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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관광 > 화성행궁 소개 > 소개 – 수원문화재단

화성행궁은 조선 시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으며, 건립 당시의 모습이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에 그림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화성행궁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부터 병원과 경찰서로 쓰이기 시작했고, 1920년대 병원 건물이 신축되며 대부분 파괴되었다. 현재는 낙남헌과 노래당만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1919년 3월 29일에는 자혜의원에 검진을 받으러 가던 김향화를 비롯한 기생 30여 명이 경찰서(북군영)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다.

화성행궁은 조선 정조 13년(1789)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부 읍치 자리로 옮기고, 원래 수원부 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겨 오면서 관청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머무는 행궁으로도 사용했다. 정조는 수원도호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켜 위상을 높인 한편, 1795년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치르기 위하여 건물의 이름을 바꾸거나 새로 지었다. 1796년에 전체 600여 칸 규모로 완공되었다.

행궁(行宮)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하며, 그 용도에 따라서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전쟁과 같은 비상시에 위급함을 피하고 국사(國事)를 계속 하기 위해 마련된 행궁으로는 강화행궁, 의주행궁, 남한산성행궁 등이 있고, 휴양을 목적으로 설치된 행궁으로는 온양행궁이 있다. 그리고 왕이 지방의 능원(陵園)에 참배할 때 머물던 행궁으로 화성행궁이 있다.

화성행궁은 조선 시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으며, 건립 당시의 모습이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에 그림으로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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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관광 > 화성행궁 소개 > 소개

정조의 원대한 꿈과 효심이 느껴지는 화성행궁은 전국에 조성한 행궁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으며 경복궁만큼 아름다운 궁궐로 손꼽힙니다.

華城行宮 | 사적 제478호 | 1796년(정조 20) 창건 | 2002년 복원

화성행궁은 조선 정조 13년(1789)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부 읍치 자리로 옮기고, 원래 수원부 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겨 오면서 관청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머무는 행궁으로도 사용했다. 정조는 수원도호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켜 위상을 높인 한편, 1795년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치르기 위하여 건물의 이름을 바꾸거나 새로 지었다. 1796년에 전체 600여 칸 규모로 완공되었다.

행궁(行宮)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하며, 그 용도에 따라서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전쟁과 같은 비상시에 위급함을 피하고 국사(國事)를 계속 하기 위해 마련된 행궁으로는 강화행궁, 의주행궁, 남한산성행궁 등이 있고, 휴양을 목적으로 설치된 행궁으로는 온양행궁이 있다. 그리고 왕이 지방의 능원(陵園)에 참배할 때 머물던 행궁으로 화성행궁이 있다.

정조는 1790년 2월부터 1800년 1월까지 11년간 12차에 걸친 능행(陵幸)을 하였으며,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거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정조가 승하한 뒤 순조(純祖) 1년(1801) 행궁 옆에 화령전(華寧殿)을 건립하여 정조의 진영(眞影)을 봉안 하였고 그 뒤 순조, 헌종, 고종 등 역대 왕들이 이곳에서 머물렀다.

화성행궁은 조선 시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으며, 건립 당시의 모습이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에 그림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화성행궁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부터 병원과 경찰서로 쓰이기 시작했고, 1920년대 병원 건물이 신축되며 대부분 파괴되었다. 현재는 낙남헌과 노래당만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1919년 3월 29일에는 자혜의원에 검진을 받으러 가던 김향화를 비롯한 기생 30여 명이 경찰서(북군영)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다.

1980년대 말 지역 시민들이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복원운동을 펼친 결과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고, 2002년에 중심권역의 복원공사를 마쳤다. 2016년부터 화성행궁 우화관과 별주의 발굴조사와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화성행궁 – 나무위키

14 thg 9, 2022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 (남창동)에 위치해 있는 행궁으로, 사적 제478호로 지정받았다.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세운 수원화성 내부에 있는 행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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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itle Website: 화성행궁 – 나무위키
  • Description Website: 14 thg 9, 2022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 (남창동)에 위치해 있는 행궁으로, 사적 제478호로 지정받았다.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세운 수원화성 내부에 있는 행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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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왜 화성행궁을 지은 것일까? 화성행궁의 역사 [지리백과사전 : 수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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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행궁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수원 화성행궁(水原 華城行宮)은 정조가 능원에 참배할 때 머물던 임시 처소로서, 평소에는 부사(府使) 또는 유수(留守)가 집무하던 곳으로 활용되던 행궁이다. 1789년(정조 13년) 수원 신읍치 건설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되었다. 576칸으로 정궁(正宮) 형태를 이루며 국내 행궁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지만 일제강점기 낙남헌을 제외한 모든 시설이 일제의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 정책으로 파괴되었고, 1980년대 말 뜻있는 지역 시민들이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꾸준하고 적극적인 복원운동을 펼친 결과 화성축성 200주년인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마침내 482칸으로 1단계 복원이 완료, 2003년 10월 일반에게 공개되었다.[1] 현재 우화관과 별주, 장춘각을 비롯한 나머지 94칸에 대한 2단계 복원이 진행 중이다. 정조는 1789년 10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옮긴 이후 1800년(정조 24년) 1월까지 12년 간 13차례에 걸쳐 화성에 행차했고, 이때마다 행궁에 머물렀다.[2]

신풍루(新豊樓)는 화성행궁의 정문으로, 1790년(정조 14년)에 누문 6칸을 세우고 진남루(鎭南樓)라 하였다. 1795년 정조는 신풍루로 고치라고 명하여 조윤형으로 하여금 다시 편액을 쓰게 하였다. ‘신풍’이란 이름은 일찍이 한 고조가 ‘풍 땅은 새로운, 또다른 고향’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조에게 있어 화성은 고향과 같은 고장이라는 의미로 편액을 걸게 한 것이다. 1795년에 정조가 행차했을 때 신풍루 앞에서 정조가 친히 화성부의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굶주린 백성에게는 죽을 끓여 먹이는 진휼 행사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가운데 문은 어도(御道)로, 임금만 지나갈 수 있다.

집사는 주인을 모시고 그 살림을 맡아하는 사람들로서, 행궁의 집사청(執事廳)은 궁궐의 액정서(掖庭署, 국왕이 쓰는 붓과 먹, 벼루 등을 보관하며 대궐안의 열쇠를 간수하고 여러 가지 설비, 비품을 관리하는 관청)와 같이 잡다한 사무를 보던 집사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신풍루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에 있다. 좌익문 밖 동북 담 안에 있는데 1789년(정조 13)에 세웠다. 화성행궁의 대부분의 건물과 마찬가지로 일제 강점기 때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2002년 7월에 건물 두 채로 복원되었다. 집사청 앞에는 행궁이 세워지기 전부터 있었던 수령 6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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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의 대표 역사지 화성행궁 / YTN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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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행궁(水原 華城行宮)은 정조가 능원에 참배할 때 머물던 임시 처소로서, 평소에는 부사(府使) 또는 유수(留守)가 집무하던 곳으로 활용되던 행궁이다. 1789년(정조 13년) 수원 신읍치 건설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되었다. 576칸으로 정궁(正宮) 형태를 이루며 국내 행궁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지만 일제강점기 낙남헌을 제외한 모든 시설이 일제의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 정책으로 파괴되었고, 1980년대 말 뜻있는 지역 시민들이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꾸준하고 적극적인 복원운동을 펼친 결과 화성축성 200주년인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마침내 482칸으로 1단계 복원이 완료, 2003년 10월 일반에게 공개되었다.[1] 현재 우화관과 별주, 장춘각을 비롯한 나머지 94칸에 대한 2단계 복원이 진행 중이다. 정조는 1789년 10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옮긴 이후 1800년(정조 24년) 1월까지 12년 간 13차례에 걸쳐 화성에 행차했고, 이때마다 행궁에 머물렀다.[2]

경기도 기념물 65호로 지정되어 있다가, 2007년 6월 8일 사적으로 승격 지정되었다.[3]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아침 11시부터 30분 동안 무예24기 보존회가 무예 시범을 보인다.

화성행궁은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 아래의 산기슭을 중심으로 경사지가 펼쳐지고, 시가지가 시작되는 곳의 평지에 위치해 있다. 구조는 앞쪽으로 긴 장방형 구조이다.

정문인 신풍루 양쪽으로 남군영과 북군영이 있으며 신풍루로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서리청과 비장청, 오른쪽으로는 집사청이 위치해있다. 서리청과 비장청, 집사청을 좌우로 지나 마당을 가로지르면 좌익문이 있고, 이를 통과하면 중앙문이 나온다. 이 중앙문을 지나면 화성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이 나타난다. 화성행궁과 따로이 떨어져 있는 화령전은 정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신풍루 [ 편집 ]

신풍루 정면. 오른쪽 아래 현판에 적힌 것은 ‘華城行宮(화성행궁)’이다.

신풍루(新豊樓)는 화성행궁의 정문으로, 1790년(정조 14년)에 누문 6칸을 세우고 진남루(鎭南樓)라 하였다. 1795년 정조는 신풍루로 고치라고 명하여 조윤형으로 하여금 다시 편액을 쓰게 하였다. ‘신풍’이란 이름은 일찍이 한 고조가 ‘풍 땅은 새로운, 또다른 고향’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조에게 있어 화성은 고향과 같은 고장이라는 의미로 편액을 걸게 한 것이다. 1795년에 정조가 행차했을 때 신풍루 앞에서 정조가 친히 화성부의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굶주린 백성에게는 죽을 끓여 먹이는 진휼 행사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가운데 문은 어도(御道)로, 임금만 지나갈 수 있다.

좌익문 [ 편집 ]

좌익문

좌익문(左翊門)은 내삼문(內三門)을 바로 앞에서 도와 행궁을 지키는 중삼문(中三門)으로 1790년 3칸 규모로 완공하였다. 행궁의 본전인 봉수당(奉壽堂)에 이르는 두번째 문으로 중양문(中陽門) 앞에 있다. 문의 이름인‘좌익(左翊)’은 ‘곁에서 돕는다’는 뜻이며, 편액은 정조의 명으로 정동준(鄭東浚)이 썼다. 남쪽 행각의 끝은 외정리소와 연결된다.

중양문 [ 편집 ]

중양문

중양문(中陽門)은 궁궐 건축의 삼문 설치 형식에 따라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을 바로 앞에서 가로막아 굳게 지키는 역할을 하는 내삼문(內三門)이다. 1790년(정조 14)에 완성되었고, 가운데의 정문과 좌우의 협문이 있고 좌우로 행각을 두어 출입을 통제하였다. 1795년 봉수당 진찬례 때 봉수당 앞으로는 정조와 혜경궁을 비롯한 왕실의 종친과 대신들이 자리하였고, 중앙문 밖으로 대문을 활짝 열어 승지와 사관, 각신이 반열을 이루었던 바 있다.

봉수당 [ 편집 ]

봉수당

봉수당(奉壽堂)은 화성행궁의 정전이자 화성유수부의 동헌 건물로 장남헌(壯南軒)이라고도 한다.

정조는 1795년에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진찬례’를 이 건물에서 거행하였다. 이때 정조는 혜경궁의 장수를 기원하며 ‘만년(萬年)의 수(壽)를 받들어 빈다’는 뜻인 봉수당이라는 당호를 지어 조윤형으로 하여금 현판을 쓰게 하였다. 또 혜경궁 회갑연을 마치고 9년 뒤 1804년에 혜경궁의 70수연(壽宴) 진찬을 봉수당에서 갖겠으니 사용할 물건을 잘 보관하도록 지시하기도 하였다. 진찬례는 조선 최대의 궁중 행상로 당시 커다란 화제거리였으며, 왕실의 종친과 신하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이 건물은 1789년(정조 13) 8월 19일 상량하고 9월 25일 완공되었다. 일제강점기에 파괴된 봉수당은 1997년에 복원되었다.

유여택 [ 편집 ]

유여택

유여택(維與宅)은 평소에 화성유수가 기거하다가 정조가 행차시에 머물며 신하들을 접견하는 건물이다. 복내당 동쪽 행각과 외정리소 사이에 있다. 유여택이라는 이름은 『시경』 중에서 주나라 천명을 받아 나라를 크게 하고 집을 주었다는 데서 따온 것으로, 정조의 입장에서는 화성 유수를 임명하여 내려보내는 곳이라는 의미가 된다.

원래 유여택은 1790년(정조 14년)에 건립되어 은약헌(隱若軒)이라 하였다가 1796년에 증축하면서 유여택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건물은 동향으로 왼쪽에 공신루(供宸樓) 1칸을 덧붙여 휴식 공간을 마련하였다.

1795년 행차 시에 정조는 유여택에서 각종 행사에 대한 보고를 받고 하교를 내렸다.

경룡관 [ 편집 ]

경룡관

경룡관(景龍館)은 장락당의 바깥문으로도 사용했던 부속건물이다. ‘경룡’이란 제왕을 상징하는 큰 용을 뜻하는 것으로, 당 태종이 거처한 궁궐 이름에서 따 왔다. 정조는 당 태종의 궁궐 이름을 차용한 이 건물에서 휴식을 취하며 조선의 태평성세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1794년(정조 18)에 2층 구조로 만들었다. 건물의 2층은 모두 마루를 깔아 누마루를 만들고 1층은 널문 3칸을 만들어 지락문(至樂門)이라 이름붙였다.

장락당 [ 편집 ]

장락당

장락당(長樂堂)은 혜경궁의 침전이다. 장략당은 전한의 도읍인 장안성의 궁전이자 한나라 태후의 거처였던 ‘장락궁’에서 이름을 따 온 것으로, 정조가 혜경궁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편액을 직접 써서 걸었다. 실제로 1795년(정조 19) 을묘원행 시에 혜경궁은 여기 머물렀는데, 정민시가 지은 상량문에서는 ‘빛나는 궁궐이 처음 이루어지는 때를 당하여 다행히 태우께서 먼저 납시는 것을 보았네’라고 하였다.

1794년(정조 18) 화성 서역 중에 완성되었으며, 봉수당 남쪽에, 동향으로 세워졌다. 봉수당의 서남쪽 지붕과 겹쳐 있다.

복내당 [ 편집 ]

복내당

복내당(福內堂)은 행궁의 내당으로 정조가 행차시에 머물던 곳이며 장락당 남쪽에 위치해 있다. 좌우 건물 두 채로 이루어져 있다. 상량문은 1796년(정조 20) 11월 민종현이 지었다. 복내당의 이름은 ‘복은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1790년(정조 14)에 수원부 신읍치소의 내아(內衙)로 건립하였고, 1794년(정조 18)에 세웠다.

낙남헌 [ 편집 ]

낙남헌

낙남헌(洛南軒)은 일제 강점기에 화성행궁이 철거될 당시 훼손당하지 않고 그대로 남은 유일한 건축물이다. 낙남헌이라는 이름은 후한의 광무제가 낙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궁궐 이름을 ‘남궁(南宮)’이라 한 것에서 따온 것이다. 1795년(정조 19) 을묘원행 때 각종 행사가 이곳 낙남헌에서 치러졌다. 정조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념하여 군사들의 회식과 양로연을 여기서 하였고, 특별과거시험을 치러 문과 5명과 무과 56명을 선발하였는데, 급제자에게 합격증을 내려 주는 행사까지 여기서 하였다.

1794년(정조 18)에 완공되었다.

노래당 [ 편집 ]

노래당

노래당(老來堂)은 정조가 왕위에서 물러나 노후생활을 꿈꾸며 지었다는 건물로, 낙남헌과 득중정에서 열리는 여러 행사 도중 휴식을 취하는 데 사용하였다. 화성 행궁의 정당인 봉수당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나오는데, 곱은 ㄱ자형으로 배치한 초익공(初翼公) 양식 팔작지붕집이다. 1794년 행궁을 증축할 때 5량 7칸 규모로 새로 지었으며, 편액은 채제공(蔡濟恭)이 썼으나 전하지 않는다. 북쪽으로 낙남헌과 이어져 있고, 남쪽으로는 득중정과 통한다.

노래(老來)란 말은 ‘늙는 것은 운명에 맡기고 편안히 살면 그곳이 고향이다’라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득중정 [ 편집 ]

득중정

득중정(得中亭)은 활을 쏘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정조는 행차 시에 매번 활쏘기를 하였는데, 1790년(정조 14)에 새로 만들어진 이 정자에서 활을 네 발 쏘아 네 발 모두 맞히고는 이를 기념하여 ‘득중정’이라고 하였다. 득중정은 “활을 쏘아 맞으면 제후가 될 수 있고, 맞지 않으면 제후가 될 수 없다(射中 則得爲諸侯 射不中 則不得爲諸侯)”라고 한 구절에서 ‘득’자와 ‘중’자를 따서 붙인 것이다. 편액은 정조가 직접 써서 걸었고, 상량문은 홍양호가 짓고 썼다.

집사청 [ 편집 ]

집사청

집사는 주인을 모시고 그 살림을 맡아하는 사람들로서, 행궁의 집사청(執事廳)은 궁궐의 액정서(掖庭署, 국왕이 쓰는 붓과 먹, 벼루 등을 보관하며 대궐안의 열쇠를 간수하고 여러 가지 설비, 비품을 관리하는 관청)와 같이 잡다한 사무를 보던 집사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신풍루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에 있다. 좌익문 밖 동북 담 안에 있는데 1789년(정조 13)에 세웠다. 화성행궁의 대부분의 건물과 마찬가지로 일제 강점기 때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2002년 7월에 건물 두 채로 복원되었다. 집사청 앞에는 행궁이 세워지기 전부터 있었던 수령 6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북군영 [ 편집 ]

북군영

북군영(北軍營)은 장용영 외영의 기마병이었던 친군위(親軍衛)가 좌, 우열로 각 100명씩 입직숙위하는 건물이다. 신풍루를 마주보는 쪽에서 우측에 있다. 1798년(정조 22) 장용외영 군영의 일대 개편에 따라 좌, 우열은 파하고 1, 2, 3번의 입번 순서를 정하여 매년 각 100명씩 양 군영에 나누어 배치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처음 지었고, 1794년(정조 18) 좌우에 익량을 증축하여 모두 62칸이나 되는 규모를 갖추었다.

남군영 [ 편집 ]

남군영

남군영(南軍營)은 북군영과 같이 장용외영 친군위 200명이 살면서 지키는 건물이다. 남군영은 신풍루를 마주보는 쪽에서 보면 좌측에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은 1789년(정조 13년)에 처음 지어졌고, 1794년에 증축되었다.

서리청 [ 편집 ]

서리청

서리청(書吏廳)은 서리들이 사용하는 건물이다. 서리란, 문서의 기록 및 수령, 발급을 담당하는 아전이다. 비장청 앞에 위치해 있으며 남향이다. 예전의 금도청(禁盜廳)건물을 이청으로 쓰게 하고, 그 건물을 증축해서 사용하였다. 1795년 을묘원행 때는 수라간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비장청 [ 편집 ]

비장청

비장은 관찰사나 절도사등 지방관이 데리고 다니던 막료로, 조선 후기에는 방어사를 겸한 수령까지 모두 비장을 거느리는 것을 관례화하여 민정 염탐을 시키기도 하였다. 비장청(婢將廳)은 화성 유수부의 비장들이 사용하던 건물로 외정리도 앞에 있는 남향 건물이다.

원래는 1789년(정조 13)에 세웠는데 1796년(정조 20)에 서리청 건물을 수리하고 비장청으로 변경하여 사용하였다.

미로한정 [ 편집 ]

미로한정

미로한정(未老閒亭)은 행궁 후원(後苑)에 만든 정자이다. 후원 서쪽 담안에 있었는데 미로한정이라는 말은 ‘장래 늙어서 한가하게 쉴 정자’라는 뜻이다. 노래당과 함께 갑자년(1804)에 세자에게 양위(讓位)하고 화성으로 가리라던 정조의 뜻이 담긴 이름이다.

1790년(정조 14)에 세워졌는데 1칸 6각정으로 ‘육면정(六面停)’이라고도 한다.

내포사 [ 편집 ]

내포사

내포사(內鋪舍)는 행궁의 뒷담 안 왼쪽 기슭의 미로한정의 북쪽 50보(59.4m)쯤 거리에 위치하였다. 높이는 7척 5촌(2.32m)이다. 다만 온돌 1칸만을 놓았으며, 앞으로 반칸을 물려서 벽돌을 깔았다.

1796년(정조 20) 9월 9일에 준공되었다.

외정리소 [ 편집 ]

외정리소

외정리소(外整理所)는 장차 1795년에 있을 을묘원행에서 치를 각종 행사를 준비하기 위하여 1794년 12월에 설치한 임시 기관이었다. 화성 성역이 끝난 후 외정리소라 명명하고 역대 임금이 행차할 때 행사를 준비하는 관청이 되었다. 처음의 정리소는 장용영 내영에 있었는데 1796년에 행궁이 완성되면서 유여택 앞에 외정리소를 세우고 ‘외정리아문(外整理衙門)’이란 편액을 달았다. 외정리사는 호조판서가 겸임하는 것이 상례였으나 화성에서는 화성 유수가 겸직하였다.

화령전 [ 편집 ]

화령전

화령전 운한각

화령전 운한각에 걸린 정조의 어진. 융복(군복)을 입고 있다. 원본은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옮기던 도중 분실되었고, 현재 걸려 있는 것은 2005년에 새로 그린 상상도이다.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화령전 입니다.

사적 제115호인 화령전(華寧殿)은 1801년(순조 원년) 정조대왕의 뜻을 받들어 화성행궁 옆에 세운 건물로 정조의 초상화를 모셔놓은 영전(影殿)이다. 영전은 보통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위를 모신 사당과는 구별되는 건물로, 선왕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살아있을 때와 같이 추모하던 곳이다. 화성에서 ‘화’자와 『시경』의 ‘돌아가 부모에게 문안하리라[歸寧父母]’라는 구절에서 ‘령’자를 따서 이름 붙였다. 화령전은 정조대왕의 뜻을 받들어 검소하면서도 품격 있게 만든 조선시대의 대표적 영전이다.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수원 화성행궁 – 경기문화재연구원

한자이름, 종목 및 지정번호, 지정일, 소재지, 시대로 구성된 표입니다. 지정구분 국가지정문화재 종목 및 지정번호 사적 제478호 명칭(한자) 수원 화성행궁 (水原 華城行宮) 유형분류 유적건조물 지 정 일 2007-06-08 소 재 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남창동 6-2) 지도로 보기 시 대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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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팔달구맛집 Best 10 수원시청, 팔달문시장, 행리단길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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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이름, 종목 및 지정번호, 지정일, 소재지, 시대로 구성된 표입니다. 지정구분 국가지정문화재 종목 및 지정번호 사적 제478호 명칭(한자) 수원 화성행궁 (水原 華城行宮) 유형분류 유적건조물 지 정 일 2007-06-08 소 재 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남창동 6-2) 지도로 보기 시 대 조선시대

수원 화성행궁(水原 華城行宮)은 사적 제478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이다.화성행궁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에 위치해 있다. 1789년(정조13), 옛 수원읍 뒷산에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顯隆園)을 조성하면서 수원을 현재의 팔달산 아래로 옮기고 읍내 중심부에 왕이 현륭원에 전배할 때 유숙할 행궁으로 조성되었다. 현륭원을 옛 수원읍 뒷산인 화산 아래로 옮기는 결정은 1789년 7월에 이루어졌으며 3개월 만에 무덤을 옮기고 옛 읍치에 살던 주민들을 새로운 장소로 이주시키고 새 읍치에 관청과 행궁 조성하는 작업이 추진되었다.그 해 10월초에는 왕이 행궁에 재숙하면서 현륭원에 전배하였다. 새로 조성한 수원부는 서쪽의 팔달산을 주산으로 해서 동향해서 시가지를 형성하고 서울에서 삼남지방을 연결하는 남북 간선도로를 두고 팔달산 아래 관청을 배치한 모습이었다. 초기의 행궁은 수원부의 관청 건물의 일부를 활용하였다. 관청은 정전인 장남헌(壯南軒)이 동향해서 세워지고 그 남쪽에 복내당(福內堂)이 있는 단출한 것이었다. 이 밖에 북쪽에 객사를 두고 동쪽 끝에 대문인 신풍루(新豊槰)를 두었다. 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장남헌을 행궁으로 사용했다.도시에 인구가 늘고 생활이 안정되자 수원부를 ‘화성(華城)’으로 이름을 고치고 유수부로 승격시켜 장관의 지위를 한성부와 같은 정2품으로 올렸다. 1794년(정조 18)에 왕은 새로 조성한 화성에 성곽을 쌓도록 하였으며 이 때 행궁의 대대적인 증축이 이루어졌다. 특히 이듬해인 1795년(정조 19) 정조의 생모 혜경궁 홍씨의 회갑이 되는 해였는데 이때 회갑연을 화성에서 거행하기 위한 조처였다. 행궁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정조는 혜경궁의 회갑연을 성대하게 치렀으며 이에 앞서 행궁 각 전각의 이름을 회갑연에 걸맞게 고쳤다. 즉 정당(正棠)인 장남헌은 봉수당(奉壽堂)으로 고치고 봉수당에 연접해서 건물 뒤에 모친이 연회시 거처할 수 있는 전각을 지어 장락당(長榴堂)이라고 했다. 긴 수명을 봉헌한다는 봉수나 오래도록 복락을 누린다는 ‘장락(長榴)’은 모두 회갑을 맞은 모친을 위해 지은 이름이다.또한 왕 자신이 머물 처소로 봉수당 동남쪽에 유여택(維與檠)을 지었는데, 이 건물은 한쪽에 누마루가 돌출된 사대부집 사랑채 형태의 건물이었다. 아울러 봉수당 북쪽에는 임금이 연회를 베풀고 각종 행사를 여는 낙남헌(洛南軒)을 세웠다. 이 밖에 화성과 관련한 각종 기록을 정리하는 일을 하는 외정리소를 두고 신풍루 좌우에는 남북 군영 건물을 세웠다. 을묘년의 원행 모습은 수원능행도라는 이름으로 8폭 병풍그림이 전하는데 이 그림에는 봉수당의 진찬모습이나 낙남헌의 양로연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당시의 건물 구성이나 모습은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나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자세히 나와 있다. 『화성성역의궤』 「도설편」의 행궁전도에 의하면 행궁 전체는 동서로 긴 장방형의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으며 북쪽에 따로 객관인 우화관이 남북방향으로 놓여 있는 모습이다. 아래쪽 중앙의 신풍루를 들어서면 네모난 마당이 나오고 다시 서쪽 중앙에 좌선문, 중양문이 나란히 세워져 있고 각각의 문 좌우는 행각으로 가로막혀 있다. 중양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나오고 마당 안쪽에 봉수당이 놓이고 봉수당 남쪽에는 행각이 바짝 붙어서 이층 누문인 경룡관 모습이 보인다. 경룡관을 들어서면 장락당으로 통하게 되어있는데 봉수당과 장락당은 지붕이 서로 이어진 모습이다. 봉수당 북쪽은 행각이 이중으로 놓이고 그 북쪽에 낙남헌이 북쪽을 행해 세워져 있다.낙남헌 아래는 연못이 있고 한쪽에 당간이 높이 세워져 있다. 중양문 마당에서는 남쪽으로 행각을 들어서면 유여택으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으며 유여택 동쪽 넓은 마당을 지나면 외정리소가 된다. 대문인 신풍루 앞 좌우에는 남북 군영이 같은 형태로 대칭으로 세워져 있는 모습이다. 그림에서 보는 행궁 전체모습은 마치 궁궐의 일곽을 보는 듯한 정연하고 잘 짜여진 구성이다. 특히 신풍루에서 봉수당까지 세 개의 문을 통과하도록 하여 궁궐과 유사한 격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성은 남한행궁이나 북한행궁에서 볼 수 없는 점이다. 또한 전체 행궁의 규모에서도 화성행궁은 600여칸에 달하여 남한행궁이나 북한행궁의 200여 칸 규모와 월등한 차이를 보인다.1796년(정조20) 화성 축성과 함께 행궁도 완성되었다. 행궁이 지어지자 정조는 매년 정월이나 이월에 화성에 들러 현륭원에 전배하고 행궁에서 유숙하면서 오가는 길에 백성들의 삶을 살피고 이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방책을 내렸다. 정조가 사거한 후에도 역대 왕들의 현륭원 전배가 이어져서 순조는 재위 중 10차례 이상 행궁에 유숙했으며 헌종, 철종도 각각 두 차례 행궁에 머물렀다. 마지막으로는 1870년(고종 7) 고종이 현륭원 전배 차 화성에 내려와 행궁에 유숙했다.이후 1895년 행정개편으로 화성은 수원군으로 명칭이 바뀌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도시 위상이 크게 낮아지고 행궁의 기능도 사라졌다. 1909년 나라에서는 전국 주요도시에 빈민층을 위한 의료시설로 자혜의원을 설치하였으며 이듬해에는 화성행궁 자리에 수원 자혜의 원이 들어섰다. 인접한 객사에는 소학교령에 따라 1896년부터 신풍공립소학교가 들어섰다.이후 행궁은 낙남헌만을 남기고 나머지 건물이 철거되고 병원시설이 들어섰다. 광복 후에도 행궁터는 도립병원으로 사용되면서 한 동안 행궁의 면모를 완전히 잃었으며 유일하게 남은 낙남헌은 한 때 수원군청의 사무실로 사용되다가 신풍초등학교 교정 내에 남게 되었다.한동안 자취를 잃었던 화성행궁은 1990년에 와서 도립병원이 이전되는 것을 계기로 수원시에 의해 본래의 모습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우선 기존에 행궁터에 자리 잡고 있던 병원이 이전되고 병원건물이 철거되었으며 제일 뒤쪽의 복내당과 봉수당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이미 병원건물을 세우면서 지하실을 조성하였기 때문에 유구의 상당부분은 훼손되었으나 본래의 건물 기단이나 초석 일부가 노출되었다.1995년에 시작된 발굴조사는 2001년까지 5차에 걸쳐 주로 한양대학교 박물관이 주관하여 이루어졌다. 발굴 결과 행궁의 가장 뒤쪽 담장유구가 확실하게 확인되었으며 그 밖에 봉수당 주변행각을 비롯해서 유여택의 건물 기단부가 거의 완전하게 노출되었다. 또한 중양문에서 봉수당에 이르는 어도와 어도에 깔았던 전돌이 일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대부분 18세기 이후에 제작된 자기류가 상당수 확인되었으며 기와편이 다수 출토되었지만 행궁에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생활집기는 확인된 것이 없었다.발굴이 진행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사라진 건물에 대한 복원이 이루어졌다. 복원에서는 주로 『화성성역의궤』의 기록이 참고가 되었으며 20세기 초에 촬영한 행궁 전경 사진이 지상부 건물 복원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또한 발굴에서 확인된 건물터를 통해서 복원 건물의 위치를 선정하였다. 1997년 10월 봉수당 복원을 시작으로 2002년 7월에는 행궁 중심부 전체 482칸이 복원되었다.『화성성역의궤』나 19세기 읍지 기록에는 봉수당, 장락당, 유여택은 단청을 칠하지 않고 신풍루, 낙남헌 등은 채색이 이루어졌다고 명시되었으나 2002년 준공을 기하여 행궁의 격식을 높이고 외관을 통일하기 위해서 수원시에서 주요 건물에는 모두 단청 칠을 하였다. 2006년에는 행궁 앞의 현대식 건물을 시에서 모두 매입하여 철거하고 2008년에 광장 조성을 완료하였다. 아울러 행궁 앞으로 흐르던 개천과 개천을 가로지르던 돌다리의 복원이 이루어졌다. 이로서 1997년에 시작된 행궁의 복원과 주변의 정비는 거의 완료되어 행궁의 본래 모습을 거의 되찾았다.수원 화성행궁은 1972년 7월 3일 경기도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 6월 8일 사적 제478호로 승격되었다.※ 화성행궁→수원 화성행궁 명칭변경(2011.07.28. 문화재청 고시)(자료출처 : 수원시청)『화성행궁 활용방안 연구』『(수원) 화성행궁』『수원의 역사와 문화』

서울 근교 주말 나들이 : 수원 화성행궁 – 네이버 블로그

대한민국 최고의 행궁 이라는 찬사와 함께 경복궁 부궁 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행궁 입니다

행궁이란 임금이 궁궐을 벗어나 지방으로 거동할때 잠시 머무는 임시거처로

서울 근교 주말 나들이 로 수원 방문시 다녀오시면 좋은곳으로

26 thg 10, 2020 — 행궁이란 임금이 궁궐을 벗어나 지방으로 거동할때 잠시 머무는 임시거처로. 수원화성 부속물인 화성행궁은 규모가 크고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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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이 순서대로 보세요 / 화성행궁~팔달산 서장대~서남암문~팔달문 / 장안문~북수문~동북각루 [수원 여행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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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근교 주말 나들이 : 수원 화성행궁

행궁이란 임금이 궁궐을 벗어나 지방으로 거동할때 잠시 머무는 임시거처로

수원화성 부속물인 화성행궁은 규모가 크고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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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매력 있는곳인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수원 화성행궁

방문날짜 : 2020년 10월 19일

관람 소요시간 : 1시간

사적 수원 화성행궁 (水原 華城行宮) | 문화재 종목별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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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페셜 – 수원 화성은 18세기 최첨단 전투요새였다 / KBS 20020126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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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행궁 야간개장 달빛정담 후기 예쁜 우리궁 수원 …

현재는 본 화성행궁의 일부인 낙남헌과 노래당만 남아 유지하고 있다. 1980년대 말 복원운동 추진 후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었고 2022년 복원공사가 마무리되어 지금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후 2016년 부터 화성행궁 우화관과 별주의 발굴/복원 사업이 진행중이다.

임금이 정전으로 쓰던 건물이다. 지금은 편전공간으로 연출되어있다. 내부 조형물은 혜경궁 홀씨의 진찬열이 열린 공간으로 표현되어있다. 바로 옆 건물에는 어떤 상차림이 있었는지 당시 모습은 어떠했는지 디오라마로 표현되어있어서 한 눈에 이해하기 편리했다.

수원의 화성행궁은 정조의 원대한 꿈과 효심이 모여있는 곳이라고도 불린다. 전국에서 조성한 행궁(=임금이 나들이 때에 머물던 별궁.) 가운데 가장 규모있고 격식이 갖춰져있어서 경복궁만큼 아름다운 궁권이라고 손꼽히기도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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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세계유산시리즈 – 수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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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행궁 야간개장 달빛정담 후기 예쁜 우리궁 수원가볼만한곳 야간산책

수원 화성행궁 야간개장 달빛정담 후기 예쁜 우리궁 수원가볼만한곳 야간산책

0. 수원 화성행궁 기본정보

1. 수원 화성행궁이란?

2. 수원 화성행궁 야간개장 “달빛정담”

3. 수원 화성행궁 야간개장 “달빛정담” 방문후기

호텔&여행 블로거, 러블리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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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lace to visit in Suwon

예쁜 수원가볼만한곳

” 수원 화성행궁 야간개장 달빛정담 ”

2022년 9월

언젠가 수원을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다. 그 중심에는 물론 화성행궁이 있다. 도심 속 아름다운 궁궐의 야경과 고즈넉한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는 한정적이지만 매력적인 수원의 화성행궁.

이번에 수원을 다녀오고나서 행궁이 참 예뻤고 수원시는 이를 문화자원으로 굉장히 잘 활용하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경복궁만큼 크진 않더라도 구경하기 좋고 산책하기 좋았던 수원 화성행궁을 야간에 다녀온 후기~

0. 수원 화성행궁 기본정보

– 주소: 경기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

– 연락처: 031-290-3600

– 운영시간: 매일 09:00 – 18:00

입장마감 17:30 (연중무휴)

– 문화관광 해설시간

: 10:00, 11:00, 13:30, 14:30, 15:30

예쁜 우리궁 수원가볼만한곳

1. 수원 화성행궁이란?

수원 화성행궁 입장료

어른 1,500원 / 청소년&군인 1,000원 / 어린이 700원

무료입장: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한복착용시, 미취학 아동(만6세 이하, 내국인만)

만 65세 이상

수원의 화성행궁은 정조의 원대한 꿈과 효심이 모여있는 곳이라고도 불린다. 전국에서 조성한 행궁(=임금이 나들이 때에 머물던 별궁.) 가운데 가장 규모있고 격식이 갖춰져있어서 경복궁만큼 아름다운 궁권이라고 손꼽히기도 한다고.

건립 당시의 모습이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에 그림으로 남아 있어 다행이지만 일제 강점기 시기에는 병원과 경찰서로 쓰이기도 하면서 시간이 지나 대부분 파괴되었다.

현재는 본 화성행궁의 일부인 낙남헌과 노래당만 남아 유지하고 있다. 1980년대 말 복원운동 추진 후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었고 2022년 복원공사가 마무리되어 지금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후 2016년 부터 화성행궁 우화관과 별주의 발굴/복원 사업이 진행중이다.

※ 행궁(行宮)이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이다.

· 보통 행궁은 비상시 피하기 위해 만든 강화행궁, 의주행궁, 남한산성행궁

· 휴양을 목적으로 설치된 행궁으로는 온양행궁

· 왕이 지방의 능원(陵園)에 참배할 때 머물던 행궁으로 화성행궁

예쁜 우리궁 수원가볼만한곳

2. 수원 화성행궁 야간개장 “달빛정담”

수원 도심 한가운데서 아늑하고 아담한 옛 궁을 거닐며 고즈넉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수원 화성행궁이 10월 31일까지 야간개장을 운영하고 있다. 오후 6시부터 밤 궁궐을 산책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이에 아름다운 궁을 더욱 아름답고 즐거운 산책이 될 수 있도록 포토존 설치물은 물론 조명까지 함께하는 곳이라 기회가 된다면 꼭 방문해보시길!

· 관람기간: 2022. 5. 1.(일) ~ 10. 30.(일) 기간 중 매주 수~일요일

· 관람시간: 18:00~21:30 (21:00 매표 및 입장 마감)

→ 입장마감은 밤 9시까지 입니다.(관람은 밤 9시 30분까지 가능)

· 관람장소: 화성행궁, 화령전

· 관람요금: 어른 1,500원 / 청소년&군인 1,000원 / 어린이 700원

→ 무료입장조건: 한복(개량한복 포함) 착용 시 / 만 6세 이하의 미취학 이동(내국인 한함) / 만 65세 이상 무료입장 / 장애인등록증 및 장애인복지카드 소지자(1~3급 보호자 1인 포함, 4~6급 본인 한정)

· 안내사항

– 비대면 프로그램(자유 관람) 우선 운영

– 야간개장은 기간 중 매주 수요일부터 일요일만 운영

– 화성행궁 야간개장의 경우 문화가 있는 날 무료입장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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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원 화성행궁 야간개장 “달빛정담” 방문후기

입장료는 성인기준 단돈 1,500원.

1,500원의 행복을 기분좋은 저녁 산책 경험을 할 수 있는 화성행궁 야간개장.

매표소에서 바로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기도 하고 간편하게 저 QR코드 하나로 구매해서 QR코드 전송(즉시됨)된 것을 보여주면 실물 티켓없이 곧장 화성행궁으로 입장 가능하다.

저녁 6시 반 넘어서던가. 아무튼 대충 그 즈음에 입장해서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할 때였다. 그래서 아직 방문객들이 적었을 시점. 시간이 지나니 방문객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처음 방문하는 곳이라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더라도 이렇게 안내 표지판이 있으니 참고해서 이동했다. 아니면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내부지도를 참고해볼만한다.

이렇게 별도의 포토존이 되어주는 곳들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아름다웠던 것은 화성행궁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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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어두워지고 건물로 향하던 조명이 더욱 진해질 수록 황성행궁의 품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격식이 경복궁 못지 않다는 것도 이 선명한 대비에 더욱 그러하게 드러났다.

어디서 어떻게 찍어도 (나처럼 사진을 사진을 예쁘게 못 찍는 사람도) 멋진 그림이 되어주었다.

■ 화성행궁의 정전, 봉수당

임금이 정전으로 쓰던 건물이다. 지금은 편전공간으로 연출되어있다. 내부 조형물은 혜경궁 홀씨의 진찬열이 열린 공간으로 표현되어있다. 바로 옆 건물에는 어떤 상차림이 있었는지 당시 모습은 어떠했는지 디오라마로 표현되어있어서 한 눈에 이해하기 편리했다.

해가 어두워지면 봉수당이 문이 닫히고 본격적인 조명이 드리워진다. 화려한 모습을 그대로 품어내는 황성행궁. 카메라를 아무데나 휘둘러도 멋진 사진을 그대로 볼 수 있던, 고즈넉하고 화려했던 화성행궁 야간개장.

야간 산책으로 시원한 가을 바람 맞으며 궁궐나들이 어떨까

2022년 10월 31일까지만 야간개장하니 수원 화성행궁 야간산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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