면 젖산이 생기고 이 젖산이 소금과 더불어 채소가 짓무르는 것을 막는다는 뜻에서 쓰인 것이라 하였다. 즉 저(菹)는 채소를 젖산발효 시켜서 신맛을 띠게한 채소가공식품인 것이다.

그러면 김치란 말은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박갑수씨는 침채(沈菜)란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였다. 즉 채소를 소금에 절여서 물속에 잠기게 하였으므로 한자식 표현으로 沈菜라고 표기하였고 팀채로 발음하였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음운변화를 받아서 팀채 – 딤채 – 짐채 – 김채- 김치로 되었다고 설명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김치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측되나 문헌상으로는 고려중엽 이규보의 가포육영(家匍六詠)이란 시에 처음으로 염지(鹽漬)란 용어로 등장한다. 배추나 무를 소금에 적신다는 뜻으로 중국의 저(菹)가 우리 나라에서는 漬로 변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무기질과 비타민의 중요한 급원인 채소는 겨울에는 생산할 수 없었으므로, 가을에 생산한 채소를 이듬해 봄까지 저장하면서 섭취하여야 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필요성에서 채소를 소금물에 담가서 겨울동안 보관하면서 먹을 수 있는 김치를 발명 해낸 것이다.

인류가 농경문화를 정착시키면서 곡물을 주식으로 하게 되었으나, 인체는 곡물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 뿐 만 아니라 조절소인 무기질과 비타민을 필요로 하므로 이들도 늘 섭취하여야만 생명을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다.

김치의기원 … 인류가 농경문화를 정착시키면서 곡물을 주식으로 하게 되었으나, 인체는 곡물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 뿐 만 아니라 조절소인 무기질과 비타민을 필요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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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의 놀라운 비밀 | 조선시대 김치는 어땠을까? | 고추와 매운 음식의 역사 | 한국사 조선시대 애니메이션 ★ 지니스쿨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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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농경문화를 정착시키면서 곡물을 주식으로 하게 되었으나, 인체는 곡물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 뿐 만 아니라 조절소인 무기질과 비타민을 필요로 하므로 이들도 늘 섭취하여야만 생명을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다.

그러나, 무기질과 비타민의 중요한 급원인 채소는 겨울에는 생산할 수 없었으므로, 가을에 생산한 채소를 이듬해 봄까지 저장하면서 섭취하여야 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필요성에서 채소를 소금물에 담가서 겨울동안 보관하면서 먹을 수 있는 김치를 발명 해낸 것이다.

문헌에 보면 김치로 생각되는 말은 약 3,000년 전의 詩經에 저(菹)라고 처음 등장하는데 이 글자는 조(阻)라고도 하였다. 이것은 채소를 소금에 절여서 발효시키면 젖산이 생기고 이 젖산이 소금과 더불어 채소가 짓무르는 것을 막는다는 뜻에서 쓰인 것이라 하였다. 즉 저(菹)는 채소를 젖산발효 시켜서 신맛을 띠게한 채소가공식품인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김치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측되나 문헌상으로는 고려중엽 이규보의 가포육영(家匍六詠)이란 시에 처음으로 염지(鹽漬)란 용어로 등장한다. 배추나 무를 소금에 적신다는 뜻으로 중국의 저(菹)가 우리 나라에서는 漬로 변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김치란 말은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박갑수씨는 침채(沈菜)란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였다. 즉 채소를 소금에 절여서 물속에 잠기게 하였으므로 한자식 표현으로 沈菜라고 표기하였고 팀채로 발음하였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음운변화를 받아서 팀채 – 딤채 – 짐채 – 김채- 김치로 되었다고 설명 하였다.

김치 – 나무위키

1 thg 1, 2023 — 오늘날 상용되는 ‘김치’라는 단어의 어원은 한자어 ‘침채(沈菜)’로, 직역하면 ‘담근 채소’라는 뜻이다. 채소를 소금물에 담가서 절이고 장기 보관한 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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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는 어떻게 완성되었을까? / 김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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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역사 3000년…김장은 ‘공동체 나눔문화’ – 한겨레

출판사 어크로스 대표 김형보(41)씨는 이맘때가 되면 준비하는 날이 있다. 김씨는 ‘김장절’이라고 이름 붙였다. 소금에 절인 배추를 차에 가득 싣고 강원도 춘천에 사는 누이의 집에 간다. 누이는 무채, 굴, 젓갈 등 갖은 양념을 준비하고 기다린다. 부산에 사는 어머니까지 도착하면 본격적인 김장행사가 진행된다. “오랜만에 조카도 보고 수육을 배추에 싸먹는 이날이 축제처럼 즐겁다”고 한다. 들고 온 빈 통에는 김치가 차곡차곡 쌓였다. 채소를 절이거나 발효시키는 식품은 다른 나라 문화권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가족이나 이웃 등 공동체를 중심으로 비슷한 시기에 대량으로 김치를 담그는 일은 드물다. 5일 유네스코가 한국의 김장문화를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노동력을 제공한 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식사를 대접하고 김장김치를 나눠주었다. 김장은 또한 가장의 경제력을 검증받는 일이었다. 70~90년대 직장인들이 받던 ‘김장 보너스’의 등장도 같은 맥락이다. 신용카드 사용도 쉽지 않던 시절 3~4개월치 월급과 맞먹는 비용이 김장에 들어갔다. 70년대 한 일간지는 남편의 김장 보너스를 기다리는 주부의 심정을 보도했다. ‘김장용 고추가 질이 좋고 싸다고 어제 1관을 시장에서 들여왔으나 도저히 엄두를 못 내고 아빠의 김장 보너스가 나오면 값이 비싸더라도 그때 사두어야 할까 보다’는 내용이다.

요즘 기업들은 김장 보너스 대신 김장 체험행사나 대규모 김장 나눔 행사를 한다. 동원에프앤비는 참가비 8만원을 받고 김치 10㎏을 제공하는 ‘동원 양반김치 김장투어’를 한다. 2004년부터 매년 한국야쿠르트는 서울 시청광장 등에서 야쿠르트 아줌마와 임직원,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 김장을 하고 저소득층에게 나눠주는 행사를 해왔다. 올해는 6만5000포기를 전국 2만5000여 가구에 10㎏씩 전달했다. 전통을 이은 김장문화의 진화다.

5 thg 12, 2013 — 학자들은 대략 3000년 전부터 김치가 있었다고 본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에는 순무장아찌와 소금 절임 관한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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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클립] 우리는 대체 언제부터 김치를 먹기 시작했을까? / YTN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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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역사 3000년…김장은 ‘공동체 나눔문화’

인류무형유산 지정된 ‘김장’

고려시대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무장아찌와 소금 절임 기록 등장

‘농가월령가’ 10월편에 김장 묘사

70년대 직장인에게 ‘김장보너스’

2000년대 저소득층 나눔행사로

“김장은 공동체 배려·소통의 장”

출판사 어크로스 대표 김형보(41)씨는 이맘때가 되면 준비하는 날이 있다. 김씨는 ‘김장절’이라고 이름 붙였다. 소금에 절인 배추를 차에 가득 싣고 강원도 춘천에 사는 누이의 집에 간다. 누이는 무채, 굴, 젓갈 등 갖은 양념을 준비하고 기다린다. 부산에 사는 어머니까지 도착하면 본격적인 김장행사가 진행된다. “오랜만에 조카도 보고 수육을 배추에 싸먹는 이날이 축제처럼 즐겁다”고 한다. 들고 온 빈 통에는 김치가 차곡차곡 쌓였다. 채소를 절이거나 발효시키는 식품은 다른 나라 문화권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가족이나 이웃 등 공동체를 중심으로 비슷한 시기에 대량으로 김치를 담그는 일은 드물다. 5일 유네스코가 한국의 김장문화를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학자들은 대략 3000년 전부터 김치가 있었다고 본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문집인 에는 순무장아찌와 소금 절임 관한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이전의 김치는 각종 채소류를 절인 정도의 식품이었다. 고추가 들어온 임진왜란 이후에 본격적으로 고춧가루를 사용한 김치의 흔적이 보인다. 18세기 중반에 나온 에는 배추김치를 ‘숭침저’라 하고 무려 34가지의 절임채소류와 오늘날 같은 빨간 김치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의 10월 편에는 김장하는 모습이 세세히 기록되어있다. ‘무, 배추 캐어들어/김장을 하오리라/앞 냇물에 정히 씻어/함담을 막게 하소/양지에 가가(假家)짓고/짚에 싸 깊이 묻고.’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불을 덜 사용했던 우리는 튀기는 요리보다 채소 절임요리가 발달했고, 땔감도 귀해서 한 번 담가두면 간편하게 꺼내 먹을 수 있는 김치가 중요한 양식이 됐다.

세계김치연구소의 박채린 박사는 “김장은 품앗이와 나눔 문화를 형성했는데, 우리 밥상에서 밥, 국과 함께 김치가 주식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박사는 “길게는 1년, 최소 3개월 이상 먹어야하는 많은 양의 김치를 추운 11월께 3~4일 만에 한꺼번에 담가야했다”면서 마을공동체가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부엌살림을 책임지는 부녀자 혼자 치러내기에는 규모가 너무 큰일이었다는 것이다.

노동력을 제공한 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식사를 대접하고 김장김치를 나눠주었다. 김장은 또한 가장의 경제력을 검증받는 일이었다. 70~90년대 직장인들이 받던 ‘김장 보너스’의 등장도 같은 맥락이다. 신용카드 사용도 쉽지 않던 시절 3~4개월치 월급과 맞먹는 비용이 김장에 들어갔다. 70년대 한 일간지는 남편의 김장 보너스를 기다리는 주부의 심정을 보도했다. ‘김장용 고추가 질이 좋고 싸다고 어제 1관을 시장에서 들여왔으나 도저히 엄두를 못 내고 아빠의 김장 보너스가 나오면 값이 비싸더라도 그때 사두어야 할까 보다’는 내용이다.

지난달 궁중음식 연구원 회원들이 충청도의 한 궁중음식 이수자의 식문화 체험관에서 김장을 담그고 있다.궁중음식연구원 제공

요즘 기업들은 김장 보너스 대신 김장 체험행사나 대규모 김장 나눔 행사를 한다. 동원에프앤비는 참가비 8만원을 받고 김치 10㎏을 제공하는 ‘동원 양반김치 김장투어’를 한다. 2004년부터 매년 한국야쿠르트는 서울 시청광장 등에서 야쿠르트 아줌마와 임직원,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 김장을 하고 저소득층에게 나눠주는 행사를 해왔다. 올해는 6만5000포기를 전국 2만5000여 가구에 10㎏씩 전달했다. 전통을 이은 김장문화의 진화다.

2000년대 김장은 핵가족화와 도시화로 예전처럼 마을공동체가 나서는 경우는 줄었지만 흩어진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로 변모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10여명의 연구원들이 모여 김장을 한 ‘궁중음식연구원’의 한복려 원장은 “김장 풍속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나눔과 배려라는 문화적 전통을 이어가는 활동”이라면서 이번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에 대해 “세계인들도 우리 김장문화를 공유하고 소통하자는 차원이기에 기쁘다”고 말했다.

박미향 기자 [email protected]

김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치”의 첫 어형은 16세기 서적에서 발견된다. 1518년 간행된 《벽온방》과 1527년 간행된 《훈몽자회》에 “딤ᄎᆡ”가, 1587년 간행된 《소학언해》에 ” 팀ᄎᆡ”가 한국에서 만들어진 한자어 “沈菜(현대 한국어 발음: 침채)”의 한글 표기 형태로 등장하며, 이것이 이후 ” 짐ᄎᆡ”, “짐츼” 형태를 거쳐 “김치”가 되었으리라 추측된다.[1] 17~18세기에 ” 딤ᄎᆞ”의 “ㄷ”이 구개음화되어 ” 짐ᄎᆡ”가 되었으며, 둘째 음절의 모음 ” ㆎ”는 비어두음절의 ” ㆍ”가 “ㅡ”로 바뀐 16세기부터 “ㅢ”로 발음되었다. 19세기에 나타나서 현대어로 이어지는 “김치”는 ” 짐ᄎᆡ”의 첫음절 “ㅈ”이 역구개음화에 의해 “ㄱ”으로 바뀐 다음, 둘째 음절 모음은 자음 뒤에서 “ㅣ”로 바뀐 형태이다.

1766년 《증보산림경제》에는 맨드라미로 김치에 붉은 물을 들였다는 기록이 나오며, 고추나 고춧가루를 사용한 김치도 다수 등장한다. 잎줄기가 달린 무에 청각채, 호박, 가지 등의 채소와 고추, 천초, 겨자 등의 향신료를 섞고 마늘즙을 듬뿍 넣어서 오늘날의 총각김치와 비슷한 김치를 담그는 방식이 “침나복함저법”으로, 오이의 3면에 칼자리를 넣고 속에 고춧가루, 마늘을 넣어서 삭혀 오늘날의 오이소박이김치와 비슷한 김치를 담그는 방식이 “황과담저법”으로 소개되어 있으며, 그밖에도 동치미, 배추김치, 동가김치, 전복김치, 굴김치 등이 소개된다.

김치 수입은 2003년 이후 급증하였다. 동일한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김치 수입량은 2002년의 1,051톤, 5억 원가량의 수준에서, 2004년의 경우는 73,000톤, 300억 원 정도로 급증하였다. 하지만 2004년 수출된 김치의 경우 34,000톤에 1,000억 원 정도인 반면, 수입 김치의 경우는 73,000톤, 300억 원 정도로, 양으로만 보면 수입량이 수출량의 두 배 가량이다. 비싼 김치를 수출하고 싼 김치를 수입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김치는 한국의 전통 발효식품이다. 소금에 절인 배추나, 무 등을 고춧가루, 파, 마늘 등의 양념에 버무린 뒤 발효시켜 만든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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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통 음식 김치 | 예절교육 | 전통음식 | TOMO | 토모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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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치는 한국의 전통 발효식품이다. 소금에 절인 배추나, 무 등을 고춧가루, 파, 마늘 등의 양념에 버무린 뒤 발효시켜 만든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민 음식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김치는 올림픽, 아시안 게임, FIFA 월드컵 공식 지정 식품이기도 하다. 지방에 따라 재료와 조리 방법에 따라 많은 종류가 있다.

이름 [ 편집 ]

“김치”의 첫 어형은 16세기 서적에서 발견된다. 1518년 간행된 《벽온방》과 1527년 간행된 《훈몽자회》에 “딤ᄎᆡ”가, 1587년 간행된 《소학언해》에 ” 팀ᄎᆡ”가 한국에서 만들어진 한자어 “沈菜(현대 한국어 발음: 침채)”의 한글 표기 형태로 등장하며, 이것이 이후 ” 짐ᄎᆡ”, “짐츼” 형태를 거쳐 “김치”가 되었으리라 추측된다.[1] 17~18세기에 ” 딤ᄎᆞ”의 “ㄷ”이 구개음화되어 ” 짐ᄎᆡ”가 되었으며, 둘째 음절의 모음 ” ㆎ”는 비어두음절의 ” ㆍ”가 “ㅡ”로 바뀐 16세기부터 “ㅢ”로 발음되었다. 19세기에 나타나서 현대어로 이어지는 “김치”는 ” 짐ᄎᆡ”의 첫음절 “ㅈ”이 역구개음화에 의해 “ㄱ”으로 바뀐 다음, 둘째 음절 모음은 자음 뒤에서 “ㅣ”로 바뀐 형태이다.

그보다 앞서 1241년 간행된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김치가 “漬(지)”로 기록되어 있으며, 15세기 어형은 “디히”인 것으로 보인다. 1481년 간행된 《두시언해》 초간본에 ” 겨ᅀᆞᆳ디히(겨울김치)”, 1517년 간행된 《번역박통사》에 ” 쟝앳디히(장아찌)”가 등장한다. 현대어 “짠지”, “오이지” 등에 나오는 “지”는 이 “디히”의 후대형이다.

역사 [ 편집 ]

삼국 시대 [ 편집 ]

《삼국사기》에 따르면, 삼국 시대에도 채소 발효식품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신라에서는 불교가 도입되면서 채식이 유행하고, 발효 채소도 즐겨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시대 [ 편집 ]

1241년 간행된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가포육영》이라는 시에 무로 담근 김치가 “漬(지)”로 기록되어 있다.

漬鹽堪備九冬支。

根蟠地底差肥大。

最好霜刀截似梨。 得醬尤宜三夏食。漬鹽堪備九冬支。根蟠地底差肥大。最好霜刀截似梨。 — 《家圃六詠》 장을 곁들이면 한여름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이면 긴 겨울을 넘긴다

땅속에 도사린 뿌리 비대해지면

좋기는 날 선 칼로 배 베듯 자르는 것 — 《가포육영》

1478년 간행된 《동문선》에 수록된 이달충이 지은 《산촌잡영》이라는 시에는 여뀌에 마름을 섞어 소금절이(鹽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鹽漬蓼和萍 飯粗𥣰雜稗鹽漬蓼和萍 — 《山村雜詠》 보리밥 그릇에 피가 반 섞이

여뀌풀 저림 속에 마름도 끼고 — 《산촌잡영》

유교가 도입되고 복고주의가 유행한 고려 말기에는 중국에서도 6세기 이후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菹(저)”라는 이름이 쓰였다.

조선 시대 [ 편집 ]

1670년 간행된 《음식디미방》에는 동아를 절여서 담그는 소금절이 김치나 산갓을 소금 없이 작은 단지에 넣고 따뜻한 물을 붓고 뜨거운 구들에 놓아 숙성시키는 김치가 기록되어 있다. 17세기 말 문헌인 《요록》에도 무, 배추, 동아, 고사리, 청태콩 등의 김치와 무를 소금물에 담근 동치미 등 11종의 김치가 기록되어 있다.

신대륙 작물인 고추가 전래되기 전의 김치는 천초(초피), 산초, 호초(후추) 등 초(椒)라 불리는 향신료나 회향, 식초 등을 사용해 담근 소금물절이 김치였으며, 고추가 들어온 지 한 세기가 지난 1715년에 간행된 《산림경제》에도 소금에 절인 채소를 식초에 담그거나 고추가 아닌 다른 향신료와 섞어 만든 김치만 기록되어 있다.

1766년 《증보산림경제》에는 맨드라미로 김치에 붉은 물을 들였다는 기록이 나오며, 고추나 고춧가루를 사용한 김치도 다수 등장한다. 잎줄기가 달린 무에 청각채, 호박, 가지 등의 채소와 고추, 천초, 겨자 등의 향신료를 섞고 마늘즙을 듬뿍 넣어서 오늘날의 총각김치와 비슷한 김치를 담그는 방식이 “침나복함저법”으로, 오이의 3면에 칼자리를 넣고 속에 고춧가루, 마늘을 넣어서 삭혀 오늘날의 오이소박이김치와 비슷한 김치를 담그는 방식이 “황과담저법”으로 소개되어 있으며, 그밖에도 동치미, 배추김치, 동가김치, 전복김치, 굴김치 등이 소개된다.

19세기 초 간행된 《임원경제지》에서 서유구는 고추를 김치에 많이 쓰면 무가 더욱 오랫동안 저장된다고 기술하였다. 같은 책에서 소금에 절인 잎줄기가 달린 무에 오이, 배추 등 다른 채소, 청각채 등 해초, 고추, 생강, 천초, 마늘 겨자 등 향신료, 조기, 젓갈, 전복, 소라, 낙지 등 해산물, 산미완화제가 되는 전복껍질 등을 함께 버무려 젖산 발효시킨 섞박지가 “해저방(醢菹方)”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다.

과거에는 무가 배추에 앞서는 김치 재료였으나, 속이 꽉 찬 결구배추가 육종되고 널리 보급된 20세기부터 배추김치가 무김치를 압도하게 되었다.[2][3]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김치가 세계에 알려졌으며, 2001년 7월 5일에는 국제 식품 규격(Codex)에 김치가 등록되었다.

종류 [ 편집 ]

주재료 [ 편집 ]

가지김치: 가지로 담근 김치이다. 9월쯤에 물 적은 가지로 담가 땅에 묻었다가 겨울에 꺼내 먹는 김치는 동가김치라 부른다.

감김치: 감으로 담근 김치이다. 소금물에 담가서 떫은맛을 없앤 감도 “감김치”라 부르며, 감으로 담근 깍두기는 감깍두기라 부른다.

감태지: 감태로 담근 김치이다.

갓김치: 갓의 잎과 줄기로 담근 김치이다. 주로 전라남도 지방에서 즐겨 먹는 김치이며, 여수의 돌산 갓김치가 유명하다.

고구마줄기김치: 껍질을 벗기지 않은 고구마줄기를 소금에 절이지 않고 바로 고춧가루, 마늘, 젓갈, 파 등으로 버무려 만든다. 발효시키지 않고 바로 먹기도 한다.

고들빼기김치: 고들빼기로 담근 김치이다.

고수김치: 고수로 담근 김치이다. 고수와 무, 배추를 갖은양념과 고명을 하여 젓국에 담가 만든다.

당근김치: 당근으로 담근 김치이다. 고려인의 마르코프차도 김치의 하나이다.

더덕김치: 더덕으로 담근 김치이다. 통 더덕에 칼집을 넣고 그 안에 소를 넣어 담근 김치는 더덕소박이로도 불린다.

덤불김치: 무의 잎과 줄기, 또는 배추의 지스러기로 담근 김치이다.

돌나물김치: 돌나물로 담근 김치이다.

동아김치: 동아로 담근 김치이다.

두릅김치: 두릅나무의 순을 데쳐서 담근 김치이다.

무김치: 무로 담근 김치이다. 동치미, 깍두기, 열무김치, 짠지, 총각김치 등이 있다.

무순김치: 무순으로만 담근 김치이다.

미역귀김치: 미역귀로 담근 김치이다.

박김치: 덜 여문 박을 납작납작하게 잘게 썰어 담근 김치이다.

배추김치: 배추로 담근 김치이다. 보쌈김치, 얼갈이김치, 포기김치 등이 있다.

부들김치: 부들의 어린싹으로 담근 김치이다.

부추김치: 부추의 잎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숨을 죽이거나 소금에 절였다가 담근 김치이다.

섞박지: 여러 가지 재료를 썰어 한데 섞어서 젓국으로 버무려 담는 김치이다.

양배추김치: 양배추로 담근 김치이다.

연근김치: 연근으로 담근 김치이다. 살짝 데쳐 얇게 썬 연근에 미나리, 홍고추, 풋고추, 배, 밤, 대추, 고춧가루, 찹쌀풀, 감초물 등을 넣고 버무른 다음 실온에 3일 정도 익힌다. [4]

오이김치: 오이로 담근 김치이다. 오이의 허리를 서너 갈래로 갈라 속에 파, 마늘, 생강, 고춧가루를 섞은 소를 넣어 담근 것은 오이소박이김치라 부르며, 오이를 알맞게 썰어서 소를 넣지 않고 담근 것은 짜개김치라 부른다.

우거지김치: 배추 따위의 우거지로 담근 김치이다.

중갈이김치: 중갈이 배추나 무로 담근 김치이다.

파김치: 파로 담근 김치. 쪽파로 담그는 김치이다. 쪽파를 10센티미터 정도로 자른 뒤에 고춧가루와 젓갈 등으로 버무리는 간단하면서도 파의 풍미를 즐길 수 있는 김치이다.

한련김치: 한련 잎으로 담근 김치이다.

햇김치: 봄에 새로 난 배추나 무 따위로 담근 김치이다.

호박김치: 호박으로 담근 김치이다. 애호박과 호박순을 썰고 갖은 고명을 하여 담근다.

홀아비김치: 무나 배추 한 가지로만 담근 김치이다.

겨자김치: 겨자로 버무려서 담근 김치이다.

고추김치: 풋고추를 넣고 담근 김치이다.

굴김치: 생굴을 넣어 담근 김치이다.

백김치: 고춧가루를 쓰지 않거나 적게 써서 허옇게 담근 김치이다.

생치김치: 꿩고기를 잘게 찢어 넣어 만든 동치미이다.

소김치: 젓국을 넣지 아니하고 소금으로만 담근 김치이다.

어육김치: 생선 대가리 따위와 쇠고기를 함께 달인 국물을 부어 담근 김치이다.

장김치: 무, 배추, 오이 따위를 잘게 썰어서 간장에 절이고 미나리, 갓, 청각, 파, 마늘, 고추, 생강 따위의 온갖 고명을 더한 뒤에, 간장과 꿀을 탄 국물로 담근 김치이다.

젓국지: 젓국을 냉수에 타서 국물을 부어 담근 김치이다. 주로 조기젓국을 쓴다.

초김치: 초를 쳐서 담근 풋김치나 얼갈이김치이다.

모양 [ 편집 ]

깍두기: 무를 작고 네모나게 썰어서 소금에 절인 후 고춧가루 따위의 양념과 함께 버무려 만든 김치이다.

물김치: 국물의 양이 많고 국물 맛이 좋게 담근 김치이다. 나박김치, 동치미, 둥둥이김치 등이 있다.

보쌈김치: 무나 배추를 일정한 크기로 썰어서 갖은양념을 한 것을 넓은 배춧잎으로 싸서 담근 김치이다.

비늘김치: 김치의 하나이다. 통무를 돌려 가며 비늘 모양으로 저며 그 틈에 소를 넣어 통배추와 함께 담근다.

쪽김치: 조각조각 썰어서 담근 김치이다.

채김치: 배추, 무, 갓 따위를 채 쳐서 담그는 김치이다.

기타 [ 편집 ]

겉절이: 배추, 상추, 무 따위를 절여서 곧바로 무쳐 먹는 반찬이다.

늦김치: 봄철까지 먹을 수 있도록 젓갈을 넣지 아니하고 담근 김치이다.

독김치: 독에 담근 김치이다.

묵은지: 오랫동안 숙성되어 푹 익은 김장 김치이다.

봄김치: 봄배추 따위로 담근 김치이다.

생김치: 아직 익지 아니한 김치이다.

지레김치: 김장 전에 조금 담그는 김치이다.

풋김치: 봄가을에 새로 나온 열무나 어린 배추로 담근 김치이다.

푸새김치: 절이지도 아니하고 담가서 바로 먹는 김치이다.

지역별 김치 [ 편집 ]

전라도: 갓김치, 고들빼기김치, 동치미, 나주동치미, 깻잎김치, 무말랭이김치, 깍두기, 오이소박이

경상도: 콩잎김치, 부추김치, 들깻잎김치, 우엉김치, 석박지, 깍두기, 겉절이, 오이김치, 동치미

제주도: 동지김치, 톳김치, 귤물김치, 갓물김치, 꽃대김치

충청도: 굴 석박지, 총각김치, 무짠지, 시금치김치, 게국지, 젓국지

강원도: 서거리 김치, 갓김치, 창란젓 깍두기, 더덕 김치, 가지 김치, 장김치(간장김치), 해물김치,보쌈김치

서울·경기도: 보쌈김치, 배추김치, 장김치, 나박김치, 열무김치, 오이김치, 감동젓김치, 석박지, 깍두기, 겉절이.파김치

평안도: 백김치 , 오이소박이 , 동치미 등[5]

김치 요리 [ 편집 ]

게국지: 게를 손질하여 겉절이 김치와 함께 끓여 내는 음식이다.

김치국: 김치를 넣어 끓인 국이다.

김치김밥: 김치를 넣어 만 김밥이다.

김치라면: 김치맛이 나는 라면이다.

김치만두: 김치 소를 넣어 싼 만두이다.

김치말이: 김치국에 만 음식이다. 김치에 만 국수는 김치말이국수라 부른다.

김치밥: 김치를 잘게 썰어 쌀 밑에 두고 지은 밥이다. 양념한 생굴을 섞어 가며 먹는다.

김치버거: 김치를 넣은 햄버거이다.

김치볶음: 김치를 볶은 음식이다.

김치볶음밥: 쌀밥에 김치, 야채 따위를 잘게 썰어 넣고 기름에 볶아 만든 볶음밥이다.

김치부침개: 김치를 썰어 넣고 부친 부침개이다. “김치전”으로도 부른다.

김치수제비: 김치를 넣어 끓인 수제비이다.

김치죽: 배추 통김치를 물에 담가 우렸다가 잘게 썰어 넣고 쑨 죽이다.

김치찌개: 김치를 넣고 끓인 찌개이다.

김치찜은 김치를 매콤한 고춧가루에 버무린 후 쪄서 만든 음식이다. 묵은지로 만든 것은 “묵은지찜”으로 부른다.

김치칼국수: 김치와 같이 끓이는 칼국수이다.

김치피자탕수육: 김치와 피자치즈를 올린 탕수육이다.

꿩김치: 꿩을 삶은 물과 동치미 국물을 똑같이 타고 삶은 꿩고기를 넣은 음식이다.

닭김치: 닭의 내장을 빼고 그 안에 다진 쇠고기와 채로 썬 버섯을 두부와 함께 양념하여 넣고 삶은 다음에, 건져서 닭고기를 뜯어내고 속에 든 것을 헤뜨려, 햇김칫국을 섞은 닭 국물에 넣어 간을 맞추고 얼음을 띄워서 만든 음식이다. 삼복더위에 먹는다.

두부김치: 김치를 고기와 갖은 양념을 넣고 볶은 뒤에 데운 두부를 곁들여 내는 음식이다.

메밀전병: 메밀가루를 둥글넓적하게 부친 다음 김치 소를 넣어 말아 내는 음식이다.

무김치나물: 무김치를 물에 우려 짠맛을 대강 빼고, 나물처럼 잘게 썰어서 볶거나, 갖은양념을 하여 무친 반찬이다.

통김치쌈: 통김치 잎으로 싸 먹는 쌈이다.

영양 [ 편집 ]

김치는 다양한 채소로 만들어지며 식이 섬유가 많이 함유되어 있으나[6] 열량은 낮은 편이다. 김치에 사용되는 채소는 비타민 A, 티아민(B 1 ), 리보플라핀(B 2 ), 칼슘, 철에도 기여한다.[7][8]

교역 [ 편집 ]

광주·전라남도 김치사업단 통계에 의하면, 2004년 대한민국의 김치 수출 대상국 중 금액면에서 상위 3 국가는 일본, 미국, 중화인민공화국이다.[9] 하지만 2004년 당시 일본이 거의 전부를 차지했으며, 2위 수출 대상국인 미국조차도 일본 수출량의 2%에 미치지 못했다.

김치 수입은 2003년 이후 급증하였다. 동일한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김치 수입량은 2002년의 1,051톤, 5억 원가량의 수준에서, 2004년의 경우는 73,000톤, 300억 원 정도로 급증하였다. 하지만 2004년 수출된 김치의 경우 34,000톤에 1,000억 원 정도인 반면, 수입 김치의 경우는 73,000톤, 300억 원 정도로, 양으로만 보면 수입량이 수출량의 두 배 가량이다. 비싼 김치를 수출하고 싼 김치를 수입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비슷한 음식 [ 편집 ]

김치와 비슷한 채소 절임으로 독일의 자우어크라우트, 남아시아의 아차르 등이 있다. 중국의 둥차이, 쏸차이, 자차이, 파오차이나 일본의 쓰케모노, 동남아시아의 아차르, 서양의 오이 피클 등은 발효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김치보다 장아찌와 유사하다.

갤러리 [ 편집 ]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김치의 역사 – SOY – 티스토리

이규보 (1168∼1241)의 시문집 <동국이상국집> 에는 “순무를 장에 넣으면 여 름철에 먹기 좋고, 청염에 절이면 겨울 내내 먹을 수 있다.”라는 구 절이 나온 다. 순무를 장에 넣었다는 것은 장아찌 형의 김치로 해석할 수 있고 청염, 즉 맑은 소금 물에 절였다는 것은 국물째로 먹는 동치미류의 김치로 생각할 수 있다. 이 시문에는 또 순무를 소개한 대목이 있는데 “뿌리가 땅 속으로 퍼지도 록 비대하고 서리 내릴 때의 것이 가장 좋은데 칼 로 자르면 배와 같다.”고 하여 당시 순무가 상당 히 좋은 품종이 었음을 알 수 있다. 13세기 초에 쓰여진 이 문헌의 기록이 말해주고 있는 것은 그 이전 시대부터 있던 장아찌류 외에 도 동치미류의 새로운 김치가 이미 저장 식품으로서뿐만 상용 음식으로 자리잡 고 있었으며, 이러한 김치류가 아니라 계절에 따라 즐겨 먹는 상용식품이었다는 사실이다.

처음으로 김치가 외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외국으로 이주해 간 교포들에 의해서였다. 중국, 소련, 하와이, 일본 등으로 이주해 간 한국인들은 김치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해 현지에서도 어렵사리 김치를 담가먹기 시작했고 주변 의 외국인들에게도 퍼져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따라서 전세계 어느 곳이나 한국인이 사는 곳이면 김치가 있게 마련이고 특히 한국 교포가 많은 미국, 일 본 등에서는 포장김치를 쉽게 살 수 있다. 과거에는 교포 사회에서만 담가먹 거나 판매되던 김치가 여러 가지 영양학적 효능이 알려지면서 외국인들에게도 각광을 받게 되어 이제는 외국인 중에서도 김치를 먹기 위해 한국인 식당을 찾거나 포장김치를 사먹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우리나라 문헌중에서 고려때 이규보(1169~1241)의 시문집 <동국이상국집> 에 서 당시 우리의 무를 주재료로한 김치를 서술하고 있다. <삼국사기> 내용 중 신문왕이 결혼을하기위한 절차중에 ‘납채’에 관한 기록 을 보면 여러가지 음 식품목과 함께’해’가 포함 되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해’란 절인다는 뜻의 글자로서 젓갈, 김치류의 총칭으로 해석 해볼 때 이 ‘김치’라는 발효 식품 이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 민족이 상용 식품으로 애용해 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김치의 역사는 문헌상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전의 중국문헌인 ‘시경’에서 처음으로 보인다. … 시경에 나오는 시기의 우리 민족의 주 생활 무대는 만주 일대로 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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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명작다큐|요리인류 |위대한 진화, 김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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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의 역사

김치의 역사

1.김치의 시초

김치의 역사는 문헌상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전의 중국문헌인 ‘시경’에서 처음으로 보인다.

“밭속에 작은 원두막이 있고 밭 두둑에 외가 열려 있다. 이외로써 정성들여 김치를 담그어 조상께 바쳐 생명을 누리고 복을 받는다. (김치’저’)”

시경에 나오는 시기의 우리 민족의 주 생활 무대는 만주 일대로 비단 중국뿐이 아니고 우리 민족도 상고 시대부터 농경 생활을 시작 하면서 김치류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만주 지역을 비롯한 한반도는 기나긴 겨울 동안 비타민 과 무기질의 섭취는 생존의 필수품인데 야채를 섭취하는 방법이 김치였다.

2.김치의 어원

상고시대 김치류를 총칭하는 우리 고유의 옛말은 ‘지’였으며 한자어로 ‘침채 (沈菜)’라 표기하기도 했는데 ‘지’와 ‘침채’는 모두 김치를 지칭하는 말이었 던 것으로 보인다.

‘지’는 오늘날 장아찌나 오이지처럼 국물을 함께 먹지 않고 짠 맛이 강한 건 더기만을 건져서 먹는 채소 발효식품을 지칭하는 말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채소를 소금물에 담근다’는 의미의 ‘침채(沈菜)’는 ‘팀채’, 혹은 ‘딤채’로 발음되었는데 구개음화로 인해 ‘짐치’가 되었다가 오늘날의 ‘김치’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3.김치의 역사

우리나라 문헌중에서 고려때 이규보(1169~1241)의 시문집 <동국이상국집> 에 서 당시 우리의 무를 주재료로한 김치를 서술하고 있다. <삼국사기> 내용 중 신문왕이 결혼을하기위한 절차중에 ‘납채’에 관한 기록 을 보면 여러가지 음 식품목과 함께’해’가 포함 되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해’란 절인다는 뜻의 글자로서 젓갈, 김치류의 총칭으로 해석 해볼 때 이 ‘김치’라는 발효 식품 이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 민족이 상용 식품으로 애용해 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이’김치’라는 식품이 획 기적인 발전과 함께 다시한번 우리 식탁의 가장 중심적인 상용식품으로서 굳어져버린 계기가 발생 한다. 그것은 1600년경부터 전래되어 재배되기 시작한 고추가 김치에 쓰이기 시작 하면서 부터인 데 이후 계속된 발전에 힘입어 현재의 김치로 변모 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어떤 김치를 먹었을까? 갖은 재료와 양념이 들어가 복 합적인 맛을 지닌 오늘날의 김치맛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고추 특유 의 매콤한 맛이 빠진 김치를 상상하기가 어렵다. 고려 때는 그 당시의 김치에 관해 구체 적으로 기술해 놓은 문헌들이 있어서 김치의 발달사를 엿볼 수 있다.

이규보 (1168∼1241)의 시문집 <동국이상국집> 에는 “순무를 장에 넣으면 여 름철에 먹기 좋고, 청염에 절이면 겨울 내내 먹을 수 있다.”라는 구 절이 나온 다. 순무를 장에 넣었다는 것은 장아찌 형의 김치로 해석할 수 있고 청염, 즉 맑은 소금 물에 절였다는 것은 국물째로 먹는 동치미류의 김치로 생각할 수 있다. 이 시문에는 또 순무를 소개한 대목이 있는데 “뿌리가 땅 속으로 퍼지도 록 비대하고 서리 내릴 때의 것이 가장 좋은데 칼 로 자르면 배와 같다.”고 하여 당시 순무가 상당 히 좋은 품종이 었음을 알 수 있다. 13세기 초에 쓰여진 이 문헌의 기록이 말해주고 있는 것은 그 이전 시대부터 있던 장아찌류 외에 도 동치미류의 새로운 김치가 이미 저장 식품으로서뿐만 상용 음식으로 자리잡 고 있었으며, 이러한 김치류가 아니라 계절에 따라 즐겨 먹는 상용식품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밖에도 <음식디미방> <수운잡방> 과 같은 문헌 들에서 나박김치, 산갓김치, 죽순김치와 같은 김 치에 대한 기록이 발견되는데 이들을 정리해 보면 고려시 대에서 조선초기까지의 김치는 대강 장아 찌류, 동치미류, 짠지류의 세가지 형 태로 발전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김치의 주재료로는 순무, 오이, 가지가 가 장 보편적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4.김치의 발전

17세기 이후부터 김치는 획기적인 발전상을 보인다. 특히 1600년경부터 전래 되어 재배되기 시작한 고추가 김치에 쓰이게 된 것은 김치의 모습을 크게 변 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으로 순무 대신 댓무가 쓰이기 시작했고 배추가 주재료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김치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이렇듯 조선 중기 이후 김치가 획기적인 발전을 보이게 된 것은 무, 배추와 같은 대형채소의 재배와 고추의 재배에 성공한 것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김치는 획기적인 변화를 보이며 이전에 주재료로 사용하여왔던 순 무, 오이, 가지 대신에 배추와 무를 주재료로 이용하게 되면서 갖은 양념과 야채로 된 속을 배추속에 겹겹이 넣어 담그는 김장김치도 본격적으로 담그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5.화려해진 김치 – 조선중기 이후의 김치

조선중기이후가 지나면 김치는 깨끗하고 소박한 모습에서 지금의 화려한 모 습으로 변화하게 된다. 좋은 품종의 무와 배추가 주재료로 등장하게 되고 매 운 맛의 고추를 쓰기 시작하면서 젓갈과 같은 부재료를 쓸 수 있게 되었던 것 이다.

단순한 절임식의 김치에 고추, 파, 마늘, 생강과 같은 양념들과 젓갈, 각종 해산물을 함께 버무려 담금으로써 오늘날의 김치가 거의 완성 되었으며 그 종 류도 풍부해져 김치는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전승되게 된 것이다. 그 후로는 과실, 육류, 잣 등 기호에 따라 재료를 보충하는 정도의 변화만 있었을 뿐, 지금 우리가 담가 먹는 여러 가지 종류의 김치는 이 시기에 완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6.현대 식생활과 김치

오랜 역사를 지니고 발전되어 온 우리의 전통음식인 김치는 현대 식생활에서 도 역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현대는 배부르 게 먹는 시대에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 는 시대, 건강을 생각하는 음식 문화의 시대가 되었다. 식품의 성분이 과학 적으로 밝혀지고 고칼로리 식사보다는 균형잡힌 식사가 건강을 위해 필수적이 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육류보다는 채소섭취량을 증가시키려는 경향이 커졌다.

이러한 측면에서 김치의 영양가치에 대한 연구와 재평가가 이루어지게 되었 으며 이제는 우리 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건강식품으로서 김치의 인 기가 높아졌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미래의 식품, 김치!

김치는 그 영양학적 가치가 과학적으로 입증되기 시작하면서 국내외의 많은 영양 학자들에게 ‘미래의 식품’으로 손꼽히며 전 세계로 활발하게 수출되고 있다.

처음으로 김치가 외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외국으로 이주해 간 교포들에 의해서였다. 중국, 소련, 하와이, 일본 등으로 이주해 간 한국인들은 김치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해 현지에서도 어렵사리 김치를 담가먹기 시작했고 주변 의 외국인들에게도 퍼져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따라서 전세계 어느 곳이나 한국인이 사는 곳이면 김치가 있게 마련이고 특히 한국 교포가 많은 미국, 일 본 등에서는 포장김치를 쉽게 살 수 있다. 과거에는 교포 사회에서만 담가먹 거나 판매되던 김치가 여러 가지 영양학적 효능이 알려지면서 외국인들에게도 각광을 받게 되어 이제는 외국인 중에서도 김치를 먹기 위해 한국인 식당을 찾거나 포장김치를 사먹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이처럼 김치는 그 영양학적인 가치와 독특한 맛이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서 점차 세계인의 음식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7. 17~20세기 문헌에 나온 김치류

구분

시대

문헌에 나오조선요리는 김치 이름

도문대작

1611년경

죽순식혜, 산갓김치

음식디미방

1670년경

산갓김치, 생치김치, 나박김치, 생치짠지, 생치지

증보산림경제

1766년경

죽순식혜, 창포식혜, 가지통김치, 가지소박이, 배추김치, 오이소박이, 오이지, 동아김치, 오이숙김치, 연뿌리식혜,나박김치, 동치미, 총각김치, 무청김치, 산갓김치, 갓김치, 섞박지, 창포김치, 가지장아찌, 오이장아찌, 지총장아찌, 오이마늘장아찌, 배추장아찌, 가지소박이장아찌

규합총서

1815년경

섞박지, 어육김치, 동치미, 동과김치, 용인오이지, 산갓김치, 장짠지, 오이소박이, 전복김치

임원십육지

1835년경

총각김치, 동치미, 무청김치, 무동치미, 배추김치, 젓국지, 오이소박이, 오이지, 가지통김치, 가지소박이, 배추장아찌, 오이장아찌, 동아장아찌, 고추장아찌, 더덕장아찌, 파장아찌

동국세시기

1849년경

나박김치,배추물김치, 동치미, 겨울막김치, 섞박지, 장김치

조선요리

1940년경

통김치, 비늘김치, 보김치, 장김치, 나박김치, 박김치, 동치미, 풋김치, 오이소박이, 가지김치, 오이지, 짠무김치, 무싱건지, 양배추김치, 홍김치(깍두기)

김치의 어원. 김치의 역사. 김치의 유래. – 돈이 열리는 나무

근대 및 현대의 김치 변화의 주된 요인은 김치 재료의 품종개량과 젓갈 및 조리법의 일반화라고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속이 꽉 찬 결구형 배추가 우리 식탁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배추가 김치의 재료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래 계속하여 배추의 품종 개량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으나 1960년대까지도 서울 배추, 개성배추라고 하는 반결 구형의 배추를 사용하여 김치를 담그는 집이 많았었다. 반결 구형 배추 중 서울 배추는 조직이 단단하고 수분이 적고 저장성이 좋아 김장 김치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김치에 대한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에 쓰여진 중국 최초의 시집인 ‘시경’에서부터 보인다. ‘시경’에는 “밭두둑에 외가 열었다. 외를 깎아 저(菹)를 담그자.”는 구절이 있는데 ‘저’가 바로 김치이다. ‘여씨춘추’에도 공자가 콧등을 찌푸려가면서 김치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석명’에도 저에 관한 설명이 있다. ‘석명’에는 “채소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키면 젖산이 만들어지고 이 젖산이 소금과 더불어 채소가 짓무르는 것을 막는다.”라고 하였다. ‘저’는 채소를 발효시켜서 저장하도록 하는 젖산 발효식품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의 식품에 관한 서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우리 문화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일본문헌을 통하여 그 시대의 식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의 ‘쇼쇼 원문서’나 ‘연희식’같은 문헌에 의하면 소금·술지게미·장·초·느릅나무 껍질에 절인 김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수수 보리지란 김치도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쌀가루와 소금에다 채소를 절인 것이다. 이와 같이 쌀가루로 담그는 김치는 500년경의 중국 식품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에도 나와 있다.

25 thg 5, 2021 — 김치에 대한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에 쓰여진 중국 최초의 시집인 ‘시경’에서부터 보인다. ‘시경’에는 “밭두둑에 외가 열었다. 외를 깎아 저(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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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유산균 | 김치의 종류 | 김치 이름 맞추기 | 김장김치 | 안심 건강★지니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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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의 어원. 김치의 역사. 김치의 유래.

김치의 어원.

우리나라에서는 김치를 ‘지(漬)’라고 했다. 이규보의 ‘동국 이상국 집’에서는 김치 담그기를 염지라 하였는데, 이것은 ‘지’가 물에 담근다는 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 말기에는 유교가 도입돼 복고주의로 흘러 중국에서도 6세기 이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저’라는 명칭이 쓰였다. 본래 지라고 부르던 것이 고려말부터 저라 부르게 된 것이다.

조선 초기엔 ‘딤채’라는 말이 보이는데, 1518년의 ‘벽온방’에는 “무 딤채 국을 집안사람이 다 먹어라.”라는 글이 나오며, 1525년의 ‘훈몽자회’에서는 저를 ‘딤채 조’라 했다. 우리 겨레는 소금에 절인 채소에 소금물을 붓거나 소금을 뿌려 독자적으로 국물이 많은 김치를 만든 것이다. 이것은 숙성되면서 채소 안에 있던 수분이 빠져나오고 채소 자체는 채소 국물에 침지된다. 또 국물이 많은 동치미 같은 김치에서는 채소가 국물 속에 침전되고 만다.

여기서 우리네 고유명칭인 침채가 생겨난 것이다. 박갑수는 침채가 팀채가 되었고 이것이 딤채로 변하고 딤채는 구개음화하여 김채가 되며, 구개음화의 역현상이 일어나서 오늘날의 김치가 되었다고 풀이하였다.

김치의 역사.

김치에 대한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에 쓰여진 중국 최초의 시집인 ‘시경’에서부터 보인다. ‘시경’에는 “밭두둑에 외가 열었다. 외를 깎아 저(菹)를 담그자.”는 구절이 있는데 ‘저’가 바로 김치이다. ‘여씨춘추’에도 공자가 콧등을 찌푸려가면서 김치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석명’에도 저에 관한 설명이 있다. ‘석명’에는 “채소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키면 젖산이 만들어지고 이 젖산이 소금과 더불어 채소가 짓무르는 것을 막는다.”라고 하였다. ‘저’는 채소를 발효시켜서 저장하도록 하는 젖산 발효식품이라는 것이다.

한나라 때의 ‘주례’에도 순무·순채·아욱·미나리·죽순 등 일곱 가지 김치를 만들고 관리하는 관청에 관한 기록이 보이고 있으므로, 이러한 한나라의 김치가 낙랑을 통하여 부족 국가 시대의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이를 증명하는 문헌상의 자료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의 식품에 관한 서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우리 문화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일본문헌을 통하여 그 시대의 식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의 ‘쇼쇼 원문서’나 ‘연희식’같은 문헌에 의하면 소금·술지게미·장·초·느릅나무 껍질에 절인 김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수수 보리지란 김치도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쌀가루와 소금에다 채소를 절인 것이다. 이와 같이 쌀가루로 담그는 김치는 500년경의 중국 식품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에도 나와 있다.

근대 및 현대의 김치 변화의 주된 요인은 김치 재료의 품종개량과 젓갈 및 조리법의 일반화라고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속이 꽉 찬 결구형 배추가 우리 식탁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배추가 김치의 재료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래 계속하여 배추의 품종 개량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으나 1960년대까지도 서울 배추, 개성배추라고 하는 반결 구형의 배추를 사용하여 김치를 담그는 집이 많았었다. 반결 구형 배추 중 서울 배추는 조직이 단단하고 수분이 적고 저장성이 좋아 김장 김치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아직도 드물지만 김치를 담글 때 서울배추만 고집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김치 재료의 하나인 젓갈도 역시 전에는 각 지역에서 잡히는 생선을 이용하여 각 가정에서 젓갈을 많이 담가서 김치에 넣었으나 요즈음 대도시에서는 집에서 젓갈을 담그는 일이 매우 드물게 되었고 공장에서 김치용 액젓이 생산되어 많은 가정에서 이용하고 있다. 김치 조리법의 변화에 큰 영향을 주게 된 것은 6·25 전쟁과 도로시설과 교통수단의 발달과 매스컴의 영향을 꼽을 수 있다.

1950년 이전에는 사람들이 지역 사이를 왕래하는 일이 빈번치 않아 각지방의 고유한 김치가 비교적 잘 보존되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갔고 많은 사람들이 지역을 이동하게 되어 그 지방에서 장기간 머물게 되면서 서로 다른 지방의 김치를 먹어보며,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워 다양한 조리법을 접할 기회가 되었다.

또한 도로시설이 좋아져 교통 수단이 발달하면서 전국이 일일생활권에 들게 되어 물자의 유통이 빨라진 데다 TV 등 매스컴의 영향으로 각 지역의 독특한 김치는 지역성을 잃은 대신 조리법이 일반화되고 있다.

한편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후 김치는 세계적인 음식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2000년에는 미국·일본·영국 등 외국에 7,900만 달러의 김치를 수출했다. 또한 2001년 7월 5일에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에서 김치를 ‘국제식품’으로 공인하여, 앞으로 해외로의 수출 전망도 밝아졌다.

김치의 유래와 역사 – 네이버 블로그

김치에는 칼슘(젓갈), 단백질(어패류), 비타민(채소)이 들어있으니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는 비만 인구가 적다고 합니다. 그 원인은 김치에 있으며 오늘날 인스턴스 식품을 많이 섭취하는데 비만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김장은 겨울 동안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를 공급하여 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 김치는 삼국시대부터 채소를 소금이나 술, 식초 등에 절이는 방식으로 저장하였는데 이를 김치의 기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채소로 절인 음식을 ‘침채’라 하는데 우리나라의 김치를 침채로 부르다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말이 변하면서 오늘날의 김치로 되었습니다.

25 thg 10, 2015 — 우리나라의 음식 하면 크게 곡류와 채소, 어류, 육류가 중심이 되는데요. 특히 우리나라 대표 음식 중 채소를 발효시킨 김치는 거의 매일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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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의 유래와 역사

김치의 유래와 역사

김치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음식 하면 크게 곡류와 채소, 어류, 육류가 중심이 되는데요.

특히 우리나라 대표 음식 중 채소를 발효시킨 김치는 거의 매일 먹습니다.

김치는 성인병을 예방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고,

김장은 겨울 동안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를 공급하여 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 김치는 삼국시대부터 채소를 소금이나 술, 식초 등에 절이는 방식으로 저장하였는데 이를 김치의 기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치는 채소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키는 것이 기본인데

소금의 공급이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김치를 담그기 시작하였습니다.

​​

고려 시대 이 규보 문집 [동국이상국집]에 [지염]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채소를 소금에 절여 먹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염]은 ‘소금에 절인다’라는 뜻이며 김치를

고려 시대 때는 ‘지’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조선시대 초기, 김치에 다양한 재료가 들어갔으며

김치를 ‘딤채’로 불렀습니다.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고춧가루나 해산물 재료를 쓰지 않았으며

채소에 소금과 술, 마늘, 생강 등을 섞어서 절여먹었습니다.

고추는 임진왜란 이후 도입되었는데요.

고추가 들어오면서 붉은색과 매운맛을 내는 김치로 발달하게 됩니다.

이후 발효를 돕는 어류와 패류를 넣기 시작하면서 채소와 해산물 재료가 혼합된

김치가 등장하였고 독특한 발효식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조선시대 중기부터 배추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오늘날과 같은 통배추 김치를 담가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김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발음도 달라지는데요.

말이 변하는 것은 ​새롭게 들어온 말이 기존에 쓰이던 말보다 더 강력하게 퍼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옛날에 없던 디지털 용어가 오늘날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김치의 발음은 어떻게 변해왔을까요?

김치의 어원은

‘침채 -> 팀채 -> 딤채 -> 짐채 -> 짐치 -> 김채 -> 김치’입니다.

침채 /沈菜 / 沈(잠길 침) 菜(나물 채)

채소로 절인 음식을 ‘침채’라 하는데 우리나라의 김치를 침채로 부르다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말이 변하면서 오늘날의 김치로 되었습니다.

출처 / 초등학교 국어 활동 5-1 ㉯

김치에 대한 속담도 있습니다.

출처 / 초등학교 국어 활동 5-1 ㉯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해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미리부터 다 된 일로 알고 행동한다’라는 뜻입니다.

떡은 김치와 함께 우리 전통 먹을거리로 서로 궁합이 잘 맞는데요.

떡을 김치와 함께 먹으면 목에 메지도 않고 쉽게 질리지도 않습니다.

김치의 종류도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으며

김치는 담그는 시기에 따라 붙는 이름이 따로 있는데요.

지레김치, 미친 김치, 촛국 김치, 묵은 지 등이

있습니다.

출처 / 초등학교 국어 활동 5-1 ㉯

김치에는 칼슘(젓갈), 단백질(어패류), 비타민(채소)이 들어있으니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는 비만 인구가 적다고 합니다. 그 원인은 김치에 있으며 오늘날 인스턴스 식품을 많이 섭취하는데 비만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김치를 즐겨 먹어야겠네요.

김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본의 『쇼쇼원문서[正倉院文書]』나 『연희식(延喜食)』 같은 문헌에 의하면 소금·술지게미·장·초·느릅나무 껍질에 절인 김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수수보리지란 김치도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쌀가루와 소금에다 채소를 절인 것이다. 이와 같이 쌀가루로 담그는 김치는 500년경의 중국 식품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에도 나와 있다. 『제민요술』에는 이밖에도 많은 종류의 김치가 설명되고 있다.

1600년대 말엽의 것이라고 추정되는 『요록(要錄)』이라는 문헌에는 11종류의 김치류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 김치류에도 고추를 재료로 쓰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무·배추·동아·고사리·청태콩 등의 김치와 무를 소금물에 담근 동치미[冬沈]가 설명되어 있다. 또 무염침재라 하여 무에 맑은 물을 넣고 4일쯤 두어서 거품이 일면 즙을 버리고 다시 맑은 물을 넣어 만드는 것도 있다.

『임원십육지』에는 또 젓갈을 섞어주는 김치인 해저방(醢菹方), 곧 섞박지가 등장한다. 이것은 소금에 절인 잎줄기가 달린 무에 오이·배추 등의 다른 채소, 청각채와 같은 해초, 고추·생강·천초·마늘·겨자 등의 향신료, 조기·젓갈·전복·소라·낙지 등의 해산물, 산미완화제(酸味緩和劑)가 되는 전복껍질 등을 함께 버무려 알맞은 소금농도에서 젖산 발효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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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chi, one of top five healthy foods in the world, what benefits does it have? 8 benefits of Kim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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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에 관한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2,600∼3,000년 전에 쓰여진 중국 최초의 시집인 『시경』에서부터 보이고 있다. 『시경』에는 “밭두둑에 외가 열었다. 외를 깎아 저(菹)를 담그자.”는 구절이 있는데 이 ‘저’가 바로 김치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도 공자가 콧등을 찌푸려가면서 저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석명(釋名)』에도 저에 관한 설명이 있다. 『석명』에 의하면 “채소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키면 젖산이 생성되고 이 젖산이 소금과 더불어 채소가 짓무르는 것을 막아준다.”고 하였다. 이로써 저는 채소를 젖산 발효시켜서 저장하도록 하는 젖산발효식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나라 때의 『주례(周禮)』에도 순무·순채·아욱·미나리·죽순 등 일곱 가지 저를 만들고 관리하는 관청에 관한 기록이 보이고 있으므로, 이러한 한나라의 저가 낙랑을 통하여 부족국가시대의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이를 증명하는 문헌상의 자료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고 있다.

비록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의 식품에 관한 서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나, 우리 문화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일본문헌을 통하여 그 시대의 식생활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일본의 『쇼쇼원문서[正倉院文書]』나 『연희식(延喜食)』 같은 문헌에 의하면 소금·술지게미·장·초·느릅나무 껍질에 절인 김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수수보리지란 김치도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쌀가루와 소금에다 채소를 절인 것이다. 이와 같이 쌀가루로 담그는 김치는 500년경의 중국 식품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에도 나와 있다. 『제민요술』에는 이밖에도 많은 종류의 김치가 설명되고 있다.

일본은 기후가 온습하기 때문에 쌀가루를 쓰는 김치가 쉽게 산패하므로 쌀가루를 쌀겨로 바꾸게 되어 일본의 대표적인 김치인 단무지가 형성되었다는 설이 있다. 따라서 단무지의 원조는 수수보리지라 하겠는데 다른 김치들과 달리 수수보리라는 고유명사를 붙인 것이 주목된다.

일본의 옛 사서인 『고사기(古事記)』에 의하면 오진왕[應仁王] 때 백제사람 수수보리가 건너와서 누룩으로 술을 빚는 방법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써 수수보리지는 중국에서 백제로 전해져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백제에는 수수보리지뿐만 아니라 『제민요술』의 여러 김치가 식용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것은 백제에서뿐 아니라 삼국 모두가 같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고려 중엽에 이규보가 지은 「가포육영」이라는 시 속에 순무를 재료로 한 김치가 우리 문헌상 최초로 등장한다. “무 장아찌 여름철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인 순무 겨울 내내 반찬되네.” 이로써 고려시대의 김치로는 무장아찌와 무 소금절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달충(李達衷)의 「산촌잡영(山村雜詠)」이라는 시에서는 여뀌에다 마름을 섞어서 소금절이를 하였다는 구절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야생초로도 김치를 담갔던 것 같다.

고려 때의 문헌에 의한 기록은 이것뿐이지만 일본의 『쇼쇼원문서』나 『연희식』에는 채소에 조피나무열매·여뀌·양하 등의 향신료를 섞은 김치가 보이고, 원나라 때의 식품서인 『거가필용(居家必用)』에는 채소에 마늘이나 생강 같은 향신료를 섞은 김치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우리네 김치에도 채소와 향신료를 섞은 것이 있었다고 짐작된다.

조선시대 중엽에 들어와서 고추가 수입되면서 우리나라 김치에는 일대 혁명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 이전의 김치는 소금물에 담그거나 천초·회향 등 향신료를 이용하여 담갔다.

1670년(현종 11)경의 『음식디미방』에는 동아를 절여서 담그는 소금절이 김치나 산갓을 작은 단지에 넣고 따뜻한 물을 붓고 뜨거운 구들에 놓아 익히는 김치가 보인다. 이것은 무염침채(無鹽沈菜) 처럼 채소 자체를 소금 없이 숙성시키는 것이다.

또 생치침채법(生雉沈菜法)이 설명되어 있는데, 이것은 간이 든 오이김치를 껍질을 벗겨 한치 길이만큼 가늘게 썰어 물에 우려두고, 꿩을 삶아 오이지와 같이 썰어, 따뜻한 물에 소금을 알맞게 넣어 나박김치와 같이 담가 삭혀서 먹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김치는 식물성 식품과 동물성 식품을 아울러 이용하는 데 커다란 특색이 있는데, 1600년대 말엽에 비록 고추를 쓰지 않았어도 벌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내용으로 미루어 김치의 재료로서는 동아·오이 등의 외무리가 많고 무도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음식디미방』에는 ‘생치잔지히’·‘생치지히’ 등이 보이는데 이들은 오이지를 재료로 하여 꿩고기와 함께 간장기름에 볶은 것이다. 이로써 2차 재료로 쓰이는 소금절이 가공품도 역시 ‘지히(지)’라 부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655년(효종 6)에 신속(申洬)이 엮은 『농가집성』에 「사시찬요초」라는 월령식농서가 들어 있는데, 여기에는 침과저(沈瓜菹)와 침즙저(沈汁菹)가 나온다. 침즙저는 가지·장·밀기울을 섞어 뜨거운 마분(馬糞)에 묻어 20일이 지난 뒤 먹는 것으로 오늘날의 즙장이다. 즙장에 가지가 들어가니 이것은 장아찌의 일종이 되기도 하겠는데 이것을 저로 보았다.

1600년대 말엽의 것이라고 추정되는 『요록(要錄)』이라는 문헌에는 11종류의 김치류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 김치류에도 고추를 재료로 쓰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무·배추·동아·고사리·청태콩 등의 김치와 무를 소금물에 담근 동치미[冬沈]가 설명되어 있다. 또 무염침재라 하여 무에 맑은 물을 넣고 4일쯤 두어서 거품이 일면 즙을 버리고 다시 맑은 물을 넣어 만드는 것도 있다.

그러나 오이김치인 엄황과(淹黃瓜)에서는 향신료를 쓰고 있다. 즉 오이를 뜨거운 물에 데쳐내고 건조시켜 소금· 당· 천초· 회향· 식초를 넣어서 담갔다. 이로써 당시에 고추가 전래되었으나 아직 김치에 이용되지는 못하였고 향신료로 천초나 회향을 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715년(숙종 41)경의 『산림경제(山林經濟)』의 김치류를 보면, 고추가 들어온 지 1백년이 지났는데도 오늘날과 같은 김치는 보이지 않고 소금에 절이고 식초에 담그거나 향신료와 섞어 만들고 있다. 이 책에서는 자(鮓)만들기 다섯을 설명하고 있다.

『석명』에서는 자가 저의 일종으로 소금과 쌀로써 물고기를 익혀서 먹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오늘날의 생선 식해이다. 「고사십이집」에서는 쌀·누룩·소금·기름 등을 써서 채소를 발효시켜 먹는 것도 자라고 하였다. 이를 『임원십육지』에서는 자채(鮓菜)라 하고 있다.

이 채소로 만드는 자는 백제의 수수보리지와 같은 것으로 조선시대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도 식해를 담글 때 무를 함께 섞는 일이 있다.

그러다가 50년이 지난 1766년(영조 42)에 나온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는 김치에다 고추를 도입한 것이 보이고 있다. 침나복함저법(沈蘿葍醎菹法)을 보면 잎줄기가 달린 무에 청각채·호박·가지 등의 채소와 고추·천초·겨자 등의 향신료를 섞고 마늘즙을 듬뿍 넣어서 담그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의 총각김치와 같은 것이다.

또 황과담저법(黃瓜淡菹法)은 오이의 3면에 칼자리를 넣고 속에 고춧가루· 마늘을 넣어서 삭히고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오이소박이이다. 그밖에 동치미· 배추김치· 용인오이지· 겨울가지김치· 전복김치· 굴김치 등 오늘날의 김치가 거의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나라 김치는 중국에도 전해졌다. 1712년(숙종 38) 김창업(金昌業)의 『연행일기(燕行日記)』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귀화한 노파가 그곳에서 김치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녀가 만든 동치미의 맛은 서울의 것과 같다.”는 것이다.

또한 1803년(순조 3)의 『계산기정(薊山紀程)』에 의하면 “통관(通官) 집의 김치는 우리나라의 김치 만드는 법을 모방하여 맛이 꽤 좋다.”고 하였다. 『계산기정』의 김치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18세기에는 우리의 김치가 중국에 건너가서 인기를 얻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중국의 유명한 김치의 하나인 쓰촨포채(四川泡菜)는 포채항아리에 8% 정도의 소금물을 6할 정도 되게 넣은 다음 여기에 소금물의 0.1% 정도의 천초, 3%의 고추, 3%의 술을 넣고, 따로 채소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20%의 소금물에 절였다가 꺼낸 것을 항아리에 담고 약 10일간 숙성시켜 만든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동치미와 비슷하다.

쓰촨지방은 우리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 중 쓰촨출신의 사람이 매우 많았다고 하므로 우리의 동치미가 쓰촨에 전하여졌다는 추측이 가능하기도 하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의 조리·가공법은 1872년(고종 9)경의 『임원십육지』 속에 집대성되었다. 『임원십육지』에서는 김치의 종류를 엄장채(醃藏菜)·자채(酢菜)·제채(虀菜)·저채(菹菜, 沈菜)의 넷으로 크게 분류하였다.

또 엄장채란 소금·술지게미·향신료 등에 채소를 섞어 넣어 겨울을 위하여 저장하는 것이고, 자채와 저채는 같은 종류이지만 자는 소금과 쌀로써 발효시킨 것이고 저는 젓갈·장·생강·마늘·식초 등의 짜고 시고 매운 것과 잘 조화시킨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리고 저채에 대한 설명에서는 “엄장채·자채·제채가 다같이 저에 속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독특하게 개발된 종류의 저를 특히 저채라고 한다. 이들을 구태여 구별한다면 저채는 발효시킨 뒤 그대로 먹는 것이고 엄장채는 물에 씻어서 2차 가공이나 조리 재료로 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저채와 제채의 차이에 대해서는 “제는 잘게 썬 것이고, 저는 채소를 통째로 발효시킨 것이다.”라고 하였다. 저채와 자채의 관계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누룩이나 곡물을 쓰는지의 여부로 구별된 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 김치류의 주종은 저채(침채)이고 다른 것은 부수적인 존재가 되어 있고 나아가서는 저채로써 저 전체를 가리키게 되었다.

『임원십육지』에는 또 젓갈을 섞어주는 김치인 해저방(醢菹方), 곧 섞박지가 등장한다. 이것은 소금에 절인 잎줄기가 달린 무에 오이·배추 등의 다른 채소, 청각채와 같은 해초, 고추·생강·천초·마늘·겨자 등의 향신료, 조기·젓갈·전복·소라·낙지 등의 해산물, 산미완화제(酸味緩和劑)가 되는 전복껍질 등을 함께 버무려 알맞은 소금농도에서 젖산 발효시킨 것이다.

이로써 오늘날의 김치가 규모상으로는 거의 완성되었으며, 그 뒤는 과실·짐승고기·잣 등 기호에 따라 보충하는 정도의 발전이 있었고, 또 채소의 품질개량에 따른 재료의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김치류의 제법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으나 『증보산림경제』나 『임원십육지』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근대 및 현대의 김치 변화의 주된 요인은 김치 재료의 품종개량과 젓갈 및 조리법의 일반화라고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속이 꽉 찬 결구형 배추가 우리 식탁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배추가 김치의 재료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래 계속하여 배추의 품종 개량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으나 1960년대까지도 서울배추, 개성배추라고 하는 반결구형의 배추를 사용하여 김치를 담그는 집이 많았었다.

반결구형 배추 중 서울 배추는 조직이 단단하고 수분이 적고 저장성이 좋아 김장 김치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아직도 드물지만 김치를 담글 때 서울배추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김치 재료의 하나인 젓갈도 전에는 각 지역에서 잡히는 생선을 이용하여 각 가정에서 젓갈을 많이 담가서 김치에 넣었으나 요즈음 대도시에서는 집에서 젓갈을 담그는 일이 매우 드물게 되었고 공장에서 김치용 액젓이 생산되어 많은 가정에서 이용하고 있다.

김치 조리법의 변화에 큰 영향을 주게 된 것은 6·25전쟁과 도로시설과 교통수단의 발달과 매스컴의 영향을 꼽을 수 있다. 1950년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지역 사이를 왕래하는 일이 빈번하지 않아 각지방의 고유한 김치가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가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지역을 이동하게 되었으며 그 지방에서 장기간 머물게되면서 서로 다른 지방의 김치를 먹어보고,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게 되어 다양한 조리법을 접할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또한 도로시설이 좋아지고 교통 수단이 발달하면서 전국이 일일 생활권에 들게 되면서 물자의 유통이 빨라진데다 TV 등 매스컴의 영향으로 각 지역의 독특한 김치는 지역성을 잃은 대신 조리법이 일반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이후 김치는 세계적인 음식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2000년에는 일본·미국·영국 등 외국에 7,900만달러의 김치를 수출하였다. 또한 2001년 7월 5일에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김치를 ‘국제식품’으로 공인을 하여, 앞으로 해외로의 수출 전망이 밝아졌다.

김치의 분류 : 부산광역시 농업기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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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김치가 왜 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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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 영상 문화·예술 이야기 - 우리역사넷

재배하기 쉬운 데다 강력한 산화 방지 성분까지 있는 고추를 김치에 넣으면 당시 귀했던 소금을 적게 넣어도 비슷한 저장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고추는 젓갈의 비린 맛을 감춰주고 김치에 단맛과 감칠맛을 더해주는 효과까지 있었습니다. 고추를 넣음으로써 김치가 맛은 물론 저장과 영양 면에서 단계 더 발전한 것인데요. 김치에 고추를 넣게 되면서 간을 맞추고, 맛을 내는 젓갈의 사용도 보편화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금을 적게 넣고도 저장성을 높이는 발효 방식을 사용했는데요. 공기가 통하는 옹기에 김치를 저장하는 이유도 김치의 발효를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발효 과정 덕분에 더 영양가 있고 맛있는 김치를 만들 수 있었는데요. 이처럼 김치를 발효시키면서 저장하는 방법은 과거부터 전해오는 한국 김치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려 시대 이규보의 시에서 김치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시의 내용을 보면 고려 후기에 순무를 가지고 여름에는 장에 절여 장아찌처럼, 겨울에는 소금에 절여 짠지처럼 김치를 담가 먹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시간이 흘러 조선 전기에는 좀 더 다양한 채소와 양념으로 김치를 만들었습니다.

19세기 들어서야 배추 종자 채취에 성공한 조선. 통배추 재배가 점차 확산되면서 무김치에서 배추김치 중심으로 변했는데요. 그중에서도 통배추 김치가 배추김치의 주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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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zing Korean Kimchi Mass Production / Food 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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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 영상 문화·예술 이야기

시나리오

특별한 체험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

바로 우리네 밥상의 터줏대감인 김치를 담그기 위해서인데요. 김치를 담그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식문화 김치.

함께 김치를 담그며 정을 나누는 김장은 과거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전통문화인데요.

그렇다면 왜, 언제부터 김치를 먹기 시작했을까요?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 이유는?

현대인의 밥상에 빠지지 않는 반찬 김치는 선조들의 밥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반찬이었습니다. 명칭은 달라도, 김치는 오랜 시간 한국인 밥상의 터줏대감 자리를 지켰는데요.

장을 곁들이면 한여름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이면 긴 겨울을 넘긴다.

–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고려 시대 이규보의 시에서 김치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시의 내용을 보면 고려 후기에 순무를 가지고 여름에는 장에 절여 장아찌처럼, 겨울에는 소금에 절여 짠지처럼 김치를 담가 먹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시간이 흘러 조선 전기에는 좀 더 다양한 채소와 양념으로 김치를 만들었습니다.

내 집 동산에 몇 이랑 빈 땅이 있어

해마다 넉넉히 채소를 심네.

순무랑 무랑 상추랑

미나리랑 토란이랑 자소랑

생강 마늘 파 여뀌 오미 양념을 갖추어

데쳐선 국 끓이고 담가선 김치 만드네.

– 서거정 『속동문선』

조선 전기 서거정의 시에 그 내용이 나와 있는데요. 순무, 무, 상추, 미나리, 토란 등에 생강, 마늘, 파 등으로 양념을 해서 김치를 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 전기에는 김치의 국물을 흥건하게 해서 김치를 담갔는데요. 왜일까요?

“한국인은 밥이 주식입니다. 밥을 먹기 위해선 부드러운 국물이 필요했던 거죠. 부유층보다 서민들이 국을 만들어 먹기에 부족했기 때문에 국물 있는 김치가 발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양향자 이사장 / 세계음식문화연구원

7~8월에 가지나 오이를 씻지 않고 행주로 잘 닦아서 소금 3되와 물 3동이를 1동이가 되게 달인 다음 식기를 기다린다. 먼저 오이를 항아리 속에 넣고 백두옹 줄기와 잎을 사이사이에 넣어 항아리에 담는다.

– 김유 『수운잡방』

조선 전기 요리책인 수운잡방에 오이 김치 담그는 방법을 보면 오이 김치를 담글 때 백두옹, 즉 할미꽃을 함께 넣었는데요. 할미꽃의 강한 항균성이 김치가 쉽게 상하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추운 겨울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웠던 선조들은 채소의 저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요.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 이유도 저장 때문이었습니다. 채소를 조금이라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소금이나 장에 절여서 저장했던 것이죠.

그리고 소금을 적게 넣고도 저장성을 높이는 발효 방식을 사용했는데요. 공기가 통하는 옹기에 김치를 저장하는 이유도 김치의 발효를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발효 과정 덕분에 더 영양가 있고 맛있는 김치를 만들 수 있었는데요. 이처럼 김치를 발효시키면서 저장하는 방법은 과거부터 전해오는 한국 김치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 고추가 들어간 빨간 배추김치를 먹었을까?

현대인에게 익숙한 빨간 배추김치.

한국 대표 김치인 빨간 배추김치는 사실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떤 아이가 저한테 이런 질문을 했어요.

“세종대왕께서도 빨간 김치를 좋아했을까요?”

“유감스럽게도 세종대왕께서는 빨간 맛있는 김치를 못 잡숴보셨다. 왜냐하면 그때는 고추가 없었거든” 이랬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고추가 들어왔을 때가 임진왜란 이후라고. 김정숙 원장 / 광주김치아카데미

고추가 빨갛게 익으면 매운 초 생강을 뒤따른다. 초를 항아리 속 채소와 섞으니 김치는 맛이 있고 국그릇에 넣은 계란 눈같이 엉기고 쑥은 부드럽네.

– 이서우 『송파집』

매운 초, 고추를 김치에 넣기 시작한 것을 이서우의 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빨간 김치는 조선 후기에서야 등장했는데요. 뒤늦게 등장한 빨간 김치는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재배하기 쉬운 데다 강력한 산화 방지 성분까지 있는 고추를 김치에 넣으면 당시 귀했던 소금을 적게 넣어도 비슷한 저장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고추는 젓갈의 비린 맛을 감춰주고 김치에 단맛과 감칠맛을 더해주는 효과까지 있었습니다. 고추를 넣음으로써 김치가 맛은 물론 저장과 영양 면에서 단계 더 발전한 것인데요. 김치에 고추를 넣게 되면서 간을 맞추고, 맛을 내는 젓갈의 사용도 보편화됐다고 합니다.

김치에서 양념만큼 중요한 것이 있죠. 바로 배추인데요. 선조들은 언제부터 배추김치를 담갔을까요?

“조선 시대까지는 거의 음식의 재료로 쓰인 기록이 그렇게 많진 않아요. 워낙에 귀한 재료였기 때문에 우리나라 땅에선 재배가 잘 안 됐어요.” 박채린 문화융합단장 / 세계김치연구소

당시 재배기술이 미흡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속이 꽉 찬 배추와 달리 조선의 배추는 속이 꽉 차지 않은 배추였는데요. 그래서 1800년대에는 배추만을 재료로 쓰는 김치보다는 배추와 무를 섞어서 만드는 경우가 더 흔했다고 합니다.

19세기 들어서야 배추 종자 채취에 성공한 조선.

통배추 재배가 점차 확산되면서 무김치에서 배추김치 중심으로 변했는데요. 그중에서도 통배추 김치가 배추김치의 주류가 됐습니다. 그리고 1940년대 들어서면서 김치도 국물 있는 김치가 아닌 국물 없는 김치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는데요.

결국 1800년대 말까지 문헌상으로 찾아보기 힘들었던 통배추김치가 20세기에 접어들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김치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김장철이 되면 가까운 이웃이나 친족이 모여 함께 김치를 담그며 정을 나누던 김장.

2013년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오랜 시간 한국인의 밥상을 지킨 김치.

선조들의 노력과 지혜로 이어져 온 한국의 전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에필로그]

우리가 꼭 알아야할 한국사 속 문화예술 상식

1.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 이유는 채소를 오래 저장하기 위해서다.

2. 조선 후기 김치에 고추를 넣으면서 젓갈의 사용이 보편화되었다.

3. 빨간 통배추 김치는 1900년대 이후에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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