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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가지 주요 의문점이 있었는데 1. 김광석이 목을 스스로 맸냐는 것, 2.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점, 3. 정말로 우울증이 있었냐는 것이다. 1번 의문의 근거는 목을 매달 전깃줄을 묶기 위해 쓰였어야 했을 의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목을 매달 위치조차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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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총 3가지 주요 의문점이 있었는데 1. 김광석이 목을 스스로 맸냐는 것, 2.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점, 3. 정말로 우울증이 있었냐는 것이다. 1번 의문의 근거는 목을 매달 전깃줄을 묶기 위해 쓰였어야 했을 의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목을 매달 위치조차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살을 할만한 장소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또 지인은 “계단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것처럼 해서 발견됐다. 줄이 늘어나야 사람이 서있을거다. 근데 전깃줄이 늘어나냐”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고 김광석 자택은 현재 내부 공사가 이루어져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2번 의문은 고 김광석씨는 메모광으로 유명하였는데, 아무런 유서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 김광석 첫째 자형은 “(김광석은) 메모가 아주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습관이 있다. 틀림없이 유서가 있을 것이다”라고 털어놨다. 3번째 이유가 된 고 김광석씨의 부인 서해순씨가 주장한 우울증 역시 지인 말에 따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음악 동호회 지인은 “분명 말씀 드릴 수 있다. 김광석 씨가 우울증이 있었으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다”며 “적어도 1년동안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라이브 1,000회 공연할 때 매일 봤었고 그동안 병원 가는걸 본적이 없다”라고 설명했다.[14]
부인 서해순은 살인이 아닌 자살이라고 주장을 했지만 가족 및 지인들은 의혹을 제기했다. 세간에 알려진 김광석의 자살설에 대해 가족들은 “자살할 아이가 아니다” 라고 일축했다. 김광석의 누나들은 “광석이는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식만큼 불효는 없다’라고 항상 말했다.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가 없다는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 역시 “활발하고 마음이 약한 아이다. 자살할 아이가 아니다. 착하고 남한테 해코지할 사람도 아니다” 라며 아들의 자살을 믿지 못했다.[13] 또, 김광석과 음악 동호회 활동을 했던 한 지인은 “돌아가시기 한 6개월 전쯤부터는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다”며 “자살했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 개인적으로 타살이라고 생각하는데 의문점들이 지금이라도 밝힐 수 있다면 밝혀져 김광석이 어떻게 돌아가시게 된 것인지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광석이 죽었을 때 부인 서해순은 3가지 진술을 했다. 근데 다 다르다. 1.티비를 보다가 쿵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목에 줄을 매고 죽어 있었다. 2.티비를 보다가 김광석이 너무 추울까봐 이불을 가져다 주러 갔는데 죽어 있었다. 3.잠을 자다가 쿵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목에 줄을 매고 죽어 있었다. 고 말했다.
1996년 1월 6일 새벽 4시 30분 마포구 원음빌딩 자택 403호에서 전깃줄과 밧줄로 목 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11] 시신을 화장한 후 사리 9과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12] 유족으로는 부인(4년 연하녀 서해순, 1990년 결혼)과 딸(김서연), 어머니(이달지), 큰누나(김광나), 둘째형(김광복), 작은누나(김광득)이며, 큰형(김광동)은 김광석이 군 입대 도중 세상을 떠났으며 아버지(김수영)는 2004년 별세했다. 딸 김서연은 1991년에 태어났고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2007년 사망한 사실이 2017년 9월 뒤늦게 밝혀졌다.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의 2016년 1월 23일, 1월 30일 방송분에서 김광석 20주기를 맞아 다시 김광석 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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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광석(金光石[3], 1964년 1월 22일[4] ~ 1996년 1월 6일)은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였다. 또한 지금은 ‘가객’이나 ‘노래하는 철학자’로도 불린다. 2014년 제5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장이 추서되었다. 그리고 그는 대한민국의 영원한 가객으로 남았다. 그의 명언중 “땡큐.”, “행복하십시오.”와 “안녕하실 테죠?”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경상북도 대구 중구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하여 1982년에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가요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에 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하였으며, 노찾사 1집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밴드 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일반 대중에까지 알렸으며, 동물원 활동을 그만둔 후에도 통기타 가수로 큰 인기를 누렸다. 1996년 1월 6일 사망하였으나 사인 관련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2007년, 그가 부른 노래 중 하나인 〈서른 즈음에〉가 음악 평론가들에게서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되었다.[5] 2008년 1월 6일에는 12주기 추모 콘서트와 함께 대학로의 학전 블루 소극장에서 노래비 제막식이 열렸다.[6]
김광석 학전소극장에서 공연하는 모습
또한 2010년 11월 그가 태어난 대구 중구 대봉동 신천 둑방길에는 그를 기리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조성되어 350미터의 길에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한 다양한 벽화와 작품들이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7][8]가 되었다. 2015년 11월 2일, 1975년부터 1990년까지 김광석이 살던 창신동 130-54의 양옥이 매각되었다.[9]
생애 [ 편집 ]
1964년 1월 22일, 대구시 대봉동 방천시장 번개전업사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창신동[10]으로 이주하여 서울창신초등학교, 경희중학교, 대광고등학교를 나왔다. 중학교 시절 현악부 활동을 하며 선배들로부터 바이올린을 다루고 악보를 보는 법을 배웠으며, 대광고등학교 시절 합창부로 활동을 하면서 음악적 감성을 키웠다.
1982년에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 12월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85년 1월 입대하였고, 6개월 단기사병(방위병)으로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였다. 큰형(김광동)이 1980년 10월에 군복무 중 사망했기 때문이고, 관련해서 김광석은 인생이야기 음반에서 이등병의 편지 부르기 전에 이야기한다. 제대 후 복학해 다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합류하여 1, 2회 정기공연에 참여한다. 1987년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동물원을 결성해 동물원 1집과 2집을 녹음하였다.
1989년 10월 솔로로 데뷔하여 첫 음반을 내놓았으며, 이후 1991년에 2집, 1992년에 3집을 발표하였고, 1994년에 마지막 정규 음반인 4집을 발표하였다. 정규 음반 외에 리메이크 앨범인 다시부르기 1집과 2집을 1993년과 1995년에 각각 발표하였다. 1991년부터 꾸준히 학전 등의 소극장을 중심으로 공연하였으며, 1995년 6월 29일(삼풍백화점 무너지던 날) KMTV 슈퍼콘서트를 찍었다.
슈퍼콘서트 포스터
그리고 1995년 8월 11일에는 소극장에서 1000회 공연의 기록을 세웠다.
1996년 1월 5일 박상원이 진행하던 HBS ‘겨울나기’에 출연을 하였는데 여기에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을 부른 것이 마지막 공연과 모습이 되었다.
1996년 1월 6일 새벽 4시 30분 마포구 원음빌딩 자택 403호에서 전깃줄과 밧줄로 목 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11] 시신을 화장한 후 사리 9과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12] 유족으로는 부인(4년 연하녀 서해순, 1990년 결혼)과 딸(김서연), 어머니(이달지), 큰누나(김광나), 둘째형(김광복), 작은누나(김광득)이며, 큰형(김광동)은 김광석이 군 입대 도중 세상을 떠났으며 아버지(김수영)는 2004년 별세했다. 딸 김서연은 1991년에 태어났고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2007년 사망한 사실이 2017년 9월 뒤늦게 밝혀졌다.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의 2016년 1월 23일, 1월 30일 방송분에서 김광석 20주기를 맞아 다시 김광석 편을 하였다.
사망 [ 편집 ]
부인 서해순은 살인이 아닌 자살이라고 주장을 했지만 가족 및 지인들은 의혹을 제기했다. 세간에 알려진 김광석의 자살설에 대해 가족들은 “자살할 아이가 아니다” 라고 일축했다. 김광석의 누나들은 “광석이는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식만큼 불효는 없다’라고 항상 말했다.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가 없다는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 역시 “활발하고 마음이 약한 아이다. 자살할 아이가 아니다. 착하고 남한테 해코지할 사람도 아니다” 라며 아들의 자살을 믿지 못했다.[13] 또, 김광석과 음악 동호회 활동을 했던 한 지인은 “돌아가시기 한 6개월 전쯤부터는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다”며 “자살했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 개인적으로 타살이라고 생각하는데 의문점들이 지금이라도 밝힐 수 있다면 밝혀져 김광석이 어떻게 돌아가시게 된 것인지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광석이 죽었을 때 부인 서해순은 3가지 진술을 했다. 근데 다 다르다. 1.티비를 보다가 쿵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목에 줄을 매고 죽어 있었다. 2.티비를 보다가 김광석이 너무 추울까봐 이불을 가져다 주러 갔는데 죽어 있었다. 3.잠을 자다가 쿵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목에 줄을 매고 죽어 있었다. 고 말했다.
총 3가지 주요 의문점이 있었는데 1. 김광석이 목을 스스로 맸냐는 것, 2.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점, 3. 정말로 우울증이 있었냐는 것이다. 1번 의문의 근거는 목을 매달 전깃줄을 묶기 위해 쓰였어야 했을 의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목을 매달 위치조차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살을 할만한 장소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또 지인은 “계단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것처럼 해서 발견됐다. 줄이 늘어나야 사람이 서있을거다. 근데 전깃줄이 늘어나냐”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고 김광석 자택은 현재 내부 공사가 이루어져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2번 의문은 고 김광석씨는 메모광으로 유명하였는데, 아무런 유서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 김광석 첫째 자형은 “(김광석은) 메모가 아주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습관이 있다. 틀림없이 유서가 있을 것이다”라고 털어놨다. 3번째 이유가 된 고 김광석씨의 부인 서해순씨가 주장한 우울증 역시 지인 말에 따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음악 동호회 지인은 “분명 말씀 드릴 수 있다. 김광석 씨가 우울증이 있었으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다”며 “적어도 1년동안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라이브 1,000회 공연할 때 매일 봤었고 그동안 병원 가는걸 본적이 없다”라고 설명했다.[14]
또한, 부인 서해순의 말의 신뢰도는 떨어지는데, 첫번째, 사후 얼마 안되어 딸과 미국으로 간 점. 두번째, 김광석씨 가족과 재산 다툼을 한 점. 세번째, 김광석씨 아버지와 합의한 내용을 어긴 점이다.[15]
2017년 의문스러운 죽음을 다룬 영화가 제작되었고, 더불어민주당의 의원들이 김광석의 타살 의혹을 제기하고, 딸이 2007년에 사망한 사실이 은폐되어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김광석의 사인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또한 김광석의 딸인 김서연이 어머니에게 피살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다만 김광석 본인의 의문사는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 이에 김광석의 유족과 일부 정치인은 김광석의 처 서해순을 딸에 대한 살인과 소송사기로 고발하여, 수사가 진행 중이다.또한 서해순은 김광석이 여자관계가 있다고 하였지만 반대로 서해순이 남자관계가 있었다 그 남자는 김광석의 친구라고 한다 죽기 전 날 서해순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사망하였다.
[16]앨범 [ 편집 ]
정규앨범 [ 편집 ]
리메이크 앨범 [ 편집 ]
이등병의 편지 사랑이라는 이유로 사랑했지만 그날들 너에게 슬픈노래 거리에서 말하지 못한 내사랑 그루터기 기다려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그대의 웃음소리 광야에서
바람과 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잊혀지는 것 불행아 내 사람이여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변해가네 새장 속의 친구 나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라이브 앨범 [ 편집 ]
인생이야기
서른 즈음에 이야기 하나 이야기 둘 거리에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랑이라는 이유로 이야기 셋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이등병의 편지 기다려 줘 사랑했지만 이야기 넷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나의 노래
노래이야기
먼지가 되어 이야기 하나 나른한 오후 꽃 그날들 혼자 남은 밤 그대 웃음 소리 이야기 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이야기 셋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이야기 넷 자유롭게 일어나
재발매 앨범 [ 편집 ]
1+2
다시부르기 1, 2
노래이야기 + 인생이야기
셋, 넷
김광석 Best
1집 the Confession
2집 비밀
추모 앨범 [ 편집 ]
가객 – 부치지 않은 편지
부치지 않은 편지 #1/김광석 부치지 않은 편지 #2/김광석 내 사람이여/권진원 별이 되어 떠난 벗을 그리며/권진원+송숙환 겨울새/안치환 어머니/노래마을 바람꽃/류금신 이름없는 들풀로 피어/김영남 서른 즈음에/박학기 노래(나의 노래)/노래마을 이등병의 편지/김현성 그루터기/이정열 광야에서/윤도현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노래마을 부치지 않은 편지 #3/이정열+노래마을 오랜 날들이 지난 뒤에도/백창우
김광석 Anthology – 다시 꽃씨되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이소라 외 17명 서른 즈음에 /박학기, 권진원 거리에서 /나원주 나의 노래 /한동준, 여행스케치 그대가 기억하는 나의 옛 모습 /조트리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강산에 변해가네 /동물원 일어나 /엄태환, 이정열, 서우영 이등병의 편지 /윤도현 그날들 /안치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김건모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 /장필순, 윤종신 혼자 남은 밤 /더 클래식 거리에서 Instrumental 혼자 남은 밤 Instrumental 이등병의 편지 Instrumental
사후 발매된 앨범 [ 편집 ]
김광석 Collection : My Way 1964-1996 Story One – 편지 : 서른살, 사랑에 대한 독백 Story Two – 바람 : 꿈의 노래, 희망의 이야기 Story Three – 달 : 서람 속에 숨겨진 젊은 날의 노래
풍경소리 :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
김광석 5th CLASSIC
김광석 나의노래 (2012년 7월 17일, CJE&M, 박스셋, 북클릿(가사, 악보, 화보집)) 김광석 1 김광석 2nd 김광석 3번째 노래 모음 김광석 다시 부르기 1 김광석 네 번째
김광석 ‘나의 노래’ Box Set 김광석 다시 부르기 2 김광석 노래 이야기 인생 이야기 남겨진 노래 당신, 김광석 (DVD)
자장가 여행 타는 목마름으로 그날들 Into The Breeze (Tribute By Johan) 사랑이라는 이유로 당신, 김광석 Live@Washington University : Wydown Hall
Unforgettable
주제가 [ 편집 ]
1993년 화인프로덕션 비디오 슈퍼 마리오3 주제가
방송 [ 편집 ]
진행 [ 편집 ]
1991년 ~ 1995년 불교방송 《밤의 창가에서》 DJ
수상 내역 [ 편집 ]
2014년《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대통령 표창
각주 [ 편집 ]
참고 자료 [ 편집 ]
김광석의 이야기 – 김광석 Collection : My Way 1966-1996 에 첨부된 소책자
김광석 사건, 팩트와 주장을 분리해보니 – 뉴스톱
담당 의사는 서연양의 사망 원인을 특정하지 못했지만 서연양이 같은 날 오전 6시 이전에 숨진 것으로 판단했다. 경찰은 40분 뒤 서씨로부터 서연양 사망신고를 받고 변사사건에 개입했다. 서연양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약 한 달만인 2008년 1월 22일 서연양 사인을 ‘급성화농성 폐렴’이라고 밝혔다. ‘외상은 없었고 감기약에 통상 사용되는 성분 외에는 별다른 약독물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소견도 냈다. 서씨는 서연양이 숨지기 6일전부터 감기 증상으로 집 인근 의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고 진술했고 경찰은 해당 병원에서 진료 기록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팩트와 주장을 분리해서 정리했다. 영화 <김광석>으로 김광석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이후 부인 서해순씨가 jtbc에 이를 해명하기 위해 출연하면서 오히려 논란은 증폭되고 있다. 최근 언론보도는 본질적인 부분보다는 서씨의 사생활을 캐는데 집중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서씨가 재혼 사실과 출산경력을 감추고 김광석과 결혼했다고 밝혔고 결혼 후에는 김광석 친구와 불륜이었으며 현재 그와 동거중이라는 기사도 나왔다. 서해순이 동료라고 했던 남성이 미국 법원 서류엔 남편이라고 적혀있다는 보도도 있다.
위의 주장은 모두 영화<김광석>에서 타살의 강력한 증거로 제기됐다. 그러나 자살로 보기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타살의 개연성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유서를 남기지 않은 자살은 많으며 사망후 신고가 지연되는 일도 잦다. 두 종류의 담배가 살인을 증명해주지 않으며 목에 줄이 감긴 흔적인 ‘삭흔’도 경우에 따라 다르게 나올 수도 있다. 영화에 의하면 김광석이 부인의 재혼사실 인지, 불륜으로 심리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 부분이 오히려 자살의 개연성을 더욱 강화시켜줄 수도 있다.
29 thg 9, 2017 — 1996년 1월 6일 새벽 만 32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자택에서 전깃줄로 목 매 죽은 채 발견되었다. 경찰에 의하면 김광석은 새벽에 술을 마시던 중 평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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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사건, 팩트와 주장을 분리해보니
영화 은 정말 타살 증거를 제시했나
‘노래하는 시인’, ‘가객’ 등으로 불렸던 가수 故김광석을 둘러싼 사건과 소문들이 최근 영화 <김광석> 개봉과 함께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 개봉 후, 최근 행적이 묘연하다는 딸 김서연 양이 이미 사망했음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소셜미디어와 포털사이트는 관련 게시물과 뉴스가 숨가쁘게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사실과 주장이 섞여 있어 오해가 발생하고 있다. 명백히 확인된 사실과 일방적 주장을 분리해 뉴스톱에서 정리했다.
MBN 방송화면 캡처
故김광석은 <사랑했지만>, <이등병의 편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서른 즈음에>, <일어나> 등 한국인들의 인생과 감성을 ‘마음을 읽어주는 것’처럼 노래한 ‘전설적인’ 가수다. 정규 음반 4장과 리메이크 앨범 2장 등 모두 6장의 음반을 발표했으며, 소극장 중심의 공연을 꾸준히 하며 1995년 8월 소극장 공연 1000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1996년 1월 6일 새벽 만 32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자택에서 전깃줄로 목 매 죽은 채 발견되었다. 경찰에 의하면 김광석은 새벽에 술을 마시던 중 평소 우울증으로 자살한 것으로 발표됐다. 이후 김광석 가족과 지인들은 의혹을 제기했고, 이를 바탕으로 고발뉴스의 이상호 기자가 영화 <김광석>을 제작해 발표했다. 영화는 김광석씨가 피살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김광석 사망> <딸 김서연 사망> <저작권 소송>으로 나눠서 제기된 의혹과 팩트를 정리했다.
1. 김광석 사망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는 영화 <김광석>을 통해 부인 서해순 씨가 남편 김광석을 고의로 숨지게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기자는 서 씨가 김광석의 죽음 당시 ‘여자 문제’와 ‘우울증’을 자살 이유로 들며 거짓말을 한 점, 당시 김광석의 목에 남은 밧줄 자국이 교살 자국과 흡사하다는 점, 현장에 전과 10범 이상의 강력 범죄 경력의 서씨 오빠와 함께 있었다는 점, 그리고 서 씨 진술이 거짓말 탐지 결과 거짓으로 나왔다는 점 등을 들어 김광석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팩트① 서해순의 사건 당일에 대한 진술은 일관되지 않다.
영화의 초반에 등장하는 인터뷰에서 서 씨는 “그냥 실수다. 술 먹고 장난하다가 이렇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후 발언은 다르게 이어졌고, 지난 25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는 ““장난같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가 와전된 거다”라고 말했다. 당시 경찰 조사에서도 처음 진술과 두 번째 진술이 다르고 주변 지인들에게 한 진술도 다르다고 알려졌다.
팩트② 영화 <김광석>은 사망원인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상호 기자가 영화를 통해 제기한 의문은 모두 주변인의 증언에서 비롯된 심증 뿐이다. 진술과 의혹은 제시됐지만 그것이 타살이라는 주장과 연결되는 증거는 찾을 수가 없다.
팩트③ 부검소견서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상호 기자는 “부검소견서 내용과 영화에서 제기하는 의혹과 증거들이 100% 일치한다. 그래서 더욱 부검소견서 열람이 필요한 상황인데, 현재 부인이 열람을 막아놓은 상태”라고 주장했다. 서해순 씨는 논란이 확산되자 김광석과 딸 서연 양의 부검소견서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팩트④ 타살로 밝혀져도 처벌할 수 없다.
김광석 사망이 살인 혹은 살인교사에 의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도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있어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없다. 2015년 7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살인죄에 한해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2000년 8월 이후 발생한 모든 미제 살인사건부터 해당된다. 다만 정말 서해순이 김광석을 살해했다면 민법 제1004조에 따라 상속인 자격을 상실해 김광석 재산을 상속받지 못할 수는 있다.
주장① 여자문제 때문에 자살했다
서씨는 김광석이 여자문제 때문에 고민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기자는 오히려 서씨가 김광석 씨의 친구와 불륜관계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 쪽 다 명백한 근거는 없다. 차이는 서 씨의 주장은 본인의 일방적인 주장이고, 이 기자의 주장은 김씨와 서씨 주변의 발언을 근거로 하고 있다. 다만 최근 언론보도로 서씨가 하와이에서 김광석의 친구 이모씨와 동업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주장② 당시 김광석은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부검 결과 우울증 약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역시 서씨의 주장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 기자가 김씨의 일기장을 들고 찾아간 심리부검 전문가는 “만약 김광석씨가 자살했다면 자살을 촉발시킬만한 방아쇠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뒤, 일기장을 다 검토하고 나서는 “한참 전부터 굉장히 불안정했네요”라며 “그냥 자살하신 것 같다. 전형적인 자살 심리 패턴이 일기장에 나타난다”라고 설명했다.
주장③ 유서 없음, 사망후 50분 지나 신고, 사망 현장 두종류의 담배, 전선이 목에 세번 감기에 짧은 점은 타살의 증거다.
위의 주장은 모두 영화<김광석>에서 타살의 강력한 증거로 제기됐다. 그러나 자살로 보기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타살의 개연성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유서를 남기지 않은 자살은 많으며 사망후 신고가 지연되는 일도 잦다. 두 종류의 담배가 살인을 증명해주지 않으며 목에 줄이 감긴 흔적인 ‘삭흔’도 경우에 따라 다르게 나올 수도 있다. 영화에 의하면 김광석이 부인의 재혼사실 인지, 불륜으로 심리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 부분이 오히려 자살의 개연성을 더욱 강화시켜줄 수도 있다.
2. 딸 김서연양 사망
지난 20일 경기 용인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서연양은 2007년 12월23일 오전 5시14분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쓰러졌고 서씨가 119에 신고해 수원시 소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서연양은 어릴 때부터 발달장애를 앓고 있었고, 사망 당시 나이는 만 16세였다.
집에서 쓰러진 서연양은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치료 과정에서 숨졌다고 알려졌고, 경찰은 서연양의 진료기록과 국과수 부검결과 등을 토대로 범죄 혐의점이 없다고 보고 사건을 종결했다.” 지난 21일 이상호 기자와 유족을 대리하는 김성훈 변호사 등이 서연양 사망 재조사를 촉구하는 고소장을 제출하자 검경에서 재수사에 착수했다. ‘유기치사’가 쟁점이다.
팩트① 김서연 사인은 급성폐렴이다.
담당 의사는 서연양의 사망 원인을 특정하지 못했지만 서연양이 같은 날 오전 6시 이전에 숨진 것으로 판단했다. 경찰은 40분 뒤 서씨로부터 서연양 사망신고를 받고 변사사건에 개입했다. 서연양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약 한 달만인 2008년 1월 22일 서연양 사인을 ‘급성화농성 폐렴’이라고 밝혔다. ‘외상은 없었고 감기약에 통상 사용되는 성분 외에는 별다른 약독물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소견도 냈다. 서씨는 서연양이 숨지기 6일전부터 감기 증상으로 집 인근 의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고 진술했고 경찰은 해당 병원에서 진료 기록을 확인했다.
팩트② 서씨는 딸의 죽음을 10년간 알리지 않았다.
서씨는 “그 당시 본인의 소송으로 너무 힘들었고 서연양은 발달장애 1급으로 돌보기가 쉽지 않았다. 사망 당시에는 경황이 없었고 그 해 4월에는 본인의 부친도 사망하면서 심적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소송 과정에서 시댁과 심한 마찰이 있어서 틀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서연이의 안부를 시댁에서 묻지도 않았고, 변호사에게 고지 안 한 것도 맞다. 신고해야 하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심지어 서연양을 돌봐주었던 외할머니, 즉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서 씨는 친정아버지 사망 후 친정가족과 갈등으로 관계가 소원해져서 그랬다고 했지만 서 씨의 어머니는 갈등이 없었다고 부인했다.
주장① 서연양 사망이 저작권 소송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
서연양이 사망한 것을 법원이 인지한 상태에서 재판을 하게 될 경우 권리가 김광석의 유족 측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서씨가 딸의 사망 사실을 숨긴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 씨도 그렇게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대법원 심리 기간 사이에 사망했기 때문에 소송이 멈췄어야 했는데 법원에 통보를 안 했기에 사법방해를 한 혐의가 있어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서해순의 소송사기 혐의가 인정될지는 미지수다. 대다수 법조인들은 “서연양 생존 여부와 당시 재판 결과는 무관하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재판의 핵심 쟁점은 ‘1996년 6월 합의’와 ‘1996년 7월 유증’ 중 효력이 더 큰 것을 가리는 것이었다. 1,2,3심 모두 서씨 측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에 서연양 생존 여부는 재판 쟁점이 아니었다.
3. 김광석 저작권
김광석의 음악은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만큼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리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광석의 저작권과 관련한 김광석 부모 및 형제 측과 서해순 씨의 분쟁은 13년 동안 이어졌다. 서씨는 저작권 관련 김광석 모친과의 소송에서 대법원 확정편결로 승소했고 이후 합의조정해서 현재 김광석과 관련한 모든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
팩트① 저작권료가 얼마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이미 집행된 저작권료는 지불한 협회와 받은 사람만 알 수 있고, 앞으로 받을 저작권료는 당연히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임진모 대중문화 평론가는 김광석의 노래를 유명하게 만든 영화 <공동경비 구역 JSA>부터 매년 약 10억 정도의 저작권료가 나왔을 거라 예상했다.
김영기 인하대 지식재산전담 교수는 한겨레신문 기사에서 “저작권은 사후 70년간 보호되는데 앞으로도 50년 정도 남았다. 음원 다운로드 수입, 영화 등에서 음악이 사용될 때의 수입, 음반 판매 수입 등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미래 수익을 예측할 수 있다. 서 씨가 한 인터뷰에서 ‘석 달에 한번 음원저작권이 정산되는데 1600만원을 왜 안 줬느냐’고 한 대목이 있다. 그것을 기초로 계산해보면 90억 원 정도”라고 말했다.
팩트② 서씨는 저작권 외에 상표권도 출원해 소유하고 있다.
서씨가 지난 2014년 저작권 외에도 김광석과 관련된 거의 모든 상표권을 출원해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서씨는 2014년 8월 한글 ‘김광석’, 영문 ‘KIM KWANG SEOK’으로 의류, 신발, 교육업, 연예오락업, 스포츠 및 문화활동업, 광고업 등 분야의 상표권을 등록했다. 서씨는 지난 2013부터 김광석을 재해석한 뮤지컬, 연극 등이 만들어졌을 때도 김광석의 퍼블리시티권을 주장해 이름을 쓸 수 없게한 것으로 알려졌다.
팩트로는 ‘김광석 타살’주장 근거 없어
지금까지 확인된 팩트와 주장을 분리해서 정리했다. 영화 <김광석>으로 김광석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이후 부인 서해순씨가 jtbc에 이를 해명하기 위해 출연하면서 오히려 논란은 증폭되고 있다. 최근 언론보도는 본질적인 부분보다는 서씨의 사생활을 캐는데 집중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서씨가 재혼 사실과 출산경력을 감추고 김광석과 결혼했다고 밝혔고 결혼 후에는 김광석 친구와 불륜이었으며 현재 그와 동거중이라는 기사도 나왔다. 서해순이 동료라고 했던 남성이 미국 법원 서류엔 남편이라고 적혀있다는 보도도 있다.
이런 보도가 모두 사실이라 할지라도 범죄 증거는 되지 못한다. 서해순씨가 딸에게 비정한 엄마, 김광석에게 다정하지 않은 아내일 수는 있지만 범죄자라는 것은 별도의 문제다. 이상호 기자는 서씨가 범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결정적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최근글보기 송영훈 프로듀서로 시작해 다양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활동해 왔다. , 등의 공동필자였고, 필자로 참여하고 있다. KBS라디오, CBS라디오, TBS라디오 등의 팩트체크 코너에 출연했으며, 현재는 미디어비평 코너에 정기적으로 출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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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왜 10년 숨겼을까… ‘김광석 딸’ 사망 미스터리 – 조선일보
23 thg 9, 2017 — 가수 김광석씨는 1996년 1월 6일 새벽, 서울 마포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나이 서른둘이었다. 경찰은 “우울증에 시달려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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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아내가 남편에게 한 나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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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사망 이유를 철저히 밝혀야 하는 이유? – 문화사냥
그리고 지나치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재산권 청구 과정이다. 김광석이 죽었다고 해도 가족은 가족인데도 불구하고 막말과 협박, 덩치들을 동원한 수법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김광석 형의 주장에 의하면, 김광석 부친 생전에 서씨는 덩치들을 동원 김광석 부친을 납치하여 김광석 저작권을 딸 이름과 자신의 이름 앞으로 넘기도록 종용했다고 한다.(그러나 당시 재판부에서는 김광석 형의 주장에 대해 강압에 의한 체결로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그래서 김광석 부친은 풀려나자마자 새롭게 유언을 작성하여 자신의 재산권을 김광석의 모친에게 넘겨주도록 공증을 했는데, 이것이 원인이 되어 김광석 부친 사후에 서씨와 김광석 모친과는 격렬한 법적 공방에 둘러싸이게 된다.
김광석의 자살 위치와 자살 방법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 없는 요소가 많다. 서해순씨의 주장에 의하면 사망 당시 김광석은 목에 전깃줄을 세 번 감은 채 계단에 비스듬하게 누워있었다고 하고 자살방법으로 전깃줄에 목을 매단 채 자살을 했다고 하는데, 김광석이 발견된 자택 계단 구조는 목을 매달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고 한다. 부인 진술대로 당시 현장을 재구성하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164센티의 단신인 김광석이 그 위치에서 자살을 하기 위해서는 의자나 받침대가 필요했는데 그러한 보조기구를 현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아쉽게도 현재는 건물의 용도 변경으로 과거의 현장을 그대로 복원할 수 없다고 한다.
둘째, 시신부검상 타살의 특이점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자살로 보기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타살의 개연성을 보여주기는 부족한 증거들이다. 경찰도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부검을 실시한 것이다. 단 부검 결과 자살로 판명이 났다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목에 줄이 감겨 죽은 망자의 사인이 의살안지 교살인지 파악하는 것은 검사와 의사가 함께 참여하는 검안 및 부검 중에서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한다. 더구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저명인사의 죽음을 놓고 타살을 자살로 둔갑시킬 만한 이유가 없으며, 만약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담당 경찰과 검사, 의사가 모두 한통속이 되어야만 가능한 사항이다.
29 thg 9, 2017 — 김광석 사망 이유를 철저히 밝혀야 하는 이유? · 1. 사건 당일 보였던 서해순 씨의 진술 번복과 이상 행동 · 2. 발견 되지 않은 유서 · 3. 타살의 흔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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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가수 김광석(33) 사망 속보(199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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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사망 이유를 철저히 밝혀야 하는 이유?
지금으로부터
21
년 전인
1996
년
1
월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한국 포크계의 전설 김광석의 사망 원인을 놓고 세상이 떠들썩하다
. 2000
년대 이전 사건이라 이미 공소시효가 한참이나 경과한 사건으로서 재수사가 불가능한 사건이지만
, MBC
보도국 출신의 이상호 기자가
20
년간 파헤친 김광석 죽음에 대한 사실 규명 다큐멘터리 영화
< 김광석 >
이 방영되면서 새삼스럽게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
지금까지 대중들은 김광석이 죽은 이유가 상습적인 우울증과 여자 문제로 인한 부인과의 갈등으로 자살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당시 경찰의 발표와 언론의 보도 내용이 자살로 규정하고, 일체 타살의 가능성에 대해 함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호 기자는 영화 <김광석>를 통해 타살의 증거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정황적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살인 혐의는 그의 아내 서해순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 김광석의 죽음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었는가, 아니면 재산을 노린 아내에 의한 비극적인 타살이었는가?
마침, 어디선가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김광석의 무남독녀인 김서연양이 이미 세상을 떠난지 10년이 경과한 사실이 세상에 밝혀져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그런데 서해순씨는 급성폐렴으로 죽은 딸의 사망 사실을 지금까지 주변에 알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마치 지금도 살아있는 것처럼 주변 친지들을 속여온 사실이 드러나 그 동기에 대해 의심을 받고 있다.
현재 생전에 김광석을 사랑해왔던 많은 팬들과 영화 <김광석>을 본 네티즌들은 이 사실에 격분하여 인터넷과 SNS상에 분노의 댓글을 달고 있다. 이에 대해 서해순씨는 엘비스 프레슬리나 마이클 잭슨 등 인기인의 죽음에는 미스테리한 의혹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왔다면서 그러나 자신은 전적으로 무고하며 마녀사냥식 언론 플레이의 희생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 일각에선 정황적 증거만으로 범인으로 몰고 가는 것은 사법부의 무죄추정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라면서 이상호 기자의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영화 내용에 문제를 제기했다.
사실, 이 사건은 진실의 실체에 다가서기 어려운 사건이다. 공소시효가 한참이나 지났고, 사인을 밝혀줄 강력한 단서인 시신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해 줄 주변 증인들은 세상을 떠났거나 객관적으로 증명해줄 만큼 뚜렷한 기억을 갖고 있지 못하다.
더구나 지금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이상호 기자는 공무원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사권을 가질 수 없었고, 따라서 영화 <김광석>에서 다룬 정황 증거들은 주변 인물로부터 얻어 들은 간접 정보에 기반을 둘 수 밖에 없었다. 서해순씨는 김광석 사후 시아버지와 김광석 모친, 형과 수차례 재산권을 둘러싼 법적 분쟁을 진행해 왔다. 따라서 정보의 출처가 일방적으로 서해순씨에게 불리한 김광석 유족 측의 주장에 근거한 자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사실이다.
서해순씨에 의한 김광석 타살에 대한 반론
그러한 의미에서 <뉴시스> 김호경 사회부장이 중앙일보에 기고한 ‘김광석 부녀 살해범, 위태로운 추론’이란 기사는 꼭 한번 읽어봐야할 중요한 기사이다. 그는 영화 <김광석>이 다루고 있는 정황적 증거의 한계점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해 주고 있는데 김광석 사망 사건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참고해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의 핵심적인 주장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화에서 제시한 증거들은 파편적인 가설의 나열일 뿐, 세부적으로 들어갔을 때 범행을 증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물증이 없다.
둘째, 시신부검상 타살의 특이점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자살로 보기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타살의 개연성을 보여주기는 부족한 증거들이다. 경찰도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부검을 실시한 것이다. 단 부검 결과 자살로 판명이 났다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목에 줄이 감겨 죽은 망자의 사인이 의살안지 교살인지 파악하는 것은 검사와 의사가 함께 참여하는 검안 및 부검 중에서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한다. 더구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저명인사의 죽음을 놓고 타살을 자살로 둔갑시킬 만한 이유가 없으며, 만약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담당 경찰과 검사, 의사가 모두 한통속이 되어야만 가능한 사항이다.
셋째, 김광석의 일기장을 본 심리부검 전문가는 그 일기장에서 전형적인 자살 심리 패턴이 나타났다는 전문가 소견을 밝히고 있다.
넷째, 서해순씨의 이혼경력과 영아살해 팩트를 주장할 때, 이상호 기자는 그녀가 그 상황에서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 설명을 생략하고 있다.
다섯째, 김광석 사망 후 시댁과의 막말 사건과 재산권 분쟁은 분명 대중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는 사건이지만, 집안의 분규가 어느 쪽에 귀책 사유가 있는지는 양쪽 얘기를 다 들어봐야 하지만 영화에는 서해순씨의 입장이 전혀 고려되어 있지 않다.
여섯째, 김광석 자살 이유로 지금까지 유력하게 제기되어온 김광석의 여자 친구 문제에 대해 이상호 기자는 서해순의 김광석 동창과의 불륜문제 만큼 동등하게 다뤄주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김호경 부장은 서씨를 살인범으로 지목하는 데 동의할 수 없으며,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과 증거재판주의의 법리로나 정황 증거만으로 서씨를 ‘부녀 살해범’으로 대중 앞에 선포한 것은 잘못된 확증편향이라 결론 내리고 있다.
김호경 사회 부장의 글에 대해 공감하는 의견들도 많았다. 그분들도 김광석의 팬들이다. 김광석의 죽음이 억울해선 안 되듯이 그 유가족 역시 억울한 일을 당해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이분들이 김호경 부장의 주장에 공감하는 바는 국가 공인 기관에서 실시한 부검 결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부검 오류로 사인이 뒤바뀐 사례는 없었다고 한다.
부검을 통해 자살을 타살로 조작하기 위해선 서해순씨의 요청으로 경찰, 검찰, 부검의가 공모를 해야 하는데 이런 일은 전두환도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삭흔의 경우, 스스로 목을 맨 경우는 체중 때문에 줄의 흔적이 목 앞 부분에만 남을 수 있고, 누군가 뒤에서 목을 조르게 되면 목 앞과 뒤에 동시에 줄의 흔적과 몸 어딘가에 반항한 흔적이 남는다고 한다. 따라서 육안으로도 자살인지 타살인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타살을 자살로 오인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김광석 사건에 대해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영화 <김광석>에서 보여주고 있는 여러 가지 의혹들을 풀어주어야 할 경찰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김광석 사건의 경우 초동수사가 너무 부실했다. 그때 제대로 조사를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김광석 사망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고 있는 서해순씨의 과거 행적에는 너무 많은 의심스런 행동 패턴들이 나타나고 있고, 무엇보다 현재와 앞으로도 100억원대 김광석의 저작권과 초상권으로 지속적인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될 것인데, 생각해 보자. 만의 하나 서해순씨가 김광석의 진짜 살인범이라도 된다면 김광석의 팬들이 김광석을 그리워하며 듣는 음원과 보는 뮤지컬과 영화의 모든 저작권 수익이 김광석의 살해범에게 귀속되게 된다. 이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또한 이것은 서해순씨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만일 서해순씨가 경찰 조사에 소극적으로 나온다면 대중들은 서해순씨를 진짜 김광석의 살인자로 생각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당연히 김광석 관련 콘텐츠에 대한 소비를 즉각 중단하게 될 것이다. 물론 서씨는 이미 가진 것만 제대로 관리해도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말이다.
생전에 엄청난 재산을 형성하고, 사후에도 저작권 수익으로 많은 재산을 남길 수 있는 대중스타들은 김광석처럼 언제든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충분히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처지에 있다. 이 사건이 제대도 재수사 되지 않고 유야무야 끝나버리고 만다면, 이 사건의 모방 범죄와 유사 범죄도 충분히 발생될 소지가 있다. 따라서 앞으로 김광석 사건과 같은 대중스타의 사건이 발생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 사건은 반드시 재조사를 해야만 한다고 본다.
이상호 기자는 예전부터 줄기차게 변사자에 대한 공소시효 없는 전폭적인 수사권을 부여하는 ‘김광석법’ 제정을 주장해 오고 있다.
필자는 이상호 기자 주장처럼 모든 변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재수사는 어렵더라도 문화예술인, 특히 대중스타들의 죽음과 관련 된 사안에는 공소시효가 없는 특별수사팀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지금까지 인터넷에 올라 있는 김광석 사망의 의문점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1. 사건 당일 보였던 서해순 씨의 진술 번복과 이상 행동
당시 사건 조사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은 김광석의 아내 서해순씨의 진술이었다. 서해순씨는 김광석의 생전 마지막 목격자였고, 시신의 최초 발견자였으며 신고자였다. 그리고 김광석의 죽음 원인이 자살이라고 발표한 경찰 조사 결과도 아내 서해순씨의 강력한 주장에 입각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사건에 있어 서해순씨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데 사건 전후로 보여주었던 서해순씨의 행동은 매우 불안정했고 정상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식을 벗어난 태도를 보였다. 처음 인터뷰를 했을 때, 그녀는 “그건 실수에요 그냥 장난하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나를 사랑해서 그렇게 됐어요”라고 말을 했다. 김광석이 장난으로 자살을 했다는 것도, 실수로 죽게 되었다는 것도, 아내를 사랑해서 그렇게 됐다는 말도 보통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이런 말들을 주장했었다.
그리고 진술의 일관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터넷 사이트에 따라 진술 순서는 달랐다. 그러나 그 내용은 유사했다.) 이상호 기자에 의하면, 사건 당시 1차 조사에서 서해순씨는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자신은 방에서 비디오를 20분 정도 보고 있다가 거실로 나왔다고 진술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보고 있던 비디오 제목과 그녀가 설명한 그 비디오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2차 진술 과정에서는 비디오를 본 내용이 누락되고 방에서 자고 있다가 추워서 이불을 쓰고 거실로 나갔다가 김씨를 발견한 것으로 바뀌게 된다.
이상호 기자는 서해순씨의 어머니와도 인터뷰를 했었는데, 사건날 새벽에 딸이 전화를 걸어와 ‘쿵’하고 뭐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거실로 나갔다가 김광석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서해순씨가 경찰 조사에서 발표한 내용에는 ‘쿵’하고 떨어진 소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처럼, 불안정하고 비일관적이며, 무질서한 진술을 토대로 경찰의 초동수사가 이뤄졌다. 의도적으로 수사의 혼선을 주기 위해 사실을 번복한 것인지, 아니면 무엇인가를 은폐하기 위한 것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당시 불안정한 심리상태에서 불완전한 기억을 토대로 진술을 해서 그랬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한 입 가지고 세 가지의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의 말이라면 그 진술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다.
2. 발견 되지 않은 유서
대부분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유서나 주변 인물들에게 자살 징후를 남기기 마련이다. 특히 평소 메모광으로 신변 내용을 철저히 기록화 하는 김광석의 성향(김광석은 언제 어디서나 작곡과 작사를 하기 위해 항상 메모하는 습관을 생활화 했다.)과,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딸에 대한 유산 상속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 김광석 입장에서는 반드시 유서를 남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김광석의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유서로 볼 만한 것들도 찾을 수 없었다.
특히 사건이 있기 전날 오후 그는 다음 음반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고, 저녁에는 절친인 가수 박학기를 만나 다음 년도에 펼칠 조인트 공연에 대해 상의를 하고, 저녁 10시 즈음에는 팬클럽 회원인 변수진씨와 전화통화를 했고, 그 후에는 가수 겸 작곡가인 백창우와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나 술과 커피를 마신 후 새벽 1시경 집으로 들어갔고 새벽 4시경 사망했다고 한다.
자살자들은 자살 전에 보통 과거의 우울한 내용을 주변인들과 나누기 마련인데 김광석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광석 주변 인물들은 사건이 벌어진 날까지도 김광석이 자살할 만한 어떠한 조짐이나 정황도 찾을 수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자살은 그 사람의 자살에 대한 인식 방법에 따라서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자살을 부도덕의 극치로 일종의 자기 살인 과정으로 보는 사회에서는 자살을 개인 선택으로 보고 자유의 극치로 미화 하는 사회보다 자살에 대해 부정적이며 이런 사회에서는 자살률이 더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김광석은 평소 자살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김광석이 자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젊은이들의 요절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김광석의 형은 군에서 대위 복무 중 사망을 했다. 이 사건으로 부모들이 깊은 상처를 받은 것을 본 김광석은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은 불효이고 자신은 오래 살겠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해왔다고 한다. 이런 김광석이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3. 타살의 흔적으로 보이는 삭흔
김광석의 자살 위치와 자살 방법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 없는 요소가 많다. 서해순씨의 주장에 의하면 사망 당시 김광석은 목에 전깃줄을 세 번 감은 채 계단에 비스듬하게 누워있었다고 하고 자살방법으로 전깃줄에 목을 매단 채 자살을 했다고 하는데, 김광석이 발견된 자택 계단 구조는 목을 매달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고 한다. 부인 진술대로 당시 현장을 재구성하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164센티의 단신인 김광석이 그 위치에서 자살을 하기 위해서는 의자나 받침대가 필요했는데 그러한 보조기구를 현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아쉽게도 현재는 건물의 용도 변경으로 과거의 현장을 그대로 복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사건 당시 김광석 부검에 참여한 인사의 진술에 의하면, 김광석의 목에는 부인의 진술처럼 세 바퀴 감은 삭흔(목에 끈을 두르고 난 뒤 남는 끈 자국)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 시신에는 한 줄의 삭흔만 남아 있었는데 목의 앞부분에만 삭흔이 있었고, 뒤쪽으로는 삭흔이 없었다고 한다. 이것은 누군가 뒤에서 줄로 목을 감아 졸랐을 때 나올 수 있는 흔적으로, 일반적으로 목을 매 자살했을 때 발견되는 일반적인 자살자들의 삭흔과는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4. 자살 원인으로 제시된 우울증의 증거 부족
서해순씨는 김광석의 자살 원인으로 우울증과 여자 문제를 끈질기게 주장해 왔다. “김광석은 우울증이 있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검 당시 시신에서 우울증 관련 약물 흔적이 나오지 않았고 평소 우울증 치료를 받은 병원기록을 포함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평소 김광석의 지인들은 그에 대해 선배와 후배들을 살뜰히 챙기는 대인배와 같았다고 한다. 김광석은 라이브 공연 1,000회 기록을 달성한 후 2,000회라는 새로운 기록을 향해 달려가는 매우 활발하고 진취적인 인물이었다고 한다. 1,000회까지 공연을 함께 하며 매일 같이 다니던 지인 역시 그는 평소 건강하여 병원에 다니거나 약을 먹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오히려 부인 서해순씨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지인들이 김광석의 우울증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건 전날 저녁 만난 박학기씨 증언에 의하면 김광석은 “이제야 음악에 대해서 눈이 뜨인 것 같다”며 앞으로 다음 해에도 같이 공연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의를 했다고 한다.
전날 10시경 김광석과 통화한 팬클럽 회원 변수진씨는 ‘이제 우리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그러니까 내일 일찍 사무실로 나오라’는 김광석과의 그날의 통화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귀가 전 카페에서 술과 커피를 마셨던 백창우씨는 당시 1996년 펼칠 계획을 함께 나누며 다음날 있을 스케줄 때문에 절제하며 맥주 한 병만 마시고 귀가하던 김광석을 기억하고 있다.
자살 직전 몇 시간 전까지도 팬미팅을 진행했던 김광석의 모습은 우울증으로 평소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는 서해순씨의 진술과는 일치하지 않는 면이 있다.
그러나 김광석 사건은 당시 인기가수 듀스의 김성재와 서지원이 우울증으로 자살한지 얼마 안 되는 시점에 발생된 사건이었다. 따라서 언론은 김광석의 죽음 이유를 더 깊이 파고들려고 하기보다는 우울증에 의한 연예인들의 연쇄 자살 사건으로 몰고 가려는 경향이 더 강하게 작용했다.
5. 사건 당일 현장에 있었던 전과 13범의 처남
당시 경찰이 김광석 사건을 쉽게 자살로 종결시킨 이유는 사건 현장에 있던 시신을 여자 혼자 이동시킬 수 없었다고 보아 서해순을 용의선상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범행이 일어난 시각에는 강력한 용의자가 있었으니 전과 13범의 서해순의 오빠이자 김광석의 처남이 당시 같은 건물에 있었다. 서교동 대원빌딩 1층 컨테이너 박스에 있었던 것이다. 인천에 살고 있던 서해순의 오빠가 그날따라 그 자리에 있었다는 점은 우연치고는 너무 이상한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자살 현장에는 김광석 말고도 다른 사람이 함께 있었다는 것으로 보이는 담배꽁초들이 발견됐다. 종류가 다른 담배꽁초가 있었다는 것은 결정적인 증거가 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타인의 존재 가능성을 증명하는 증거는 될 수 있다. 그 때 담배꽁초에 남아 있는 타액을 조사했었어야 했는데 아쉬운 일이다.
6. 김광석의 3년 전 이혼 시도와, 사건 전날 이혼 통보 사실
한편 서해순씨는 자살의 원인으로 김광석의 불륜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김광석은 불교방송 DJ를 할 때 서로 좋아하던 여기자가 유학을 떠나게 되자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고, 여기자와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나고자 했으나 부인의 반대로 그것이 어려워지자 이에 비관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일단 이 점에 대해 필자도 의구심을 갖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초지종을 알고자 했으나 필자의 검색 능력 수준이 떨어져서 그런지 김광석의 여자 친구에 대한 정보는 찾지 못했다. 어쨌든 이 사실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이 점이 자살의 직접적 이유로 보기에는 매우 빈약하다고 본다. 여기자가 유학을 떠났다고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다는 점도 그렇고, 부인의 반대로 비관했다는 점도 그렇다. 당시 부인 서해순씨는 김광석의 유학을 반대할 위치도 명분도 갖고 있지 못했다. 오히려 이 점은 김광석 타살설의 유력한 이유가 된다.
이상호 기자에 의하면 이미 김광석은 서해순씨에게 사건이 일어나기 3년 전에 이혼을 제기한 상황이었다. 물론 당시 아버지의 반대로 무산되었지만 김광석은 그 후에도 서해순과 이혼하고자 하는 뜻을 버리지 않았다. 서해순씨는 결혼하기 전 자신의 재혼 사실을 이미 김광석에게 알렸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김광석의 두 누나는 평소 재혼을 매우 싫어했던 김광석이 재혼을 수용했을 리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심각한 사실이 더해지는데, 김광석의 매니저는 김광석의 아내가 재혼을 숨기고 결혼한 것과 김광석의 친구와 불륜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김광석이 매우 큰 충격에 빠졌다고 그때를 회상한다. 그래서 사망 전날 장모에게 전화를 걸어 “이혼을 할 것이며 위자료는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김광석의 불륜설이 김광석의 자살 이유가 되기보다는 서해순씨의 불륜 사실이 드러남으로 인한 파경 위험이 김광석의 타살 이유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인다. 김광석 매니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재산에 대한 욕구가 지나칠 정도로 강한 서해순씨의 성향으로 볼 때 이 사실이 범행 동기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7. 그외 서해순씨의 지나친 재산에 대한 집착
김광석씨는 생전에 서해순씨가 재혼 사실을 숨기고 자신과 결혼한 것과, 김광석씨의 동창생과 불륜관계에 있는 것 때문에 서씨와 이혼을 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혼 위자료로서 홍대앞 빌딩을 포함 앨범 저작권 외의 모든 재산을 넘겨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서해순씨는 저작권까지 위자료로 요구하며, 모든 재산을 넘겼을 때 이혼을 수락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현재 김광석씨의 재산은 40억원대의 건물과 100억원대의 저작권 가치로 추정된다고 한다.
물론 이혼 위기에 처한 당사자가 홧김에 그런 말을 입 밖에 내뱉을 수 있지만, 불륜을 저지른 당사자로서 이혼 귀책사유를 가진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 말은 홧김에 내뱉은 말이 아님이 서해순씨의 이후 행동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김광석은 서해순씨의 의도를 간파하고 생전에 자신의 앨범 저작권 소유자를 아버지 명의로 돌린다. 그러자 서해순씨는 김광석 사후 김광석의 저작권 재산에 대한 법적 분쟁을 시작한다. 그것도 김광석이 죽은지 49제도 지나지 않은 46일이 되는 날부터 저작권을 내놓으라는 협박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나치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재산권 청구 과정이다. 김광석이 죽었다고 해도 가족은 가족인데도 불구하고 막말과 협박, 덩치들을 동원한 수법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김광석 형의 주장에 의하면, 김광석 부친 생전에 서씨는 덩치들을 동원 김광석 부친을 납치하여 김광석 저작권을 딸 이름과 자신의 이름 앞으로 넘기도록 종용했다고 한다.(그러나 당시 재판부에서는 김광석 형의 주장에 대해 강압에 의한 체결로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그래서 김광석 부친은 풀려나자마자 새롭게 유언을 작성하여 자신의 재산권을 김광석의 모친에게 넘겨주도록 공증을 했는데, 이것이 원인이 되어 김광석 부친 사후에 서씨와 김광석 모친과는 격렬한 법적 공방에 둘러싸이게 된다.
그리고 김광석 부친 사망후 저작권 귀속을 놓고 법률 소송 과정 중에 딸이 죽었는데 서씨는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받기 위해 딸이 죽은 사실을 법정에 밝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명백히 소송사기죄에 해당 될 수 있는 일이다.
일단 위의 사실들은 검찰과 재판부를 통해 확인 되지 않은 이상호 기자측과 김광석 형님측에 의해 제기된 의혹들이다. 필자가 보기에도 정황적 증거들은 많이 나열되었지만, 명백한 물증은 부족해 보인다.
만일 위 사실이 진실이 아니라면, 서해순씨는 남편 김광석과 유일한 딸인 김서연양을 잃고도 대중들의 의심을 받는 가장 비극적인 여인 중의 한 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따라서 조사를 통해 명백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진 서해순씨를 범인으로 단정해선 안되며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
간간히 인터넷 기사를 통해 남편인 김광석을 누구보다 사랑했고, 장애에 걸린 딸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여겼던 서해순씨를 만나 보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접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필자는 검찰의 철저한 조사 없이 함부로 서해순씨를 김광석의 살인자로 매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서씨가 진정 김광석의 죽음에 가장 큰 책임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응당한 법적 책임을 져야할 것이며, 고 김광석의 이미지에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도덕적으로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김광석은 한 여자의 남편이나 한 아이의 아빠이기도했지만 한 시대를 아름답게 만들어 준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우리들의 형님이자 오빠이자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있었기에 우리들의 젊음은 아름다웠다.
개인적으로도 김광석은 필자가 가장 좋아했던 가수였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윤동주의 시를 잊지 못하듯이 군대 갔다온 남자들은 그의 ‘이등병의 편지’를 잊지 못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의 ‘사랑했지만’을 잊지 못한다. 필자 역시 김광석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한동안 매우 우울한 시절을 보낸 기억이 있다. 그의 하나 남은 딸 역시 너무 안타깝게 떠난 사실이 매우 슬프다.
이미지 출처: 디스패치, MBC, YTN, 뉴스토마토, IZM, 인스티즈
김광석 자살이유,김광석 사망원인과 타살의혹, 여자문제 – 유라준
김광석 지인: “당시 진짜 화가 나고 속상했던게 김성재 씨가 죽고 얼마 되지 않아 서지원 씨가 죽었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김광석이 죽었다. (분위기가) 이렇게 되니, (김광석 역시) 같이 우울증이 되는 것이다. 그 다음 신문에는 (김광석에게) 우울증이 있었고, 또 별별 얘기가 다 나오더라.”
(당시 김광석 사망하기 전에 김성재(듀스)와 서지원 등이 줄줄이 자살 혹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됨. 그런 분위기속에서 언론에서는 김광석 역시 우울증으로 자살했다고 처음부터 단정적으로 보도함. 이에 따라 서순애 역시 그런 분위기에 편승할 가능성이 없지 않음)
김광석 지인: “분명히 말씀 드릴 수 있다. 김광석 씨가 우울증이 있었으면 내가 몰랐을리가 없다. 나는 김광석을 적어도 1년동안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라이브 1,000회 공연 할때 매일 봤었고, 그동안 병원 가는 걸 본 적이 없다.”
23 thg 1, 2016 — 서순애: “불교 방송국에서 방송을 하던 남편(김광석)은, 당시에 같이 방송을 하던 여기자를 사랑했다. 그런데 여기자가 유학을 떠나자, 그로 인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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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미공개 연습 영상 – 부인 서해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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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자살이유,김광석 사망원인과 타살의혹, 여자문제
(1/2) 총 2개의 글중 첫번째 글
가수 김광석 자살이유, 김광석 사망원인이 무엇일까요?
일각에서는 김광석 타살의혹을 주장하는데, 과연 그 근거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김광석 아내가 언급한 ‘김광석 여자문제’가 무척 의미심장하네요.
(김광석 김형석)
김형석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김형석 전부인 전세영 마약사건과 이혼사유
(스폰서 링크)
# 목차
* 김광석 어린 시절
* 김광석 아내 서순애 결혼
* 김광석 타살의혹 3가지
* 김광석 성격 활발하고 진취적인
* 서순애 발언의 이상한 점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가수 김광석(본명)은 1964년 1월 22일 대구에서 태어나 1996년 1월 6일 사망합니다. 사망 당시 33살의 너무 젊은 나이였죠(김광석 나이)(가수 김광석 고향 대구).
(김광석 키 몸무게) 164cm, 58kg
(김광석 종교) 불교
(김광석 학력 학벌) 경희중학교, 대광고등학교 졸업, 명지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김광석 프로필 및 경력) 1984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김민기 음반 참여로 가요계에 데뷔
이후 대표곡으로 사랑했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곳, 서른 즈음에, 그날들, 이등병의 편지, 먼지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 김광석 어린 시절
김광석은 중학교 시절 현악부 활동을 하면서 선배들로부터 바이올린 연주법과 악보를 보는 법을 배웁니다. 또한 대광고등학교로 진학해서 합창부 활동을 하면서 음악적인 소질을 발전시켜 나갔죠.
그리고 1982년 명지대 경영학과에 입학하는데, 이때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소극장 공연을 즐겨 합니다.
훗날 김광석이 소극장 공연을 자주했던 취향이 이때부터 싹텄던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고 가수 김광석 부인 사진
이후 김광석은 1985년 군대에 입대하는데, 큰형 김광동의 사망으로 6개월 단기사병으로 제대하게 됩니다.
참고로 이때 큰형의 사망이 김광석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고, 또한 ‘김광석 타살의혹’에 대한 가족들의 주요 논거로 작용합니다.
김광석 누나들: “광석이는 큰형의 죽음을 겪고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식만큼 불효는 없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또한 항상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자살할 이유가 없었다).”
* 김광석 아내 서순애 결혼
제대 후인 1987년 김광석은 친구들과 함께 ‘동물원’을 결성하여 동물원 1집과 2집을 내놓으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여기에 ‘거리에서’, ‘변해가네’ 등이 빅히트를 친 것이죠.
1989년 솔로 가수로 데뷔했고, 꾸준히 앨범을 내며, 소극장 공연 1000회 대기록(1995년 8월)을 세웠는데, 1996년 1월 6일 느닷없이 자살(?)을 하고 맙니다.
(참고로 1990년 김광석이 서순애와 결혼함.
김광석 배우자 와이프 서순애)
김광석은 딸 1명을 낳게됨
(김광석 자녀(자식))(김광석 가족 관계)
* 김광석 타살의혹 3가지
그런데 김광석이 자살을 했다는 것은 굉장히 의심스럽습니다.
먼저, 친구들과 유가족들이 꼽는 ‘수상한 점’입니다.(김광석 사망원인)
(김광석 타살의혹)
1. 자살 현장에 의자는 없었다.
김광석은 원음빌딩 4층 집 거실에서 옥상으로 통하는 층계 난간에 전깃줄로 목을 매 숨지게 됩니다.
보통 자살자들은 의자 등을 이용하여 높은 곳에 줄을 매달고 자살을 하기 마련인데, 김광석 주변에는 ‘의자’는 결코 없었습니다.
2. 유서가 없었다.
김광석 첫째 자형: “(김광석은) 메모에 대한 아주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습관이 있었다(항상 작사를 한다고 끈임없이 메모를 했다). 틀림없이 유서가 있을 것이다.”
즉, 항상 메모를 하는 사람이 자살하기 전에 유서를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이죠.
3. 정말로 우울증이 있었는가?
흔히 자살자들은 우울증때문에 자살하기가 쉽습니다.
또한 김광석 아내 서순애 역시 김광석이 우울증으로 자살했다고 주장합니다.
서순애: “(김광석은) 우울증도 있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김광석 사망원인)(김광석 타살의혹)
하지만 김광석에게 우울증이 있었는지는, 서순애가 정확히 밝히지 못합니다(병원 기록, 진단서 등).
(당시 김광석 사망하기 전에 김성재(듀스)와 서지원 등이 줄줄이 자살 혹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됨. 그런 분위기속에서 언론에서는 김광석 역시 우울증으로 자살했다고 처음부터 단정적으로 보도함. 이에 따라 서순애 역시 그런 분위기에 편승할 가능성이 없지 않음)
* 김광석 성격 활발하고 진취적인
김광석 지인: “당시 진짜 화가 나고 속상했던게 김성재 씨가 죽고 얼마 되지 않아 서지원 씨가 죽었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김광석이 죽었다. (분위기가) 이렇게 되니, (김광석 역시) 같이 우울증이 되는 것이다. 그 다음 신문에는 (김광석에게) 우울증이 있었고, 또 별별 얘기가 다 나오더라.”
당시의 성급했던 언론사들의 보도 태도 역시 문제가 컸던 것이죠.
아무튼 김광석 지인들은 김광석이 우울증이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강하게 반박합니다.
김광석 지인: “분명히 말씀 드릴 수 있다. 김광석 씨가 우울증이 있었으면 내가 몰랐을리가 없다. 나는 김광석을 적어도 1년동안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라이브 1,000회 공연 할때 매일 봤었고, 그동안 병원 가는 걸 본 적이 없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김광석은 1995년 8월 소극장 1000회 공연이라는 대기록을 세웁니다. 그리고 김광석은 2000회라는 새로운 기록을 향하여 달려나가고 있었죠.
김광석: “처음 1000천회 (소극장 공연을) 할 수 있을까 했는데, 결국 해냈다. 앞으로 전인미답의 2천회 기록에 도전하겠다.”
이런 사람이 우울증으로 자살할 수 있을까요?
* 서순애 발언의 이상한 점
또한, 김광석이 자살하는 날의 행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광석은 죽기 전날(1월 5일) 친구 박학기와 술을 마십니다.
이때 김광석은 박학기와 술을 더 마시려고 했지만, 박학기가 다른 약속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뜨게 됩니다.
이후 김광석은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0시 30분), 부인 서순애와 맥주 4병을 나눠 마셨고(새벽 3시), 이후 김광석은 전깃줄에 목이 매인채로 발견되게 됩니다(새벽 4시 30분).
서순애: “새벽 3시까지 거실에서 남편과 술을 마시다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그뒤 4시 30분께 깨어나 거실에 나가 보니 층계에 남편이 숨져 있었다.”
이처럼 서순애의 짧은 발언이 많은 것을 시사해주네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서순애: “(김광석은) 우울증도 있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김광석은 음악활동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또한 그 전날에도 박학기와 같이 술자리를 가질 정도였습니다.
그런 김광석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또한 서순애는 결정적인 인터뷰를 합니다.
서순애: “불교 방송국에서 방송을 하던 남편(김광석)은, 당시에 같이 방송을 하던 여기자를 사랑했다. 그런데 여기자가 유학을 떠나자, 그로 인해서 우울증에 걸렸고 자살했다.”
(김광석 아내 불화)
즉, 김광석에게 여자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김광석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2/2)
김광석 자살 아내 서해순와 재산 싸움 이유
(스폰서 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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