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 887 경주 불국사 소개 업데이트 94 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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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는 석굴암과 같은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때 김대성이 창건하여 서기 774년 신라 혜공왕때 완공하였다. 토함산 서쪽 중턱의 경사진 곳에 자리한 불국사는 심오한 불교사상과 천재 예술가의 혼이 독특한 형태로 표현되어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는 기념비적인 예술품이다.통일신라 사람들은 괴로움이 없고 즐거움만 있는 극락정토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신라 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신라가 ‘불국’ 즉 부처님의 나라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불국사를 지었어요. 석굴암은 경주 토함산 산기슭에 돌로 만든 석굴 사원이에요.

불국사(佛國寺)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동쪽 토함산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불국사
불국사 (佛國寺)
건립 연대 528년
건립자 김대성

석굴암.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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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경주 불국사 (慶州 佛國寺) | 문화재 종목별 검색

慶州吐含山にある仏国寺は新羅景徳王10年(751)当時の宰相であった金大城が建立し始め、恵恭王10年(774)に完成したが、朝鮮宣祖26年(1593)の壬辰倭乱の時に倭軍によってほとんどの建物が焼かれた。境内には統一新羅時代に建てられた多宝塔、釈迦塔と呼ばれる三重石塔、紫霞門に上がる青雲橋と白雲橋、極楽殿に上がる蓮華橋と七宝橋が国宝に指定・保存されている。このような文化財から当時の新羅人の石を扱う素晴らしい技術を窺うことができる。同時に、毘盧殿に祀られた金銅毘廬遮那仏坐像と、極楽殿に祀られた金銅阿弥陀如来坐像をはじめとした多数の文化遺産からも当時の絢爛たる仏教文化が窺える。このような価値が認められ、1995年12月には石窟庵とともに世界文化遺産に登録された。

位于庆州吐含山的佛国寺是新罗景德王十年(751)由宰相金大城动工,惠恭王十年(774)完工的寺院,朝鲜宣祖26年(1593)因倭寇入侵建筑物大多被烧毁。境内有统一新罗时代修建的多宝塔、被称为释迦塔的三层石塔、通向紫霞门的青云•白云桥、通向极乐殿的莲花•七宝桥,这些都已被指定为国宝,通过这些文化财可了解到当时新罗人高超的石筑工艺。同时,毘卢殿内供奉的金铜毘卢舍那佛坐像与极乐殿内供奉的鎏金铜制阿弥陀如来坐像等大量文化遗产也使人重温当时辉煌灿烂的佛教文化。庆州佛国寺于1995年12月与石窟庵一起被指定为世界文化遗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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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Travel Guide -The hidden legend of Bulguksa Temple in Gyeo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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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경주 불국사 (慶州 佛國寺) : 국가문화유산포털 – 문화재청

경주 토함산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짓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다. 이후 조선 선조 26년(1593)에 왜의 침입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다.

이후 극락전, 자하문, 범영루 등의 일부 건물만이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1969년에서 1973년에 걸친 발굴조사 뒤 복원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내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다보탑과, 석가탑으로 불리는 3층 석탑, 자하문으로 오르는 청운·백운교, 극락전으로 오르는 연화·칠보교가 국보로 지정,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문화재는 당시 신라 사람들의 돌을 다루는 훌륭한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아울러 비로전에 모신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극락전에 모신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유산도 당시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되새기게 한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12월에 석굴암과 함께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The construction of Bulguksa Temple, located at Tohamsan Mountain, Gyeongju, was started in 751 (the 10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yeongdeok of Silla) and completed in 774 (the 10th year of the reign of King Hyegong of Silla). Most of the buildings within the temple, except for Geungnakjeon Hall, Jahamun Gate, Beomyeongnu Pavilion and a few others, were burned dow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in 1593. The present condition of the temple is the result of restoration work carried out between 1969 and 1973. The main features of the temple include two three-story stone pagodas, Dabotap and Seokgatap, which date back to the Unified Silla Period; two stone bridges, Cheongungyo (Blue Cloud Bridge) and Baegungyo (White Cloud Bridge), leading to Jahamun Gate; and two stone bridges, Yeonhwagyo (Lotus Flower Bridge) and Chilbogyo (Seven Treasure Bridge), leading to Geungnakjeon Hall, all of which have been designated as national treasures. Many cultural heritage items, including the Gilt-bronze Seated Vairocana Buddha kept in Birojeon Hall and the Gilt-bronze Seated Amitabha Buddha kept in Geungnakjeon Hall, attest to the splendid Buddhist culture of that period. The temple, along with Seokguram Grotto, was registered on the UNESCO World Heritage List in December 1995.

位于庆州吐含山的佛国寺是新罗景德王十年(751)由宰相金大城动工,惠恭王十年(774)完工的寺院,朝鲜宣祖26年(1593)因倭寇入侵建筑物大多被烧毁。境内有统一新罗时代修建的多宝塔、被称为释迦塔的三层石塔、通向紫霞门的青云•白云桥、通向极乐殿的莲花•七宝桥,这些都已被指定为国宝,通过这些文化财可了解到当时新罗人高超的石筑工艺。同时,毘卢殿内供奉的金铜毘卢舍那佛坐像与极乐殿内供奉的鎏金铜制阿弥陀如来坐像等大量文化遗产也使人重温当时辉煌灿烂的佛教文化。庆州佛国寺于1995年12月与石窟庵一起被指定为世界文化遗产。

慶州吐含山にある仏国寺は新羅景徳王10年(751)当時の宰相であった金大城が建立し始め、恵恭王10年(774)に完成したが、朝鮮宣祖26年(1593)の壬辰倭乱の時に倭軍によってほとんどの建物が焼かれた。境内には統一新羅時代に建てられた多宝塔、釈迦塔と呼ばれる三重石塔、紫霞門に上がる青雲橋と白雲橋、極楽殿に上がる蓮華橋と七宝橋が国宝に指定・保存されている。このような文化財から当時の新羅人の石を扱う素晴らしい技術を窺うことができる。同時に、毘盧殿に祀られた金銅毘廬遮那仏坐像と、極楽殿に祀られた金銅阿弥陀如来坐像をはじめとした多数の文化遺産からも当時の絢爛たる仏教文化が窺える。このような価値が認められ、1995年12月には石窟庵とともに世界文化遺産に登録された。

불국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1593년 5월 의병과 승군의 활동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복수심에 사로잡힌 가토 기요마사를 비롯한 왜군의 방화와 파괴등으로 큰 피해를 입어 대가람이 전소된다. 이후 전란의 피해가 복구되면서 불국사도 국가의 지원 및 승려들과 신도들의 노력에 의해 1604년(선조 37)경부터 복구와 중건이 시작되어 영조 41년(1765)에 대웅전이 재건되고 1779년 경주 유림의 지원으로 중창하는 등[2] 1805년(순조 5)까지 40여 차례에 걸쳐 부분적인 중수(重修)가 이루어졌으며 1805년 비로전 중수를 끝으로 중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후 조선 후기 국운(國運)의 쇠퇴와 더불어 사운(寺運)도 쇠퇴하여 많은 건물이 파손되고 도난당하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석가탑 과 다보탑 중 다보탑에서 여러 가지 문화유산이 나왔는데 그중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나와 주목을 받았다.[3]

비로전 앞에 석등 모양으로 된 사리탑은 일본 건축가였던 세키노 다다시가 불국사를 연구한 것을 책으로 펴냈고, 이를 한 일본인에게 선물로 보냈는데, 선물을 받은 일본인은 이를 기회로 삼아 사리탑을 일본으로 불법으로 가져온 후, 한때 우에노 공원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리탑을 다시 돌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세키노 다다시는 우에노 공원으로 갔으나, 사리탑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팔려나간 뒤였다. 세키노 다다시가 20년동안 계속 행방을 추적한 결과, 일본의 한 제약회사 사장의 집의 정원에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1934년 불국사로 반환되어 제자리에 다시 세운 것이고, 이와 맞선 관음전 앞에도 석등이 남아 있다. 1970~1972년 정부 보조비를 포함한 총공사비 3억여 원을 들여 복원시켰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모습, 오늘날 불국사의 상징물로 알려진 석탑(석가탑·다보탑)이나 석교 등의 축조를 포함한 대규모 중창이 이루어진 것은 신라의 재상 김대성에 의해서였다. 《삼국유사》 권5 〈제9효선〉(孝善第九) 〈대성효이세부모 신문대〉(大城孝二世父母 神文代)에는 김대성을 신라 신문왕 때, 혹은 경덕왕 때의 사람이라고 기록하였으나 오늘날에는 경덕왕 때의 사람이며 불국사의 창건도 경덕왕 10년의 일로 보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십이연기 불교의 윤회설에 따라 김대성 자신의 전생의 부모님을 위해 석굴암 석불사를, 현생의 부모를 섬긴다는 뜻에서 불국사를 창건하였으며, 공사를 마치기 전에 죽자 국가에서 나서서 완성시켰다고 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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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페셜 – 불국사, 그 이름에 담긴 비밀 / KBS 20070610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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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비슷한 이름의 비슷한 이름의 불곡사 에 관해서는 해당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불국사(佛國寺)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동쪽 토함산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신라시대인 경덕왕에서 혜공왕 시대에 걸쳐 대규모로 중창되었다. 신라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수축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이고,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역사 [ 편집 ]

창건 [ 편집 ]

《불국사고금창기》에 따르면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15년인 528년에 왕모 영제 부인의 발원으로 지어졌고, 574년에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부인이 중건하면서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을 주조해 봉안하였다고 한다. 문무왕 10년 670년에는 무설전을 새로 지어 이곳에서 화엄경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모습, 오늘날 불국사의 상징물로 알려진 석탑(석가탑·다보탑)이나 석교 등의 축조를 포함한 대규모 중창이 이루어진 것은 신라의 재상 김대성에 의해서였다. 《삼국유사》 권5 〈제9효선〉(孝善第九) 〈대성효이세부모 신문대〉(大城孝二世父母 神文代)에는 김대성을 신라 신문왕 때, 혹은 경덕왕 때의 사람이라고 기록하였으나 오늘날에는 경덕왕 때의 사람이며 불국사의 창건도 경덕왕 10년의 일로 보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십이연기 불교의 윤회설에 따라 김대성 자신의 전생의 부모님을 위해 석굴암 석불사를, 현생의 부모를 섬긴다는 뜻에서 불국사를 창건하였으며, 공사를 마치기 전에 죽자 국가에서 나서서 완성시켰다고 한다.[1]

《불국사고금창기》에서는 80종의 건물에 총 2,000여칸 규모였다고 소개하고, 임진왜란 직전의 《동경유록》, 《간재집》 등에서는 1,000여칸이 남아있다고 기록한다.

중건 [ 편집 ]

1593년 5월 의병과 승군의 활동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복수심에 사로잡힌 가토 기요마사를 비롯한 왜군의 방화와 파괴등으로 큰 피해를 입어 대가람이 전소된다. 이후 전란의 피해가 복구되면서 불국사도 국가의 지원 및 승려들과 신도들의 노력에 의해 1604년(선조 37)경부터 복구와 중건이 시작되어 영조 41년(1765)에 대웅전이 재건되고 1779년 경주 유림의 지원으로 중창하는 등[2] 1805년(순조 5)까지 40여 차례에 걸쳐 부분적인 중수(重修)가 이루어졌으며 1805년 비로전 중수를 끝으로 중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후 조선 후기 국운(國運)의 쇠퇴와 더불어 사운(寺運)도 쇠퇴하여 많은 건물이 파손되고 도난당하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석가탑 과 다보탑 중 다보탑에서 여러 가지 문화유산이 나왔는데 그중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나와 주목을 받았다.[3]

보수 [ 편집 ]

일제강점기에는 1918년에서 1925년까지 다보탑과 대웅전이 보수되었다. 그러나 경주 불국사 사리탑이나 다보탑 석물 등 유물 일부가 일본으로 반출되어 문화재 약탈을 노린 공사였다는 비판도 받는다. 일제강점기에 큰 뼈대만 복원되었다면, 회랑과 난간 등은 1969년부터 1973년까지 총 8억원을 들여 복원하였다.

사적 지정 [ 편집 ]

복원 이전 1914년의 모습

1963년 3월 28일 대한민국의 사적 및 명승 제1호로 지정되었다가,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 제2조」 [별표1] 국가지정문화재의 지정기준에 따라 「사적」으로 재분류됨에 따라 2009년 12월 21일 이를 해제하고, 동 일자로 대한민국의 사적 제502호로 재지정되었다.[4]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및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4]

경내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불국사다보탑(국보 20호), 불국사삼층석탑(국보 21호), 불국사 연화교칠보교(국보 22호), 불국사 청운교백운교(국보 23호), 불국사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26호), 불국사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27호)등 다량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1995년 12월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학술적·역사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4]

구성 건물 [ 편집 ]

건축물 [ 편집 ]

불국사 가람 배치도

현존하는 건물의 배치를 보면, 대웅전은 중앙에 위치하여 남향하였고, 그 앞에 석등이 있으며, 다시 그 앞의 동서에 각각 석탑 1기가 서 있다. 동쪽 다보탑의 기묘하고 정밀한 형태는 유례가 드물고, 서쪽 석가탑은 예로부터 애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즉 이 탑의 축조를 맡은 백제의 석공인 아사달의 아내 아사녀가 남편을 찾아왔으나 탑이 완성되기 전이라 만날 수 없었다. 조언하기를 불국사 아래에 있는 영지(影池)에 그 그림자가 비친다고 하여 그곳에 가서 기다리다가 석가탑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아서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를 지니고 있어 무영탑(無影塔)이라고도 부른다.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경주 불국사 다보탑 입니다.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입니다.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경주 불국사 연화교 및 칠보교 입니다.

청운교와 백운교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 입니다.

남북국 시대 신라의 건축물로 대한민국의 국보 제23호이다. 위쪽이 청운교이고 아래쪽이 백운교이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오르면 자하문을 통해 석가모니예래불이 계시는 대웅전에 들어선다. 청운교는 16단, 백운교는 18단, 총 34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타 [ 편집 ]

2007년 불국사 극락전에서 발견된 황금 목조 돼지

비로전 앞에 석등 모양으로 된 사리탑은 일본 건축가였던 세키노 다다시가 불국사를 연구한 것을 책으로 펴냈고, 이를 한 일본인에게 선물로 보냈는데, 선물을 받은 일본인은 이를 기회로 삼아 사리탑을 일본으로 불법으로 가져온 후, 한때 우에노 공원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리탑을 다시 돌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세키노 다다시는 우에노 공원으로 갔으나, 사리탑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팔려나간 뒤였다. 세키노 다다시가 20년동안 계속 행방을 추적한 결과, 일본의 한 제약회사 사장의 집의 정원에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1934년 불국사로 반환되어 제자리에 다시 세운 것이고, 이와 맞선 관음전 앞에도 석등이 남아 있다. 1970~1972년 정부 보조비를 포함한 총공사비 3억여 원을 들여 복원시켰다.

경주시에서 시가 관리하는 입장료가 있는 유적지(및 박물관)는 경주시의 시민이라는 증거(주민등록증)가 있으면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불국사는 다른 유적과 달리 대한불교조계종의 재산으로, 일괄적으로 입장료를 징수해 왔다. 2013년 3월부터 불국사, 석굴암과 함께 주민등록이 경주시로 되어 있는 경우 무료입장이 실시되고 있다.

2007년에는 한 관광객이 극락전 정면 처마밑의 현판 편에 가려져 있던, 나무로 만들어진 50센티미터가량 되는 황금 돼지 목조 조형물을 발견하였다.[5]

사진 [ 편집 ]

1954년 모습

불국사 입구 전경

불국사 대웅전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참고 자료 [ 편집 ]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주시 불국동 – 우리마을소개>우리마을 명소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경주 토함산 정상에 못 미친 깊숙한 곳에 동해를 향해 앉아 있는 석굴암은 완벽하고 빼어난 조각과 독창적 건축으로 전세계에 이름이 높다. 인공으로 석굴을 축조하고 그 내부공간에도 본존불을 중심으로 총 39체의 불상을 조각하였다. 석굴암은 전실, 통로, 주실로 이루어졌다.

석굴암은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 때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하기 시작하여 서기 774년인 신라 혜공왕 때 완공하였으며, 건립 당시의 명칭은 석불사로 칭하였다.

석굴암은 신라시대 전성기의 최고 걸작으로 그 조영계획에 있어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이 총체적으로 실현된 유산이다

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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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코리아 – 신라인이 완성한 부처의 나라, 불국사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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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소개>우리마을 명소

석굴암

석굴암은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 때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하기 시작하여 서기 774년인 신라 혜공왕 때 완공하였으며, 건립 당시의 명칭은 석불사로 칭하였다.

석굴암은 신라시대 전성기의 최고 걸작으로 그 조영계획에 있어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이 총체적으로 실현된 유산이다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경주 토함산 정상에 못 미친 깊숙한 곳에 동해를 향해 앉아 있는 석굴암은 완벽하고 빼어난 조각과 독창적 건축으로 전세계에 이름이 높다. 인공으로 석굴을 축조하고 그 내부공간에도 본존불을 중심으로 총 39체의 불상을 조각하였다. 석굴암은 전실, 통로, 주실로 이루어졌다.

경주 불국사(慶州 佛國寺)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근까지 극락전 안에는 아미타불과 비로자나불의 두 불상이 안치되어 있었는데, 비로자나불은 원래 대웅전에 있던 것을 일제시기 때 중수하면서 이곳으로 옮겼던 것으로, 지금은 비로전으로 옮겼다. 극락전 안의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이 극락전에서 대웅전으로 통하여 올라가는 길에는 3열로 지어 쌓은 계단이 있다. 그 각각은 16계단이어서 모두 합하면 48계단이 된다. 이것은 아미타불의 48원(願)을 상징한 것으로, 48원을 성취하여 극락세계를 건립한 법장비구(法藏比丘)의 뜻을 기린 것이다.

이 범영루는 751년(경덕왕 10)에 건립하였고, 1593년(선조 26)에 불탄 뒤 1612년(광해군 4)과 1688년(숙종 14)에 중건하였으며, 1708년(숙종 34)에 단청을 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73년의 복원공사 때 중건된 것으로 옛 모습대로 정면 1칸, 측면 2칸이며 3층으로 된 아담한 누각이다. 범영루의 동편에는 좌경루가 있었으나, 조선 말에 완전히 없어졌던 것을 1973년의 복원공사 때 재건하였다. 경루는 경전을 보존한 곳으로 보아야 하겠지만, 원래의 구조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관음전 아래 서편에 있으며,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다. 이곳에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을 따로 건립한 것은 『화엄경』에 의한 신앙의 흐름이 불국사의 성역 안에 자리잡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비로전은 751년 김대성이 18칸으로 지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수하였으나, 조선 말에 무너져서 터만 남아 있었다. 1973년의 복원공사 때에 현재의 건물을 지어서 극락전에 임시로 안치하였던 1962년 국보로 지정된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을 옮겨 봉안하였다.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吐含山) 서쪽 중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김대성의 발원으로 창건한 사찰. 사적. 키워드. 김대성; 불국사고금창기; 이차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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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미적 완성도가 가장 뛰어난 사찰 ‘불국사’ [지식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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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불국사(慶州 佛國寺)

불국사는 신라인이 그리던 불국(佛國), 이상적인 피안의 세계를 옮겨놓은 것이다. 불국을 향한 신라인의 염원은 세 가지 양상으로 이곳에 나타나 있다.

하나는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무량수경(無量壽經)』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이며, 또 다른 하나는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이다.

이 셋은 각각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일곽과 극락전을 중심으로 하는 다른 일곽과 비로전으로 종합되는 전체의 구성을 통하여 그 특징적인 표현을 이루어놓았다.

(1) 석단(石壇)과 석교(石橋)

불국사의 경내는 석단으로 크게 양분되어 있다. 이 석단은 그 아래와 위의 세계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석단의 위는 부처님의 나라인 불국이고, 그 밑은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한 범부의 세계를 나타낸다. 석단의 멋은 소박하게 쌓아올린 거대한 돌의 자연미에 있고, 대척적(對蹠的)으로 병렬된 2단의 석주(石柱)에 있다.

크고 작은 돌을 함께 섞어 개체의 다양성을 나타내고 있고, 굵고 굳센 돌기둥과 돌띠로 둘러 견고한 통일과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석단은 불국세계의 높이를 상징함과 동시에 그 세계의 반석 같은 굳셈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두 모퉁이 위에는 경루(經樓)와 종루(鐘樓)를 만들어서 한없이 높은 하늘을 향하여 번져가는 묘음(妙音)의 위력을 나타내었다.

이 석단에는 대웅전을 향하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청운교(靑雲橋)·백운교(白雲橋)와 극락전을 향하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연화교(蓮華橋)·칠보교(七寶橋)의 두 쌍의 다리가 놓여 있다. 청운교·백운교는 석가모니불의 불국세계로 통하는 자하문에 연결되어 있고, 칠보교·연화교는 아미타불의 불국세계로 통하는 안양문에 연결되어 있다.

이 가운데 청운교·백운교는 33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33계단은 33천(天)을 상징하는 것으로 욕심을 정화하여 뜻을 두고 노력하는 자들이 걸어서 올라가는 다리이다. 이 다리는 1686년(숙종 12)과 1715년(숙종 41) 두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고, 1973년의 복원공사 때 없어졌던 돌난간도 복원하였다.

(2) 자하문과 회랑

청운교와 백운교를 오르면 자하문이 있다. 자하문이란 붉은 안개가 서린 문이라는 뜻이다. 이 자하문을 통과하면 세속의 무지와 속박을 떠나서 부처님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부처님의 몸을 자금광신(紫金光身)이라고도 하므로 불신에서 발하는 자주빛을 띤 금색 광명이 다리 위를 안개처럼 서리고 있다는 뜻에서 자하문이라 한 것이다.

세간의 번뇌를 자금색 광명으로 씻고 난 뒤, 들어서게 되는 관문이다. 자하문의 좌우에는 임진왜란 후의 중건 때에 만든 동서회랑이 있었지만 1904년경에 무너졌다. 회랑의 양 끝에 역시 경루와 종루가 있었지만, 동쪽 경루는 일찍이 없어지고, 서쪽의 종루만 남아 있다가, 1973년 복원 때에 좌경루(左經樓)와 더불어 옛 모습을 찾았다.

이 회랑은 대웅전의 옆문과 통하게 되어 있는데, 회랑의 구조는 궁중의 것과 비슷하다. 국왕은 세간의 왕이요, 불(佛)은 출세간의 대법왕이라는 뜻에서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서회랑을 건립하는 수법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참배객은 최초의 존경을 표하는 뜻에서 정면문으로 출입하지 않고, 이 회랑을 통하여 대웅전으로 나가게 된다.

(3) 범영루와 경루

범영루는 처음에 수미범종각(須彌梵鐘閣)이라고 불렀다. 수미산모양의 팔각정상에 누를 짓고 그 위에 108명이 앉을 수 있게끔 하였으며, 아래에는 오장간(五丈竿)을 세울 수 있도록 하였다. 여기에서 108이라는 숫자는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것으로, 많은 번뇌를 안은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의미에서 108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범영루는 751년(경덕왕 10)에 건립하였고, 1593년(선조 26)에 불탄 뒤 1612년(광해군 4)과 1688년(숙종 14)에 중건하였으며, 1708년(숙종 34)에 단청을 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73년의 복원공사 때 중건된 것으로 옛 모습대로 정면 1칸, 측면 2칸이며 3층으로 된 아담한 누각이다. 범영루의 동편에는 좌경루가 있었으나, 조선 말에 완전히 없어졌던 것을 1973년의 복원공사 때 재건하였다. 경루는 경전을 보존한 곳으로 보아야 하겠지만, 원래의 구조는 자세히 알 수 없다.

(4) 석가탑과 다보탑

삼층석탑인 석가탁과 다보탑은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 두 탑은 불국사의 사상 및 예술의 정수이다. 『법화경』에 근거하여 세워진 이 탑은 영원한 법신불인 다보여래와 화신불인 석가모니불이 이곳에 상주한다는 깊은 상징성을 가진 탑으로서, 불교의 이념을 이 땅에 구현시키고자 노력한 신라 민족혼의 결정이기도 하다. 석가탑 내에서 발견된 유물인 1967년 국보로 지정된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중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5) 대웅전

대웅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의 불국토를 표현하는 일곽의 중심을 이룬다. 현존하는 건물은 1765년(영조 41)에 중창된 것이나, 그 초석과 석단 등은 대체로 신라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대웅전 안의 중앙 정면에는 수미단(須彌壇)이 있고, 그 위에 목조석가삼존불이 안치되어 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미륵보살과 갈라보살(竭羅菩薩)이 협시(脇侍)하고 있으며, 다시 그 좌우에 흙으로 빚은 가섭(迦葉)과 아난(阿難)의 두 제자상이 모셔져 있다.

(6) 무설전

대웅전 바로 뒤에 있는 무설전은 불국사의 여러 건물 가운데 제일 먼저 만들어진 건물이다. 670년(문무왕 10)에 이 건물을 짓고 문무왕은 의상과 그의 제자 오진(悟眞)·표훈 등 몇 명의 대덕(大德)에게 『화엄경』의 강론을 맡게 하였다. 이 건물도 1593년 임진왜란 때에 불탄 뒤 1708년(숙종 34)에 중건하여 1910년 이전까지 보존되었으나, 그 뒤 허물어진 채 방치되었다가 1972년에 복원하였다.

경론을 강술하는 장소이므로 아무런 불상도 봉안하지 않고 설법을 위한 강당으로서만 사용하였으며, 무설전이라고 이름 붙인 까닭은 진리의 본질, 불교의 오의가 말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한 것이다.

(7) 극락전과 안양문

입구에서 연화교·칠보교를 올라 안양문을 지나면 극락전에 이른다. 아미타불이 있는 서방의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곳이다. 극락전을 중심으로 하는 이 일곽도 751년에 지어졌고, 그 당시에는 회랑을 비롯하여 석등 및 많은 건물과 석조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건물 및 석조물들은 극락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신라 중기의 전형적인 정토계 사찰의 구조로서 매우 정돈된 것이었다.

안양문은 임진왜란 때 불탄 뒤 1626년(인조 4)과 1737년(영조 13)에 중창하였다. 안양은 극락의 다른 이름이며, 안양문은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안양문을 넘어서면 극락전에 이른다. 견고한 석단 위에 목조로 세워진 극락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뒤 1750년에 오환(悟還)·무숙(武淑) 등이 중창하였고, 1925년 3월에 다시 중수하였는데 목조의 수미단은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까지 극락전 안에는 아미타불과 비로자나불의 두 불상이 안치되어 있었는데, 비로자나불은 원래 대웅전에 있던 것을 일제시기 때 중수하면서 이곳으로 옮겼던 것으로, 지금은 비로전으로 옮겼다. 극락전 안의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이 극락전에서 대웅전으로 통하여 올라가는 길에는 3열로 지어 쌓은 계단이 있다. 그 각각은 16계단이어서 모두 합하면 48계단이 된다. 이것은 아미타불의 48원(願)을 상징한 것으로, 48원을 성취하여 극락세계를 건립한 법장비구(法藏比丘)의 뜻을 기린 것이다.

(8) 관음전

무설전 뒤의 한층 높은 언덕에 있다. 751년 김대성이 6칸으로 지었던 것을 1470년(성종 1)에 중수하였는데, 1593년 임진왜란의 병화로 불타버렸다. 그 직후 1604년에 해청(海淸)이 중창하였고, 1694년(숙종 21)과 1718년에 다시 중창하였다. 원래 이 관음전 안에는 관세음보살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이 관음상은 922년에 경명왕비가 낙지공(樂支工)에게 명하여 전단향목(栴檀香木)으로 만든 것이었다.

『속전』에 의하면, “‘중생사(衆生寺)의 관음상과 함께 영험력이 크다’하여 매우 존숭받았다”고 한다. 이 관음상은 1674년(숙종 즉위년)과 1701년·1769년의 세 차례에 걸쳐 새로 금칠[改金]을 하였다. 마지막 개금기록으로 보아 18세기 중엽까지는 이 관음상이 있었음이 틀림없는데, 언제 관음상이 없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는 1973년의 복원 때 새로 조성한 관음입상을 봉안하고 있다.

(9) 비로전

관음전 아래 서편에 있으며,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다. 이곳에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을 따로 건립한 것은 『화엄경』에 의한 신앙의 흐름이 불국사의 성역 안에 자리잡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비로전은 751년 김대성이 18칸으로 지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수하였으나, 조선 말에 무너져서 터만 남아 있었다. 1973년의 복원공사 때에 현재의 건물을 지어서 극락전에 임시로 안치하였던 1962년 국보로 지정된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을 옮겨 봉안하였다.

(10) 부속 암자 및 기타 유물

불국사를 처음 지을 때 토함산 일대에는 일곱 개의 암자가 있었다. 토함산에 칠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칠보동산이라고 하였으며, 따라서 일곱 군데에 암자를 짓고 금·은·진주 등 칠보의 이름을 붙였다고 하나 지금은 그 유지를 찾을 수 없다.

불국사 북쪽 탑동에는 김대성이 751년에 창건하였던 몽성암(夢成庵)과 임진왜란 때 잿더미가 된 암자들을 통합하여 만들었던 심적암(沈寂庵), 1653년에 승려 지원(智元)이 치술령 서쪽 기슭에 세웠던 보덕굴(普德窟)·중굴·상굴 등이 있었다. 그 밖에도 청련암(靑蓮庵)·백련암(白蓮庵)·운수암(雲水庵)·천검암(天劍庵)·운창암(雲剙庵)·신도암(信道庵)·임방암(林坊庵) 등이 있었다.

이 밖에도 칠보교 앞에는 두 쌍의 간주(竿柱)가 서 있고 2007년 보물로 지정된 경주 불국사 석조가 있으며, 불국사 경내에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사리탑 외에도 5기의 부도가 있다. 또한, 경내가 2009년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1995년 유네스코(UNESCO)에서 제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석굴암과 불국사 – 유네스코와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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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guksa Temple [Korea Buddhism folk tale trave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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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1593년 5월 의병과 승군의 활동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복수심에 사로잡힌 가토 기요마사를 비롯한 왜군의 방화와 파괴등으로 큰 피해를 입어 대가람이 전소된다. 이후 전란의 피해가 복구되면서 불국사도 국가의 지원 및 승려들과 신도들의 노력에 의해 1604년(선조 37)경부터 복구와 중건이 시작되어 영조 41년(1765)에 대웅전이 재건되고 1779년 경주 유림의 지원으로 중창하는 등[2] 1805년(순조 5)까지 40여 차례에 걸쳐 부분적인 중수(重修)가 이루어졌으며 1805년 비로전 중수를 끝으로 중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후 조선 후기 국운(國運)의 쇠퇴와 더불어 사운(寺運)도 쇠퇴하여 많은 건물이 파손되고 도난당하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석가탑 과 다보탑 중 다보탑에서 여러 가지 문화유산이 나왔는데 그중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나와 주목을 받았다.[3]

비로전 앞에 석등 모양으로 된 사리탑은 일본 건축가였던 세키노 다다시가 불국사를 연구한 것을 책으로 펴냈고, 이를 한 일본인에게 선물로 보냈는데, 선물을 받은 일본인은 이를 기회로 삼아 사리탑을 일본으로 불법으로 가져온 후, 한때 우에노 공원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리탑을 다시 돌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세키노 다다시는 우에노 공원으로 갔으나, 사리탑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팔려나간 뒤였다. 세키노 다다시가 20년동안 계속 행방을 추적한 결과, 일본의 한 제약회사 사장의 집의 정원에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1934년 불국사로 반환되어 제자리에 다시 세운 것이고, 이와 맞선 관음전 앞에도 석등이 남아 있다. 1970~1972년 정부 보조비를 포함한 총공사비 3억여 원을 들여 복원시켰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모습, 오늘날 불국사의 상징물로 알려진 석탑(석가탑·다보탑)이나 석교 등의 축조를 포함한 대규모 중창이 이루어진 것은 신라의 재상 김대성에 의해서였다. 《삼국유사》 권5 〈제9효선〉(孝善第九) 〈대성효이세부모 신문대〉(大城孝二世父母 神文代)에는 김대성을 신라 신문왕 때, 혹은 경덕왕 때의 사람이라고 기록하였으나 오늘날에는 경덕왕 때의 사람이며 불국사의 창건도 경덕왕 10년의 일로 보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십이연기 불교의 윤회설에 따라 김대성 자신의 전생의 부모님을 위해 석굴암 석불사를, 현생의 부모를 섬긴다는 뜻에서 불국사를 창건하였으며, 공사를 마치기 전에 죽자 국가에서 나서서 완성시켰다고 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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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불국사 투어😆 석가탑과 다보탑 (핵심요약! 딱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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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이름의 비슷한 이름의 불곡사 에 관해서는 해당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불국사(佛國寺)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동쪽 토함산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신라시대인 경덕왕에서 혜공왕 시대에 걸쳐 대규모로 중창되었다. 신라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수축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이고,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역사 [ 편집 ]

창건 [ 편집 ]

《불국사고금창기》에 따르면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15년인 528년에 왕모 영제 부인의 발원으로 지어졌고, 574년에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부인이 중건하면서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을 주조해 봉안하였다고 한다. 문무왕 10년 670년에는 무설전을 새로 지어 이곳에서 화엄경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모습, 오늘날 불국사의 상징물로 알려진 석탑(석가탑·다보탑)이나 석교 등의 축조를 포함한 대규모 중창이 이루어진 것은 신라의 재상 김대성에 의해서였다. 《삼국유사》 권5 〈제9효선〉(孝善第九) 〈대성효이세부모 신문대〉(大城孝二世父母 神文代)에는 김대성을 신라 신문왕 때, 혹은 경덕왕 때의 사람이라고 기록하였으나 오늘날에는 경덕왕 때의 사람이며 불국사의 창건도 경덕왕 10년의 일로 보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십이연기 불교의 윤회설에 따라 김대성 자신의 전생의 부모님을 위해 석굴암 석불사를, 현생의 부모를 섬긴다는 뜻에서 불국사를 창건하였으며, 공사를 마치기 전에 죽자 국가에서 나서서 완성시켰다고 한다.[1]

《불국사고금창기》에서는 80종의 건물에 총 2,000여칸 규모였다고 소개하고, 임진왜란 직전의 《동경유록》, 《간재집》 등에서는 1,000여칸이 남아있다고 기록한다.

중건 [ 편집 ]

1593년 5월 의병과 승군의 활동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복수심에 사로잡힌 가토 기요마사를 비롯한 왜군의 방화와 파괴등으로 큰 피해를 입어 대가람이 전소된다. 이후 전란의 피해가 복구되면서 불국사도 국가의 지원 및 승려들과 신도들의 노력에 의해 1604년(선조 37)경부터 복구와 중건이 시작되어 영조 41년(1765)에 대웅전이 재건되고 1779년 경주 유림의 지원으로 중창하는 등[2] 1805년(순조 5)까지 40여 차례에 걸쳐 부분적인 중수(重修)가 이루어졌으며 1805년 비로전 중수를 끝으로 중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후 조선 후기 국운(國運)의 쇠퇴와 더불어 사운(寺運)도 쇠퇴하여 많은 건물이 파손되고 도난당하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석가탑 과 다보탑 중 다보탑에서 여러 가지 문화유산이 나왔는데 그중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나와 주목을 받았다.[3]

보수 [ 편집 ]

일제강점기에는 1918년에서 1925년까지 다보탑과 대웅전이 보수되었다. 그러나 경주 불국사 사리탑이나 다보탑 석물 등 유물 일부가 일본으로 반출되어 문화재 약탈을 노린 공사였다는 비판도 받는다. 일제강점기에 큰 뼈대만 복원되었다면, 회랑과 난간 등은 1969년부터 1973년까지 총 8억원을 들여 복원하였다.

사적 지정 [ 편집 ]

복원 이전 1914년의 모습

1963년 3월 28일 대한민국의 사적 및 명승 제1호로 지정되었다가,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 제2조」 [별표1] 국가지정문화재의 지정기준에 따라 「사적」으로 재분류됨에 따라 2009년 12월 21일 이를 해제하고, 동 일자로 대한민국의 사적 제502호로 재지정되었다.[4]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및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4]

경내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불국사다보탑(국보 20호), 불국사삼층석탑(국보 21호), 불국사 연화교칠보교(국보 22호), 불국사 청운교백운교(국보 23호), 불국사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26호), 불국사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27호)등 다량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1995년 12월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학술적·역사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4]

구성 건물 [ 편집 ]

건축물 [ 편집 ]

불국사 가람 배치도

현존하는 건물의 배치를 보면, 대웅전은 중앙에 위치하여 남향하였고, 그 앞에 석등이 있으며, 다시 그 앞의 동서에 각각 석탑 1기가 서 있다. 동쪽 다보탑의 기묘하고 정밀한 형태는 유례가 드물고, 서쪽 석가탑은 예로부터 애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즉 이 탑의 축조를 맡은 백제의 석공인 아사달의 아내 아사녀가 남편을 찾아왔으나 탑이 완성되기 전이라 만날 수 없었다. 조언하기를 불국사 아래에 있는 영지(影池)에 그 그림자가 비친다고 하여 그곳에 가서 기다리다가 석가탑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아서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를 지니고 있어 무영탑(無影塔)이라고도 부른다.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경주 불국사 다보탑 입니다.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입니다.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경주 불국사 연화교 및 칠보교 입니다.

청운교와 백운교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 입니다.

남북국 시대 신라의 건축물로 대한민국의 국보 제23호이다. 위쪽이 청운교이고 아래쪽이 백운교이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오르면 자하문을 통해 석가모니예래불이 계시는 대웅전에 들어선다. 청운교는 16단, 백운교는 18단, 총 34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타 [ 편집 ]

2007년 불국사 극락전에서 발견된 황금 목조 돼지

비로전 앞에 석등 모양으로 된 사리탑은 일본 건축가였던 세키노 다다시가 불국사를 연구한 것을 책으로 펴냈고, 이를 한 일본인에게 선물로 보냈는데, 선물을 받은 일본인은 이를 기회로 삼아 사리탑을 일본으로 불법으로 가져온 후, 한때 우에노 공원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리탑을 다시 돌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세키노 다다시는 우에노 공원으로 갔으나, 사리탑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팔려나간 뒤였다. 세키노 다다시가 20년동안 계속 행방을 추적한 결과, 일본의 한 제약회사 사장의 집의 정원에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1934년 불국사로 반환되어 제자리에 다시 세운 것이고, 이와 맞선 관음전 앞에도 석등이 남아 있다. 1970~1972년 정부 보조비를 포함한 총공사비 3억여 원을 들여 복원시켰다.

경주시에서 시가 관리하는 입장료가 있는 유적지(및 박물관)는 경주시의 시민이라는 증거(주민등록증)가 있으면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불국사는 다른 유적과 달리 대한불교조계종의 재산으로, 일괄적으로 입장료를 징수해 왔다. 2013년 3월부터 불국사, 석굴암과 함께 주민등록이 경주시로 되어 있는 경우 무료입장이 실시되고 있다.

2007년에는 한 관광객이 극락전 정면 처마밑의 현판 편에 가려져 있던, 나무로 만들어진 50센티미터가량 되는 황금 돼지 목조 조형물을 발견하였다.[5]

사진 [ 편집 ]

1954년 모습

불국사 입구 전경

불국사 대웅전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참고 자료 [ 편집 ]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국사와 석굴암 – 우리역사넷

전실 벽면 좌우로 불교를 수호하는 신들인 팔부중상,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 통로 좌우 입구에는 두 금강역사상이 각각 조각되어 있어요.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중앙에 본존불이 놓여 있지요.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보살상, 나한상들이 채워져 있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과 십대제자상이 조각되어 있어요.

불국사와 석굴암의 창건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어요. 모량리라는 곳에 대성이란 소년이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어요. 남의 집에 품팔이를 해서 얻은 밭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대성은 어느 날 법회에 시주를 하면 복을 만 배로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대성은 내세에라도 복을 받아 잘 살자며 어머니를 설득해 가지고 있던 밭을 절에 바쳤어요. 그리고 얼마 후 갑자기 죽고 말았지요.

대웅전 앞 서쪽에 있는 석가탑(불국사 삼층석탑)이 소박하고 단정한 멋을 지녔다면, 동쪽에 있는 다보탑은 화려하고 세련된 멋을 지녔지요. 그런데 대개 절에는 탑이 하나만 있거나, 두 개일 때는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동쪽과 서쪽으로 세워서 각각 동탑과 서탑이라 부르는데, 석가탑과 다보탑은 탑 이름도 다르고 생긴 모습도 달라요. 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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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여행준비 이 영상으로 끝 – 경주가이드, 신라역사탐방, 경주역사탐방, 경주가볼만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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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가 만든 부처님의 나라, 불국사와 석굴암

<불국사 청운교·백운교(경북 경주시)>

문화재청

“드디어 불국사가 완성되었다네. 자네도 가 보았는가?”

“그런가? 불국사를 본 소감이 어떤가? 나도 얼른 가고 싶네만.”

아름답고 웅장한 불국사를 보니 신라가 무척 자랑스럽다네.

신라는 왜 불국사를 지었을까요? 불국사는 신라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부처님의 나라 불국사와 석굴암을 짓다

우리가 수학여행이나 현장체험학습으로 자주 가는 경주에서 꼭 빠뜨리지 않고 들르는 곳은 아마도 불국사와 석굴암일 거예요. 불국사는 경주 동쪽의 토함산 자락에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아름다운 절이에요.

불국사는 이름 그대도 부처님이 사는 나라를 현실 세계에 옮겨 놓은 절이란 뜻이에요. 통일신라 사람들은 괴로움이 없고 즐거움만 있는 극락정토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신라 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신라가 ‘불국’ 즉 부처님의 나라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불국사를 지었어요.

석굴암은 경주 토함산 산기슭에 돌로 만든 석굴 사원이에요. 처음에 석굴암은 석불사라 불렀어요. 그러다 불국사에 속한 암자가 되면서 석굴암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지요.

석굴암은 김대성이 불국사를 지을 때 함께 지었다고 해요.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 10년에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짓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불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그가 완성을 하지 못하고 죽자 혜공왕 10년에 나라가 주관하여 완성하였다.’라고 전해져요.

불국사와 석굴암은 김대성의 효심에서 짓기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국가적인 사업으로 진행되어 완성하였어요. 불국사와 석굴암은 삼국을 통일한 신라 사람들의 자신감과 불교문화가 잘 표현된 아름다운 문화유산이에요. 불국사와 석굴암은 그러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지요.

부처님 나라로 건너가는 청운교·백운교

부처님 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청운교·백운교라는 계단을 올라야 해요. 계단이지만 원래 그 밑으로 물이 흘렀기 때문에 다리라는 뜻의 ‘교’자를 붙였지요.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를 말하는데, 다리 아래의 일반인의 세계와 다리 위로의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청운교와 백운교는 현세를 지나 불국으로 들어가는 다리인 것이지요. 계단을 올라 자하문을 지나면 부처님 나라에 들어서게 되는 거예요. ‘자하’란 붉은 안개라는 뜻으로, 부처님 몸에서 나오는 붉은 금색의 빛이 안개처럼 서려 있다는 뜻이에요.

<자하문과 청운교·백운교>

문화재청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

자하문을 들어서면 석가탑과 다보탑이 나란히 보이고, 그 뒤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 있어요. 불상을 모신 법당과 탑은 불국사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석축을 쌓고 그 위로 지었어요.

대웅전 안 수미단 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양 옆에 미륵보살과 갈라보살을 모셨어요. 부처님은 법당에 단독으로 모시기도 하고, 이렇게 보살상들을 양쪽에 함께 모시기도 해요.

<대웅전>

문화재청

대웅전 앞 서쪽에 있는 석가탑(불국사 삼층석탑)이 소박하고 단정한 멋을 지녔다면, 동쪽에 있는 다보탑은 화려하고 세련된 멋을 지녔지요. 그런데 대개 절에는 탑이 하나만 있거나, 두 개일 때는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동쪽과 서쪽으로 세워서 각각 동탑과 서탑이라 부르는데, 석가탑과 다보탑은 탑 이름도 다르고 생긴 모습도 달라요. 왜 그럴까요?

이것은 탑을 세울 때 법화경이라는 불교 경전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에요. 법화경에서는 현세의 부처를 ‘석가여래’라 하고 전생의 부처를 ‘다보여래’라고 해요. 그러니까 석가탑은 현세의 부처를, 다보탑은 전생의 부처를 각기 다른 느낌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삼층 석탑과 다보탑>

문화재청

진리의 세계를 나타낸 비로전

대웅전과 무설전 뒤에 위치한 비로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곳이에요. 비로자나불은 모든 부처님의 본체예요. 진리를 우리 눈에 보이는 부처님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거지요. 비로자나불은 이 빛으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주는 역할을 해요.

<비로전>

문화재청

인공적으로 만든 석굴 사찰, 석굴암

석굴암은 건축 방식 자체만으로도 아주 특별한 건축물이에요. 당시 절은 대개 나무로 지었어요. 그런데 석굴암만은 돌을 쌓아서 지었지요. 인도에서 불교가 전파되면서 중국과 우리나라에도 석굴 문화가 함께 전해졌어요. 인도와 중국에선 자연 그대로의 바위산을 파고 들어가 방을 만들고 돌을 깎아 불상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석굴암은 다른 곳에서 수많은 돌을 가져다 차곡차곡 쌓아 돌집을 만들고 그 안쪽 면에 조각을 했지요.

석굴암은 신라 사람들의 뛰어난 과학 지식을 보여 주는 건축물이에요. 석굴암을 인공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계산이 필요했어요. 둥근 돔 형태로 지붕을 만들되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정교하게 만들었어요.

또 굴 내부에는 습기가 차지 않도록 차고 더운 공기의 흐름을 이용해 설계하였지요. 본존불이 앉아 있는 방향에도 뜻이 있어요. 본존불은 해가 뜨는 약간 남쪽을 향한 동쪽을 바라보고 있어요. 이 방향은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동짓날에 해가 뜨는 각도와 맞아떨어진다고 해요.

<석굴암의 여러 조각상

①석굴암 석굴 ②석굴암 본존불 ③문수보살과 제석천상

④십일면관음보살상 ⑤십대제자상>

문화재청

돌로 굴을 만들어 부처님을 모시다

석굴암 안에는 석가모니 불상이 있어요. 예배의 중심이 되는 부처를 본존불이라고 해요. 석굴암 입구인 네모난 모양의 전실을 지나면 절의 가운데에 본존불이 자리한 둥근 모양의 주실을 만나요. 전실과 주실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고, 전실은 주실에 있는 본존불에게 예배를 보는 공간이에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표현한 석가모니 불상은 풍만한 몸체에 엄숙한 표정으로 중생을 내려다보고 있어요. 석굴암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손꼽히고 있지요. 석굴암에는 석굴 입구의 전실과 좁은 통로 양쪽 벽, 그리고 본존불을 중심으로 주실의 원형 벽면에 다양한 모습을 한 수많은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요.

전실 벽면 좌우로 불교를 수호하는 신들인 팔부중상,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 통로 좌우 입구에는 두 금강역사상이 각각 조각되어 있어요.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중앙에 본존불이 놓여 있지요.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보살상, 나한상들이 채워져 있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과 십대제자상이 조각되어 있어요.

본존불을 비롯한 이 불상들은 동아시아 불교 조각 중에서도 매우 뛰어난 것으로 손꼽히는 최고의 걸작품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역사 속 작은 이야기: 부모를 위해 불국사와 석굴암을 지은 김대성

불국사와 석굴암의 창건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어요. 모량리라는 곳에 대성이란 소년이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어요. 남의 집에 품팔이를 해서 얻은 밭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대성은 어느 날 법회에 시주를 하면 복을 만 배로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대성은 내세에라도 복을 받아 잘 살자며 어머니를 설득해 가지고 있던 밭을 절에 바쳤어요. 그리고 얼마 후 갑자기 죽고 말았지요.

대성이 죽던 날 밤, 재상 김문량의 집에 하늘로부터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어요.

“모량리의 대성이를 너에게 주노라.”

김문량의 부인은 그로부터 열 달 후 아들을 낳았어요. 아기가 왼쪽 손을 꼭 쥐고 있다가 7일 만에 펴서 보니 ‘대성’이라고 적힌 금패가 있었어요. 김문량은 아이 이름을 대성이라 짓고 모량리의 어머니도 모셔다 같이 살았어요.

어른이 된 김대성은 사냥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자기가 사냥했던 곰이 꿈에 나타나 몹시 원망을 하는 것이었어요. 김대성은 곰에게 절을 지어 위로해 줄 것을 약속하고 용서를 빌었어요. 이후 김대성은 불심이 깊어졌고,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지었다고 전해져요.

통일신라 사람들은 불국사와 석굴암을 통해 어떤 마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여러분은 불국사와 석굴암을 공부하며 어떤 생각이 드나요? 삼국을 통일하고 자신들이 꿈꾸던 부처님의 이상 세계가 바로 여기라는 신라 사람들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지요. 여러분도 신라 사람들처럼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길 바라요.

[집필자] 조윤호

불국사 – 나무위키

17 thg 12, 2022 —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385 (진현동) 토함산 기슭에 위치한 신라 연간을 기원으로 하는 사찰. 1995년 12월에 토함산 중턱의 암자 석굴암과 공동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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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scription Website: 17 thg 12, 2022 —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385 (진현동) 토함산 기슭에 위치한 신라 연간을 기원으로 하는 사찰. 1995년 12월에 토함산 중턱의 암자 석굴암과 공동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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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세계유산시리즈 – 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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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와 석굴암 – 우리역사넷

전실 벽면 좌우로 불교를 수호하는 신들인 팔부중상,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 통로 좌우 입구에는 두 금강역사상이 각각 조각되어 있어요.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중앙에 본존불이 놓여 있지요.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보살상, 나한상들이 채워져 있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과 십대제자상이 조각되어 있어요.

불국사와 석굴암의 창건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어요. 모량리라는 곳에 대성이란 소년이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어요. 남의 집에 품팔이를 해서 얻은 밭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대성은 어느 날 법회에 시주를 하면 복을 만 배로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대성은 내세에라도 복을 받아 잘 살자며 어머니를 설득해 가지고 있던 밭을 절에 바쳤어요. 그리고 얼마 후 갑자기 죽고 말았지요.

대웅전 앞 서쪽에 있는 석가탑(불국사 삼층석탑)이 소박하고 단정한 멋을 지녔다면, 동쪽에 있는 다보탑은 화려하고 세련된 멋을 지녔지요. 그런데 대개 절에는 탑이 하나만 있거나, 두 개일 때는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동쪽과 서쪽으로 세워서 각각 동탑과 서탑이라 부르는데, 석가탑과 다보탑은 탑 이름도 다르고 생긴 모습도 달라요. 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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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S] 현대에서도 깜짝 놀라는 석굴암과 불국사의 과학 / YTN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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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가 만든 부처님의 나라, 불국사와 석굴암

<불국사 청운교·백운교(경북 경주시)>

문화재청

“드디어 불국사가 완성되었다네. 자네도 가 보았는가?”

“그런가? 불국사를 본 소감이 어떤가? 나도 얼른 가고 싶네만.”

아름답고 웅장한 불국사를 보니 신라가 무척 자랑스럽다네.

신라는 왜 불국사를 지었을까요? 불국사는 신라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부처님의 나라 불국사와 석굴암을 짓다

우리가 수학여행이나 현장체험학습으로 자주 가는 경주에서 꼭 빠뜨리지 않고 들르는 곳은 아마도 불국사와 석굴암일 거예요. 불국사는 경주 동쪽의 토함산 자락에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아름다운 절이에요.

불국사는 이름 그대도 부처님이 사는 나라를 현실 세계에 옮겨 놓은 절이란 뜻이에요. 통일신라 사람들은 괴로움이 없고 즐거움만 있는 극락정토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신라 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신라가 ‘불국’ 즉 부처님의 나라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불국사를 지었어요.

석굴암은 경주 토함산 산기슭에 돌로 만든 석굴 사원이에요. 처음에 석굴암은 석불사라 불렀어요. 그러다 불국사에 속한 암자가 되면서 석굴암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지요.

석굴암은 김대성이 불국사를 지을 때 함께 지었다고 해요.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 10년에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짓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불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그가 완성을 하지 못하고 죽자 혜공왕 10년에 나라가 주관하여 완성하였다.’라고 전해져요.

불국사와 석굴암은 김대성의 효심에서 짓기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국가적인 사업으로 진행되어 완성하였어요. 불국사와 석굴암은 삼국을 통일한 신라 사람들의 자신감과 불교문화가 잘 표현된 아름다운 문화유산이에요. 불국사와 석굴암은 그러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지요.

부처님 나라로 건너가는 청운교·백운교

부처님 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청운교·백운교라는 계단을 올라야 해요. 계단이지만 원래 그 밑으로 물이 흘렀기 때문에 다리라는 뜻의 ‘교’자를 붙였지요.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를 말하는데, 다리 아래의 일반인의 세계와 다리 위로의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청운교와 백운교는 현세를 지나 불국으로 들어가는 다리인 것이지요. 계단을 올라 자하문을 지나면 부처님 나라에 들어서게 되는 거예요. ‘자하’란 붉은 안개라는 뜻으로, 부처님 몸에서 나오는 붉은 금색의 빛이 안개처럼 서려 있다는 뜻이에요.

<자하문과 청운교·백운교>

문화재청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

자하문을 들어서면 석가탑과 다보탑이 나란히 보이고, 그 뒤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 있어요. 불상을 모신 법당과 탑은 불국사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석축을 쌓고 그 위로 지었어요.

대웅전 안 수미단 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양 옆에 미륵보살과 갈라보살을 모셨어요. 부처님은 법당에 단독으로 모시기도 하고, 이렇게 보살상들을 양쪽에 함께 모시기도 해요.

<대웅전>

문화재청

대웅전 앞 서쪽에 있는 석가탑(불국사 삼층석탑)이 소박하고 단정한 멋을 지녔다면, 동쪽에 있는 다보탑은 화려하고 세련된 멋을 지녔지요. 그런데 대개 절에는 탑이 하나만 있거나, 두 개일 때는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동쪽과 서쪽으로 세워서 각각 동탑과 서탑이라 부르는데, 석가탑과 다보탑은 탑 이름도 다르고 생긴 모습도 달라요. 왜 그럴까요?

이것은 탑을 세울 때 법화경이라는 불교 경전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에요. 법화경에서는 현세의 부처를 ‘석가여래’라 하고 전생의 부처를 ‘다보여래’라고 해요. 그러니까 석가탑은 현세의 부처를, 다보탑은 전생의 부처를 각기 다른 느낌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삼층 석탑과 다보탑>

문화재청

진리의 세계를 나타낸 비로전

대웅전과 무설전 뒤에 위치한 비로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곳이에요. 비로자나불은 모든 부처님의 본체예요. 진리를 우리 눈에 보이는 부처님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거지요. 비로자나불은 이 빛으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주는 역할을 해요.

<비로전>

문화재청

인공적으로 만든 석굴 사찰, 석굴암

석굴암은 건축 방식 자체만으로도 아주 특별한 건축물이에요. 당시 절은 대개 나무로 지었어요. 그런데 석굴암만은 돌을 쌓아서 지었지요. 인도에서 불교가 전파되면서 중국과 우리나라에도 석굴 문화가 함께 전해졌어요. 인도와 중국에선 자연 그대로의 바위산을 파고 들어가 방을 만들고 돌을 깎아 불상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석굴암은 다른 곳에서 수많은 돌을 가져다 차곡차곡 쌓아 돌집을 만들고 그 안쪽 면에 조각을 했지요.

석굴암은 신라 사람들의 뛰어난 과학 지식을 보여 주는 건축물이에요. 석굴암을 인공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계산이 필요했어요. 둥근 돔 형태로 지붕을 만들되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정교하게 만들었어요.

또 굴 내부에는 습기가 차지 않도록 차고 더운 공기의 흐름을 이용해 설계하였지요. 본존불이 앉아 있는 방향에도 뜻이 있어요. 본존불은 해가 뜨는 약간 남쪽을 향한 동쪽을 바라보고 있어요. 이 방향은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동짓날에 해가 뜨는 각도와 맞아떨어진다고 해요.

<석굴암의 여러 조각상

①석굴암 석굴 ②석굴암 본존불 ③문수보살과 제석천상

④십일면관음보살상 ⑤십대제자상>

문화재청

돌로 굴을 만들어 부처님을 모시다

석굴암 안에는 석가모니 불상이 있어요. 예배의 중심이 되는 부처를 본존불이라고 해요. 석굴암 입구인 네모난 모양의 전실을 지나면 절의 가운데에 본존불이 자리한 둥근 모양의 주실을 만나요. 전실과 주실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고, 전실은 주실에 있는 본존불에게 예배를 보는 공간이에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표현한 석가모니 불상은 풍만한 몸체에 엄숙한 표정으로 중생을 내려다보고 있어요. 석굴암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손꼽히고 있지요. 석굴암에는 석굴 입구의 전실과 좁은 통로 양쪽 벽, 그리고 본존불을 중심으로 주실의 원형 벽면에 다양한 모습을 한 수많은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요.

전실 벽면 좌우로 불교를 수호하는 신들인 팔부중상,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 통로 좌우 입구에는 두 금강역사상이 각각 조각되어 있어요.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중앙에 본존불이 놓여 있지요.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보살상, 나한상들이 채워져 있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과 십대제자상이 조각되어 있어요.

본존불을 비롯한 이 불상들은 동아시아 불교 조각 중에서도 매우 뛰어난 것으로 손꼽히는 최고의 걸작품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역사 속 작은 이야기: 부모를 위해 불국사와 석굴암을 지은 김대성

불국사와 석굴암의 창건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어요. 모량리라는 곳에 대성이란 소년이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어요. 남의 집에 품팔이를 해서 얻은 밭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대성은 어느 날 법회에 시주를 하면 복을 만 배로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대성은 내세에라도 복을 받아 잘 살자며 어머니를 설득해 가지고 있던 밭을 절에 바쳤어요. 그리고 얼마 후 갑자기 죽고 말았지요.

대성이 죽던 날 밤, 재상 김문량의 집에 하늘로부터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어요.

“모량리의 대성이를 너에게 주노라.”

김문량의 부인은 그로부터 열 달 후 아들을 낳았어요. 아기가 왼쪽 손을 꼭 쥐고 있다가 7일 만에 펴서 보니 ‘대성’이라고 적힌 금패가 있었어요. 김문량은 아이 이름을 대성이라 짓고 모량리의 어머니도 모셔다 같이 살았어요.

어른이 된 김대성은 사냥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자기가 사냥했던 곰이 꿈에 나타나 몹시 원망을 하는 것이었어요. 김대성은 곰에게 절을 지어 위로해 줄 것을 약속하고 용서를 빌었어요. 이후 김대성은 불심이 깊어졌고,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지었다고 전해져요.

통일신라 사람들은 불국사와 석굴암을 통해 어떤 마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여러분은 불국사와 석굴암을 공부하며 어떤 생각이 드나요? 삼국을 통일하고 자신들이 꿈꾸던 부처님의 이상 세계가 바로 여기라는 신라 사람들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지요. 여러분도 신라 사람들처럼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길 바라요.

[집필자] 조윤호

가을에 가면 더욱 멋진 세계문화유산, 불국사 – 네이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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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행 그곳_경주_거대한 무덤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KBS_2017.05.27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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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경주] 불국사와 석굴암 :: 나다운 진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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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 신라삼보 = 불국사, 석굴암..?🤦‍♂️ 하릴없이 같이 뛰는 무도 중대☔ 그리고 명수가 가장 좋아할 보물의 정체는? ‘경주 보물찾기 특집’ 6편 MBC080503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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