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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미터 14좌 – 나무위키
5 ngày trước — 모든 14좌 봉우리는 히말라야 산맥과 카라코람 산맥에 있다. 구체적으로 히말라야 산맥에 10개,[2] 카라코람 산맥에 4개[3]가 있다. 국가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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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8000미터 14좌(eight-thousanders) – 네이버 블로그
다. 우리나라 14좌의 완등은 박영석이 시작한다. 박영석운 2001년 7월 22일 14좌를 처음 완등했다(엄홍길은 2000년 7월 31일 14좌의 완등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나, 1993년의 시샤팡마 등정 성공 여부에 논란이 있어 재등정에 성공한 2001년 9월 21일을 기준으로 한다). 2007년에는 엄홍길이 위성봉을 포함한 세계 최초로 16좌를 완등했다. 2013년에는 김창호가 한국인 최초로 무산소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우리나라 14좌 완등자는 현재 박영석 대장(2001; 세계 7번째), 엄홍길 대장(2001; 세계 8번째), 한완용 대장(2003; 세계 11번째), 김재수 대장(2011; 세계 27번째), 김창호 대장(2013; 세계 31번째), 김미곤 대장(2018; 세계 41번째) 총 6명이 있다(이탈리아 7명, 스페인 6명, 네팔 5명, 일본은 2012년 竹内洋岳 1명이다).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14좌 완등에 성공한 것은 2010년 4월 27일 대한민국의 오은선이나, 칸첸중가의 등정 성공에 논란이 있어 대한산악연맹 등은 칸첸중가의 등반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공식 기록에서도 빠져 있다). 오은선과 경쟁하던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Edurne Pasaban Lizarribar)은 2010년 5월 17일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2011년 8월, 오스트리아의 게를린데 칼텐브루너(Gerlinde Kaltenbrunner)는 여성으로서는 오은선 다음 2번째(공식 기록으로는 첫번째)로 14좌 무산소 완등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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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14개. 고봉 14좌에 대해 알아보자. [짧고 굵은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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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8,000미터 14좌(eight-thousanders)
3. 14좌 등반의 역사, 그리고 완등자들
가. 8000미터가 넘는 산 중에 처음으로 등반에 성공한 곳은 안나푸르나 1봉으로, 1950년 6월 3일 프랑스의 모리스 에르조그(Maurice Herzog)와 루이 라슈날(Louis Lachenal)이 등반에 성공했다. 처음으로 전체 14개 봉을 모두 등반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로 1986년 10월 16일 완등에 성공했다. 그것도 모두 무산소로 완등한 것이다. 메스너와 경쟁을 벌였던 폴란드의 천재 산악인 예지 쿠쿠츠카(Józef Jerzy Kukuczka)가 1년 후인 1987년 두 번째로 완등에 성공했다. 그는 에베레스트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무산소로 등정했고, 무엇보다 로체를 제외한 13좌를 신루트로 개척하거나 동계에 등반했다(9개의 신루트를 개척했는데 그 중에서 K2 남벽의 경우 현재까지 재등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완등자 중 완등 기간이 짧은 9년이란 기록을 세웠고, 칸첸중가·안나푸르나·초오유·다울라기리를 동계 초등하는 업적을 남겼다. 메스너의 완등 9년 후인 1995년, 에르하르트 로레탕(Erhard Loretan)이 두 번째로 무산소 완등에 성공했다. 로레탕은 히말라야에 과감히 알파인 스타일을 적용한 속도등반의 명수다. 그는 1982년 낭가파르바트를 시작으로 1995년 10월 칸첸중가를 마지막으로 13년 동안 14개 봉을 완등했는데 1986년 8월에는 에베레스트 북벽을 2박 3일만에 오르내리는 속도등반을 구사해 산악계를 놀라게 했다. 그런데 네팔인 니르말 푸르자(Nirmal Purja)가 2019. 10. 29. 중국 시샤팡마(해발 8012m)봉 정상에 올라 14좌를 6개월 6일(189일) 만에 ‘최단기간’ 완주하였다. 그는 4월 23일 네팔의 안나푸르나(8091m)봉을 시작으로 다울라기리(8167m, 5월 12일), 캉첸중가(8586m, 5월 15일)를 차례로 정복한 다음 5월 22일 에베레스트(8848m), 같은 날 로체(8511m)봉을 등정하고, 이틀후인 24일에는 마칼루(8463m)에 올른다. 푸르자는 잠시 물을 마시러 내려왔다면서 7월부터 다시 산에 올라 7월 3일 파키스탄의 낭가파르밧(8125m), 15일 가셔브룸1봉(8068m), 18일 가셔브룸2봉(8035m)을 차례로 등정하고, 곧이어 K2(8611m, 24일)와 브로드피크(8047m, 26일)에 오른다 . 그리고 9월 23일 중국쪽 초오유(8201m), 27일에는 네팔 마나슬루(8163m)에 오르면서 14좌 완등을 눈앞에 둔다. 그러나 시샤팡마가 위치한 중국 티벳 자치주의 출입허가 때문에 1개월 가량을 쉬다가 10월 29일 시샤팡마를 오르면서 14좌 완등을 마친것이다. 그동안 14좌 완등 최단기록은 폴란드 출신 저지 쿠쿠츠카(Józef Jerzy Kukuczka)가 1987년 세운 8년의 기록, 2005년 7월 14일 낭가파르바트(8,156m) 등정을 시작으로 2013년 5월 20일 에베레스트(8,848m) 등정까지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우리나라의 김창호의 7년 10개월의 기록이었다. 2019년 12월 현재까지 14좌를 완등한 사람은 43명이다.
나. 우리나라의 경우 나름 세계 등반사에서 강국에 속하지만 아쉽게도 초등 기록은 없다. 지금까지 초등은 모두 외국인의 몫이었다. 히말라야 14좌의 초등은 대부분 1950~60년대에 이뤄졌는데 우리나라의 첫 에베레스트 초등은 1970년대다. 고상돈(1979년 사망)이 1977년 9월 15일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한국인으로서는 히말라야 14좌 등정의 첫 신호탄을 쏜 것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도전한 10번째 국가로서 세계 8번째 등정이었다. 등정자 순서로는 57번째다. 당시 고상돈은 새벽 5시 30분 제5캠프를 떠나 7시간 20분 만에 정상 정복에 성공했다. 그는 정상에 올라서 “여기는 정상이다. 더 오를 데가 없다”고 말해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국 여성으로는 지현옥이 1993년 에베레스트를 첫 등정했다. 지현옥은 1988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를 한국 여성으로선 처음 오른 이후 1993년 에베레스트도 한국 여성 최초로 올랐다. 그러나 지현옥은 1999년 안나푸르나 등정 후 하산길에 실종되고 말았다.
다. 우리나라 14좌의 완등은 박영석이 시작한다. 박영석운 2001년 7월 22일 14좌를 처음 완등했다(엄홍길은 2000년 7월 31일 14좌의 완등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나, 1993년의 시샤팡마 등정 성공 여부에 논란이 있어 재등정에 성공한 2001년 9월 21일을 기준으로 한다). 2007년에는 엄홍길이 위성봉을 포함한 세계 최초로 16좌를 완등했다. 2013년에는 김창호가 한국인 최초로 무산소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우리나라 14좌 완등자는 현재 박영석 대장(2001; 세계 7번째), 엄홍길 대장(2001; 세계 8번째), 한완용 대장(2003; 세계 11번째), 김재수 대장(2011; 세계 27번째), 김창호 대장(2013; 세계 31번째), 김미곤 대장(2018; 세계 41번째) 총 6명이 있다(이탈리아 7명, 스페인 6명, 네팔 5명, 일본은 2012년 竹内洋岳 1명이다).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14좌 완등에 성공한 것은 2010년 4월 27일 대한민국의 오은선이나, 칸첸중가의 등정 성공에 논란이 있어 대한산악연맹 등은 칸첸중가의 등반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공식 기록에서도 빠져 있다). 오은선과 경쟁하던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Edurne Pasaban Lizarribar)은 2010년 5월 17일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2011년 8월, 오스트리아의 게를린데 칼텐브루너(Gerlinde Kaltenbrunner)는 여성으로서는 오은선 다음 2번째(공식 기록으로는 첫번째)로 14좌 무산소 완등에 성공했다.
라. 고산등반에 있어서 정상에 오르는 방법으로 등정주의와 등로주의가 있다. 등반의 방식에 대한 철학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등정주의는 어떻게 하든 정상만 올라가면 된다는 것이고, 등로주의는 어떤 길로, 어떤 방식으로 오르느냐를 중요시 한다. 등정주의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인원과 물량공세를 펼치면서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적이다. 상업등반의 전형적인 형식이다. 등로주의는 단순히 정상까지 올라가기만 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거나. 어려운 루트를 개발하거나, 산소를 이용하지 않는 등 알피니즘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등정주의가 많은 사람들로 등반대를 구성하는데 비하여 등로주의는 최소한의 사람으로 정상을 공격한다. 물론 산소통을 가지고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등로주의의 선구자는 영국의 등반가 머머리(Albert Fredelic Mummery)다. 그는 19세기말에 주로 활동하면서 당시 일반적인 등반방식인, 능선을 따라서 산을 오르는 등정주의와는 달리 벽을 통해 정상으로 향하는 등로주의라는 새로운 등산사조를 창시하였다. 그는 등로주의를 실천하면서 낭가파르밧에서 단독등반을 시도하다 사망했는데, 낭가파르밧에는 머머리의 이름을 딴 등반루트가 남아있다. 최근의 세계적인 등반추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고산등반은 아직 등정주의를 크게 못 벗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8천m급 14개 고봉의 완등자 6명을 보유하고 있어도 산악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박영석 대장이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새로운 루트를 내면서 완등한 후 이제부터는 8천m 14좌에 모두 코리안 루트를 내겠다고 말했었고, 김창호는 국내 최초로 무산소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하면서 세계 산악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아직 산악계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황금피켈상(Piolets d’or)을 받지 못하였다. 황금피켈상은 전 세계 산악인들을 대상으로 한 해 동안에 있었던 최고의 가치를 지닌 등반 업적을 평가해서 수여하는 상으로 매년 1월 프랑스의 그레노블에서 개최된다. 피켈을 뜻하는 프랑스어 ‘삐올레(piolets)’와 황금을 뜻하는 ‘디오르(d’or)’를 합성한 단어로 상 이름을 정했다. 산악계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린다. 프랑스 산악 전문지 『몽타뉴 매거진』에서 한 해 동안 가장 뛰어난 등정을 한 산악인(팀)에게 수여하는데, 무산소, 알파인(셰르파 등 지원조의 도움 없이 독자적인 루트를 개척하며 등반하는 방식) 등반자에게만 수상 자격이 주어진다. 프랑스의 고산등산협회(GHM)가 수여한다. 프랑스 산악 전문지 ‘몽타뉴’와 고산등산협회가 1991년 제정했다. 알피니즘의 미래 지향적인 전형을 제시하는 이 상이 목표로 하는 최고 가치는 ‘순수’다. 황금피켈상은 자연을 보호하고, 히말라야와 세계 각지의 거벽을 대상으로 소수 경량의 빠른 등반으로 아름다운 등반선을 창출하는 등반 활동을 통해 미래의 알피니즘을 투영해 볼 수 있는 상으로 탄생했다(등산상식사전, 2010. 10. 7., 이용대, 한국등산연구소).
4. 14좌의 모습
(1) 에베레스트산(Mount Everest)
8000미터 봉우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8000미터 봉우리(영어: eight-thousanders)는 지구상에서 해발 8,000미터가 넘는 14개 봉우리를 말하며, 모두 히말라야산맥과 카라코람산맥에 위치하며 이를 14좌(座)라고 한다. 여기서 좌는 높은 산봉우리를 세는 단위이다.[1] 14좌 외에 8,000미터가 넘으면서도 주봉과 산줄기가 같아 위성봉으로 분류되는 얄룽캉산(8,505m)과 로체샤르산(8,400m)를 더해 16좌라고 부르는 사람도 간혹 있으나 “좌”는 별자리의 항성(위성에 대비하여는 행성)이며 ‘위성봉’은 말 그대로 위성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16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14좌는 봉우리의 높이에 따라 구분한 것이 아니라, 세계지리학회 등에서 면밀히 조사하여 구분한 ‘산군’의 분포에 따라 14개의 산군의 각 ‘주봉’에 붙여진 것으로 임의로 추가할 수 없다.
처음으로 전체 14개 봉을 모두 등반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로 1986년 10월 16일 완등에 성공했다. 1년 후인 1987년에는 폴란드의 예지 쿠쿠츠카가 두 번째로 완등에 성공했다. 메스너는 전체 14개 봉을 모두 산소의 도움 없이 무산소로 등정에 성공했다. 메스너의 완등 9년 후인 1995년, 에르하르트 로레탕이 두 번째로 무산소 완등에 성공했다. 대한민국에서는 박영석이 2001년 7월 22일 14좌를 처음 완등했다[2] 2007년에는 엄홍길이 위성봉을 포함한 세계 최초로 16좌를 완등했다. 2013년에는 김창호가 한국인 최초로 무산소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14좌 완등에 성공한 것은 2010년 4월 27일 대한민국의 오은선이나, 칸첸중가의 등정 성공에 논란이 있어 대한산악연맹 등은 칸첸중가의 등반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은선과 경쟁하던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은 2010년 5월 17일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2011년 8월, 오스트리아의 게를린데 칼텐브루너는 여성으로서는 오은선 다음 2번째로 14좌 무산소 완등에 성공했다.
8000미터 봉우리(영어: eight-thousanders)는 지구상에서 해발 8,000미터가 넘는 14개 봉우리를 말하며, 모두 히말라야산맥과 카라코람산맥에 위치하며 이를 14좌(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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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좌 무산소 등정’ 김창호 대장, 혹독한 자연 앞에서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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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히말라야산맥의 고봉
8000미터 봉우리(영어: eight-thousanders)는 지구상에서 해발 8,000미터가 넘는 14개 봉우리를 말하며, 모두 히말라야산맥과 카라코람산맥에 위치하며 이를 14좌(座)라고 한다. 여기서 좌는 높은 산봉우리를 세는 단위이다.[1] 14좌 외에 8,000미터가 넘으면서도 주봉과 산줄기가 같아 위성봉으로 분류되는 얄룽캉산(8,505m)과 로체샤르산(8,400m)를 더해 16좌라고 부르는 사람도 간혹 있으나 “좌”는 별자리의 항성(위성에 대비하여는 행성)이며 ‘위성봉’은 말 그대로 위성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16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14좌는 봉우리의 높이에 따라 구분한 것이 아니라, 세계지리학회 등에서 면밀히 조사하여 구분한 ‘산군’의 분포에 따라 14개의 산군의 각 ‘주봉’에 붙여진 것으로 임의로 추가할 수 없다.
8000미터가 넘는 산 중에 처음으로 등반에 성공한 곳은 안나푸르나 1봉으로, 1950년 6월 3일 프랑스의 모리스 에르조그와 루이 라슈날이 등반에 성공했다.
처음으로 전체 14개 봉을 모두 등반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로 1986년 10월 16일 완등에 성공했다. 1년 후인 1987년에는 폴란드의 예지 쿠쿠츠카가 두 번째로 완등에 성공했다. 메스너는 전체 14개 봉을 모두 산소의 도움 없이 무산소로 등정에 성공했다. 메스너의 완등 9년 후인 1995년, 에르하르트 로레탕이 두 번째로 무산소 완등에 성공했다. 대한민국에서는 박영석이 2001년 7월 22일 14좌를 처음 완등했다[2] 2007년에는 엄홍길이 위성봉을 포함한 세계 최초로 16좌를 완등했다. 2013년에는 김창호가 한국인 최초로 무산소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14좌 완등에 성공한 것은 2010년 4월 27일 대한민국의 오은선이나, 칸첸중가의 등정 성공에 논란이 있어 대한산악연맹 등은 칸첸중가의 등반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은선과 경쟁하던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은 2010년 5월 17일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2011년 8월, 오스트리아의 게를린데 칼텐브루너는 여성으로서는 오은선 다음 2번째로 14좌 무산소 완등에 성공했다.
8000미터 봉우리 목록 [ 편집 ]
8000미터 14봉 완등에 성공한 사람 [ 편집 ]
논란이 있는 완등 주장자 [ 편집 ]
사진 [ 편집 ]
각주 [ 편집 ]
↑ 우리말샘 – -좌 등 가 나 엄홍길 은 2000년 7월 31일 14좌의 완등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나, 시샤팡마의 1993년의 등정 성공 여부에 논란이 있어 재등정에 성공한 2001년 9월 21일을 기준(아홉번째 완등자)으로 한다. ↑ 카르솔리오는 1988년 마칼루를 내려오면서 응급 상황에 산소를 사용했다
같이 보기 [ 편집 ]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불편한 진실 – 신동아 – 동아일보
오은선씨가 4월27일 안나푸르나 정상에서 태극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사진은 등반을 동행한 KBS 정하영 촬영감독이 오은선 대장의 카메라로 촬영한 것이다.
18 thg 5, 2010 —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자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저명인사로 급부상한 국내 여성 산악인 오은선(44)씨가 4월27일 마지막 남은 봉우리던 히말라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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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히말라야 14좌 완등의기록 나는 살아서 돌아왔다 [인생실험] KBS 2000.09.10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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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완등의 불편한 진실
오은선씨가 4월27일 안나푸르나 정상에서 태극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사진은 등반을 동행한 KBS 정하영 촬영감독이 오은선 대장의 카메라로 촬영한 것이다.
8000m가 넘는 봉우리는 얼마나 오르기 어려운가.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자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저명인사로 급부상한 국내 여성 산악인 오은선(44)씨가 4월27일 마지막 남은 봉우리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해발 8091m) 정상에 오르는 과정은 일반인에게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하게 했을 법했다. KBS가 이 과정을 생방송으로 보도한 덕분이다.오씨가 정상까지 불과 수십 미터를 남겨두고 힘겹게 한발 한발 정상을 향해 내딛는 동안 함께 동행한 셰르파 한 명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메라 앞을 왔다, 갔다 하지 않았던가. 고산 지대가 원래 삶의 터전인 셰르파들이야 그렇다 치자. 그런데 전문 산악인 출신도 아닌 KBS 카메라맨도 오씨와 함께 정상에 오르지 않았나.그럼에도 8000m가 넘는 봉우리를 오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종종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기자는 2년 전인 2008년 5월 산악인 박영석씨를 따라 중국 쓰촨성 간쯔자치주 신싱향의 궁가산 일대 6000m급 미답봉 등반을 따라가 고산 등반의 어려움을 생생히 체험한 적이 있다.체력적으로나 운동 능력으로나 또래 평균치보단 위쪽에 있다고 자부해왔지만 해발 3900m에 세운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심한 고소증세로 고생했다. 높은 곳으로 갈수록 공기 중 산소량이 희박해져 신체의 신진대사 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사람마다 고소증상이 다른데 몸살감기를 앓을 때의 심한 오한을 동반한 두통이 그중 흔한 증상이다. 식욕은 떨어지고 오줌은 전립선 비대증에 걸린 것처럼 찔끔찔끔 나온다. 대사능력이 떨어져 몸 안에 쌓이는 배설물 배출이 어려워진 것이다. 침낭을 둘둘 말고 마냥 누워만 있고 싶지만 몸을 움직이지 않을수록 고소증상이 더 악화되기 때문에 더욱 괴롭다. 고소에 적응하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어느 정도 몸이 좋아진 기자는 해발 5200m에 세운 캠프1까지 기세 좋게 따라갔다가 죽는 줄 알았다. 올라가는 동안 호흡이 점점 가빠지더니 나중엔 두 걸음마다 멈춰 쉬어야 할 정도가 됐다. 캠프1의 텐트에서 고통스러운 하룻밤을 보내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해가 뜨기도 전에 혼자 설사면을 기다시피 해 베이스캠프로 내려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그러니 오씨가 최초로 8000m가 넘는 14개 봉우리를 모두 오른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오씨의 14좌 완등으로 한국은 히말라야 14좌 완등자를 4명 보유했다.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오은선. 세계에서 14개 봉우리를 모두 오른 사람은 20명이고 이 중 한국이 완등자가 가장 많다. 한국 다음은 14좌 최초 완등자인 라인홀트 메스너의 나라 이탈리아로 메스너를 포함해 3명이다. 우리보다 고산 등반을 먼저 시작한 일본은 14좌 완등자가 1명도 없다. 일부 국내 언론은 이런 얘기를 하며 ‘한국이 산악 최강국’이라고 표현했다.하지만 ‘쇼트트랙 강국 한국’이 ‘동계 스포츠 강국’과 같을 수 없듯 14좌 완등자 최다 배출이 곧 산악 강국과 같은 의미일 순 없다.세계 산악계가 히말라야 등정 자체에 큰 가치를 두지 않게 된 것은 이미 오래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는 1977년 고상돈(1979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봉 등반 중 실족사)이 한국인 최초로 올랐던 당시의 에베레스트가 아니다. 여전히 등정은 어렵지만 그렇다고 일반인에게조차 불가능의 영역이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14좌 – :::신발끈여행사:::
1위봉 에베레스트(8848m) 정상, 한왕용대장, 1995년; 사진_1; 1/14 ; 2위봉 K2(8611m) 정상 바로 밑, 한왕용대장, 2000년; 사진_1; 2/14 ; 3위봉 칸첸중가(8586m) 정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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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14좌의꿈 고미영 낭가파르바트에 잠들다 [오감실험] KBS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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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첫 히말라야 14좌 완등 김홍빈 대장, 하산 중 실종 – 한겨레
김씨는 1983년 대학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산과 연을 맺었다. 국외 원정에 뽑힐 정도로 유망주였던 그는 1991년 북미 매킨리(6194m) 단독 경량 등반을 하다 불운의 조난을 당했다. 사고 16시간 만에 구조돼 10일 만에 겨우 의식을 회복했지만 일곱 차례 수술 끝에 손가락 모두를 절단하는 등 시련을 겪었다. 김씨는 사고 6년 만에 다시 산에 올랐고 1997년~2009년 12년 동안 7대륙의 최고봉을 완등했다. 2002년엔 미국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동계 장애인올림픽에 알파인스키 국가대표로 출전한 후 장애인 14좌 완등이라는 도전을 이어갔다.
장애인으로서 세계 최초이자 한국인으로는 7번째로 히말라야 8천m급 14좌에 모두 오른 산악인 김홍빈(57·콜핑 홍보이사)씨가 하산 과정에서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대한산악연맹 등의 말을 종합하면 김씨는 파키스탄 현지 시각으로 지난 18일 오후 4시58분 카슈미르 북동부 카라코람산맥 브로드피크(8047m) 정상에 올라선 후 산을 내려오다 조난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현지시각으로 이날 오전 9시58분 해발 7900m 부근에서 조난된 뒤 구조 요청을 보냈고, 해외 등반대가 조난 현장을 찾아갔지만 구조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지난달 1일 광주에서 브로드피크 원정대 발대식을 마치고 보름 뒤 출국했다. 6명으로 짜인 원정대는 2주 동안 고소적응을 마치고 지난 14일부터 본격적인 등정에 나서 16일까지 7200m 지점에 이르렀다. 이어 17일 밤 11시부터 18시간 동안 연속동반을 펼친 끝에 1.8㎞ 서쪽 능선을 통해 정상에 도달했다. 이후 김씨는 광주산악연맹을 통해 “건강한 상태로 하산하고 있다”며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한다. 코로나19 위기를 국민께서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위로와 격려를 드리고 싶다”고 전하기도 했다.
19 thg 7, 2021 — 장애인으로서 세계 최초이자 한국인으로는 7번째로 히말라야 8천m급 14좌에 모두 오른 산악인 김홍빈(57·콜핑 홍보이사)씨가 하산 과정에서 실종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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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첫 히말라야 14좌 완등 김홍빈 대장, 하산 중 실종
18일 8047m 브로드피크봉 올라
2006년부터 이어진 도전 마침표
91년 사고로 열 손가락 절단 시련
2009년에는 7대륙 최고봉 완등
장애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산악인 김홍빈씨.콜핑 제공
장애인으로서 세계 최초이자 한국인으로는 7번째로 히말라야 8천m급 14좌에 모두 오른 산악인 김홍빈(57·콜핑 홍보이사)씨가 하산 과정에서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대한산악연맹 등의 말을 종합하면 김씨는 파키스탄 현지 시각으로 지난 18일 오후 4시58분 카슈미르 북동부 카라코람산맥 브로드피크(8047m) 정상에 올라선 후 산을 내려오다 조난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현지시각으로 이날 오전 9시58분 해발 7900m 부근에서 조난된 뒤 구조 요청을 보냈고, 해외 등반대가 조난 현장을 찾아갔지만 구조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씨는 가셔브룸2(2006년)를 시작으로 에베레스트(2007년), 케이2(2012년), 마나슬루(2014년), 안나푸르나(2018년) 등을 거쳐 15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김씨는 지난달 1일 광주에서 브로드피크 원정대 발대식을 마치고 보름 뒤 출국했다. 6명으로 짜인 원정대는 2주 동안 고소적응을 마치고 지난 14일부터 본격적인 등정에 나서 16일까지 7200m 지점에 이르렀다. 이어 17일 밤 11시부터 18시간 동안 연속동반을 펼친 끝에 1.8㎞ 서쪽 능선을 통해 정상에 도달했다. 이후 김씨는 광주산악연맹을 통해 “건강한 상태로 하산하고 있다”며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한다. 코로나19 위기를 국민께서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위로와 격려를 드리고 싶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씨는 1983년 대학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산과 연을 맺었다. 국외 원정에 뽑힐 정도로 유망주였던 그는 1991년 북미 매킨리(6194m) 단독 경량 등반을 하다 불운의 조난을 당했다. 사고 16시간 만에 구조돼 10일 만에 겨우 의식을 회복했지만 일곱 차례 수술 끝에 손가락 모두를 절단하는 등 시련을 겪었다. 김씨는 사고 6년 만에 다시 산에 올랐고 1997년~2009년 12년 동안 7대륙의 최고봉을 완등했다. 2002년엔 미국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동계 장애인올림픽에 알파인스키 국가대표로 출전한 후 장애인 14좌 완등이라는 도전을 이어갔다.
김용희 안관옥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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