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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넓고 단순화된 무게 있는 형태, 대담하고 장식적인 구도법, 평평한 색면, 그림자 없는 묘사, 주관적인 색 등 화가 자신들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었다. 따라서 이들은 그렇다할 공통적인 특징을 갖지 않았고 화파로 부르기에도 작품의 성격이 서로 다르다.

19세기 근대미술 – 후기 인상주의 – 네이버 블로그

19세기 문화의 성격을 결정지어 준 계기가 된 것이 낭만주의이다. 이 운동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개인주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아의 문제에 대한 관심과 자연에 대한 사랑, 중세의 재발견, 이국적이며 괴기한 것에 대한 취향, 무한의 동경, 열정 들이 낭만주의 특성을 이루는 요소들인데 나아가 개인의 해방을 모토로 절대적 가치에 대한 부정과 일체의 제한 · 금지에 대한 무시, 그리고 일체의 외부적 권위에 대한 배제로 나타난다. 이러한 자아몰입과 자기표현이라는 측면에서 19세기 이후, 거의 모든 예술이 이 낭만주의 속에 수렴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념 속에서는 모든 비예술적이고 도덕적이며 지적인 가치에서의 해방과 더불어 논리화되지 않은 감정적인 것의 표현이 예술의 본질과 일치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성과 규칙에 구속되어야했던 창조적 욕망에 자치권을 부여함으로써 예술에 자발성과 생동성을 회복시켜 주고자 했던 것이다. 주관적인 성질이어서 규칙화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금기로 되었던 감정(feeling)이 예술을 예술로서 성립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계기로 대두되게 되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동시에 진리에 이르는 일로부터 우리를 탈선 시킨다고 해서 늘 경원시되기만 해 왔던 상상력(imagination)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미지를 창조하는 능력으로서 인정되면서 철학적으로 정당화되게 되었다.

시인인 스테판 말라르메와 폴 시냑, 카미유 피사로 등의 화가들이 지지하는 무정부주의<무정부주의는 정부의 부재를 의미하는데, 정부는 국가 기관으로써 국민들에 대하여 강제력을 행사함으로써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제도를 통하여 사회를 유지 존속하는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무정부주의는 이것이 인간을 속박하고,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보아서 일체의 간섭과 권력적 작용을 거부하고 있다.> 운동이 폭동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현대도시 생활은 인상주의의 주요한 주제였는데 화가들은 그 화려한 면만 보여주려 하는 경향이 있었다.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은 사실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와 공쿠르 형제의 예를 쫓아 번창하는 파리의 공업 지역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시대의 많은 화가들이 도시를 활량하게 고립되어가는 것으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조명은<19세기 말, 조명의 진보는 도시에 새로운 빛의 효과를 가져왔다.> 도시 주제를 많은 화가의 관심을 끌도록 하였으며 그 시대의 기억할 만한 작품들의 영감이 되었다.

1889년, 19세기 말, 파리에서는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만국 박람회 <만국박람회는 19세기 건축에 내재된 경쟁 구도가 드러난 장이었다. 새로운 공산품을 전시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국가 간에는 산업화 경쟁의 장이었다. 전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구매 계약으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경쟁하는 장이기도 했다.>가 열렸다. 프랑스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데서 오는 정치적 굴욕을 만국박람회를 통해 말끔히 씻는다는 의도로 프랑스를 문화, 정치, 과학기술의 선두주자로 뚜렷이 부각시키기 위해 프랑스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이 소개 되었다. 파리가 세계문화의 중심지가 됨에 따라 무회, 작가, 화가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파리로 모여들었다. 그라나 한편에서는 가난한 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과격한 정치적 행동을 선동하는 등 비참할 정도의 빈곤이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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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근대미술 – 후기 인상주의

1889년, 19세기 말, 파리에서는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만국 박람회 <만국박람회는 19세기 건축에 내재된 경쟁 구도가 드러난 장이었다. 새로운 공산품을 전시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국가 간에는 산업화 경쟁의 장이었다. 전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구매 계약으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경쟁하는 장이기도 했다.>가 열렸다. 프랑스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데서 오는 정치적 굴욕을 만국박람회를 통해 말끔히 씻는다는 의도로 프랑스를 문화, 정치, 과학기술의 선두주자로 뚜렷이 부각시키기 위해 프랑스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이 소개 되었다. 파리가 세계문화의 중심지가 됨에 따라 무회, 작가, 화가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파리로 모여들었다. 그라나 한편에서는 가난한 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과격한 정치적 행동을 선동하는 등 비참할 정도의 빈곤이 문제가 되었다.

시인인 스테판 말라르메와 폴 시냑, 카미유 피사로 등의 화가들이 지지하는 무정부주의<무정부주의는 정부의 부재를 의미하는데, 정부는 국가 기관으로써 국민들에 대하여 강제력을 행사함으로써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제도를 통하여 사회를 유지 존속하는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무정부주의는 이것이 인간을 속박하고,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보아서 일체의 간섭과 권력적 작용을 거부하고 있다.> 운동이 폭동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현대도시 생활은 인상주의의 주요한 주제였는데 화가들은 그 화려한 면만 보여주려 하는 경향이 있었다.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은 사실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와 공쿠르 형제의 예를 쫓아 번창하는 파리의 공업 지역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시대의 많은 화가들이 도시를 활량하게 고립되어가는 것으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조명은<19세기 말, 조명의 진보는 도시에 새로운 빛의 효과를 가져왔다.> 도시 주제를 많은 화가의 관심을 끌도록 하였으며 그 시대의 기억할 만한 작품들의 영감이 되었다.

많은 화가들이 인상주의와는 다소 다른 관점에서 도시를 바라보고 흥미가 덜했던 부분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대도시의 매춘굴이나 복잡한 거리의 소음에 대한 일종의 대항 수단을 추구하려는 자연스런 욕구를 갖게 되었다. 철도망의 확장으로 이동이 쉬워지면서 카미유 피사로와 같은 화가들은 미술 중개상의 기점이 있는 도시와 완전히 격리되지 않고도 전국을 여행할 수 있었다. 소위 ‘원시적인’사회를 찾는 것이 유행이 되었고 퐁타방 단체의 명성은 많은 화가들이 브르타뉴를 찾도록 만들었다. 심지어는 다른 나라의 화가들도 이전에 관심을 가졌던 도시 생활로부터 점점 전원적인 것으로 그 주제를 바꿔가기 시작했다.

(3) 후기 인상주의의 미술사적 배경

19세기 미술사조는 인상주의 개념이 대표적이며, 서구 회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인상주의는 회화에서 색채의 분석적 정신으로 이어져 색채의 혁명을 낳았으며, 인상주의를 정점으로 하여 의식의 전환점을 가져오게 된다. 그것은 물상의 외부적 질서에서 내부적 질서로의 초점의 전환과, 객관주의에서 주관주의로의 전환이며, 또 다른 하나는 사실적인 묘사에서 주관적 상징주의로서의 표현의 문제인 것이다. 즉, 인상주의가 빛의 시각적 인상을 어떻게 보여주느냐 하는 방법적 차원에서 고민하였다면, 후기 인상주의는 전기 인상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여 대상의 겉모습이 아닌 정신성을 추구하였다.

19세기 문화의 성격을 결정지어 준 계기가 된 것이 낭만주의이다. 이 운동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개인주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아의 문제에 대한 관심과 자연에 대한 사랑, 중세의 재발견, 이국적이며 괴기한 것에 대한 취향, 무한의 동경, 열정 들이 낭만주의 특성을 이루는 요소들인데 나아가 개인의 해방을 모토로 절대적 가치에 대한 부정과 일체의 제한 · 금지에 대한 무시, 그리고 일체의 외부적 권위에 대한 배제로 나타난다. 이러한 자아몰입과 자기표현이라는 측면에서 19세기 이후, 거의 모든 예술이 이 낭만주의 속에 수렴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념 속에서는 모든 비예술적이고 도덕적이며 지적인 가치에서의 해방과 더불어 논리화되지 않은 감정적인 것의 표현이 예술의 본질과 일치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성과 규칙에 구속되어야했던 창조적 욕망에 자치권을 부여함으로써 예술에 자발성과 생동성을 회복시켜 주고자 했던 것이다. 주관적인 성질이어서 규칙화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금기로 되었던 감정(feeling)이 예술을 예술로서 성립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계기로 대두되게 되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동시에 진리에 이르는 일로부터 우리를 탈선 시킨다고 해서 늘 경원시되기만 해 왔던 상상력(imagination)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미지를 창조하는 능력으로서 인정되면서 철학적으로 정당화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인상주의 그림은 한편으로는 입체감을 결핍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성이 없다는 것, 다시 말해 ‘공간적 깊이’와 ‘정신적 깊이’를 결핍하고 있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르네상스이래 서구의 전통적 미술에 있어 방법상 기본 원리로 원근법을 폐기하기에 이르렀고, 또한 미술에 있어 그처럼 중요하게 간주되어왔던 주제를 무의미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사실상 사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반사하는 빛의 색을 기록하는 것이라는 입장의 인상주의로서는 피할 수 없는 결함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눈의 감각에만 의지하거나 과학적인 분석에만 의지하는 데에 불만과 미흡함을 깨닫고, 순수회화는 획이나 형상 자체에 근거한 순수성에 달려있다는 반성을 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반성아래 일어났던 사조가 바로 후기 인상주의이다.

[서양미술사] 후기인상주의 회화 / 후기인상주의 특징 / 후기 …

자연적이고 소박한 원시헤어 가치를 느끼는 그림을 주로 그렸죠. ​ [고갱 대표작품] <황색의 그리스도/프라하 나로드니 갤러리> <설교 후의 환영/애든버러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 <자화상/워싱턴 국립미술관> <이아 왈나 마리아: 나는 마리아를 경배한다./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우리는 어디에서 오는가? 무엇인가? 어디로 가는가?/보스턴 미술관>

​후기인상주의[post impressionism]라는 명칭은 영국의 미술비평가인 ‘로저 프라이[Roger Fry]’의 전시회 이름인

이러한 점묘들은 감상자들의 지각 과정에서 서로 자연스럽게 섞이게 됩니다!! 색채를 혼합하지 않아서 명료한 색감을 그대로 표현할 수

13 thg 10, 2014 — 후기인상주의는 인상파 예술 또는 인상파 예술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이를 수정해나갔던 예술경향을 일컫습니다. < 해돋이/모네 作 >. → 인상주의 특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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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후기 인상주의 간단하게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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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후기인상주의 회화 / 후기인상주의 특징 / 후기인상주의 대표화가 / 대표작품 / 쇠라 / 세잔 / 고흐 / 고갱

[서양미술사] 후기인상주의 회화 / 후기인상주의 특징 / 후기인상주의 대표화가 / 대표작품 / 쇠라 / 세잔 / 고흐 / 고갱



​* 후기인상주의 *

안뇽하세요 토토로입니다

오늘 포스팅은, 인상주의와 관련이 아주 깊은, 후기 인상주의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ㅎㅎ

처음에는 신고전주의가 고전주의의 이념을 그대로 수용한 것처럼, 후기 인상주의도 인상주의를 그대로 수용했다고 생각했는데요

이번에는 전혀 다릅니다~ 후기인상주의는 인상주의를 비판하면서 싹트게 된 개념인 것이죠!

< 후기인상주의란? >

​후기인상주의[post impressionism]라는 명칭은 영국의 미술비평가인 ‘로저 프라이[Roger Fry]’의 전시회 이름인

<마네와 후기인상주의>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후기인상주의는 인상파 예술 또는 인상파 예술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이를 수정해나갔던 예술경향을 일컫습니다.

< 해돋이/모네 作 >

→ 인상주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후기인상주의에서 비판하는 것은 인상주의의 ‘표피성’

< 후기인상주의 발생 배경 >

​이전의 인상주의에 대한 회의로부터 발생하게 됩니다.

→ 인상주의는 한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순수한 지각의 양태만 그리고 해석과 의미, 대상성을 배제해

버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이 표면적이고 깊이가 없다는 한계를 가졌고,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새로운 시도의 예술 양상으로서

후기 인상주의가 출몰!!하게 된 것이죠.

< 후기인상주의 특징 - 두 가지 양상 >

(1) 객체의 분석

대상의 진실(본질)을 표현하고자 하는 양상입니다.

​회화는 대상의 표면이 아니라 그것의 핵심, 대상의 본질, 진실을 표현해야 한다. 라고 압축할 수 있겠네요.

수많은 경험의 순간들을 결합하여 대상의 가장 본질적인 진실을 표현하려 했고, 이를 위해 과학적인 이론의 토대 위에서 ​

견고하고 객관적인 회화를 지향했습니다. 후에 큐비즘으로 발전하게 되지요~

– 쇠라, 세잔

(2) 주관적 표현

대상의 핵심보다는 화가 개인의 내면의 진실을 표현하고자 하는 양상입니다.

​외부 현상이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감흥을 그려내는 것을 지향하죠.

– 고갱, 고흐

​< 후기인상주의 대표 화가와 작품 소장박물관 >

(1)-① 쇠라(Geroges Seurat, 1859 ~ 1891)

객체의 분석​, 과학적인 방법론인 광학에 의한 회화를 추구하였습니다.

혼합되지 않는 순색의 작은 점들을 캔버스 전체에 찍어서 형태와 색상을 완성하는 ‘점묘법’ 사용하였죠.

이러한 점묘들은 감상자들의 지각 과정에서 서로 자연스럽게 섞이게 됩니다!! 색채를 혼합하지 않아서 명료한 색감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으면서도 감상자의 눈에는 섞여서 보이니 일석이조랄까요?

또한 질서 있고 견고한 화면의 구성을 추구​하였습니다.

[쇠라 대표작품​]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시카고 미술관>​

<포즈/펜실벤니아 반스재단>

<​르 샤위/개인소장>

<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쇠라 作 >

​< 르 샤위/쇠라 作 >

(1)-② 세잔(​Paul Cezanne, 1839 ~1906)

객체의 분석을 추구한 또 한 명의 후기인상주의 화가입니다.

“사람은 눈과 머리를 같이 가지고 있으니 화가는 이 둘을 같이 써서 작업해야한다.”

→ 이 말은, 인상주의가 순간의 감각에만 사로잡혀서 자연의 굳건하고 변함 없는 형태를 무시했는데 이러한 ‘눈’과

관련한 부분에만 몰두하지 말고 ‘머리’를 이용하여 회화에서 그 진실을 같이 추구하라!!!!!!! 라는 말입니다 ㅎㅎ

30여 점의 빅토아르산의 풍경화를 그렸는데요, 하나같이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것만을 단순한 형태로 실현하였습니다.

​[세잔 대표작품]

<​생 빅토아르 산/개인소장 등 30여점이 다양한 소장기관에 있음>

<사과바구니가 있는 정물/시카고 art institute>

​ <​ 생 빅토아르 산/세잔 作 > ​ ​

<​ 생 빅토아르 산/세잔 作 >

< 사과바구니가 있는 정물/세잔 作 >

(2)-①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 ~1890)​

후기 인상주의에서도 주관적 표현을 추구한 갈래의 화가 중 한 명입니다.

인상주의가 시각의 인상에만 집착했다고 보며, 자유로운 붓질과 강렬한 색채를 통해 예술가 고유의 감정 표현을 할 것을 추구했습니다.

→ 현대 표현주의의 선구자

​’분할필법'(선을 죽 잇지 않고 끊어서 사용)을 이용했는데, 이는 고흐의 격앙되고 불안정한 정서상태를 잘 반영합니다.

일본 목판화에 매료된 흔적들이 많은데요. 대담한 구도나 강렬한 색채 등이 그러한 증거가 되지요.

​[고흐 대표작품]

​<감자를 먹는 사람들/반고흐 국립미술관>

​<탕기영감의 초상/파리 오르세미술관>

<​밤의 카페/개인소장>

<​해바라기/런던 내셔널 갤러리>

<귀에 붕대를 멘 자화상/개인소장>

<별이 빛나는 밤/뉴욕 현대미술관>​

​<의사 가셰의 초상/파리 오르세 미술관>

​< 탕기영감의 초상/고흐 作 >

<​ 밤의 카페/고흐 作 >

​<​ 해바라기/고흐 作 >

< 귀에 붕대를 멘 자화상/고흐 作 >

​< 별이 빛나는 밤/고흐 作 >

< 의사 가셰의 초상/고흐 作 >​

​(2)-② 폴 고갱 (Paul Gauguin, 1848 ~ 1903)

후기 인상주의에서도 주관적 표현을 추구한 갈래의 화가 중 한 명입니다.

사물의 표피적인 외관 대신 색채의 자유로운 사용과 형체의 왜곡을 통해 그의 진정한 감정을 전달하였는데요.

고흐와 달리 눈에 보이는 세계에 구애받지 않고, 현실과 상상을 섞어서 그림을 그림으로써 자유롭게 심상을 표현했다는 것이 특징!

원근법, 명암법 등을 탈피하고 감정에 기반하여 사물을 느끼는 대로를 그렸습니다.

종합주의의 선구자로서 인상주의가 해체했던 색채의 단편(점)들을 강한 윤곽선으로 두른 넓은 면으로서 종합하는 시도를 보이죠.

원시주의 화가로서 구문물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멀리 타히티섬으로 떠나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림을 그립니다.

자연적이고 소박한 원시헤어 가치를 느끼는 그림을 주로 그렸죠. ​ [고갱 대표작품] <황색의 그리스도/프라하 나로드니 갤러리> <설교 후의 환영/애든버러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 <자화상/워싱턴 국립미술관> <이아 왈나 마리아: 나는 마리아를 경배한다./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우리는 어디에서 오는가? 무엇인가? 어디로 가는가?/보스턴 미술관>

< 황색의 그리스도/고갱 作>

​< 설교 후의 환영/애든버러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 고갱 作 >

< 자화상/워싱턴 국립미술관/고갱 作 >

< 이아 왈나 마리아: 나는 마리아를 경배한다./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고갱 作 >

< 우리는 어디에서 오는가? 무엇인가? 어디로 가는가?/보스턴 미술관/ 고갱 作>

아.. 저는 특히 고흐의 그림이 너무 와닿네요

괴롭고 혼란스러울 때의 심정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일까요?

무언가 무겁게 짓눌리는 느낌, 어지럽고 고통스러운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 오네요.

평생을 약물중독으로 인한 환각과 망상에 시달렸던 고흐의 일생 이야기를 담은 책

한 번 읽어보시면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음 포스팅은 ‘표현주의’에 관한 것인데요 뭐 저런 난해한 그림이 있나? 싶은 작품들의

대부분이 이 표현주의에 속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런 작품들 어떻게 감상해야하는지 무엇을 느껴야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후기인상주의 특징과 폴 고갱 – 상큼한 오이씨 – 티스토리

11 thg 7, 2013 — 후기 인상주의특징은 이를 복원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회화의 장을 개척했다. 색면의 구성과 색채, 균형감등에서 인상주의를 극복하고 발전하여 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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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신인상주의/후기인상주의/모네,쇠라,고흐,고갱,세잔/인상주의의 역사와 흐름을 간략하게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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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인상주의(後期印象主義) – 한국미술 다국어 용어사전

1880년대 중반에 인상주의의 빛과 색에 대한 자연주의적 묘사를 거부하며 등장한 미술 사조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1910년에 《마네와 후기인상주의전》에서 비평가 로저 프라이(Roger Fry)가 처음 사용하였다. 후기 인상주의의 주요 미술가로는 폴 세잔(Paul Cézanne), 폴 고갱(Paul Gauguin), 빈센트 반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조르주 쇠라(Georges-Pierre Seurat) 등이 꼽힌다. 이들은 인상주의의 생생한 색 사용과 투박한 붓질은 받아들였으나 기존의 인상주의 작품들과는 달리 상징적인 내용을 다루거나 기하학적 형태를 채택하여 사용하였다. 또한 표현적이고 감정적인 효과를 위해 왜곡된 형태와 자의적인 색 사용을 허용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1920년대 초반부터 후기 인상주의를 언급한 글이 나타난다. 김찬영은 모든 관습을 버리고 화가 자신의 본능에 따른 색, 리듬, 배열을 하는 사조로서 후기 인상주의를 소개했다. 그리고 심영섭은 후기 인상주의를 ‘객관적 사실주의, 인상주의에 반역’을 통해 ‘주관확대주의’를 이루고자 하는 사조라고 기술했다. 1930년대 초반에는 미술 공모전에 출품하는 중고등학생에게 영향을 미칠 정도로 널리 확산되었다. 김주경은 후기 인상주의를 성숙한 자본주의에 도달하지 못한 1920~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토대에 부합하는 예술로 인식했다.

개념정의

1880년대 중반에 인상주의의 빛과 색에 대한 자연주의적 묘사를 거부하며 등장한 미술 사조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1910년에 《마네와 후기인상주의전》에서 비평가 로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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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미술 | 후기인상파, 이 3가지만 알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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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 다국어 용어사전

개념정의

1880년대 중반에 인상주의의 빛과 색에 대한 자연주의적 묘사를 거부하며 등장한 미술 사조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1910년에 《마네와 후기인상주의전》에서 비평가 로저 프라이(Roger Fry)가 처음 사용하였다. 후기 인상주의의 주요 미술가로는 폴 세잔(Paul Cézanne), 폴 고갱(Paul Gauguin), 빈센트 반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조르주 쇠라(Georges-Pierre Seurat) 등이 꼽힌다. 이들은 인상주의의 생생한 색 사용과 투박한 붓질은 받아들였으나 기존의 인상주의 작품들과는 달리 상징적인 내용을 다루거나 기하학적 형태를 채택하여 사용하였다. 또한 표현적이고 감정적인 효과를 위해 왜곡된 형태와 자의적인 색 사용을 허용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1920년대 초반부터 후기 인상주의를 언급한 글이 나타난다. 김찬영은 모든 관습을 버리고 화가 자신의 본능에 따른 색, 리듬, 배열을 하는 사조로서 후기 인상주의를 소개했다. 그리고 심영섭은 후기 인상주의를 ‘객관적 사실주의, 인상주의에 반역’을 통해 ‘주관확대주의’를 이루고자 하는 사조라고 기술했다. 1930년대 초반에는 미술 공모전에 출품하는 중고등학생에게 영향을 미칠 정도로 널리 확산되었다. 김주경은 후기 인상주의를 성숙한 자본주의에 도달하지 못한 1920~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토대에 부합하는 예술로 인식했다.

후기 인상주의(Post Impressionism) – Art & Story

낭만주의는 일반적으로 신고전주의에 반발해서 생겨난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특정한 예술사조가 아니라 기존의 관습, 질서에 반발하여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추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19세기 초에 이러한 태도가 하나의 사조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신고전주의의 이론적 배경이 된 계몽주의에서 주장하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주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게 되었다는 사실이 있다. 낭만주의자들은 이성과 합리주의에 가려져 있던 인간 본연의 모습에 눈을 돌리고, 예술이란 사실 인간의 이성보다는 감성과 상상력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낭만주의 미술가들은 들라크루아가 말한 ‘고귀한 야만인’을 이상적 인간으로 숭배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목숨을 거는 이들이 바로 ‘고귀한 야만인’이었다. 그에 따라 각 개인의 주관적 의지에 대한 존중과 자신과 다른 사상과 종교에 대한 관용의 태도가 본격적으로 대두 되었다. 이러한 세계관에 따라 그림 주제도 개인의 주관적 감정, 자유, 사랑, 이국에 대한 동경, 야생에 대한 관심 등이 되었다.

서양미술사에서 사실주의는 항상 중요한 문제였다. 각 시대마다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춘 사실적 묘사가 중시되었지만, 자연을 정확하게 모방한다는 방법이 자리 잡게 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이다. 사실 19세기의 사실주의 이전의 미술가들은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미화하거나 과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눈에 비친 것을 그대로 정확하게 옮기고자 하는 시도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19세기 초 이후에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장단점을 고루 깨닫고 보다 현실적인 감각을 지닌 미술가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보고 겪은 일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따라서 고대의 신화나 역사 대신 당시의 사람들이나 사건을 소재로 다루게 된다. 사실주의가 등장한 배경에는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으로 근대시민사회를 세운 자신들에 대한 자부심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하여 사실주의 미술가들은 자신들과 상관없는 고대신화나 영웅이야기 대신 당대에 주목하게 되었던 것이다.

시각적 현실, 즉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관심에서 인상주의가 당대를 화면에 담고자 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으로 근대화가 급속히 진행된 19세기 사회는 근대화가 가져온 산물들-기차, 도시인들의 여가생활, 정비된 도시대로 등에 긍정적 입장을 가졌던 인상주의자들의 작품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게 되었다. 도시의 관찰자로서 인상주의 화가들은 순간적이고 우연한 시선을 그림에 담았다. 따라서 이전의 그림에서 중요한 요소였던 설명적이고 서술적인 묘사는 사라지고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삶의 한 순간이 주요한 주제로 등장한다. 이러한 성향에서 스케치풍의 붓터치가 사용되고 원근법은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당시 색채학 연구에서 영향 받아 보색대비가 채색에 중점적인 역할을 했다.

19 thg 12, 2010 — 후기 인상주의는 순간적, 감각적 자연의 인상과 빛의 변화를 화면에서 재현하고자 했던 인상주의가 외형적 면에서 치중하고 너무 무질서하다는 문제의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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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분 미술 | 🎨디테일이 살아있는 후기인상파 총정리! 이것만 알아도 자신감 뿜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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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인상주의(Post Impressionism)

1.명칭의 유래

영국의 미술평론가 로저 프라이가 1910~1911년 겨울, 런던에서 기획한 <<마네와 후기인상주의자들>>이라는 전시회의 표제에서 유래했다. 이후 이 명칭은 종합주의자, 신인상주의자 등 잡다한 명칭으로 불리던 모든 새로운 세대를 통칭하는 용어가 된다.

2. 후기 인상주의의 성립과정

1870년대 이후 인상주의가 국제적 경향으로 확산되면서 이후 등장하는 미술은 필연적으로 인상주의를 의식하게 된다. 인상주의 이후의 미술은 보다 혁신적인 경향을 수반하며, 인상주의의 업적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후기 인상주의는 순간적, 감각적 자연의 인상과 빛의 변화를 화면에서 재현하고자 했던 인상주의가 외형적 면에서 치중하고 너무 무질서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사물의 내면적 정신성과 본질을 근원적으로 파악하려 했다. 사물을 견고한 형태로 재현해 질서을 부여했고, 형태의 리듬과 열정적인 색채로 인간의 내면을 드러냄으로서 20세기의 입체주의와 표현주의의 기초를 마련했다.

3. 신인상주의

인상주의에 문제의식을 제기했다는 공통된 입장과 시기적으로도 같아 후기 인상주의에 속하는 신인상주의는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관점과 기법에 의해 따로 신인상주의라 불리기도 한다.

신인상주의는 인상주의가 가지고 있는 감각적 특성과 무정형성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서 고전미술, 이집트, 비잔틴 미술에서 제시된 장중함과 초월적인 형식미를 작품에 부여하려 했다. ‘신인상주의’라는 명칭은 평론가 페네옹의 쇠라 작품에 대한 글에서 유래되었다. 순수한 색만으로 이루어진 색점들을 병치하는 방법(점묘법 ,또는 분할법)으로 색채를 표현, 색상의 순도를 유지하면서 관객의 시각에 작용해 중간색을 인식하게끔 유도했다. 쇠라, 시냑 등이 대표적 작가이다.

4. 고갱, 반고흐, 세잔 그리고 다른 화가들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은 대체로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풍경과 이국적 풍경 같은 외형적 요소를 자신의 내면과 어떻게 연결하는가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도시로 대표되는 서구사회의 물질적, 기술적 발전에 대한 회의에서 이들은 시골이나 서양이 아닌 곳으로 떠나 자연자체와 이국적 지역의 순수하고 원시적인 모습에 매료되었다.

고갱은 이국적 풍경과 자신의 상상력, 개인적인 경험 등을 혼합하는 종합주의 또는 절충주의로 단순히 회화적 기법에 국한된 작가가 아니라 근대적 입장에 선 화가임이 드러난다.

반 고흐는 일본 목판화에서 큰 충격을 받고, 회화가 갖는 본질적인 속성-평면성을 자각하게 된다. 뚜렷한 윤곽선과 평평한 색채, 휘몰아치는 것 같은 붓터치는 화면의 회화적 리얼리티와 작가의 내면적 감정을 동시에 드러낸다.

세잔은 자연에 내재된 영원한 구조와 사물의 견고하고 지속적인 본질에 대한 관심에서 표현 대상을 기하학적 형태로 단순화하려 했다. 자연의 형태를 원통, 원추, 공모양으로 단순화함으로서 절대적 형태를 추구했다. 이러한 시도에서 복수시점이 등장해 원근법이 사라지고,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한 모습이 하나의 화면에서 재배치됨으로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여기서 제시된 세잔의 파사주(Passage)기법은 이후 입체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5. 후기인상주의의 의의

후기 인상주의는 외부세계의 재현보다 내부적 질서의 불변하는 구조에 대해 관심을 가짐으로서 대상의 사실적 묘사보다는 주관적 느낌이나 내면의 표현에 중점을 두게 된다. 고갱과 반 고흐, 세잔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성향은 회화의 독자성이라는 문제와 직결된다. 회화가 외부세계의 재현물이라는 고정된 위치에서 벗어나 회화자체의 속성인 2차원적 평면의 색채와 형태, 선의 조형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생각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은 20세기 현대미술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추상미술과 직결되는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인상주의(Impressionism)

1. 인상주의 명칭의 유래

1873년 비평가 르루아는 모네의 <해돋이, 인상>(1872-73)을 보고 조롱 섞인 말투로 잡지인『샤리바리』에 인상파 전시회라는 전시평을 썼다. 여기서 인상주의라는 명칭이 유래한다.

2. 인상주의의 성립 과정

쿠르베와 마네가 당대의 현실(19세기 프랑스)과 회화적 현실(물감이 칠해진 2차원적 평면이라는 점)을 그림으로 끌어들여 파란을 일으킨 후, 새로운 미술적 이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바지유, 모네, 피사로, 드가 등은 1860년대 중반부터 마네의 주도하에 바티뇰가에 있는 카페 게르부아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갖게 된다. 프랑스 아카데미로 대표되는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미술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던 이들은 자연과 삶의 단편들을 과학적 태도에 입각해 묘사하려 했다.

3. 자포니즘의 영향

1867년의 파리 만국 박람회를 계기로 일본 목판화가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 인상주의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 이는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활발했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다. 히로시게, 우타마로, 호쿠사이 등등이 그린 판화는 마네, 모네, 피사로, 등과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고갱, 반 고흐에게도 영향력을 파급시켰다. 일본 판화의 평면성과 원색, 나무나 난간에 의해 화면을 잘라내는 방식 등은 서양미술의 보수성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된다.

4. 사진의 영향

1859년 사진이 처음으로 살롱전에서 전시된다. 사진이 이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위치를 점유했음을 드러내는 사실이다. 회화의 막강한 경쟁자가 된 사진은 시각적 현실에 대한 화가들의 관심을 카메라의 초점과 같은 광학적 현상으로 연결시켰다. 아울러 화가들은 기억을 환기시키는 도구로 사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에 이른다. 최초의 인상주의 그룹전이 사진가인 나다르의 작업실에서 개최된 사실은 인상주의와 사진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을 제시한다.

5. 인상주의의 특성

인상주의자들은 관찰과 경험을 통해 시각적 현실이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라는 점을 깨닫고 이를 화면에서 재현하는 문제에 몰두했다.

시각적 현실, 즉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관심에서 인상주의가 당대를 화면에 담고자 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으로 근대화가 급속히 진행된 19세기 사회는 근대화가 가져온 산물들-기차, 도시인들의 여가생활, 정비된 도시대로 등에 긍정적 입장을 가졌던 인상주의자들의 작품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게 되었다. 도시의 관찰자로서 인상주의 화가들은 순간적이고 우연한 시선을 그림에 담았다. 따라서 이전의 그림에서 중요한 요소였던 설명적이고 서술적인 묘사는 사라지고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삶의 한 순간이 주요한 주제로 등장한다. 이러한 성향에서 스케치풍의 붓터치가 사용되고 원근법은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당시 색채학 연구에서 영향 받아 보색대비가 채색에 중점적인 역할을 했다.

사실주의(Realism)

서양미술사에서 사실주의는 항상 중요한 문제였다. 각 시대마다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춘 사실적 묘사가 중시되었지만, 자연을 정확하게 모방한다는 방법이 자리 잡게 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이다. 사실 19세기의 사실주의 이전의 미술가들은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미화하거나 과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눈에 비친 것을 그대로 정확하게 옮기고자 하는 시도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19세기 초 이후에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장단점을 고루 깨닫고 보다 현실적인 감각을 지닌 미술가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보고 겪은 일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따라서 고대의 신화나 역사 대신 당시의 사람들이나 사건을 소재로 다루게 된다. 사실주의가 등장한 배경에는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으로 근대시민사회를 세운 자신들에 대한 자부심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하여 사실주의 미술가들은 자신들과 상관없는 고대신화나 영웅이야기 대신 당대에 주목하게 되었던 것이다.

쿠르베(Courbet, 1819-77)

쿠르베는 사실주의 운동의 기초를 마련한 사람이다. 1848년의 파리 혁명 등 프랑스의 혼란한 사회변동을 목격하면서 그는 현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쿠르베는 신화나 역사를 다루는 관념적이고 현실도피적인 미술에 반대하였다. 그가 한 말인 “나는 천사를 그릴 수 없다. 왜냐하면 천사를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는 사실주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하겠다. 쿠르베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에서 미술소재를 찾았다. 시골의 장례식, 일하는 노동자, 작업 중인 화가 등이 그의 그림의 주인공이 되었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러한 그림에 대해 저속하고 천박하다고 비난을 퍼부었으나 쿠르베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돌 깨는 인부들>(1849년, 드레스덴미술관, 독일 드레스덴, 2차 대전 때 파괴됨)은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서 당대에 충격을 던졌다. 당시 사람들은 천한 노동자와 그들의 비참한 현실이 그림에서 표현되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쿠르베는 자신이 살고, 보고 있는 현실 자체를 그린다는 태도를 보임으로서 주제의 혁신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화가 자신이 보는 것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서 인상주의로 가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도미에(Daumier, 1808-79)

도미에는 생계를 위해 파리에서 주로 신문 삽화가로 일했고, 말년에 이르러서야 회화를 그렸다. 그는 사회 지배층의 위선을 풍자하는 캐리커쳐를 많이 그려, 황제의 미움을 사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또한 도미에는 도시의 일상생활에 대한 묘사를 통해 외롭고 지친 도시인들의 모습을 예리하게 표현했다.

<삼등 열차>(1862년,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미국 뉴욕)는 허름한 열차 안에 비좁게 끼어 앉은 노동자 계층을 묘사한 작품이다. 생활에 지쳐 무표정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이 사람들은 열차라는 그 당시의 최신 교통수단이 상징하는 기계문명 시대의 어두운 그늘을 드러내고 있다.

바르비종 화파

실제의 자연풍경을 그렸던 컨스터블의 영향은 바다 건너 프랑스에도 미쳤다. 1830년경부터 한 무리의 화가들이 프랑스의 바르비종이라는 마을에 모여 컨스터블의 지도아래 야외에서 스케치를 하는 등 그림을 그렸다. 이들을 바르비종 화파라 부르는데,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코로와 밀레다.

-밀레(Millet, 1814-75)

밀레에게 있어 컨스터블의 영향은 풍경에서 인물로 확대되었다. 밀레는 농부들의 진실한 모습과 일하는 장면에 주목했다. 이전의 그림들에서 농부는 대부분 얼빠지고 우둔한 이미지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밀레는 자연 속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표현했다. 그의 그림들에서 농부는 위대한 영웅이나 성인에 뒤지지 않는 고귀하고 위엄있는 존재로 나타나고 있다.

<이삭줍는 사람들>(1857년, 캔버스에 유채, 83.8x111cm, 오르세 미술관, 프랑스 파리)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세 여인은 강인하면서도 품위가 있다. 밀레는 햇볕이 쏟아지는 들판에서 일에 몰두하고 있는 이들을 단순하면서도 단단한 신체의 소유자로 표현하고 구성은 단순하시켜 화면 전체에 엄숙함을 띠게 했다.

2)마네(Manet, 1832-83)

근대회화의 창시자로 불리는 마네는 쿠르베가 주창한 사실주의를 발전시켜 인상주의와 연결시켰다. 쿠르베는 자신이 경험한 바를 옮기는데 열중해, 기법과 표현 방식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못했다. 이점을 뒷받침한 사람이 마네이다. 마네는 쿠르베의 주장에 동의했지만, 이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회화기법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1839년 다게르(Daguerre, 1787-1851)가 사진의 발명을 공식함으로서 대상을 똑같이 화면으로 옮기는 작업은 의미가 없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네는 회화라는 것 자체의 사실성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는 광선에 따라 대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발견해 그림에 적용했다. 묘사에 있어서는 세밀하게 사물을 묘사하는 전통적 기법에서 벗어나 빠르고 즉흥적인 기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방법은 화면을 평평하게 보이게 했다. 그때까지의 회화는 여러 가지 기법을 동원하여 3차원적 입체감을 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마네의 그림은 관객에게 색면으로 뒤덮인 평평한 표면 자체를 보게 함으로서 회화라는 것이 원래 평면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한다. 이러한 회화의 본질자체에 대한 주목이 바로 근대회화의 출발점이다.

그림주제에 있어서도 마네는 파격적이었다. 프랑스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옛 거장들의 작품들을 연구해 자신의 작품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 그러나 마네의 그림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상화된 인물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고 세속적이다. 전통에 대한 이러한 재해석은 당시에 많은 비난을 받았다. 매년 열리던 프랑스의 공식적인 미술전인 살롱(Salon)전에서 마네의 작품은 번번이 떨어지곤 했다. 그러나 살롱전의 정해진 규범에 따라 그림을 그리는 것을 거부했던 미술가들에게 마네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풀밭위의 점심>(1863년, 오르세 미술관, 프랑스 파리)은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인 라파엘로의 작품을 재해석한 것이다. 이 그림은 삼각형 구도, 원근법과 같은 고전적인 회화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묘사된 인물은 전혀 고전적이지 않았다. 두 명의 옷을 입은 남자와 같이 있는 누드의 여인은 너무나 현실적인 외형을 하고 있고 관객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고전적 기법에 의해 그려진 여신의 누드에 익숙했던 당시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고 경악했다. 마네는 부도덕하고 그림솜씨도 형편없는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미술을 밀고 나가 새로운 회화의 세계를 열었다.

낭만주의(Romanticism)

우리는 대체로 예술가가 내면의 감정과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 낸 것이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예술가상이 일반화된건 사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19세기이래 산업과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관심이 더이상 바깥세계만이 아닌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게 되면서부터인 것이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가는 근대적 예술가이다. 이러한 예술가는 바로 낭만주의시대에 등장한다. 따라서 낭만주의는 근대적 예술가와 근대적 예술관을 파생시킨 토대라 볼 수 있다.특히 기존의 관습과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고 각 개인의 주관을 존중하는 관용의 태도의 탄생은 낭만주의가 서양 사회에 왜 그렇게 중요한 의미로 작용하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특성이다.

낭만주의는 일반적으로 신고전주의에 반발해서 생겨난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특정한 예술사조가 아니라 기존의 관습, 질서에 반발하여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추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19세기 초에 이러한 태도가 하나의 사조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신고전주의의 이론적 배경이 된 계몽주의에서 주장하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주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게 되었다는 사실이 있다. 낭만주의자들은 이성과 합리주의에 가려져 있던 인간 본연의 모습에 눈을 돌리고, 예술이란 사실 인간의 이성보다는 감성과 상상력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낭만주의 미술가들은 들라크루아가 말한 ‘고귀한 야만인’을 이상적 인간으로 숭배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목숨을 거는 이들이 바로 ‘고귀한 야만인’이었다. 그에 따라 각 개인의 주관적 의지에 대한 존중과 자신과 다른 사상과 종교에 대한 관용의 태도가 본격적으로 대두 되었다. 이러한 세계관에 따라 그림 주제도 개인의 주관적 감정, 자유, 사랑, 이국에 대한 동경, 야생에 대한 관심 등이 되었다.

우리말로 낭만주의로 번역되는 로맨티시즘은 중세시대에 이야기를 뜻하는 로망스(Romance)에서 나왔다. 명칭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낭만주의는 문학, 중세시대와 매우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물론 19세기의 미술사조 대부분이 문학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낭만주의 미술가들은 아예 문학을 영감의 주요 공급처로 삼았고, 낭만주의 문학가들 역시 미술에 관심을 갖고 미술 이론과 비평을 쓰기도 했다. 들라크루아와 보들레르의 교류가 그 대표적 예이다. 또한 이들은 이성과 질서의 시대인 르네상스 이전의 시대, 즉 중세에 관심을 보였다. 중세에 대한 관심은 미술에만 해당되지 않고 문학, 건축 등 문화 전체에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문학, 중세시대와 더불어 낭만주의자들을 사로잡은 것은 자연이었다. 낭만주의자들은 자연이 갖는 초월성과 위대함에 대한 묘사를 통해 인간의 정신세계를 드러낼 수 있다고 믿었다.

낭만주의 미술의 이러한 특징은 화면에서는 격렬한 움직임, 강렬한 정서, 선보다는 색채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태도로 나타나게 되었다.

a. 프랑스 낭만주의 미술

제리코(Gericault, 1791-1824)

프랑스 낭만주의 선구자인 제리코는 생애 자체가 낭만주의였다. 그는 자신이 원하고 옳다고 여기는 것을 위해 살았다. 제리코의 낭만주의는 옛날 이야기나 먼 외국의 풍경이 아니라 비참하고 모순에 찬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메두사호의 뗏목, 1818-19년, 루브르미술관, 프랑스 파리)은 제리코의 이러한 미술세계를 잘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은 당시 매우 큰 해양사고였던 메두사호 사건이다. 항해 중 조난을 당하자 배의 선장과 선원들은 149명의 승객을 임시로 만든 뗏목에 타게 하고는 도망가 버렸다. 그리하여 승객들은 12일동안 물과 식량도 없이 바다한가운데서 표류하며 비참한 고통을 겪었다. 구조되었을 때 생존자는 겨우 15명이었던 것이다. 제리코는 이 사건을 치밀히 조사했고 정확한 묘사를 위해 부패한 시체, 처형당한 죄수들, 정신병자들을 직접 관찰하고 스케치했다. 이러한 노력과 열정에서 제작된 이 그림에서 제리코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승객들의 삶에 대한 애착이었다. 쓰러져 있거나 안간힘을 다해 구조를 요청하는 승객들의 모습은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처절하고 사실적이다. 제리코의 이러한 생생한 묘사와 비판적 태도는 당시 프랑스 사회에 이 사건의 갖는 심각성을 충격적으로 환기시켰다. 들라크루아(Delacroix, 1799-1863) 제리코가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은 후 프랑스 낭만주의는 들라크루아가 이끌게 되었다. 열정적 기질의 소유자였던 들라크루아는 앵그르로 대표되는 신고전주의에 맞서 인간의 자유로운 정열이야말로 예술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림의 소재를 주로 문학에서 많이 가져왔다. 들라크루아 자신도 문학에 소질이 있었고, 시인이었던 보들레르와 아주 친한 사이로 보들레르는 들라크루아의 미술에 대한 책을 내기도 했다. 들라크루아가 그림에서 표현하고자 한 것은 강한 열정이었다. 따라서 그의 그림에는 폭력 장면과 격렬한 움직임이 표현된 것이 많다. 또한 강렬한 색채가 번뜩인다. 들라크루아는 선의 사용 없이 색채만으로 회화를 완성할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의 이러한 방법은 판 고흐, 드가, 세잔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1827년, 루브르 미술관, 프랑스 파리)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인 바이런의 시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앗시리아의 왕 사르다나팔루스는 전쟁에 패하자 신하들에게 자신의 후궁들과 말을 죽이라고 한 후 자살한다. 들라크루아는 후궁들이 죽임을 당하는 그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붉은 색을 배경으로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는 인체들이 과장되어 그려져 있다. 선명한 색, 연극적인 조명, 대담한 붓칠이 이 장면의 강렬함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b. 영국 낭만주의 미술

영국 낭만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은 시인 바이런이었다. 그의 생애는 낭만주의가 지향했던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인으로서의 재능과 잘생긴 용모로 방탕한 생활을 보내던 바이런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그리스 독립전쟁에 의용군으로 참전했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젊은 나이에 짧은 생을 마치게 된다. 내면의 열정에 따라 안락한 생활을 박차고 나아가 험난한 인생행로를 스스로 택한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낭만주의적 인간상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바이런으로 상징되는 바와 같이 영국 낭만주의는 평온한 삶의 모습보다는 극적이고 변화무쌍한 자연과 삶에 관심을 가졌다. 또한 밀턴, 세익스피어 등의 문학이 자주 그림의 주제로 등장하였다.

퓌슬리(Henry Fuseli, 1741-1825)

원래는 스위스인이었던 퓌슬리는 영국에서 주로 활동을 함으로서 영국의 중요한 화가로 자리잡았다. 퓌슬리는 로마여행을 통해 고대의 유적이 풍기는 황량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분위기에 매료되어 이러한 느낌을 그림으로 남김으로서(<고대의 유물앞에서 감동하는 화가>, 1778-79) 블레이크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또한 그는 인간 내면의 광기와 공포를 드러내는 환상적 분위기의 회화를 제작했고, 세익스피어의 비극과 희극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다수 제작하였다.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

시인이자 화가였던 블레이크는 스스로가 신비로운 영혼의 세계를 경험했다고 주장할 정도로 관념적인 세계에 매료되었던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밀턴의 실락원, 구약성서, 단테의 신곡 등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블레이크는 정식 미술 수업을 받지는 않았지만, 고전 미술 특히 미켈란젤로에게 감화되어 자신의 회화 작품은 회화가 아니라 조각이라고 할 정도였다. 실제로 그의 회화에서 인물들은 무게감과 근육이 강조되어 입체적 느낌이 강하고, 색채의 사용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컨스터블(Constable, 1776-1837)

컨스터블은 터너와 더불어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풍경화가다. 그는 영국의 시골태생으로 황무지와 숲 속을 쏘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의 이러한 경험은 평생 동안 컨스터블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컨스터블은 특히 하늘을 보며 날씨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영국의 시골풍경을 자세히 관찰하여 그림으로 그렸다. 즉 야외에서 실제풍경을 보고 풍경화를 그렸던 것이다. 이러한 야외제작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당시 대부분의 풍경화가들은 실제풍경보다는 전통과 관습에 따라 이상화된 풍경을 그렸기 때문이다.

<건초마차>(1821년, 국립미술관, 영국 런던)에서 컨스터블은 생생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은 날씨를 짐작하게 할 만큼 사실적이다. 농부와 건초마차는 자연스럽게 풍경 속으로 녹아들어가 자연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색을 칠하면서도 그는 물감을 섞지 않고 각 색을 점으로 찍어 색을 내는 것이 더 선명하고 자연의 색에 가깝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터너(Turner, 1775-1851)

터너도 컨스터블처럼 실제풍경에 대한 관찰을 그림으로 나타냈지만 관심의 방향이 달랐다. 컨스터블이 조용한 시골풍경을 선호한 것과 다르게 터너는 광대하고 변화무쌍한 야생의 자연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터너의 풍경화는 험한 산, 안개로 뒤덮인 들판, 폭풍우치는 바다를 펼쳐보인다. 이러한 풍경에 걸맞는 색채 표현 방식을 쫓다가 터너의 그림은 점점 추상화처럼 변해 가게 된다. 그는 유화제작에서 갈색이나 황토색 애벌칠 대신 하얀색 바탕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이다. 따라서 터너의 그림은 이전 그림보다 훨씬 밝고 선명한 느낌을 내게 되었다.

<눈보라 속의 증기선>(1842년, 캔버스에 유채, 91.5x122cm, 테이트갤러리, 영국 런던)에서 터너는 대기와 바람, 증기까지도 표현의 영역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그속에서 버티고 있는 증기선은 대담한 구도와 색채로 거대한 자연의 힘을 느끼게 한다. 터너는 자연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터너의 이러한 대담한 표현방식은 말년에 이를수록 강도를 더해 갔다. 그의 말년 작품들은 형상은 사라지고 색채의 대한 탐구로 거의 추상화에 가깝다.

c. 독일 낭만주의 미술

독일 낭만주의는 사실 유럽의 어느 지역보다 더 일찍 시작되었다. 다만 이 지역은 문학과의 친밀도가 월등히 높아, 미술의 독자적 흐름이 더디게 형성되었다. 독일 낭만주의 미술은 독일 특유의 음울한 정서와 민족주의, 극도로 관념적인 양상에서 문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다. 대표작가로는 프리드리히, 룽게 등이 있다.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프리드리히는 독일 낭만주의 미술가들 중에서도 고요하고 신비스런 풍경과 개인의 내면세계를 연결시킨 작품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개인적 성향 자체가 내향적이고 고독을 즐겼던 프리드리히는 기이하고 관념적인 자연풍경을 통해 내면의 적막과 음울함, 환상을 표현하였다.

[미술사 공부 자료 #5] 고흐의 자화상 ‘후기 인상주의’ 란?!

물감을 두텁게 덧칠하며 최대한의 질감을 표현하고 입체적인 효과를 내려고했으며 (임파스토 기법), 이러한 독창적인 붓 터치로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냈습니다. 다시말해,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똑같이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붓 터치를 통해 아주 강하게 담아냈습니다 . 왜곡된 형태, 강렬한 색채, 형태의 단순화 등을 추구해서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였고, 물결치고 소용돌이 치는 듯한 독창적인 붓 터치 때문에 그의 그림은 열정적이고 생동감이 가득 차 있습니다. 본인이 감정과 생각, 심리상태를 자유롭게 해주는 수단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보여지며, 강렬하고 거침없는 붓놀림과 색채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미술적 감각과 재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흐는 비극적일 정도로 짧은 생애였음에도 불구하고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쳤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명입니다. 아버지가 목사였던 고흐는 어학교사, 서점 직원으로서 일하기도 하며 가난과 불행으로 청년시절을 지내다가 26세가 되던 해, 1880년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 때부터 생을 마감 할 때 까지 약 10년 간 900여점이 넘는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이 그림은 고흐가 끊임없는 망상과 정신질환에 시달려왔을 때 그려진 그림입니다. 자신의 병의 심각성을 깨달은 고흐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는데 이 곳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 때 그린 자화상 중 가장 격렬한 감정이 표현된 것이 바로 이 그림이고, 배경의 붓 터치가 매우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6 thg 6, 2018 — 오늘의 화가 : 빈센트 반 고흐 (후기 인상주의) 이 것만 알아두자! … 이 시기의 특징인 회오리 치는 듯한 붓터치는 자신의 감정을 더욱 격렬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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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신인상주의 vs 후기인상주의 | 미술관이 보이는 미술사 #17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쇠라 #고흐 #미술사 #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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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공부 자료 #5] 고흐의 자화상│’후기 인상주의’ 란?!

[요점만 짚고가는 알기쉬운 서양미술사]

오늘의 화가 : 빈센트 반 고흐 (후기 인상주의) 이 것만 알아두자!

‘나의 눈앞에 있는 것을 그대로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보다 강렬하게 표현가시 위해서 색채를 사용한다.’

– 빈센트 반 고흐-

1. 꼭 알아둬야 하는 대표 작품 : <해바라기> , <별이 빛나는 밤>, <자화상>

2. 출생연도 – 사망 : 1853 – 1890

3. 출생지 : 네덜란드

4. 간략한 화가의 생애 :

고흐는 비극적일 정도로 짧은 생애였음에도 불구하고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쳤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명입니다. 아버지가 목사였던 고흐는 어학교사, 서점 직원으로서 일하기도 하며 가난과 불행으로 청년시절을 지내다가 26세가 되던 해, 1880년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 때부터 생을 마감 할 때 까지 약 10년 간 900여점이 넘는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고흐는 쉽게 격해지거나 흥분하기 쉬운 성격을 가졌었고, 한 가지에 몰두 하면 그 것만 생각하는 성격이였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또, 그는 평범한 미술 수업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거침없는 붓놀림으로 자신의 불안정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만 몰두했습니다.

그의 많은 초상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고흐는 본인의 귓불 부분을 자를 정도의 정신질환을 앓던 화가라고 잘 알려져 있습니다.

왜 귀를 잘랐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그 당시 같은 작업실을 쓰던 고갱과의 트러블 빈번했고, 둘 사이의 우정이 금이 가면서 극도로 불안한 심리상태여서 그랬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 후 정신병원 입 퇴원을 반복하다 결국 권총으로 자살하며 생을 마감하게됩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죽고난 후 그의 명성은 급속도로 커지게 됩니다. 900여점이 넘는 많은 작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죽고 나서야 큰 명성을 누렸기때문에,

그가 생전에 판매했던 작품은

< 붉은 포도밭 >

하나 뿐이 였다고 하는데, 그가 얼마나 좌절을 하며 비극적인 삶을 보냈을 지 생각하면 참 안타깝습니다

.

5. 미술사조 : 후기 인상주의, 표현주의

후기 인상주의는 인상주의 미술 사조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몇몇의 미술가들이 발전시킨 사조입니다.

인상주의가 빛에 의해 변화하는 색채에만 관심을 가진 점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한 나머지, 후기 인상주의에 속하는 화가들은 각자 자신의 주관에 따라 개성적인 화풍을 고집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고흐 같은 화가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내면적인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화가이므로 표현주의의 선구자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표현주의 화가들은 ‘미술이란 실제적인 대상을 그리기보다 개인의 주관적인 감수성을 표현해야 한다’ 고 주장했습니다.

6. 화가의 화풍과 미술기법 : 임파스토 기법

고흐는 주로 자화상이나 꽃들의 정물, 풍경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물감을 두텁게 덧칠하며 최대한의 질감을 표현하고 입체적인 효과를 내려고했으며 (임파스토 기법), 이러한 독창적인 붓 터치로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냈습니다. 다시말해,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똑같이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붓 터치를 통해 아주 강하게 담아냈습니다 . 왜곡된 형태, 강렬한 색채, 형태의 단순화 등을 추구해서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였고, 물결치고 소용돌이 치는 듯한 독창적인 붓 터치 때문에 그의 그림은 열정적이고 생동감이 가득 차 있습니다. 본인이 감정과 생각, 심리상태를 자유롭게 해주는 수단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보여지며, 강렬하고 거침없는 붓놀림과 색채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미술적 감각과 재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붓 터치뿐만 아니라 고흐의 그림에서 볼 수있는 색채들은 아주 강렬합니다.

강렬한 색채대비, 평면적인 스케치, 일본의 채색화스러운 평면적묘사와 채색법은 동 시대에 유행했던 일본의 목판화 (우끼요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일본 목판화인 우끼요에에 대해서는 ‘자포니즘’에 대해 글을 쓸 때 좀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

우연히 그의 손에 들어간 일본목판화의 영향으로 반 고흐의 그림들이 한 층 더 독특하고 강렬하게 달라집니다. 이렇게 색채로도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해 낸 고흐의 그림 속의 색감과 붓 자국을 보고 있으면 그가 얼마다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갖고 있었는지를 느끼게 해줍니다.

<해바라기>

고흐는 해바라기의 화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만큼 해바라기 그림이 잘 알려져 있는데요,

고흐는 자신의 작업실을 해바라기로 가득 채우고 싶어 했을 정도로 해바라기를 좋아했고,

특히 노란색을 가장 좋아했기때문에 해바라기를 주제로 수많은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이 작품 속 해바라기 꽃은 마치 실제 꽃들처럼 생생한 질감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런 표현기법은 고흐가 가장 잘 하는 것 중 하나였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별이 빛나는 밤> 이라는 작품은,

고흐와 작업실을 함께 쓰며 가장 절친으로 알려져있는 화가 ‘고갱’ 과 다툰 후 자신의 귓볼을 자른 사건이 일어납닌다.

그 후 요양병원에 지낼 당시에 그린 그림인데, 고흐에게 밤 하늘은 무한함을 표현하는 대상이었습니다.

또한 고흐는 별을 보는것을 좋아했는데 별을 보는 것이 언제나 자신을 꿈꾸게 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고흐의 작품활동의 중반으로 갈 수록 붓터치는 더 두꺼워지고 열정적으로 변했으며, 꿈틀거리는 선은 별의 반짝이는 색채를 한 층 더 돋보이게 합니다. 이 시기의 특징인 회오리 치는 듯한 붓터치는 자신의 감정을 더욱 격렬하게 표현하고있습니다.

<자화상>

고흐는 자신의 자화상을 많이 남겼습니다. (총 43점의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가난해서 모델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고흐가 끊임없는 망상과 정신질환에 시달려왔을 때 그려진 그림입니다. 자신의 병의 심각성을 깨달은 고흐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는데 이 곳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 때 그린 자화상 중 가장 격렬한 감정이 표현된 것이 바로 이 그림이고, 배경의 붓 터치가 매우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고흐가 화가로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헌신적으로 형을 도와주었던 동생 ‘테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막노동을 하며 작품활동을 하던 고갱 (그 당시 인상파 화가들은 그리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 가난했습니다.) 과 작업실을 쓰게 하고, 고갱과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역시 동생 테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귓불 사건 이후로 고갱은 작업실을 떠났으며 둘의 인연은 절친이라고 불려도 될 까 싶을정도로 그리 길진 않았습니다. )

여튼 수 많은 명작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고흐는 그의 후원자 동생 테오와 오랜 세월동안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 편지의 수는 무려 700통에 달하고 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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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인상주의 – 서정욱의 미술토크로 간단정리! – 햄스토리

폴 세잔 Paul Cezanne (1839 – 1906) 조르주 쇠라 Georges Pierre Seurat (1859 – 1891)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 (1853 – 1890) 폴 고갱 Paul Gauguin (1848 – 1903) 앙리 드툴루즈 로트렉 Henri de Toulouse-Lautrec (1864 – 1901)

자신의 본 풍경을 그대로 보고 그려서 마음, 느낌 감정이 많이 실려있지 않은 모네의 작품과는 다르게 고흐의 작품은 그 때의 화가의 감정, 마음이 표현 되어있습니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 들은 자신의 개성을 표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은 비슷비슷한 그림으로 구별하기 힘든 반면,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은 서로 닮은점이 없이 각자의 개성이 뚜렷합니다.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서,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라고 할 만큼 고향 엑상프로방스를 사랑한 세잔은 생트 빅투아르 산을 30번 넘게 그렸는데 그림을 그리며 더욱 더 산의 본질을 파악하려 노력하고 연구하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피카소에게 영향을 주어 입체주의가 탄생되는 계기가 됩니다.

9 thg 7, 2020 — 제가 너무 좋아하는 유튜브 서정욱의 미술토크에서 후기 인상주의편에서 선생님이 설명해 주시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와, 그 특징을 정리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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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인상주의 영향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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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인상주의 – 서정욱의 미술토크로 간단정리!

제가 너무 좋아하는 유튜브 서정욱의 미술토크 에서 후기 인상주의 편에서 선생님이 설명해 주시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 와, 그 특징을 정리 한 것입니다.

미술사 후기 인상주의 – Post Impressionism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5M5OudRyG8Y

19세기 아카데미즘 미술을 잠재우며 새로운 미술역사를 만든 인상주의 작가들이 있. 19세기 후반, 그 인상주의에도 만족하지 못한 화가들의 작품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폴 세잔 Paul Cezanne (1839 – 1906) 조르주 쇠라 Georges Pierre Seurat (1859 – 1891)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 (1853 – 1890) 폴 고갱 Paul Gauguin (1848 – 1903) 앙리 드툴루즈 로트렉 Henri de Toulouse-Lautrec (1864 – 1901)

인상주의에 대한 불만 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술 탄생된 것인데요. 이들의 개성있는 새로운 시도는 큐비즘, 포비즘 같은 현대미술의 기반이됩니다. 이를 후기 인상주의, 탈 인상주의 라고 부릅니다.

인상주의 모네 의 작품과 대표적인 후기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 (1853 – 1890) 의 작품을 비교해봅니다.

모네의 양귀비 들판 1873 /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 1888

자신의 본 풍경을 그대로 보고 그려서 마음, 느낌 감정이 많이 실려있지 않은 모네의 작품과는 다르게 고흐의 작품은 그 때의 화가의 감정, 마음이 표현 되어있습니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 들은 자신의 개성을 표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은 비슷비슷한 그림으로 구별하기 힘든 반면,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은 서로 닮은점이 없이 각자의 개성이 뚜렷합니다.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 Camille Pissarro (1830-1903)와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 Paul Gauguin (1848 – 1903)의 작품도 비교해 보겠습니다.

피사로의 하이드 파크 런던 1890 / 고갱의 타히티의 여인들 1891

피사로는 모네의 작품과 비슷하게 느껴지고, 고갱의 그림은 개성이 넘칩니다. 어떤 고갱의 그림을 보아도 고갱의 그림임을 알아차릴정도로 그의 개성이 뚜렷합니다.

후기 인상파 화가들은 당대에는 인정을 못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생전 고흐도 단 1점 그림 판매했으며 늘 가난에 시달렸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무리 합니다. 고 갱 가난과 외로움으로 말년을 보냅니다. 살아서 큰 부를 누린 모네와 비교가 됩니다.

또 다른 후기 인상주의의 화가 쇠라의 그림은 독특하게 점으로 그렸습니다. 색채가 시각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과학 이론을 연구를 했다고 하는데요. 그의 점묘법으로 그린 그림에는 과학적 이론이 숨어있습니다. 지금의 인쇄방식과 비슷한 방식으로 그림 그림으로 묘한 느낌을 줍니다.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1884~1886 / 그랑드 자트 섬의 센 강, 봄 1888

폴 세잔 Paul Cezanne (1839-1906)의 작품을 보면 견고하고 빈틈없는 그림을 그리려고 그가 한 노력이 보입니다.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서,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라고 할 만큼 고향 엑상프로방스를 사랑한 세잔은 생트 빅투아르 산을 30번 넘게 그렸는데 그림을 그리며 더욱 더 산의 본질을 파악하려 노력하고 연구하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피카소에게 영향을 주어 입체주의가 탄생되는 계기가 됩니다.

생트 빅투르산과 소나무 1887 / 사과가 있는 정물 1890

생트 빅투르산과 소나무 1887 사과가 있는 정물 1890 “세계역사상 유명한 사과 세개가 있다. 첫째는 이브의 사과이고, 둘째는 뉴턴의 사과이며, 셋째가 세잔의 사과이다.” 세잔과 동시대에 살았던 모리스 드니 가 한 유명한 말도 있습니다.

앙리 드툴루즈 로트렉 Henri de Toulouse- Lautrec (1864 – 1901)

몽마르트 언덕의 한 캬바레 물랑루즈를 배경으로 한 그림이 많은데요. 포스터의 시작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있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다른 후기인상주의 그림들과 어떠하다 할 공통점이 없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개성이 넘쳤다는게 공통점입니다. 그의 작품은 지금보아도 세련되었습니다.

Ambassadeurs 1892 / Moulin Rouse 1891

이렇게 인상주의를 반하며 탈 인상주의로 나아가던 이들의 도전과 노력때문일지 후세의 우리가 보기에는 그들의 스토리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이렇게 서정욱의 미술토크를 정리해보았는데요. 7분짜리 짧은 동영상이라 정리랄꺼 없이 거의 옮겨적은것이 많은데요.

이렇게 적다보니 왜 제가 좋아하는 거의 모든 화가들이 후기 인상주의인지 알것 같습니다. 평범하고, 대세를 따르기를 좋아하는 저는… 도전하며, 조금씩 다른 생각으로 대세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동경하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편하게 당시대의 흐름에 맞는 그림으로 부를 누릴 수도 있던 예술가들이 새로운것에 대한 도전하며 비평에도 굴하지 않고 그들의 길을 갔던것에 대한 숭고한 예술인의 정신이 감동으로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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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인상주의 (Postimpressionism) – 크리스천 라이프 – 에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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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thg 3, 2020 — 뚜렷한 윤곽선과 단순화한 형태, 음영과 그림자가 없어서 평평한 느낌을 주는 색면, 실제 대상의 색깔과는 다른 강렬한 색채가 고갱 그림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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