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1283 높은 모방 Fendi 업데이트 167 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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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의 추락] 루이비통·펜디 … 명품을 포기한 명품 – 서울경제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viewer 편의점에서 파는 명품 선물 리스트.

6 thg 2, 2018 — 버버리, 페라가모, 프라다, 펜디, 발렌시아가 등 명품 브랜드가 카카오톡 상에서 ‘스타벅스의 … 자신을 모방한 업체에 도움을 요청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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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의 추락] 루이비통·펜디 … 명품을 포기한 명품

viewer 편의점에서 파는 명품 선물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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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의 추락은 어디까지일까. 지난 2010년 대형마트에서 판매된 데 이어 이제는 편의점은 물론 ‘카카오톡 선물하기’에도 등장했다. 버버리, 페라가모, 프라다, 펜디, 발렌시아가 등 명품 브랜드가 카카오톡 상에서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와 다름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한 전문가는 “국내에서 명품의 이미지가 갈수록 추락하면서 ‘명품’이라는 단어를 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명품 백을 예로 들면 이제는 그냥 조금 비싼 수입 가방 정도라고” 말했다. 반면 명품 업체들은 매년 가격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고야드도 가세했다. 반면 애프터서비스(A/S)는 하나도 개선되지 않으면서 한국 소비자를 ‘호갱’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명품의 가치는 떨어지고 있다. ‘3초 백’으로 유명한 루이비통의 경우 브랜드 희소성이 추락하자 지난해에는 자신을 카피해 고소한 바 있는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에 손까지 내밀었다. 자신을 모방한 업체에 도움을 요청한 셈이다. 구찌도 예외는 아니다. 희소성이나 가치, 전통을 내려 놓고 있다. 패션과 트렌드, 화려한 대중의 입맛에 맞추면서 트렌디한 퍼블릭 브랜드로 바뀌고 있다.프라다, 페라가모, 버버리, 펜디 등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로고가 없다’는 희소성으로 반짝 떴던 보테가베네타는 최근 로고를 내세운 브랜드들이 다시 관심을 받는 바람에 회생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버버리는 여전히 전통을 앞세우며 올드한 ‘체크 무늬’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있다. 펜디는 가방 스트랩, 가방 액세서리 등 잡화로 살아나는 듯 했으나 역시 히트 아이템이 없어 잊혀지고 있다. ‘청담 마담 슈즈’로 인식됐던 페라가모 역시 지난해 리뉴얼한 슈즈들이 소비자의 외면을 받으며 고리타분하고 올드한 이미지만 얻고 있는 상태다.= 국내외에서 명품의 가치가 추락하고 있지만 한국 소비자를 ‘봉’으로 취급하는 것은 변하지 않고 있다. 명백한 이유를 밝히지 않는 가격 인상과 배짱영업, 거만한 서비스와 무책임한 사후관리 등은 갈수록 더하다.우선 샤넬은 지난해에만 3차례 가격을 올렸다. 발렌시아가, 구찌 등은 지난해 9~10월 결혼 시즌을 앞두고 약속이나 한 듯 집중적으로 가격을 올리는 배짱영업을 서슴지 않았다. 에르메스는 지난달 8일 1년 만에 다시 가격을 올려 ‘볼리드 31 끌레망스’는 이제 1,000만 원을 넘게 됐다. 고야드 역시 지난 1일부터 3개 제품에 대해 가격을 10만 원씩 올렸다.미국 경제 전문 매체 쿼츠가 프랑스 금융그룹 엑산BNP파리바의 보고서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중국에 이어 한국의 명품 브랜드 가격이 국제 평균보다 두 번째(14%)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매년 가격을 올리면서도 서비스는 나아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가격 인상부터 매출 비공개 등 모든 것이 ‘글로벌 방침’이라는 이유로 입을 닫는다. 루이비통의 경우 해외에서는 고객들이 서비스 품질에 대해 본사 측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렵지 않다. 반면 한국은 우편을 통해서만 접수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심희정기자 [email protected]

Contribution for 패션 펜디 vs 발망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다

시그니처 아이템(Signature item)

브랜드 히스토리(Brand history)

9 thg 11, 2015 — ‘패션을 위한 공헌’ 이번 주제는 이탈리아의 펜디(Fendi)와 프랑스의 발망(Balmain). 진정한 ‘명품 정신’을 실천하는 이 두 브랜드의 특별한 가치를 살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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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NDI ~shoulder bag for women #Sh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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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ibution for 패션] 펜디 vs 발망,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다

브랜드 히스토리(Brand history)

브랜드 아이콘(Brand icon)

시그니처 아이템(Signature item)

사회적 공헌

에필로그

[스타미디어팀]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중세시대 루이 14세는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잘 수 없어 앉아서만 잤다고 전해지며, 현재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은 억만장자들을 대상으로 ‘기부 서약(기빙 플레지)’이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명품’이라고 불리는 패션 브랜드들 역시 마찬가지. ‘명품’ 브랜드의 가격을 생각하면 실제 효용가치보다 큰 금액을 지불해야 얻을 수 있지만 그만큼의 무형적 가치를 지니며, 그 가치에는 브랜드의 역사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까지 포함되어 있다.펜디와 발망 역시 그렇다. 이 브랜드들은 각각 자신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을 통해 사회적 환원을 추진하고 있고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고소득층)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간접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중이다.‘패션을 위한 공헌’ 이번 주제는 이탈리아의 펜디(Fendi)와 프랑스의 발망(Balmain). 진정한 ‘명품 정신’을 실천하는 이 두 브랜드의 특별한 가치를 살펴보자.1918년 로마 중심가 비아 델 플레비치토에 가죽과 모피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부티크을 오픈한 아델 카사그란데는 1925년 에두아르도 펜디와 결혼하며 숍의 상호를 펜디(Fendi)라 바꿨다. 이후 펜디의 모피는 이탈리아 로마의 부유층만이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공가도를 걷게 된다.만약 아델 카사그란데가 에두아르도 펜디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펜디는 카사그란데 라는 이름의 브랜드가 되지는 않았을까.이렇게 로마 안에서 성공한 펜디는 점차 이탈리아 전체에서 유명세를 떨쳤고 이후 여느 유럽의 명품 브랜드처럼 가족경영 방식을 통해 펜디의 다섯 딸들이 가업을 이어받았다.“어떠한 구조가 돌을 이용해 표현된다면, 또 다른 어떤 구조는 모슬린으로 만들어진다. 의상은 살아있는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움직임의 건축’이다”는 발망의 창립자 피에르 발망이 남긴 말.피에르 발망은 1914년 프랑스 사보이 마을에서 태어나 어머니와 이모들이 운영하는 부티크에서 옷감과 드레스를 가지고 놀며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로 건축을 전공했던 그는 재학도중 완성한 의상 드로잉을 디자이너 로베르피게에게 보내며 패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이후 1939년 뤼시앵 를롱의 하우스에서 디자이너로 활동 중, 군입대를 하게 되고 1941년 제대 후 크리스티안 디올과 함께 두 사람만의 브랜드를 오픈하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디올의 망설임으로 피에르 발망은 발망이라는 자신만의 하우스를 오픈 하며 브랜드의 시작을 알린다.패션계의 교황이라 불리는 칼 라거펠트에게도 루키 시절은 있었다.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로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디자이너가 된 그도 1965년에는 파리 패션월드에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었다.당시 칼 라거펠트와 손을 잡은 펜디는 자신들의 시그니쳐 아이템인 모피를 칼 라거펠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크고 무거우며 눈에 띄는 모피가 라거펠트를 만나면서 부드럽고 가벼우며 패셔너블한 아이템이 되었다.이후 그는 펜디의 ‘더블 F’ 로고를 디자인하며 명실상부한 펜디의 아이콘이 되며 펜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 디올, 발렌시아가 등과 함께 전성기를 구가하던 발망은 1982년 피에르 발망이 사망하면서 함께 몰락하게 된다. 그를 이을 디자이너의 부재와 무분별한 라이센스 판매로 발망은 수건, 우산, 양말 등 저자 제품에서 볼 수 있는 브랜드로 추락했다.하지만 발망은 2005년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크리스토퍼 데카르넹’을 영입하며 변화를 꾀한다. 2009년 발망은 파워숄더 룩으로 일명 ‘발망 매니아층’열풍을 일으켰으며 이 외에도 발망 재킷, 발망 바이커진 등이 히트하며 셀러브리티들의 지지를 받았다.죽어가던 발망을 살려낸 인물 크리스토퍼 데카르넹은 2011 F/W를 끝으로 발망을 떠났다. 이후 그의 자리는 올리비에르 로우스테잉이 맡아 발망 특유의 시크함에 럭셔리와 화려함을 더했다.펜디의 다섯 딸 중 안나 펜디의 딸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는 펜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가장 큰 힘이 된 인물. 그는 아델 펜디의 장인정신을 이어받아 100% 수작업으로 만든 셀러리아백을 만들었다.1997년 그가 만든 바게트 백은 짧은 어깨 끈이 달린 작고 부드러운 타원형 백으로 팔 밑에 편안하게 끼고 다닐 수 있어 소비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발매 첫 해에 10만개가 넘는 이 백은 그렇게 펜디의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현재 바게트 백은 600여가지의 디자인으로 제작되어 있으며 각 개개인의 취향과 개성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이렇게 실비아는 스스로도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었으며 펜디를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들기도 했다.발망의 시그니처 아이템으로는 뭐니뭐니해도 바이커진을 빼놓을 수 없다. 데님 팬츠 하나에 130만원가량 하지만 지드래곤과 같은 국내 패셔니스타도 즐겨 찾으며 국내외에서 선풍적인 인기몰이 중이다.특유의 사선절개 디자인과 엠보싱이 포인트인 바이커진은 발망을 회생시킨 인물인 크리스토퍼 데카르넹의 대표작으로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이 입는 바지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이 외에도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 역시 발망의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통하며 얼마 전 H&M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29만원대에 선보이며 전량 매진의 결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김연아, 고소영, 하지원의 펜디 가방 중 누구 것이 가장 비싸게 팔릴까. 수많은 명품 브랜드들과 펜디가 차별화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사회적 공헌에 있다. 펜디는 자신들의 베스트셀러 가방 중 하나인 피카부백 디자인에 김연아, 하지원, 고소영을 참여시켜 의미 있는 경매를 진행했다.이 제품들은 각 1000만원에 경매를 시작했으며 11월9일에는 ‘김연아 가방’이 1400만원, ‘고소영 가방’이 1300만원, ‘하지원 가방’이 1100만원을 기록 중이다.피카부 프로젝트는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무대로 각국의 아이코닉한 여성들을 선정, 디자인 단계부터 직접 참여하여 본인만의 피카부 백을 제작, 해당 셀럽들이 직접 선정한 자선 단체에 기부되는 프로젝트로 영국,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세 번째로 진행되었다.명품 브랜드는 모든 사람들이 소유할 수 없기에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진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소유하기 힘든 구조의 핵심은 가격이다. 하지만 발망은 콜라보레이션이라는 시스템을 활용, 보다 대중들에게 더욱 가까이 가는 길을 택했다.얼마 전 국내에서 큰 화제가 되었던 H&M과 발망의 콜라보레이션. 합리성과 대중성이 강점인 SPA 브랜드와 디자인과 퀄리티로 승부하는 명품 브랜드의 만남은 전 세계 3000여개 매장에서 이루어졌고 국내에서는 4개 매장에 한하여 론칭되었다.평소에는 너무나도 쉽게 구입할 수 있었던 SPA브랜드가 긴 줄을 서서 한정된 인원만 구입할 수 있었던 진풍경은 바로 발망이라는 브랜드가 갖고 있는 디자인적 힘을 의미했다. 더불어 소비자에게 주는 ‘합리성’이라는 선물은 모든 사람들이 ‘명품’디자인을 소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공헌이었다.이번 발망과 H&M의 콜라보레이션은 텐트촌까지 이룰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이번 사례에 여론 역시 긍정적인 목소리를 내었다. 앞으로 이어질 다른 명품 브랜드들의 모방 마케팅은 불 보듯 뻔하다.피에르 발망의 사망과 함께 몰락했던 발망, 크리스토퍼 데카르넹의 디자인으로 다시 부흥하게 된 2000년대. 그리고 현재 경기 불황 속에서도 콜라보레이션 마케팅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모습까지. 발망의 미래는 밝기만 하다.2001년 프라다에서 펜디의 지분을 인수한 LVMH그룹은 펜디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고착시키기 위해 특히 더 노력했다. 이들의 펜디 사랑은 각별해서 그들을 프랑스 본사로 불러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펜디는 창립자의 헤리티지를 계승하고자 로마를 떠나지 않았다.이후 펜디는 로마에 ‘팔라조 펜디(Fendi Palace)’를 오픈 했다. 펜디의 본사인 이곳은 스튜디오, 모피 아뜰리에, 세계에서 가장 큰 펜디 부티크 등이 있는 펜디 명예의 전당이라 할 만하다.또한 펜디는 2013년 로마와의 유대관계를 공고히 하며 트레비 분수 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로마의 랜드마크인 분수들을 복원하려는 이번 계획은 펜디가 이탈리아의 예술, 역사, 문화에 대한 아름다움과 장인 정신의 노하우에 바치는 헌사이다.(사진출처: bnt뉴스 DB, 펜디, 발망 공식 홈페이지)한경닷컴 w스타뉴스 기사제보 [email protected]

Panda Kuro Brown Fendi 70 Cm, 조형물 Thibault Kuro로

팝아트 Abbreviation of “popular art”, developed after the 2nd World War and more precisely from 1955. It developed in particular in the USA with Roy Lichtenstein (1923-1997) with paintings inspired by comics and Andy Warhol (1938-1987 ) who, in reaction to the media and advertising, will highlight these real objects, icons of the consumer society.

조각은 원형(조각상), 높은 릴리프, 낮은 릴리프, 모델링, 직접 조각, 용접 또는 조립을 통해 볼륨, 릴리프 모양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예술 활동입니다. 조각이라는 용어는 또한 이 활동으로 인한 대상을 지정합니다.

수지 Sculpture technique using a polymer product (natural, artificial or synthetic) to make a sculpture.

기술 조형물

Sculpture en résine recouverte de Chrome entiérement imaginée et créée par l’artiste Kuro, Le panda est un animal totem puissant, symbolique d’une for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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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ndi style for b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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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 Kuro Brown Fendi 70 Cm, 조형물 Thibault Kuro로

수지 Sculpture technique using a polymer product (natural, artificial or synthetic) to make a sculpture.

팝아트 Abbreviation of “popular art”, developed after the 2nd World War and more precisely from 1955. It developed in particular in the USA with Roy Lichtenstein (1923-1997) with paintings inspired by comics and Andy Warhol (1938-1987 ) who, in reaction to the media and advertising, will highlight these real objects, icons of the consumer society.

기술 조형물

조각은 원형(조각상), 높은 릴리프, 낮은 릴리프, 모델링, 직접 조각, 용접 또는 조립을 통해 볼륨, 릴리프 모양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예술 활동입니다. 조각이라는 용어는 또한 이 활동으로 인한 대상을 지정합니다.

협업? 해킹? 아님 스왑? 확 달라진 컬래버레이션 트렌드

THIS IS NOT A COLLABORATION

5 thg 12, 2021 — Versace by Fendi-Fendi by Versace … MZ세대와 이들 브랜드에 충성도가 높은 중국 시장에 매력적으로 작용했고, 전문가들 역시 모방에 대한 새로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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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없는 반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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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 해킹? 아님 스왑? 확 달라진 컬래버레이션 트렌드

THIS IS NOT A COLLABORATION

과장을 좀 보태어 하루에 하나꼴로 새로운 컬래버레이션이 발표되는 요즘이지만 이 단어가 생경하게 느껴지던 시절도 있었다. H&M이 칼 라거펠트와의 협업 컬렉션을 선보였던 2004년을 떠올려보라. 당시만 해도 그와 같은 하이(High)-로(Low)의 조합은 굉장히 파격적인 뉴스거리였으니 말이다. H&M의 이러한 행보가 소위 “패션계의 물을 흐려놓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으나 1천여 개의 매장에 풀린 제품들이 몇 시간 만에 완판을 기록했을 정도로 협업은 대성공을 이뤘다. 이는 발맹, 이자벨 마랑, 지암바티스타 발리, 모스키노와의 컬래버레이션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협업의 왕’으로 자리매김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로널드 슈나이더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패션계는 약간의 거품이 있어요. 이 협업은 럭셔리와 매스 마켓의 장벽을 허물었습니다. 오늘날 어디에나 존재하는 컬래버레이션, 드롭 및 리미티드 컬렉션의 전조가 된 셈입니다.” 로널드가 말했다.이후 17년간 패션계는 그야말로 다채로운 협업을 쏟아냈다. 하이-로는 물론이고 영향력 있는 셀러브리티, 촉망받는 아티스트, 자선 단체 혹은 사회적 기업 등 협업의 대상도 다양해졌다. 그리고 올해 4월, 이탈리아의 거대 패션 하우스 구찌는 100주년 기념 컬렉션 아리아를 통해 같은 케어링 그룹 산하에 있는 발렌시아가와 손잡은 파격적인 피스들을 선보이기에 이르렀다. 두 브랜드의 이름이 한데 뒤섞인 크리스털 수트가 등장했고 2017년 S/S 시즌에 뎀나 바잘리아가 선보인 아이스 스케이팅 톱과 레깅스 부츠에 구찌의 심벌이 더해졌으며, 발렌시아가 특유의 아워글라스 수트와 오버사이즈 아우터가 구찌식으로 재해석돼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이것이 협업이 아닌 ‘해킹(Hacking)’임을 강조했다. 이는 발렌시아가의 동의 하에 진행된 프로젝트이긴 하나 상호 간의 어떠한 협력도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바통을 이어받듯 지난 6월엔 발렌시아가가 2022 스프링 컬렉션을 통해 ‘해커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뎀나는 좀 더 교묘하게, 그리고 자신만의 위트를 가미한 해킹을 시도했다. 구찌의 더블 G 로고를 더블 B 로고로 바꾼 것이 그 대표적인 예. “우리는 완벽하고, 세련된, 한마디로 포토샵을 거친 필터를 통해 세상을 봅니다. 더 이상 편집되지 않은 것과 변조된 것, 진품과 위조품, 유형과 개념, 사실과 허구, 가짜와 딥 페이크를 구분하지 않게 되었죠.” 그는 두 하우스의 코드를 융합한 아이템을 선보임으로써 패션 산업에서의 진정성은 무엇이며, 모방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를 탐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11월 15일부터는 전 세계 74개 팝업 스토어를 통해 해커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선보이는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곳 역시 발렌시아가의 시그너처 건축 요소(로고 셰이빙 카펫, 벨벳 무대 커튼, 부식된 금속으로 만든 구조물)를 그대로 가져왔으나 구찌 스타일의 더블 B 로고로 장식돼 색다른 느낌을 준다. 단정한 간판 아래로 자유분방하게 자리한 ‘GUCCI’라는 낙서에서도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뎀나의 관점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구찌와 발렌시아가는 같은 그룹 소속이기에 상표권에 대한 복잡한 법적 분쟁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이 사례는 실제로 기존의 마케팅 방식에 피로감을 느낀 MZ세대와 이들 브랜드에 충성도가 높은 중국 시장에 매력적으로 작용했고, 전문가들 역시 모방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찬사를 보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하나의 제품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 두 개의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게 된 셈이니 두 팔 벌려 환영할 이유는 충분하다.한편 지난 9월, 2022 S/S 밀라노 패션위크 기간에 이뤄진 펜디와 베르사체의 컬래버레이션은 ‘펜다체(Fendace)’라는 신선하고도 흥미로운 결과물을 완성해냈다. “2월에 기성복 쇼가 끝난 후 저와 실비아는 도나텔라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실비아와 도나텔라는 정말 사이가 좋았고, 우리는 즐거운 작업을 함께 해보기로 했죠. 저는 베르사체를 디자인하고 도나텔라는 펜디를 디자인하기로 한 겁니다. 그러나 우린 같은 그룹에 속해 있지 않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단지 친구로서, 그리고 서로에 대한 존중에서 이번 컬렉션을 완성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기획한 것이 아닙니다.” 쇼가 끝난 후 킴 존스가 말했다. 컬렉션의 타이틀은 펜디와 베르사체의 이름을 결합한 ‘펜다체’. 각각 ‘베르사체 바이 펜디-펜디 바이 베르사체’로 선보인 합동 컬렉션은 스왑(Swap, 서로 다른 자원을 일정 기간 교환한다는 의미)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킴 존스와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가 25개의 베르사체 룩을,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25개의 펜디 앙상블을 선보인 것인데 이를 위해 각자의 하우스를 방문,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아카이브들을 즐겁게 둘러보는 시간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킴 존스는 1990년대에서 영감을 얻어 펜디의 모노그램 패턴과 베르사체의 키 모티프를 조화롭게 매치한 룩들을 완성했고, 오프닝에 그 유명한 안전 핀 드레스를 펜디 스타일로 재해석한 블랙 드레스를 등장시켰다. 도나텔라는 펑크 록을 베이스로 젊고 반항적인 이미지가 깃든 펜디 우먼을 그려냈다. 펜디의 더블 F 로고는 베르사체의 바로크 프린트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고 피카부와 바게트 백에는 황금빛 메두사 잠금 장식이 더해졌다. “여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두 왕조가 함께하고 있어요. 칼 라거펠트는 지아니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칼은 친구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 둘이 웃고 말하고 농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해요. 이 순간은 패션 역사상 최초의 시도입니다. 우린 서로에 대한 존경심과 우정을 바탕으로 창작에 대한 진정한 대화를 나누었어요.” 도나텔라가 말했다. 두 가문의 막강한 파워는 런웨이에 등장한 모델 군단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케이트 모스와 앰버 발레타가 함께 걸었고 샬롬 할로가 전성기를 떠올리게 하는 워킹을 선보였으며 나오미 캠벨이 피날레를 장식했다. 여기에 카렌 엘슨, 크리스틴 맥메나미, 지지 하디드, 최소라, 아두트 아케치, 빅토리아 세레티…. 하나의 쇼에서 절대 볼 수 없을 화려한 라인업이었다. 펜다체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 10월 25일, 펜디는 또 하나의 협업 소식을 발표했다. 두 킴(킴 존스와 킴 카다시안)의 만남으로 탄생한 ‘펜디×스킴스’ 컬렉션이 바로 그것. 두 브랜드의 미학 코드를 하나로 합친 언더웨어와 액티브웨어 및 가방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카다시안 특유의 보디컨셔스 라인에 펜디의 로고 플레이를 더했다.동시대의 패션 하우스들은 정체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오래된 역사를 가진 하우스일수록 더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스타일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앞서 로널드 슈나이더가 언급한 ‘패션계의 거품’을 걷어내기 위해 각자의 방도를 물색하고 있는 것이다.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의 우정 어린 협업에서 한 단계 진화한 해킹과 스왑 컬렉션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건 그 희귀함과 압도적인 신선함 때문일 것. 또한 구찌, 발렌시아가, 펜디, 베르사체 모두 명징한 로고를 가진 거대 하우스로 그로 인한 엄청난 카피 제품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진품과 모조품의 경계를 허무는 이들의 로고 플레이가 일순 통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이것마저 복제품이 등장하겠지만.) 유례없는 팬데믹을 경험하며 패션의 진정성을 돌아보는 디자이너들이 늘어나는 지금, 컬래버레이션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이들의 행보에 뜨거운 박수를! 에디터/ 이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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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ndi | Fall Winter 2021/2022 | Full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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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 나무위키:대문

30 thg 12, 2022 — 특히 에르메스 버킨 백/켈리 백이나 샤넬 빈티지 백, 펜디 피카부 백 같은 … 중국에는 아예 대놓고 애플과 삼성 스마트폰 모방 제품을 전문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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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의 삶 8화] 리빙 레전드 키스에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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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복 디자이너나 한다며 패션계의 질시를 받았지만, – 브런치

라거펠트의 초현실주의적 디자인들은 1984년 케이크 모자, 1985년 소파 형태의 모자, 1986년 옷의 앞 뒷면을 바꿔 디자인 한 백워드 슈트(Backward suit) 등으로 이어졌고, 이것들은 1980년대 후반 그의 주요 디자인 목록으로 남았다. 라거펠트는 샤넬과 마찬가지로 단순함을 추구하는 시대에 액세서리가 줄 수 있는 극적 효과에 주목했고, ‘액세서리는 재미있어야 한다. 유머가 필수다. 나는 언제나 나를 즐겁게 만드는 액세서리들을 만든다’고 말했다. 1991년 그의 봄/여름 컬렉션에는 해마 모양의 귀걸이도 등장하였다.

<타임> 지는 2012년 그를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100명의 패션 아이콘들 중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2019년 2월 프랑스 파리에서 향년 85세로 사망했다. 사인은 췌장암으로 밝혀졌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그는 파리를 세계 패션의 수도로, 펜디를 가장 혁신적인 이탈리아 브랜드 중 하나로 만드는 데 공헌을 한 창조적 천재였다.’고 하며 그를 추모했다. 유산 상속자 중 하나로 그의 고양이를 지목할 정도로 그의 반려묘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사실도 세상을 놀라게 했다.

젊은이들의 감각이 중시되는 하루가 달라지는 패션계에서 여든이 넘도록 현역에서 전설로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뼈를 깎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는지 일반인들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참고로 그는 디자이너의 영역을 뛰어넘어 사진을 직접 찍는다던가 명품 브랜드들의 광고를 직접 기획한다던가 하는 과감함을 보였다. 그것은 그가 능력도 되지 않는데 단순히 그의 이름만 걸는 식의 작업이 아니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천성적인 완벽주의에서 그따위 이름 팔기 허례허식은 용납될 리도 없었다.

24 thg 3, 2022 — 그는 2~3년을 버티기 힘든 패션 디자이너 업계에서 54년간 펜디의 수장으로 … 유희적 절충주의, 역사주의와 혼성모방, 해체주의 태도와 관련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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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 반란 Ep.04] 먹으면서 하는 단식 모방식단, FMD의 모든 것 | SBS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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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복 디자이너나 한다며 패션계의 질시를 받았지만,

모든 실험과 수양을 통해 자신만의 패션 철학을 펼쳐내다.

193번째 대가의 이야기.

1933년, 독일 북부 도시 함부르크(Hamburg)에서 스웨덴 출신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함부르크에서 커다란 연유 제조회사를 운영했던 부친 덕에 비교적 여유로운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거펠트의 삶을 집요하게 추적해 저서를 남긴 알리시아 드레이크(Alicia Drake)에 의하면,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 실력이 상당히 뛰어났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책을 읽고 공상을 즐겼으며 예술과 옷에 지대한 관심을 드러냈다고 한다.

전설 같은 이야기 중 하나는, 그가 3살 때부터 이미 옷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언제 만들어진 옷감인지 파악할 수 있는 신기에 가까운 능력을 선보였다는 과장스러운 설도 있다.

20살 때인 1953년에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 이주하였으며, 파리 패션계에서 처음에는 삽화가로 일했다. 그러던 중 21살 때인 1954년에 국제 양모 사무국(International Wool Secretariat)이 주최한 신인 디자이너 경연대회에서 울코트 부문 1등 상을 수상하며 패션계에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그 후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발망을 시작한 디자이너 피에르 발망(Pierre Balmain) 밑에서 3년 반 동안 조수로서 일했고, 1958년부터는 쟝 파투(Jean Patou)로 자리는 옮겨 5년 간 쿠튀르 컬렉션을 진행하였다.

1961년 자신의 쿠튀르 하우스를 설립하게 된 이브 생 로랑과 달리 그는 파리 패션계의 아웃사이더로서 마리오 발렌티노(Mario Valentino), 크리지아(Krizia), 찰스 주르당(Charles Jourdan), 슈퍼마켓 체인점 모노프리(Monoprix) 등 다양한 브랜드를 위해 온갖 디자인을 제공하면서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그 는 보수적이고 느린 변화를 추구하는 파리 쿠튀르의 세계에 점차 염증을 느꼈고, 결국 1963년 프리랜서 디자이너로서 독립해 자신의 비즈니스를 시작하였다. 이는 같은 경연대회에서 드레스 부문 1등을 차지하며 비슷한 시기에 쿠튀르에 입문해 디오르의 천재적 계승자로 부상한 이브 생 로랑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행보였다.

그렇게 그는 그보다 3살이 어렸던 이브 생 로랑과 함께 파리에서 수많은 디자인의 의상을 선보이면서 젊고 전도유망한 디자이너로서 강력한 경쟁관계를 형성하였다.

독일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로 일명 패션계의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며, 현대 하이패션의 아이콘 격인 인물을 자처 자신의 이름으로 레이블을 가지고 있던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의 이야기이다.

그는 2~3년을 버티기 힘든 패션 디자이너 업계에서 54년간 펜디의 수장으로 있었고 동시에 80년대 망하기 일보직전이던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어 37년간이나 이끌며 전설을 만들어냈다. 오랜 기간 두 최고급 명품 브랜드의 수장으로 있으며 전 세계 패션 트렌드를 이끈 것 자체만으로 도 패션 디자이너로서 쌓은 아성은 누구도 쉽게 따라잡지 못한다고 인정받는 전설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그러던 중, 1964년 프랑스 브랜드 끌로에(Chloé)에 합류해 수석 디자이너로서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잘 팔리는 컬렉션을 만드는 디자이너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1972년 무렵 끌로에 컬렉션은 패션 미디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되고 라거펠트는 패션을 이끌어가는 디자이너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끌로에와 라거펠트의 관계는 그가 샤넬로 옮기기 전까지 20년간 지속되었고, 9년 간의 공백 후 1992년부터 1997년에도 이어졌다.

1965년 시작된 이탈리아 패션 하우스 펜디(Fendi)와 관계 또한 칼 라거펠트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큰 기반이 되었다. 1925년 로마에서 탄생한 펜디는 숙련된 모피 가공 기술로 유명했으나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브랜드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펜디에 합류한 라거펠트는 펜디 가(家)의 자매들과 함께 펜디의 상징이 된 ‘더블 F’ 로고를 창조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뚜렷이 가시화하는 한편, 무겁고 둔탁한 모피를 가볍고 세련된 패션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전통적으로 부와 사치의 상징이었던 모피는 구멍이 뚫리고, 조각나고, 주름 잡히고, 니트처럼 짜이는 등 해체와 재조합의 실험 과정을 통해 젊고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거듭났다. 1969년에는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이 시작되었고 펜디는 명실공히 모피, 가죽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부상하였다. 펜디는 1977년 기성복 라인을 출시하고, 1984년 넥타이, 선글라스 등 액세서리 컬렉션을 추가하며 세계적인 토털 패션 브랜드로 거듭났고 칼 라거펠트와의 협력관계를 오랜 기간 이어나갔다.

그러던 와중에도 1974년에는 독일에 자기 이름으로 칼 라거펠트 임프레션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끌로에와 펜디와의 성공적인 협력관계를 통해 칼 라거펠트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꿰뚫어 보는 정확한 판단력과 시대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하는 그의 능력을 증명해내었다. 1978년 WWD(Woman’s Wear Daily)와의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자신의 작업을 설명한다.

“…나는 변화를 지지한다. 내가 하는 작업은 나의 관점에서 세상의 변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이 1971년 사망한 뒤 침체를 겪던 브랜드 샤넬에서 1982년 9월 칼 라거펠트의 샤넬 영입을 공식 선언되었다. 독일인이자 기성복 디자이너라는 라거펠트의 정체성과 경력이 거센 반발과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그 정도 소문과 질시는 그의 샤넬 입성을 막지는 못했다.

백여 년 간 패션의 변화를 이끌어 온 파리 쿠튀르의 파워와 위상은 1970년대를 거치며 수익과 트렌드 영향력의 측면 모두에서 크게 약해졌고, 쿠튀르 하우스들은 생존을 위해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샤넬의 소유주들은 샤넬 하우스에도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적극적인 변화와 혁신이 필요함을 직시했고 칼 라거펠트를 적임자로 판단했다. 그는 수년간 파리 쿠튀르에서 훈련받은 경험이 있었고 치열한 기성복 세계에서 노하우를 갈고닦으며 성공을 입증해 왔기에 샤넬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 최적임자로 선택되었다.

라거펠트의 손을 통해 샤넬의 상징과도 같던 우아한 트위드 재킷은 젊은 층까지 사로잡는 경쾌한 스타일로 변신했고, 하위문화의 상징이던 데님, 가죽 등의 소재로 만든 재킷 등도 인기를 끌었다. ‘C’ 두 개가 겹쳐 있는 샤넬의 트레이드마크를 의상이나 가방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 역시 라거펠트였다.

1983년 1월 샤넬 오트 쿠튀르 컬렉션 데뷔 무대를 통해 칼 라거펠트는 죽은 샤넬을 환생시켰다는 평가를 이끌어내며 쿠튀르의 세계에 회귀했다. 끌로에와의 계약이 종료된 직후 1984년부터는 샤넬의 프레타 포르테까지 감독하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샤넬 제국의 건설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라거펠트는 샤넬의 시그니처 트위드 슈트, 샤넬 로고, 샤넬을 상징하는 까밀리아(Camellia), 리틀 블랙 드레스와 클래식 트윈 세트, 샤넬 퀼팅 백, 커스텀 주얼리, 샤넬의 낭만주의 시기인 1930년대 이브닝드레스에 이르기까지 샤넬의 역사 전반을 검토하고 샤넬 하우스의 핵심 디자인 요소들을 재정비했다.

또한 샤넬의 근본정신을 계승하되 동시대의 새로운 취향을 가미하여 샤넬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였다. 라거펠트에 의해 샤넬의 오랜 클래식 아이템들은 대중적인 거리 문화 요소들과 섞여 젊고 캐주얼하게 변화되었다.

1991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칼 라거펠트는 샤넬의 퀼팅 백을 연상시키는 검정 가죽 퀼팅 재킷과 부츠,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실크 드레스를 조합했다. 라거펠트는 고급문화와 스트리트 문화의 자유분방한 요소들을 혼합함으로써 20세기 초 시대의 변화를 주도했던 샤넬의 정신을 되살리는 동시에, 20세기 말 부상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절충주의 미학과 연결했다.

패션계 일각에서는 칼 라거펠트가 상업적 성공만을 위해 샤넬 하우스의 고상함과 순수성을 훼손했다고 비난했지만 그는 결국 샤넬을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브랜드로 변신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뿐만 아니라 영민하게도 라거펠트는 샤넬 이미지의 젊은 변신과 별개로 최고급 럭셔리 브랜드로서 샤넬의 명성을 구축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였다.

오직 샤넬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값비싼 소재들, 깃털 공방 르마리에(LEMARIE), 자수 공방 르사주(LESAGE), 단추 공방 데뤼(DESRUES), 구두 공방 마사로(MASSARO) 등 최고의 프랑스 수공예 공방의 기술을 사용해 제작한 샤넬 쿠튀르는 패션의 오랜 전통이 소멸되어 가는 시기에 범접할 수 없는 샤넬의 위상을 확립하였고, 샤넬 제국 명성의 굳건한 기반이 되었다.

샤넬의 화려한 부활과 더불어 그의 이름에는 파리 패션의 귀족, 제왕이라는 수식어가 따르게 되었고 라거펠트의 역사는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창조적 디자이너의 상을 설명하기 위한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칼 라거펠트는 1984년 Karl Lagerfeld, 1998년 Lagerfeld Gallery 론칭을 이어가며 자신의 브랜드 또한 전개해왔다. 그러나 라거펠트는 끌로에, 펜디, 샤넬 등 기존 브랜드를 혁신하고 재창조하는 데 더 큰 능력을 발휘해왔으며 특히 샤넬과의 작업은 그의 작품 세계의 특징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라거펠트는 샤넬의 역사를 참조했지만 존경을 표하기보다 가볍고 위트 있게 변형시키는 데에 관심을 두었고, 하이패션과 거리 패션, 과거 역사와 현대 문화의 요소들을 자유롭게 혼합해 샤넬 브랜드에 동시대의 가치, 즉 재미와 자유를 부여하였다. 유희적 절충주의, 역사주의와 혼성모방, 해체주의 태도와 관련된 라거펠트의 작업들은, 앤드류 볼튼(Andrew Bolton, 2005)에 따르면 포스트 모더니티 시대의 특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유머와 위트를 사랑한 라거펠트는 샤넬의 라이벌이었던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의 초현실주의적 디자인으로부터 창조적 영감을 얻었다. 1981년 끌로에 컬렉션에서 기타 드레스를 선보였던 라거펠트는 1983년 샤넬 데뷔 무대에서 실크 크레이프 드레스에 르사주 공방의 자수로 샤넬 백의 길트 체인 무늬를 가미해 흡사 벨트가 늘어진 것 같은 트롱프뢰유(Trompe l’oeil) 효과를 선보이며 샤넬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했다.

라거펠트의 초현실주의적 디자인들은 1984년 케이크 모자, 1985년 소파 형태의 모자, 1986년 옷의 앞 뒷면을 바꿔 디자인 한 백워드 슈트(Backward suit) 등으로 이어졌고, 이것들은 1980년대 후반 그의 주요 디자인 목록으로 남았다. 라거펠트는 샤넬과 마찬가지로 단순함을 추구하는 시대에 액세서리가 줄 수 있는 극적 효과에 주목했고, ‘액세서리는 재미있어야 한다. 유머가 필수다. 나는 언제나 나를 즐겁게 만드는 액세서리들을 만든다’고 말했다. 1991년 그의 봄/여름 컬렉션에는 해마 모양의 귀걸이도 등장하였다.

라거펠트는 보수적인 샤넬 클래식의 전통을 해체시키는 과정에서, 역설적이게도 젊은 시절 샤넬이 가졌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더니티의 정신을 되살릴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샤넬 슈트의 구조를 해체시키고 재조합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을 찾았다. 다양한 모양과 재료의 브레이드 장식이 샤넬 슈트에 덧붙여졌고 클래식 샤넬 슈트는 샤넬이 경멸했던 미니 스타일로 대담하게 변형되었다.

1992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라거펠트는 바이커 족 스타일의 퀼트 가죽 재킷과 아름다운 실크 타페타 드레스를 결합시켰고, 이로써 엘리트 문화와 대중문화, 남성 문화와 여성 문화, 기성 문화와 반 문화 사이의 질서에 도전했던 젊은 샤넬의 정신을 새롭게 과시했다.

격식을 갖춘 상류층 패션이었던 샤넬 슈트는 라거펠트에 의해 재킷으로 따로 분리되어 레깅스, 데님 등과 함께 입혀졌고 샤넬의 로고와 까밀리아는 과시적인 장식과 액세서리로 부각되어 샤넬 브랜드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데 이용되었다.

씨엘과 함께

라거펠트는 1920, 30년대의 샤넬 작품들을 연구해 1930년대 샤넬의 로맨틱한 이브닝드레스 또한 부활시켰고, 샤넬과 자신의 관점에서 역사주의라는 새로운 트렌드의 탐구 또한 진행하였다.

<타임> 지는 2012년 그를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100명의 패션 아이콘들 중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2019년 2월 프랑스 파리에서 향년 85세로 사망했다. 사인은 췌장암으로 밝혀졌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그는 파리를 세계 패션의 수도로, 펜디를 가장 혁신적인 이탈리아 브랜드 중 하나로 만드는 데 공헌을 한 창조적 천재였다.’고 하며 그를 추모했다. 유산 상속자 중 하나로 그의 고양이를 지목할 정도로 그의 반려묘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사실도 세상을 놀라게 했다.

칼 라거펠트의 이미지는 오랫동안 검은 안경과 백발의 포니테일 뒤에 가려져 신비주의로 포장되어 온 것이 사실이었다. 실제로 그에 대해 추적해온 작가와 기자들의 취재에 의하면, 그는 휴가도 잘 즐기지 않는 일중독자이자 열정적으로 지적 탐구를 끊임없이 경주했던 인물로 더욱 유명하다.

그는 출판업자이자 서점 ‘7L’의 소유주가 되었고, 자택에 20만 권 이상의 수많은 장서를 보유하고 했다. 뿐만 아니라 1987년 우연한 계기로 샤넬의 첫 번째 프레스 키트(press kit: 기자회견 자료집)를 촬영한 이후 사진의 세계에 빠져들어 자신의 광고 캠페인을 직접 촬영하고 유명 패션 잡지의 화보 촬영을 진행했었다.

G.D와 함께

칼 라거펠트의 오랜 성공은 패션을 넘어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구축되어 온 그의 지적 토대와 탁월한 언어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끊임없이 자신을 재창조해야 한다.’라는 그의 굳은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2000년 그는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이 디자인한 디올 옴므(Dior Homme) 슈트를 입기 위해 13개월 동안 다이어트를 진행해 무려 42kg을 감량했는데, 이는 젊음과 변신에 대한 그의 욕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여기서도 간과해서는 안될 진실이 한 가지 숨어있 다. 그가 그렇게 피나는 다이어트까지 해가면서 입으려 했던 슈트를 디자인 했던 디올의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은 정식 패션을 공부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홍보직원 출신의 파격적인 디자이너 데뷔 역사를 가진 새로운 인물이었다. 왜 이것이 주목할만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가?

대부분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시장에 가서 고무줄 바지를 사서 입지 않는 사실을 논외로 하더라도 전설의 패션 디자이너가 자신이 인정하지도 않는 패션 공부를 정통으로 하지 않은 인물의 옷을 입을 리 없다는 편견을 그는 과감하게 부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디올에서도 에디를 발탁한 것이 그가 가진 감각과 그의 천재성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패션계는 자신들만의 아성을 구축하고 그것에 도전하는 이들에 대해 굉장히 차갑고 높은 성벽을 쌓는 분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에디가 디자인한 슈트를 입기 위해 전설 칼 라커펠트가 피나는 다이어트를 했다는 것은 그가 가진 평상시 패션 디자인 철학을 여실히 증명해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그의 인생을 쭉 살펴보면서 도대체 어디가 그의 실패냐고 또 이해를 못 하고 딴지를 걸 사람이 있을 듯하다. 그는 독일인이다. 독일인을 패션 디자이너로 프랑스와 이태리의 디자인 명가에서 초빙하는 것은 유럽의 문화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 자체만으로 얼마나 큰 장애인지에 대해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디자이너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그가 견습 디자이너를 통해 대가들의 패턴과 유럽 패션계의 흐름을 모두 익히고 그가 독립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10년 가까이 걸렸다. 위에서 간략하게 설명하였지만, 당시 라이벌로 경쟁구도로 여겨지던 이브 생 로랑이 한 브랜드에서 주목을 받으며 일찌감치 자신의 유명세를 키워나갔고 편하게 정점까지 오른 것에 비해 10년이 되는 기간 동안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습득하고 완전히 몸에 배이게 하는데 그는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묵묵히 참고 견뎠다.

그리고 난 후, 그가 바로 인정을 받았던가? 아니다. 그는 그가 10여 년에 걸쳐 수행한 기술과 자신이 여러 가지 구상했던 것들을 다양한 브랜드를 걸치면서 실험하고 또 새로운 형태로 시험하였다. 특히 그가 기성복 디자이너로 일했던 것에 대해 폄하하며 어떻게 명품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할 수 있느냐고 반대 여론이 들끓을 때도 그는 웃으며 그들의 비아냥을 실력으로 입증했다.

너무 장기 집 권하여 ‘샤넬의 집사’라는 별명으로까지 불렸던 그가 샤넬에 들어가 내놓은 제품들은 상상 이상으로 기발한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옷을 만들 때 콘크리트를 박아 넣어 예상치 못한 패턴을 짜넣는다던지, 14FW컬렉션에는 종이 용기에 가방을 넣고 랩핑을 해서 마트 정육점에서 산 고기 1팩을 연상시키는 가방까지 내놓던지, 레스토랑 메뉴판을 클러치백으로 내놓는다던지 한 것들이 바로 그 사례 이 다.

이것은 그를 기성복 디자이너라며 비난하던 자들에게 던지는 일침에 다름 아니었다. 그가 기서복까지 두루 섭렵하지 않았다면 읽을 수 없는 시장의 정서와 젊은이들의 요구와 흐름은 그만이 읽어낼 수 있는 것으로 인정되어 그는 죽어가던 브랜드를 부활시켜 전성기 이상의 것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끊임없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고, 나이와 직업 상관없이 많은 이들과 어울리며 정보와 감각을 읽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패션모델을 비롯하여 할리우드 스타들은 물론이고 지 드래곤이나 제니 등의 한류 스타들과도 가깝게 교류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저 늙고 나이 먹은 할아버지가 젊고 어린애들에게 관심을 보인 정도로 폄하되어서는 안 되는 그만의 정보 수집과 분석의 과정이었고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여든이 넘는 나이가 되도록 현역에서 인정받고 진두지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년이라는 것이 없어져버렸다. 월급을 많이 주는 대기업에서는 능력과 상관없이 오십이 넘는 순간 책상을 빼버린다는 것이 공식화될 정도의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자본주의 시대에서 돈이 전부라고 여기는 기업에서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하지만, 돈이 전부라고 여기는 영리 추구 사업체에서는 그들에게 돈을 만들어주는 능력자를 나이가 많다고 내치지 않는다.

즉, 사오정의 공식은 일반적인 이들에게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면, 오십이 넘으면서 관리자 자리에 가게 되면, 그들은 3,40대에 전성기를 지나 자신의 능력을 보이기보다는 적당히 안주하고 더 많은 월급과 성과급을 가져가는 월급 파먹는 쥐로 회사에 비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감각이 중시되는 하루가 달라지는 패션계에서 여든이 넘도록 현역에서 전설로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뼈를 깎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는지 일반인들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참고로 그는 디자이너의 영역을 뛰어넘어 사진을 직접 찍는다던가 명품 브랜드들의 광고를 직접 기획한다던가 하는 과감함을 보였다. 그것은 그가 능력도 되지 않는데 단순히 그의 이름만 걸는 식의 작업이 아니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천성적인 완벽주의에서 그따위 이름 팔기 허례허식은 용납될 리도 없었다.

당신이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회사에서 당신의 책상을 빼버릴까 봐 두려워할 시간이 있다면, 당신의 능력을 회사에 보이기 위해 노력하라고 일러주고 싶다. 어떤 회사도 자신의 회사에 이익을 가져오는 인물이 여든이 넘었다고 해서 책상을 빼지는 않는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다시 한번 주지하고 싶다. 당신도 이미 알고 있다.

당신이 새롭게 거듭나는 노력을 통해 트렌드에 맞춰 회사에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 인지되는 이상, 회사는 당신이 다른 회사로 나갈까 봐를 걱정하지 당신의 책상을 빼버릴 엄두는 내지도 못한다.

나이 든 이들의 이야기뿐인 듯싶은가? 그저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고, 그나마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대학에서는 그런 거 배운 적이 없다고 투덜거리며 제대로 일은 못하면서 회사의 험담이나 하는 철딱서니 없는 2,30대는 뭐가 다를 것 같은가? 회사는 자선 경영업체가 아니다. 누가 월급을 줘가면서 일을 가르친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들의 입장에서는 나이 들어 일을 하지 않으면서 많은 월급을 퍼가는 월급 도둑놈과 그 2,30대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든이 넘는 평생에 걸쳐 자신의 어제는 오늘과 다르고 그 오늘은 또 내일이 되면 다르다고 당당히 말했던 칼 라거펠트의 말을 전하며 그것이 썩어 빠져 자신의 게으름과 뻔뻔함을 깨닫지 못하고 주변만 탓하는 당신의 정수리에 쏟아지는 얼음물이 되길 바란다.

제가 말한 것들은, 제가 말한 그때에만 유효합니다.

제가 말한 것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지금 제가 말하는 것도, 내일이 되면 아마 기억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일 저는 어제와는 다른 인간이 되어있을 테니까요!

불멸의 아이콘 탄생 – 노블레스닷컴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마르틴 아이슬러는 191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그는 예술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유년 시절부터 예술과 친근한 환경에서 자랐고, 빈 응용예술학교에 다니며 오스카 스튜르나드 같은 바우하우스 학파 교수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1938년, 그는 오스트리아를 점령한 나치를 피해 아르헨티나에 정착한다. 그곳에서 남미에 먼저 도착한 독일계 유대인과 교류하며 건축가·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챕터를 맞이한다. 아이슬러는 유럽의 디자인 철학에 남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소재를 결합하며 새로운 디자인을 연구했다. 그는 ‘토털 인테리어’를 표방하며 집 하나를 디자인하더라도 창문부터 문 손잡이, 옷걸이나 테이블같이 건축물을 구성하는 요소를 해당 건축물을 위해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마르틴 아이슬러의 포트폴리오는 정리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방대하다.

가구에 관심 있는 이가 가장 먼저 주목하는 곳은 역사적으로 완성도 높은 가구를 만들어온 이탈리아다. 장인정신을 높은 가치로 여기는 이탈리아의 전통은 가구 산업이 탄탄하게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했다. 많은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중 1965년 이탈리아에 설립한 타키니(TACCHINI)는 클래식하고 정교한 디자인의 가구를 선보이는 브랜드로, ‘Made in Italy’ 디자인을 표방한다. 실력을 갖춘 가구 디자이너를 꾸준히 발굴해 양성하고 그들이 디자인한 제품을 소개하는 동시에 1930년대 출시한 가구를 재출시하며 명성을 얻었다. ‘이탤리언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주는 타키니의 컬렉션은 심플하고 조화로운 디자인과 장인정신으로 눈부신 완성도를 자랑한다.

이러한 마르틴 아이슬러의 디자인 철학이 담긴 리버시벨의 리미티드 에디션을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패브릭이다. 가구 산업과 함께 ‘이탈리아’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우수한 패브릭 산업이다. 이번 리버시벨 암체어 리미티드 에디션은 스타일리시한 자카드 원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탈리아 장인의 손을 거쳐 특별히 제작한 패브릭은 은은한 에메랄드빛에 반짝이는 펄감이 느껴지는 메탈릭 스레드로 장식했다. 비비드한 컬러와 유려하고 심플한 곡선의 조화가 돋보이는 이번 리미티드 에디션은 리버시벨을 평이한 가구가 아닌, 예술적 아름다움과 장인정신을 함축한 예술품으로 승화시킬 만큼 가치가 뛰어나다.

15 thg 7, 2021 — 모방할 수 없는 상상력 리버시벨 암체어. … 가구에 관심 있는 이가 가장 먼저 주목하는 곳은 역사적으로 완성도 높은 가구를 만들어온 이탈리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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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아이콘 탄생

팬데믹으로 외출을 삼가는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개인의 공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홈 스타일링과 인테리어 디자인이 메가트렌드로 자리 잡아 공간에 포인트가 되는 디자인 가구를 찾는 이도 급격히 늘었다. 미술계에 MZ세대라 불리는 영 컬렉터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냈듯, 아이코닉한 디자인 가구를 컬렉트하는 이들이 늘어나며 리빙 트렌드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가구에 관심 있는 이가 가장 먼저 주목하는 곳은 역사적으로 완성도 높은 가구를 만들어온 이탈리아다. 장인정신을 높은 가치로 여기는 이탈리아의 전통은 가구 산업이 탄탄하게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했다. 많은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중 1965년 이탈리아에 설립한 타키니(TACCHINI)는 클래식하고 정교한 디자인의 가구를 선보이는 브랜드로, ‘Made in Italy’ 디자인을 표방한다. 실력을 갖춘 가구 디자이너를 꾸준히 발굴해 양성하고 그들이 디자인한 제품을 소개하는 동시에 1930년대 출시한 가구를 재출시하며 명성을 얻었다. ‘이탤리언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주는 타키니의 컬렉션은 심플하고 조화로운 디자인과 장인정신으로 눈부신 완성도를 자랑한다.

오는 2021년 7월, 타키니는 브라질의 저명한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마르틴 아이슬러(Martin Eisler, 1913~1977)의 아이코닉한 디자인, 리버시벨의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한다. 이 특별하고도 상징적인 모델에 담긴 철학과 아름다움을 좀 더 깊이 이해하려면 이를 디자인한 마르틴 아이슬러에 대해 먼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왼쪽 디자인 스케치

중앙 디자이너 마르틴 아이슬러

오른쪽 이탈리아 장인의 손길을 거친, 자카드 원단으로 제작한 패브릭.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마르틴 아이슬러는 191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그는 예술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유년 시절부터 예술과 친근한 환경에서 자랐고, 빈 응용예술학교에 다니며 오스카 스튜르나드 같은 바우하우스 학파 교수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1938년, 그는 오스트리아를 점령한 나치를 피해 아르헨티나에 정착한다. 그곳에서 남미에 먼저 도착한 독일계 유대인과 교류하며 건축가·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챕터를 맞이한다. 아이슬러는 유럽의 디자인 철학에 남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소재를 결합하며 새로운 디자인을 연구했다. 그는 ‘토털 인테리어’를 표방하며 집 하나를 디자인하더라도 창문부터 문 손잡이, 옷걸이나 테이블같이 건축물을 구성하는 요소를 해당 건축물을 위해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마르틴 아이슬러의 포트폴리오는 정리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방대하다.

건축과 인테리어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는 1955년 인테리어 포르마에서 그의 상징적 제품 ‘리버시벨’을 출시한다. 관능적이고 모던하면서 아름다운 곡선뿐 아니라 시팅을 자유자재로 변화시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능성까지 갖춘 리버시벨은 그가 영향을 받은 바우하우스의 철학과 유럽을 떠나 남미에 정착하며 새로운 환경에서 전개해나간 그의 인생과 스타일이 담긴 디자인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빈티지 가구 컬렉터 사이에서 입소문만으로 거래되던 리버시벨 암체어는 타키니를 통해 2019년 재출시되었다.

이러한 마르틴 아이슬러의 디자인 철학이 담긴 리버시벨의 리미티드 에디션을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패브릭이다. 가구 산업과 함께 ‘이탈리아’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우수한 패브릭 산업이다. 이번 리버시벨 암체어 리미티드 에디션은 스타일리시한 자카드 원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탈리아 장인의 손을 거쳐 특별히 제작한 패브릭은 은은한 에메랄드빛에 반짝이는 펄감이 느껴지는 메탈릭 스레드로 장식했다. 비비드한 컬러와 유려하고 심플한 곡선의 조화가 돋보이는 이번 리미티드 에디션은 리버시벨을 평이한 가구가 아닌, 예술적 아름다움과 장인정신을 함축한 예술품으로 승화시킬 만큼 가치가 뛰어나다.

리버시벨 리미티드 에디션에는 마르틴 아이슬러의 서명이 각인되어 있으며, 은은하고 고급스러운 에메랄드빛 암체어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 혁신적 디자인으로 탄생해 아방가르드한 존재감을 뽐낸다. 전 세계, 500개 한정으로 제작된 이번 리버시벨 리미티드 에디션은 2021년 7월부터 타키니가 엄격하게 선정한 극소수 딜러십을 통해 단 6개월간 구입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단독 수입사 리치우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문의 02-798-0341

에디터 박재만([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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