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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백제 금동대향로 (百濟 金銅大香爐) | 문화재 검색
百済羅城と陵山里墓の間の寺跡西側にある場所から、450余点の遺物と共に発見された百済の香炉である。高さ64㎝、重さ11.8㎏にもなる大型香炉で、大きく胴体と蓋に区分され、上に付いた鳳凰と支え台を含むと、4つの部分からなっている。この香炉は中国漢で流行した博山香炉の影響を受けているようであるが、中国と違って山が独立的・立体的であり、写実的に表現されている。創意性と造形性に優れており、仏教と道教が混合された宗教と思想的複合性まで見せており、百済時代の工芸と美術文化、宗教と思想、製造技術まで把握できる貴重な作品である。
뚜껑에는 23개의 산들이 4~5겹으로 첩첩산중을 이루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피리와 소비파, 현금, 북들을 연주하는 5인의 악사와 각종 무인상, 기마수렵상 등 16인의 인물상과 봉황, 용을 비롯한 상상의 날짐승, 호랑이, 사슴 등 39마리의 현실 세계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다. 이 밖에 6개의 나무와 12개의 바위, 산 중턱에 있는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폭포, 호수 등이 변화무쌍하게 표현되어 있다.
백제 나성과 능산리 무덤들 사이 절터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450여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높이 61.8㎝, 무게 11.8㎏이나 되는 대형 향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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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Website: 국보 백제 금동대향로 (百濟 金銅大香爐) | 문화재 검색
- Description Website: 백제 나성과 능산리 무덤들 사이 절터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450여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높이 61.8㎝, 무게 11.8㎏이나 되는 대형 향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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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백제 금동대향로 (百濟 金銅大香爐) : 국가문화유산포털 – 문화재청
백제 나성과 능산리 무덤들 사이 절터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450여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높이 61.8㎝, 무게 11.8㎏이나 되는 대형 향로로, 크게 몸체와 뚜껑으로 구분되며 위에 부착한 봉황과 받침대를 포함하면 4부분으로 구성된다.
뚜껑에는 23개의 산들이 4~5겹으로 첩첩산중을 이루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피리와 소비파, 현금, 북들을 연주하는 5인의 악사와 각종 무인상, 기마수렵상 등 16인의 인물상과 봉황, 용을 비롯한 상상의 날짐승, 호랑이, 사슴 등 39마리의 현실 세계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다. 이 밖에 6개의 나무와 12개의 바위, 산 중턱에 있는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폭포, 호수 등이 변화무쌍하게 표현되어 있다.
뚜껑 꼭대기에는 별도로 부착된 봉황이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날개를 편 채 힘있게 서 있는데, 길게 약간 치켜 올라간 꼬리의 부드러움은 백제적 특징이라 하겠다. 봉황 앞 가슴과 악사상 앞뒤에는 5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몸체에서 향 연기를 자연스럽게 피어오를 수 있게 하였다.
활짝 피어난 연꽃을 연상시키는 아래의 몸체는 하나하나의 연잎의 표면마다 불사조와 물고기, 사슴, 학 등 26마리의 동물이 배치되어 있다. 받침대는 몸체의 연꽃 밑부분을 입으로 문 채 하늘로 치솟 듯 고개를 쳐들어 떠받고 있는 한 마리의 용으로 되어 있다.
이 향로는 중국 한나라에서 유행한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은 듯 하지만, 중국과 달리 산들이 입체적이며 세부의 동물과 인물상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백제시대의 창의성과 뛰어난 조형성을 바탕으로 당시 도교와 불교가 혼합된 종교와 사상, 공예기술 및 미술 문화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게 해주는 백제 금속공예 최고의 걸작품이다.
This is a large incense burner 64cm in height and 11.8 kilograms in weight. This artifact was excavated in 1993 at the temple site near Naseong Fortress of Baekje and the ancient tombs in Neungsan-ri with the help of the Buyeo National Museum. It was excavated along with 450 other artifacts. There are four parts to this incense burner. The body and the lid are the main parts. The Chinese phoenix-shaped knob and the support plate are two other parts. There is scenery of 23 mountains shaping four to five layers of deep-mountain ranges on the lid. Five musicians with various instruments and sixteen other various characters are also illustrated. Thirty-nine animals including the Chinese phoenix, dragon, tiger, and deer are depicted. Six different trees, twelve boulders, trails, creeks, waterfalls, lakes, and other land features compose changing scenery. On top of the lid, a separate Chinese phoenix holding yeouiju between its beak and neck is mounted. It is standing up with its wings folded and tail raised. Such smoothness is a characteristic of Baekje Dynasty’s artwork. Five holes are drilled on the lid, including one on the chest of the Chinese phoenix, to naturally ventilate the incense flow. The main body of the burner closely resembles a blossoming lotus flower. On the lateral surface, twenty-six different animals are depicted. The supporting plate is a dragon holding a blossoming lotus flower, which is the main body, with its mouth pointing upward. It appears that this incense burner was influenced by a Chinese version called Baksan Incense Burner, but unlike the Chinese ones, the design of the scenery is independent, three-dimensional, and realistic. The creativity and modeling is superb, and the illustration of Buddhism, Taoism, and other religious theology and beliefs demonstrates its complexity.
在百济罗城和陵山里墓葬之间寺址西侧的一个坑里与450余件遗物一同发现的百济香炉,是高为64cm,重达11.8kg的大香炉,大致分为炉身和炉盖,如果包括附着在上面的凤凰装饰和底座的话,共由四部分组成。这个香炉似乎受到了中国汉代曾流行过的博山炉的影响,但与中国的不同,炉盖上的山峰比较独立,具有立体性,而且显得生动形象。富有创意性和造型美,可以看出佛教与道教混合的宗教思想上的复合性,它是有助于了解百济时代的工艺与美术文化、宗教与思想,以及制造艺术的宝贵作品。
百済羅城と陵山里墓の間の寺跡西側にある場所から、450余点の遺物と共に発見された百済の香炉である。高さ64㎝、重さ11.8㎏にもなる大型香炉で、大きく胴体と蓋に区分され、上に付いた鳳凰と支え台を含むと、4つの部分からなっている。この香炉は中国漢で流行した博山香炉の影響を受けているようであるが、中国と違って山が独立的・立体的であり、写実的に表現されている。創意性と造形性に優れており、仏教と道教が混合された宗教と思想的複合性まで見せており、百済時代の工芸と美術文化、宗教と思想、製造技術まで把握できる貴重な作品である。
백제금동대향로 – 나무위키
8 ngày trước — 백제금동대향로(이하 ‘대향로’)는 1993년 12월 12일(일)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주차장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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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Website: 8 ngày trước — 백제금동대향로(이하 ‘대향로’)는 1993년 12월 12일(일)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주차장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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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대향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백제금동대향로는 전체 높이가 64cm이며 용 모양의 향로 받침, 연꽃이 새겨져 있는 향로의 몸체, 산악도가 솟아있는 향로 뚜껑, 뚜껑 위의 봉황 장식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봉황과 향로 뚜껑은 하나의 주물로 제작되어 있어, 제작 과정에서 세 개의 주물틀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향로 본체의 가운데 테두리의 구름 문양 아래에는 연꽃이 핀 연못이 있고, 그 위인 뚜껑에는 봉우리가 세 개 있는 산들이 있다. 이 산에는 말을 타고 사냥하는 사람, 신선으로 보이는 사람들, 호랑이, 사자, 원숭이, 멧돼지, 코끼리, 낙타 등 많은 동물들이 장식되어 있다. 또한 곳곳에 폭포, 나무, 불꽃 무늬, 귀면상 등이 있다. 제단 모양으로 꾸며진 정상에는 봉황이 날개를 펴고 춤추고 있고, 그 아래에는 5악사가 있는데 이들은 소, 피리, 비파, 북, 현금을 연주하고 있다. 그 주위의 다섯 봉우리에는 각각 기러기로 보이는 새가 봉황과 함께 춤추는 형상이 있다. 향로의 몸체에는 연꽃이 있는데 그 위에 갖가지 새와 물고기가 새겨져 있다. 또 한쪽에는 무예를 하는 인물도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발가락이 다섯 개 있는 용이 위의 연꽃을 물고 하늘로 날아가려는 듯 용틀임을 하고 있다.[3]
한편 최근에는 백제 금동대향로가 ‘도교와 불교의 습합’을 반영했다는 기존 견해에 반론하기도 한다. 당시 불교계에서 전승되었을 문헌 가운데 ‘가루라(금시조) 목 아래에 여의주가 있다[如意者, 此鳥頸下有如意珠.]’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반열반경』 중 ‘신선이 기악을 연주한다[神仙呪術,作倡伎樂]’는 기록이 있고, 『묘법연화경』에도 ‘사람이 북, 퉁소, 거문고, 비파 등을 연주한다[若使人作樂, 擊鼓吹角貝, 簫笛琴箜篌, 琵琶鐃銅鈸]’라는 문구가 있다. 즉, 백제 금동대향로의 도상을 불전(佛典) 내에서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4] 특히 수당대에 걸쳐 불교 내에서는 『홍명집』 등을 저술해 도교에 비판적인 입장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격의불교로 당시의 불교상을 정의하기엔 문제가 있다. 향로의 도상에 대해 지나친 추정과 상상은 지양되어야 하고, 향후 구체적인 전거를 들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 서역의 향품이 전해져서 전국시대 말기부터 악취를 없애고 부정을 쫓기 위해 향로를 만들었다. 백제 금동대향로의 기원을 중국에서 찾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에 의하면 백제 금동대향로는 한나라의 영향을 받아 백제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제작되었다고 한다. 중국에는 백제의 것과 같은 대형 향로가 없으며, 한나라 때와 같은 금동 제품이 남조에서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남조시대 유물들 중 비록 실물은 아니지만 백제의 금동대향로와 비슷한 것이 확인되었다.
백제 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는 백제에서 만들어진 금동제 박산로다. 1993년 12월 12일 부여군 능산리 절터의 목곽 수로 안에서 발견되었으며 국보 제287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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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백제 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는 백제에서 만들어진 금동제 박산로다. 1993년 12월 12일 부여군 능산리 절터의 목곽 수로 안에서 발견되었으며 국보 제287호로 지정되었다. 이 향로는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정치적 안정을 되찾은 6세기 초의 백제인들의 정신세계와 예술적 역량이 함축되어 이루어진 백제공예품의 진수라 할 수 있다. 진품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똑같이 생긴 복제품이 있다.
발굴 과정 [ 편집 ]
백제금동대향로는 주차장을 건설하던 곳에서 발견되었다. 주차장 공사가 임박한 시점에 발견된 것이다. 발견 당시 백제금동대향로는 진흙 속에 있었고, 바닥에서는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이 발견되었다. 주변에서는 섬유 조각이 발굴되었는데, 발굴단은 이 섬유 조각이 백제금동대향로를 감쌌던 것으로 추정했다. 또, 대향로가 오랜 세월에도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진흙에 잠긴 진공 상태에서 보관되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1]
1995년의 발굴 조사로 대향로가 발견된 일대가 백제 시대 왕실 절터였음이 입증되었다. 발굴된 목탑 흔적에서 발견된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에서 “창왕(위덕왕) 13년(567년)에 정해공주가 이 절을 지었다”는 기록이 발견된 것이다. 학계는 이 점에 주목하여 백제 금동대향로가 단순한 향로가 아니라 백제왕실 의식이나 제사용으로 사용된 신물로 추정하고 있다.[2] 백제 금동대향로는 금으로 만들어진 향로이다.
구성 [ 편집 ]
백제금동대향로는 전체 높이가 64cm이며 용 모양의 향로 받침, 연꽃이 새겨져 있는 향로의 몸체, 산악도가 솟아있는 향로 뚜껑, 뚜껑 위의 봉황 장식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봉황과 향로 뚜껑은 하나의 주물로 제작되어 있어, 제작 과정에서 세 개의 주물틀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향로 본체의 가운데 테두리의 구름 문양 아래에는 연꽃이 핀 연못이 있고, 그 위인 뚜껑에는 봉우리가 세 개 있는 산들이 있다. 이 산에는 말을 타고 사냥하는 사람, 신선으로 보이는 사람들, 호랑이, 사자, 원숭이, 멧돼지, 코끼리, 낙타 등 많은 동물들이 장식되어 있다. 또한 곳곳에 폭포, 나무, 불꽃 무늬, 귀면상 등이 있다. 제단 모양으로 꾸며진 정상에는 봉황이 날개를 펴고 춤추고 있고, 그 아래에는 5악사가 있는데 이들은 소, 피리, 비파, 북, 현금을 연주하고 있다. 그 주위의 다섯 봉우리에는 각각 기러기로 보이는 새가 봉황과 함께 춤추는 형상이 있다. 향로의 몸체에는 연꽃이 있는데 그 위에 갖가지 새와 물고기가 새겨져 있다. 또 한쪽에는 무예를 하는 인물도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발가락이 다섯 개 있는 용이 위의 연꽃을 물고 하늘로 날아가려는 듯 용틀임을 하고 있다.[3]
처세계 [ 편집 ]
중국에 서역의 향품이 전해져서 전국시대 말기부터 악취를 없애고 부정을 쫓기 위해 향로를 만들었다. 백제 금동대향로의 기원을 중국에서 찾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에 의하면 백제 금동대향로는 한나라의 영향을 받아 백제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제작되었다고 한다. 중국에는 백제의 것과 같은 대형 향로가 없으며, 한나라 때와 같은 금동 제품이 남조에서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남조시대 유물들 중 비록 실물은 아니지만 백제의 금동대향로와 비슷한 것이 확인되었다.
불교문화연구가들은 백제금동대향로가 불교의 연화화생설과 관련있다고 하는데, 불교의 이상향인 연화장의 세계는 비로자나불이 있는 광대하고 장엄한 이상세계를 말한다. 연화장 세계의 맨 아래에는 풍륜이 있고, 풍륜 위에는 향수해가 있어 그 향수해에 큰 연꽃이 핀 것을 연화장이라 하는 이상세계이다. 즉, 대향로를 받치고 있는 용은 향수해를 의미하고 연꽃잎 위의 세계가 이상세계라는 설명이다.
봉황을 고대 동북아에서 신성시해 온 천계(天界)로 보고, 5악사와 기러기를 백제의 5부로 보아 백제대향로에 고대 동북아의 전통사상이 반영되었다.
한편 최근에는 백제 금동대향로가 ‘도교와 불교의 습합’을 반영했다는 기존 견해에 반론하기도 한다. 당시 불교계에서 전승되었을 문헌 가운데 ‘가루라(금시조) 목 아래에 여의주가 있다[如意者, 此鳥頸下有如意珠.]’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반열반경』 중 ‘신선이 기악을 연주한다[神仙呪術,作倡伎樂]’는 기록이 있고, 『묘법연화경』에도 ‘사람이 북, 퉁소, 거문고, 비파 등을 연주한다[若使人作樂, 擊鼓吹角貝, 簫笛琴箜篌, 琵琶鐃銅鈸]’라는 문구가 있다. 즉, 백제 금동대향로의 도상을 불전(佛典) 내에서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4] 특히 수당대에 걸쳐 불교 내에서는 『홍명집』 등을 저술해 도교에 비판적인 입장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격의불교로 당시의 불교상을 정의하기엔 문제가 있다. 향로의 도상에 대해 지나친 추정과 상상은 지양되어야 하고, 향후 구체적인 전거를 들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진 [ 편집 ]
각주 [ 편집 ]
참고 자료 [ 편집 ]
백제 금동대향로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외부 링크 [ 편집 ]
백제 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 향로 정상에 있는 새는 맨 아래에 위치한 용(龍)과 대비되어 나타내진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신수인 봉황이다. 봉황은 박산(博山)에서 양(陽)을 대표하는 신수로서 그리고 음(陰)을 대표로 하는 맨 아래에 배치된 용과 대칭되어 맨 정상에 안치되었다. 봉황은 막 비상하려는 듯 날개와 꼬리를 거의 50도(度)가량으로 펼치고 있다. 봉황의 부리 밑에는 용을 비롯한 신수(神獸)의 입 언저리에 배치되던 여의주가 있다. 봉황은 절로 노래하고 절로 춤을 춘다고 하며 노래는 묘음(妙音) 또는 오음(五音)이라고 하는 것에서 보듯 예로부터 음악과 관련된 동물이다. 이 향로에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가 동반된 것, 다섯 원앙(鴛鴦)이 봉황을 응시하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동체를 연꽃봉오리형으로 뚜껑을 산모양(山形)으로 만든, 그리고 유달리 봉황(鳳凰)과 용(龍)을 돋보이게 배치한 이 박산향로를 일명 용봉봉래산향로(龍鳳蓬萊山香爐)라고도 부르고 있다. 여기서 종래 흔히 불리던 박산이라는 명칭보다 봉래산(蓬萊山)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은 향로의 박산이 일찍부터 동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 쪽에 있다는 상상의 신산(神山)인 삼신산(三神山)을 가리키고, 또 그 삼신산 가운데서도 봉래산을 가장 많이 언급함에서이다. 결과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친근한 이상향으로 알려진 봉래산이란 이름을 이 향로에 부여한 것이다.
그리고 이 향로의 연꽃은 용의 입과 연결되고 있다. 이 연화는 단순히 용의 입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 바로 동아시아의 신수(神獸)인 용의 입에서 피어나는 기(氣)이다. 결국 용과 연꽃이 상호 동격인 것이다. 용의 입에서 화생된 이 향로의 연꽃은 노신(爐身)에서 보듯 만개한 연꽃이다. 그런데 이 만개한 연꽃은 뚜껑 부위에서는 산(山)으로 화생(化生)하고 있다. 이 산은 신선세계의 중심인 산(山), 박산(博山)이다. 결국 박산이 연꽃에 의하여 화생된 것이다.
이칭: 부여 능산리 출토 백제 금동대향로, 용봉봉래산향로 ; 분야: 공예 ; 유형: 유물. 성격: 향로; 제작시기: 백제; 수량: 1점; 크기: 전체 높이 62.5㎝, 최대 직경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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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Website: 백제 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Description Website: 이칭: 부여 능산리 출토 백제 금동대향로, 용봉봉래산향로 ; 분야: 공예 ; 유형: 유물. 성격: 향로; 제작시기: 백제; 수량: 1점; 크기: 전체 높이 62.5㎝, 최대 직경 19㎝, …
물웅덩이 속 금동대향로는 백제멸망 그 순간을 증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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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
이 향로의 뚜껑에 박산은 5단(段)으로 되어 있다. 그 각단은 5봉우리로 구성되어 결과 큰 산은 25개이다. 이 큰 산의 각단은 엇갈리게 배치되었고 또 큰 산과 연결되는 49봉우리도 있어 결과 산은 매우 중첩된 양상이 되었다.
이 산에는 최정상의 봉황을 비롯한 37마리의 상상의 동물과 악사(樂士) 5인을 비롯한 17인의 신선이 있다. 또 나무 6그루, 향연구멍(香煙穴) 12개, 산중턱을 가르며 난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입체적으로 돌출되어 낙하하고 있는 폭포 그리고 낚시터가 된 호수(湖水)도 있다.
이 향로 노신(爐身)을 감싸 장식한 연꽃도 뚜껑인 산의 5단과 일치시키려고 5단 연판(蓮瓣)으로 나타냈다. 이 연판에 2인의 신선과 25마리의 상상의 동물을 나타냈다. 이 동물들은 이곳이 물 속과 물가 부위임에서인지 주로 물가에 사는 동물 또는 물고기를 비롯한 수중(水中) 동물로 구성되어 있다.
유려한 동작을 보여주는 이 향로의 용은 대좌의 역할을 한다. 가느다란 머리 위로 넓고 무거운 향로의 동체(胴體)를 짊어지고 있다. 용의 몸통, 꼬리, 수염, 머리카락 등은 연꽃이나 연꽃과 관련된 당초문으로 나타냈다. 몸통은 착지면으로 갈수록 그 면적이 확대되고 있다. 몸통 맨 바깥쪽에는 이 향로가 해중신산이고 용은 해중(海中) 동물임을 알리려는 듯 바다의 파도(波濤)도 나타냈다.
이 향로 정상에 있는 새는 맨 아래에 위치한 용(龍)과 대비되어 나타내진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신수인 봉황이다. 봉황은 박산(博山)에서 양(陽)을 대표하는 신수로서 그리고 음(陰)을 대표로 하는 맨 아래에 배치된 용과 대칭되어 맨 정상에 안치되었다. 봉황은 막 비상하려는 듯 날개와 꼬리를 거의 50도(度)가량으로 펼치고 있다. 봉황의 부리 밑에는 용을 비롯한 신수(神獸)의 입 언저리에 배치되던 여의주가 있다. 봉황은 절로 노래하고 절로 춤을 춘다고 하며 노래는 묘음(妙音) 또는 오음(五音)이라고 하는 것에서 보듯 예로부터 음악과 관련된 동물이다. 이 향로에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가 동반된 것, 다섯 원앙(鴛鴦)이 봉황을 응시하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연화화생이란 연꽃에 의하여 만물(萬物)이 신비롭게 탄생되는 생명관을 말한다. 이 향로는 신산(神山)인 박산을 표현한 것이지만 향로에 표현된 용·봉황·연꽃·산 그리고 수많은 물상(物像) 모두가 이 연화화생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다. 연화화생의 중심을 이루는 연꽃은 이 향로의 경우 동체(胴體)인 연꽃봉오리이다. 그런데 연꽃은 물 속에 뿌리를 박고 물 위로 꽃을 피우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 향로에서의 연꽃은 용을 통하여 물 속과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이 향로의 연꽃은 용의 입과 연결되고 있다. 이 연화는 단순히 용의 입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 바로 동아시아의 신수(神獸)인 용의 입에서 피어나는 기(氣)이다. 결국 용과 연꽃이 상호 동격인 것이다. 용의 입에서 화생된 이 향로의 연꽃은 노신(爐身)에서 보듯 만개한 연꽃이다. 그런데 이 만개한 연꽃은 뚜껑 부위에서는 산(山)으로 화생(化生)하고 있다. 이 산은 신선세계의 중심인 산(山), 박산(博山)이다. 결국 박산이 연꽃에 의하여 화생된 것이다.
신선사상에는 음양오행설도 포함되고 있다. 이 향로에서 음양관은 맨 정상에 봉황을 배치하여 양을 상징하고, 맨 아래에 용을 배치하여 수중세계이자 음을 상징한 것으로 표현하였다. 오행관은 뚜껑의 산이 5방위로 또 5단으로 솟았으며 또 각 단은 5봉으로 이루어져 있고 5곳의 박산문(博山文)을 남긴 것, 원앙 5마리, 악사(樂士) 5인, 5개의 구멍을 2겹으로 뚫은 향연구멍(香煙穴) 등으로 반영되었다.
신선세계 또는 신선세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도교(道敎)에서는 의례히 향을 피우며 음악이나 춤이 동반함을 본다. 이 향로의 악사도 같은 차원에서, 즉 신선세계의 음악의 연주자로서 등장한 것이라고 본다. 또 악사는 예로부터 음악을 동반하며 나타내던 봉황 즉 이 향로 정상의 새와 관련된다. 즉 봉황이 절로 노래하고 절로 춤을 추자 이에 동반하여 악사가 선계(仙界)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악기를 정면에서 왼쪽으로 살펴보면 커다란 둥근 몸체에 기둥이 꽂혀 있는 현악기는 우리나라의 ‘월금(月琴)’이나 중국의 ‘완함(阮咸)’과 흡사하다. 세로로 불고 있는 관악기는 ‘종적(縱笛)’이다. 가늘고 길이가 다른 관(管)을 여러개 묶은 관악기는 ‘배소(排簫)’이다. 배가 불룩하고 양쪽이 좁아지는 몸통 위에 두 손을 얹고 있는 현악기는 ‘琴(금)’으로 보인다. 한 손으로 윗판을 들고 있는 타악기는 ‘동발(銅鉢)’로 보여진다.
동체를 연꽃봉오리형으로 뚜껑을 산모양(山形)으로 만든, 그리고 유달리 봉황(鳳凰)과 용(龍)을 돋보이게 배치한 이 박산향로를 일명 용봉봉래산향로(龍鳳蓬萊山香爐)라고도 부르고 있다. 여기서 종래 흔히 불리던 박산이라는 명칭보다 봉래산(蓬萊山)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은 향로의 박산이 일찍부터 동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 쪽에 있다는 상상의 신산(神山)인 삼신산(三神山)을 가리키고, 또 그 삼신산 가운데서도 봉래산을 가장 많이 언급함에서이다. 결과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친근한 이상향으로 알려진 봉래산이란 이름을 이 향로에 부여한 것이다.
이 향로는 같은 박산을 표현한 6세기 전반(前半)에 제작된 백제 무령왕릉 출토 동탁은잔이나 7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는 부여 외리 출토 백제문양전과 비교하여 볼 때 더욱 다양하면서도 세련되고 발전된 모습이다. 따라서 이들보다 이 향로는 약간 시대가 내려가는 7세기 전반(前半)에 제작된 것으로 본다.
8.백제의 타임캡슐(백제 금동대향로) – 어린이·청소년 문화재청
어떤 무늬가 조각되어 있을까요? 백제 금동대향로는 4개 부분으로 되어 있어요. 뚜껑 위 장식부분은 봉황이 여의주를 목에 끼고 날개를 활짝 펴서 날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죠. 그 아래의 뚜껑에는 5명이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 모습, 크고 작은 산, 사람들, 동물, 말을 탄 사람들, 불꽃무늬 등 화려한 무늬가 조각되어 있어요. 몸통에는 연꽃, 물고기, 동물 등 여러 가지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 밑에는 용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으로 몸통을 입으로 받들고 있고, 또 구름과 풀잎무늬가 소용돌이치는 모습으로 꾸며져 있어요. 그래서 이 향로는 백제 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이 한층 돋보이는 작품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출토된 향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지요. 자! 이제 향로에 조각되어 있는 아름다운 무늬들을 알아보니 어떤 생각이 들지요? 그들의 금속공예 기술은 어느 정도였는지 알아볼까요?
백제의 공예 기술은 얼마나 발달하였을까요? 철·청동과 같은 쇠붙이로 그릇이나 장식품을 만들고 또 그 표면에 무늬나 글자를 새겨 넣는 기술을 금속공예 기술이라 하지요. 일찍부터 우리 조상들은 금속공예 기술을 발달시켰는데, 이는 무덤에서 발견되는 여러 가지 유물들을 통하여 확인이 된답니다. 중국으로부터 불교가 들어온 후 여러 종류의 불교 공예품이 제작되면서 그 종류는 더욱 다양해지고, 불교 행사에 사용되는 여러 가지 도구들이 만들어지면서 더욱 정교하게 조각되었어요.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발달시킨 공예 기술로써 아름다운 생활 용품을 만들어 이웃 나라에 수출하기도 했죠. 이제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공예 기술을 더욱 계승·발전시켜 우리의 문화 수준을 세계에 알려야 되겠습니다.
백제는 처음에는 한강 부근에 있었어요. 그러다가 고구려의 계속되는 공격으로 수도였던 위례성이 함락되고 왕이 전사하자, 도읍지를 공주로 옮겼어요. 이때 공주는 웅진이라 하였지요. 공주에서 힘을 기른 백제는 이후 도읍을 다시 부여로 옮겼어요. 부여의 옛 이름은 사비였어요. 도읍을 부여로 옮긴 후, 백제의 문화는 크게 발달했지요. 부여 곳곳에서 찬란했던 당시의 문화를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중에서도 찬란한 백제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유물은 국보 제287호인 백제 금동대향로입니다. 여러 가지 조각과 무늬가 새겨져 있는 이 유물은 무엇일까요? 어디에서 발견되었을까요? 어떤 무늬로 조각되어 있을까요? 그리고 백제인 들의 공예 기술은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까요?
어디에서 발견되었나요? 백제의 마지막 도읍이었던 부여는 곳곳에서 백제 문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어요. 특히 땅 속에 묻혀 있던 유물은 백제 문화의 우수성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지요. 백제 금동대향로는 1993년에 충남 부여 능산리 고분 근처에 위치한 절터에서 발견되었어요.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바닥 진흙 속에 파묻혀 있었기에 거의 녹슬지 않고 원래 모양 그대로 있답니다. 우리는 이 유물을 통하여 백제 문화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당시 발견되었던 지역으로 보아 능산리의 여러 무덤에 묻힌 이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에서 사용하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백제 금동대향로란 무엇일까요? 백제 금동대향로 (국보 제 287호) 향로란 향을 피우는 그릇으로서 나쁜 귀신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였던 것이에요. 요즘도 명절이나 제삿날에는 음식을 차려놓은 상 앞에 놓지요. 백제 금동대향로는 키가 64㎝나 된답니다. 보통 향로는 20㎝ 정도인데, 비교해 보면 얼마나 큰지 알겠죠? 청동으로 모양을 만들고 표면을 금으로 칠했어요. 그래서 금동대향로입니다. 이 백제 금동대향로를 통하여 백제인 들의 사상과 공예 기술을 알 수 있지요.
하지만 그 중에서도 찬란한 백제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유물은 국보 제287호인 백제 금동대향로입니다. 여러 가지 조각과 무늬가 새겨져 있는 이 유물은 무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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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금동대향로,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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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청소년 문화재청
백제는 처음에는 한강 부근에 있었어요. 그러다가 고구려의 계속되는 공격으로 수도였던 위례성이 함락되고 왕이 전사하자, 도읍지를 공주로 옮겼어요. 이때 공주는 웅진이라 하였지요. 공주에서 힘을 기른 백제는 이후 도읍을 다시 부여로 옮겼어요. 부여의 옛 이름은 사비였어요. 도읍을 부여로 옮긴 후, 백제의 문화는 크게 발달했지요. 부여 곳곳에서 찬란했던 당시의 문화를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중에서도 찬란한 백제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유물은 국보 제287호인 백제 금동대향로입니다. 여러 가지 조각과 무늬가 새겨져 있는 이 유물은 무엇일까요? 어디에서 발견되었을까요? 어떤 무늬로 조각되어 있을까요? 그리고 백제인 들의 공예 기술은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까요?
백제 금동대향로란 무엇일까요? 백제 금동대향로 (국보 제 287호) 향로란 향을 피우는 그릇으로서 나쁜 귀신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였던 것이에요. 요즘도 명절이나 제삿날에는 음식을 차려놓은 상 앞에 놓지요. 백제 금동대향로는 키가 64㎝나 된답니다. 보통 향로는 20㎝ 정도인데, 비교해 보면 얼마나 큰지 알겠죠? 청동으로 모양을 만들고 표면을 금으로 칠했어요. 그래서 금동대향로입니다. 이 백제 금동대향로를 통하여 백제인 들의 사상과 공예 기술을 알 수 있지요.
어디에서 발견되었나요? 백제의 마지막 도읍이었던 부여는 곳곳에서 백제 문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어요. 특히 땅 속에 묻혀 있던 유물은 백제 문화의 우수성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지요. 백제 금동대향로는 1993년에 충남 부여 능산리 고분 근처에 위치한 절터에서 발견되었어요.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바닥 진흙 속에 파묻혀 있었기에 거의 녹슬지 않고 원래 모양 그대로 있답니다. 우리는 이 유물을 통하여 백제 문화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당시 발견되었던 지역으로 보아 능산리의 여러 무덤에 묻힌 이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에서 사용하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떤 무늬가 조각되어 있을까요? 백제 금동대향로는 4개 부분으로 되어 있어요. 뚜껑 위 장식부분은 봉황이 여의주를 목에 끼고 날개를 활짝 펴서 날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죠. 그 아래의 뚜껑에는 5명이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 모습, 크고 작은 산, 사람들, 동물, 말을 탄 사람들, 불꽃무늬 등 화려한 무늬가 조각되어 있어요. 몸통에는 연꽃, 물고기, 동물 등 여러 가지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 밑에는 용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으로 몸통을 입으로 받들고 있고, 또 구름과 풀잎무늬가 소용돌이치는 모습으로 꾸며져 있어요. 그래서 이 향로는 백제 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이 한층 돋보이는 작품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출토된 향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지요. 자! 이제 향로에 조각되어 있는 아름다운 무늬들을 알아보니 어떤 생각이 들지요? 그들의 금속공예 기술은 어느 정도였는지 알아볼까요?
백제의 공예 기술은 얼마나 발달하였을까요? 철·청동과 같은 쇠붙이로 그릇이나 장식품을 만들고 또 그 표면에 무늬나 글자를 새겨 넣는 기술을 금속공예 기술이라 하지요. 일찍부터 우리 조상들은 금속공예 기술을 발달시켰는데, 이는 무덤에서 발견되는 여러 가지 유물들을 통하여 확인이 된답니다. 중국으로부터 불교가 들어온 후 여러 종류의 불교 공예품이 제작되면서 그 종류는 더욱 다양해지고, 불교 행사에 사용되는 여러 가지 도구들이 만들어지면서 더욱 정교하게 조각되었어요.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발달시킨 공예 기술로써 아름다운 생활 용품을 만들어 이웃 나라에 수출하기도 했죠. 이제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공예 기술을 더욱 계승·발전시켜 우리의 문화 수준을 세계에 알려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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